건축의 신 421화
정부의 의뢰 (05)
“첫째! 정부와의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의 관계를?”
의아해하는 사장에게 성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작년, 아니, 그 이전부터 현재 건설의 대정부 사업은 거의…….”
사장의 불편한 기색을 지었지만, 성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끄응!”
“그건 전임 건설부 장관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우리 현재하고는 궁합이 안 맞았지.”
떡값을 적게 줬던지, 그냥 기분이 나빴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관계란 아주 작은 것에서 뒤틀리는 거니까.
“그냥 싫어했던 거죠. 사장님을!”
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현 대통령도 우리 현재그룹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죠!”
정확히 말하면, 무관심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가 보기엔 널리고 널린 게 기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대기업에 의해 경제가 좌우되는 구조를 별로 좋게 보지 않죠.”
“그런데?”
“그 대통령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리고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는 완고하고요. 다만 상황이 이래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흐음…….”
신음을 흘린 회장이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 위기를 어떻게든 대통령은 넘길 거고. 그 뒤에는 네가 넘긴 그 비리 제보로 역풍이 불어올 거라는 얘기지?”
“네. 확실합니다. 보셨다시피 야당이고 여당이고 연루 안 된 국회의원을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걸 지금 안 풀고 뭇매를 맞고 있는 거지?”
대통령에게는 이미 비장의 카드가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제 추측은 이래요. 관련된 국회의원들은 딱 잡아떼겠죠. 오히려 그걸 빌미로 대통령을 공격할 겁니다. 대통령이 궁지에 몰려서 상황을 바꾸기 위해, 꾸며낸 모략이다. 음모다! 이렇게요. 그러니 그 카드를 내민다고 해도 임팩트도 약하고, 신문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을 겁니다.”
회장도 이해가 가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치! 내 같애도 그리 할 끼다.”
사장도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
“그래서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 태풍이 지나가기를. 그다음에 그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이 가시죠?”
회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들만 족칠 거 같습니까? 기업들은 가만히 놔두고요?”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왕 맞는 거 우리가 먼저 맞자고요. 그것도 우리 손으로!”
제 손으로 뺨을 때린다 해도, 남이 때린 것보다 아플까?
“그게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냐?”
사장의 질문에 성훈이 오른 검지를 좌우로 저었다.
“출처가 다르면, 신빙성도 다르지 않습니까? 똑같은 문건을 발표해도, 우리가 발표하면 국회의원들이 음모라는 말을 하겠어요? 그것도 우리한테 유리한 내용도 아니고! ‘우리에게 이런 비리가 있었습니다. 감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자체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둘과 차분히 눈을 마주치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 아니냐? 적어도 국민들에게 공감은 얻어낼 겁니다.”
“여지꺼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
회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상황이 아니던가?
“꼭 그래까지 해야 되는 기가?”
“해야 합니다. 두 번째가 되면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하고요. 그리고 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 그때는 방법이 없어요.”
정상화되는 순간, 칼을 휘두를 테니, 대처할 시간도 없으리라.
망설이는 두 부자에게 성훈이 말했다.
“저는 이걸 기회로 면죄부를 사자고 하는 겁니다.”
“흠…… 면죄부라…….”
“이미 이실직고했는데, 그걸 다시 조사해 봐야 무의미하고, 또한 자체적으로 개선했는데, 더 건드릴 이유도 없는 거죠.”
“그렇다고 치자. 정부와 관계는?”
“정확히는 대통령이죠. 우리가 오픈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관된 정치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거죠.”
“엥? 정치인들을?”
정치인을 건드린다?
말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일 터.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 인간들은 제 앞가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걸요. 대통령 괴롭히기는 물 건너가는 거죠. 그럼 대통령은 자유로워지겠죠.”
성훈의 목적은 대통령을 궁지에서 빼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국책 사업이 바로 진행될 수 있거든. 똥파리들도 치우고!’
지금 현재그룹의 향방에 성훈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룹의 미래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사람들은 계속 은폐만 생각할 거거든.’
그렇다고 그들과 사전 논의도 할 수 없는 노릇!
사건이 터졌으니, 성훈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지,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도 반대를 했으리라.
‘그럼 판을 엎으려는 내 계획도 물 건너가는 거지.’
“정치인이라……. 쉽지 않을 낀데?”
