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420화 (420/427)

건축의 신 420화

정부의 의뢰 (04)

장관이 방문한 지, 사흘 후.

KT팀의 주간 회의가 끝났다.

돌아가려는 곽 부사장을 성훈이 불렀다.

“부사장님.”

부사장이 걸음을 되돌려 다가왔다.

“네. 성훈 님.”

성훈이 그의 곁으로 붙으면 말했다.

“가면서 말씀하시죠. 보람이가 보급형 주택 설계 완료되었다던데요. 보고받으셨죠? ”

“네. 보고받았습니다.”

서류에 결재를 마치고 펜을 놓은 성훈이 물었다.

“그럼 이제 진행을 해야 할 텐데, 정부 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까?”

부사장에게 전권을 위임했고, 그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성훈이 묻는 것이었다.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고민 중일 겁니다. 현 시국이 그걸 터뜨리기 쉽지 않으니까요.”

“흠…….”

미온적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성훈이 입을 삐죽 내밀자,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여당에서 확실히 백업을 해줘야 하는데, 그 여당이 대통령을 성토하고 있으니……. 휴.”

그도 현 정치 상황이 답답한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바보 같은 것들이……. 조금씩만 양보하면 되는걸! 쯧쯧.”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곽 부사장도 성훈에게 동조하며 혀를 찼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사면초가라면…….”

성훈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훗! 그렇네요.”

사면초가!

고립된 대통령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비유할 수 있을까?

대통령을 도와 정국을 끌어가야 할 여당이 도리어 반대편에 서서 성토를 하고 있다니!

“그래도 그 사람 성격이라면……. 뭐라도 결론이 났을 줄 알았는데.”

현 대통령의 성격이야, 지난 삶에서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는 국회의원들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굽히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었던 배짱 좋은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이군.’

그 상황을 백분 이해한다 해도 불평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작업 시작해야 하는데, 이리 미적거려서야…….”

“죄송합니다. 성훈 님.”

곽 부사장이 죄인인 양,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부사장님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잘해 보라고, 칼을 던져줘도 쓰지를 못하는 것들이 바보지. 쯧.”

답답해하는 성훈을 달래듯, 곽 부사장이 말했다.

“타이밍이 중요한 건 아니겠습니까? 지금처럼 정치적 이슈가 판을 칠 때는, 그런 경제사범에 관한 기사 따위는 구석에 실렸다가 사라질 겁니다. 대통령도 나름대로 기회를 살피고 있는 거겠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성훈은 소파에 기대며 혀를 찼다.

“기회 기다리다가 늙어 죽겠습니다. 나 참!”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현재그룹 쪽은 어때요? 부사장님이 그때 말씀하신…….”

‘현재그룹에 기회를 주면 안 되겠느냐?’던 부사장의 부탁을 에둘러 언급하는 것이었다.

곽 부사장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그건 제가 회장님을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렸습니다.”

“뭐라시던가요?”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성훈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지만, 일단은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역정을 내셨지요.”

“하긴. 그 성격에! 안 봐도 훤하네요. 쌍욕 먹고 오셨겠네요.”

너무 정확한 예측이었으려나?

부사장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머쓱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뭐! 젊으셨을 때는 더 하셨지요. 나이를 드셔서 그런지…….”

그는 씁쓸한 미소로 말을 맺지 못했다.

주군의 노쇠함을 슬퍼하는 가신의 모습이랄까?

‘오랜 세월 한솥밥 먹은 정이 있으니!’

그의 미소는 씁쓸했지만, 그건 성훈의 관심 밖!

“그래서 그룹에서는 어떻게 움직일 거랍니까?”

인풋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아웃풋이 있는 거 아닌가?

그 말에 곽 부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성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정확한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공은 이미 그쪽으로 넘겼고, 거기서 처리해야 하니까!

“쩝. 그쪽도 미적거린다……. 이거네요? 이거 은근히 신경 쓰이네…….”

작게 중얼거리던 성훈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한다는 건지, 자세하게 알아보세요.”

전권을 위임했다 하여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통령의 어정쩡한 반응도 성훈은 마음에 걸렸다.

“네. 알겠습니다.”

“이따 점심시간까지 알아 오세요. 어설프게 대처하다가는 이 일 시작도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시간을 끌다가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러다 대통령이 완전히 궁지에 몰려버리면, 이 비리 사건은 시작도 못 하고 불발탄이 된다고!

“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에 찾아뵙지요.”

“네. 그럼 수고 좀 부탁드려요.”

***

점심시간이 끝나고, 곽 부사장이 팀장실을 찾았다.

“어떻게 되고 있던가요?”

“정부의 행동에 맞춰서 피해 규모를 어떻게 최소화시킬지 이미 다 짜놨더군요.”

성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들도 움직이지 않겠다. 그 말이네.’

그런 사건은 없는 게, 기업으로서는 여러모로 이득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소파에 기댄 성훈이 엄지로 인중을 긁었다.

“흠…… 마음에 안 드는 데요?”

성훈의 말에 부사장이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대응이요. 잘못된 거 뻔히 알면서…… 쯧쯧!”

성훈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대통령도 지금 상황이 별로죠?”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인 정도가 아닙니다.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개판이네. 개판!”

성훈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설계를 마무리 지었으면 뭐하나?

실제로 건물을 지어야 일이 진행되는 것이지!