회장의 염려에 대수롭지 않은 듯, 성훈이 말했다.
“지금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있는 몇 명만 거론하면 돼요.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 찌그러지니까.”
나머지도 차차 정리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숨통이 트인다?”
“네!”
성훈이 확신하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생각해 보세요! 비리 제보는 KT팀이, 폭로는 현재 건설이! 그것도 제 숨통 조여가면서! 그런데 대통령의 숨통이 트였다? 사장님이 그 사람이라면 무슨 생각을 하시겠어요?”
잠자코 있던 회장이 성훈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를 도와준다! 이래 생각할 거라는 기제?”
딱하고 성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거죠!”
미간에 주름을 만들던 회장이 말했다.
“사장. 니는 우째 생각하노?”
“정치인들과 척을 져서 좋을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성훈이 속으로 코웃음 쳤다.
‘척을 지다니? 날 물로 보시네!’
이제 날 보면 피해 다니기 바쁠 텐데, 무슨 말씀을!
차후 국책 사업을 하는데 콩고물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기사화할 작정이었다.
‘일은 내가 하는데, 콩고물은 왜 네놈들이 챙기냐? 그 돈 있으면 우리 애들 보너스나 더 주지!’
성훈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준비해서 제대로 한 방 먹이면, 척질 일 없습니다. 그 인간들 두 번 다시는 정치판에 발 못 붙이게 할 테니까.”
사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반격하면 어쩔 거냐?”
“반격 못 합니다. 반격하면요?”
성훈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문서는 또 있습니다.”
“또? 또 있다고?”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완전 똥파리들 보물 창고 같아요. 파기만 하면 나오던데요.”
자신들과도 연관이 있다 생각했던지, 둘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쓸 겁니다.”
회장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 거는 우데서 구했노?”
“하하. 비밀입니다.”
“끙! 니 그거 쥐고 있다꼬 내 함부로 보지 마래이!”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 회장님하고 척지고 싶은 생각 눈곱만큼도 없는데요?”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그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이노무 자슥! 두고 볼 끼다!”
회장의 말이 끝나고 성훈이 설명을 이었다.
“그럼 현 상황이 정리되고, 비리 조사를 할 때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될 거라 예측하는 거냐?”
“이미 우리는 스스로 매를 맞았어요. 문제가 불거진 사람을 스스로 정리하고, 유명 정치인 몇 명을 끄집어냈어요! 우리를 조사할까요?”
성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사할 다른 기업들이 수두룩한데. 우리 쪽으로 조사단 보내겠냐고요? 이미 다 까발리고 자수했는데?”
회장이 조용하게 혀를 찼다.
“하기사……. 대통령 지도 인간이모 그래 몬 하지.”
인지상정이 별건가?
이런 게 인지상정이지!
성훈이 말을 덧붙였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올 게 뭐 있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할 건데요.”
사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털어 먼지가 안 나려면, 진짜로 모든 걸 폭로한다는 조건이 붙겠구먼.”
“당연하죠.”
그들로서는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되리라.
대기업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다니. 누가 시비를 걸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이번 정권에서는 정부의 비호를 받을 거라 확신한다. 그 말이지.”
회장의 예리한 눈빛에 성훈은 호탕하게 답했다.
“의심 가십니까? 굵직한 관급 공사는 몽땅 현재 건설로 밀어달라고 해볼까요? 해주나 안 해주나 보게요?”
회장이 실소를 지으며 코웃음 쳤다.
“잘도! 니가 그딴 그런 거 부탁할 놈이가? 택도 아인 소리하고 앉았네.”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실력으로 따오면 되는데, 뭐하러 그런 구차한 부탁을 한단 말인가?
그거 싫어서 판 뒤집는 건데!
‘공정만 경쟁만 할 수 있어도 난 만족한다고!’
하지만 궁지에서 끌어내 주는데, 고마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회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짜든동 신세는 갚을라 카겠지.”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 기대로 회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아버지. 성훈이 말대로라면 관련된 이사들 다 잘라야 하는데, 다른 계열사까지 하면…….”
사장의 만류를 회장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성훈에게 물었다.
“일단 마저 들어보자. 두 번째는 뭐꼬?”
“비슷한 맥락인데, 국민들이 현재그룹을 바라보는 이미지가 바뀔 겁니다.”
둘과 눈을 번갈아 마주치며 말했다.
“악덕 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깨끗한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거죠. 대한민국에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이런 사건은 없었으니까요.”
회장에게 국민에게 보이는 이미지는 그닥 큰 의미가 없을 테니,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국민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며, 그것은 KT의 행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성훈의 설명이 끝났다.
이제 회장은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렸다.
“언 놈은 자르고 언 놈은 안 자르믄, 글마들 지랄할 낀데.”
“네. 잡음이 많을 겁니다.”
“하나같이 내하고 한솥밥 묵읐든 얼라들인데…….”
성훈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 사건은 현 대통령 퇴임 후,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사건의 단초였다.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걸 고작 이사 몇 명 자르고 마무리 짓겠다고? 사건의 심각성을 모르시네.’
“말해 보그라.”
“할 거면 제대로 하셔야죠. 대충 이사진 몇 명 자르는 걸로 안 됩니다.”
자르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끼는데, 많이 자르라고 하니, 회장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라모 우짜라꼬!”
“회장직을 거십시오.”
그 말에 되레 사장이 펄쩍 뛰며 역정을 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정신이야?”
회장도 성훈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성훈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 후계들의 시대입니다. 회장님도 말씀하셨잖아요.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그러면서도 계속 경영에는 간섭했지만 말이다.
뜻밖의 말에 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물러나야 하는 이유가 뭐꼬?”
“제가 이미지 쇄신 말씀드렸죠? 그게 과연 신문에 몇 자 올리는 것으로 될까요?”
눈을 홉뜨는 회장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문제가 된 이사들은 모두 회장님 시절의 창업공신들입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노릇.
그 정도 위치가 되어야 뇌물도 줄 수 있는 거지.
어느 미친 정치인이 만년 대리가 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겠는가? 뒤통수가 가려울 텐데 말이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조선에 태종이 없었다면, 세종이 그렇게 태평성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 말에 회장이 움찔했다.
조선왕조의 전성기, 세종의 시대는 그 아비 태종의 숙청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세종의 치세에 위협이 될 외척과 공신들을 처단함으로써 말이다.
물론 역사의 진실이야 누가 판단하겠냐만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던가?
“끄응!”
“이 기회에 정리하시란 말이죠.”
“그래도 회장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사장의 반문에 성훈이 코웃음 쳤다.
“솔직히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자르면, 그 사람들은 불만이 없을까요? 뭔가 비장의 수를 준비하겠죠? 짬밥이 몇 년인데, 각자 계열사에 흠집 낼 정보 몇 개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사실 사장도 회장도 그걸 염려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직접 회장직 내놓으면서 그 사람들 데리고 물러나 보세요. 아무도 회장님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이니까요. 되레 미안해할 걸요?”
“그래도 회장님 은퇴는……. 너무 심하잖냐? 성훈아.”
사장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회장에게 말했다.
“이건 세 가지 이득이 있어요.”
회장이 매서운 눈으로 물었다.
“뭐꼬?”
“첫째. 기업 이미지 쇄신에 확실한 증거죠. 회장이 물러날 정도로 반성하고 있다는 거니까. 둘째. 회장님이 지금까지의 비리를 책임지고 물러나는 거니까, 이제 계열사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죠. 비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사장단들을 견제하려는 회장님의 가신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장님도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셨잖아요.”
왕 위에 상왕이 버티고 있는데, 가신들이 왕을 두려워할까?
사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이 친구야. 그걸 꼭 여기서…….”
회장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겠지.
성훈이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끝났습니다. 결정은 회장님이 하시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회장님이 변하는 건 없어요. 회장에서 물러날 뿐이지. 경영 간섭도 계속하실 거잖아요.”
여전히 회장의 파워는 살아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하지만 성훈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난 대통령이 움직일 틈만 만들면 돼!’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한참을 고민하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알았다. 내 생각해 보꾸마.”
그리고 회장은 나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라고 성훈이 고생했다. 나가 보그라.”
회장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훈이 보기에는 회장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사장도 설득할 것이고.
회장은 현재그룹을 지키고, 사장은 경영의 실권을 잡는다!
어떤 게 서로에게 이득인지는 너무나 잘 알 터!
생각을 정리한 성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정리되고 나면……. 한국 건설업계는 내 손에 들어온다! 업계 1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