“이 상황! 언제쯤 풀릴 것 같습니까?”

부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알 수 없지요.”

성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서 하길 기다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네! 쯧쯧.”

잠시 생각하던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왜?”

놀라는 곽 부사장에게 물었다.

“회장님 지금 본사에 계신가요?”

뜬금없는 말에 곽 부사장이 물었다.

“네! 난리가 났으니까요.”

“가시죠!”

“지금 말입니까? 가셔도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 성훈 님.”

“알아요. 저도.”

“그런데 굳이 방문하셔서 기름을 부으실…….”

“아뇨. 지금이니까 가야 하는 겁니다. 늦어지면 기회를 놓칠 테니까.”

괜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부사장은 성훈의 단호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10분 후에 내려오시지요.”

“네. 저는 사무실에 들렀다가 내려가겠습니다.”

부사장이 휴대전화를 들고 기사를 부르더니, 자리를 떴다.

팀장실로 걸어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회장에게 건설업계 정리를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거고.’

오히려 자신이 만든 아성을 건드리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얻을 것보다 잃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 욕심 많은 노인은 더 말해 무엇하랴!

‘회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런 정국에서 대통령이 움직이기는 더 힘들다고!’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 설계도 결국 미완성으로 멈춰야 할 것이다.

설계는 도면대로 집이 완성되었을 때, 가치가 생긴다.

‘일단 질러보지. 뭐!’

***

그룹 본사 회장실.

회장이 호통쳤다.

“성훈이 니! 여는 뭐 할라꼬 왔노?”

성훈이 꾸민 계획으로 인해 그룹 전체가 비상이 걸렸으니, 아무리 성훈을 예뻐하는 회장이라 해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노릇.

성훈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못 올 곳에 왔나요? 저도 엄연히 현재 직원인데요.”

“직원이라카는 놈이 사장한테 말도 안 하고 이런 난장판을 만들어? 그기 지각 있는 놈이 할 일이가?”

성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미리 통보는 드렸잖아요.”

같이 자리를 하고 있던 건설사장도 물었다.

“김 팀장!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달을 낸 건가?”

회장이 있으니, 크게 소리칠 수는 없었지만, 사장 또한 이 상황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성훈이 눈썹을 으쓱하며 말했다.

“한국에서 제대로 한번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꼼수 없이요.”

건설업계의 관행이야, 사장도 익히 알고 있었고, 그 주류이기도 했으니, 성훈의 의도를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사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꼭 이렇게…….”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어요. 그리고 현재건설만 관련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하는 말 아닌가? 그래도 지금까지 한솥밥 먹은 정이 있는데, 적어도 현재건설은 제외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장의 말에 성훈이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아니죠. 그럼 더 모양새가 이상해지죠. 메이저 건설사가 모두 연루되어 있는데, 현재건설만 빠진다고요?”

사장에게 물었다.

“그럼 누가 비리 제보자라고 의심할까요? 저라면 대번 현재건설을 주목할 건데요?”

회장이 코웃음 치며 툴툴거렸다.

“흥! 사고 친 놈이 말은 청산유수네.”

성훈이 회장의 옆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회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떡하기는? 지켜봐야지. 지금 국회가 난리다 아이가?”

“지금 탄핵 얘기 나오는 거요?”

“그래. 쉽게 진정 안 될 거 같으니까, 그 뒤에 우리가 우째 할지 결정해도 된다.”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성훈은 생각이 달랐다.

“전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응? 니는 와 그리 생각하는데?”

“지금 국회에서 난리 치는 거. 금방 끝납니다.”

회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니가 우째 아노.”

지난 삶에서도 현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았었다.

‘하지만 금방 지나갔지!’

“제 감이 그래요.”

회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감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바, 성훈의 감이 얼마나 좋은지는 몇 번이나 확인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그래서?”

“지나가고 나면……. 비리를 척결하려 들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부가 칼자루를 쥐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성훈에게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뭐?”

“정부 발표 전에 우리가 먼저 말해버리면.”

“뭘 먼저 말해?”

회장의 물음에 성훈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

“와?”

“그냥 오픈하고 정면돌파하시죠?”

“뭘 오픈해?”

“비리에 연관된 거요.”

“그걸 오픈하자꼬? 니가 정신이 있는 기야?”

회장이 역정을 냈지만, 성훈은 단호했다.

“이런 문제는 묵혀두면 커집니다. 작을 때 해결하는 게 나아요.”

“다 까발리는 게 해결이가?”

“숨긴다고 넘어갈 것도 아니죠. 지금까지야 어떻게든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회장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성훈을 노려보았다.

성훈이 시작한 일이니, 성훈은 어떻게든 끝을 보려 할 터!

그것도 녀석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던가?

‘성훈이 이거 하고 척을 졌다가는…….’

회장은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성훈의 말을 따를 수는 없는 노릇!

회장이 깍지를 끼며 물었다.

“그래. 니 말대로 한다 치자! 그래가 내가 얻는 기 뭐꼬?”

회장의 물음에 성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어! 반은 넘어왔네.’

이 노인에게 정의 사회 구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

내 목적은 어떻게든 대통령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게 보급형 주택 설계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는 방법이거든!

판이 정리돼야, 뭐든 할 거 아냐?

성훈이 보란 듯이 검지와 중지를 폈다.

“제 말대로 오픈하시면 두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회장과 사장, 두 부자는 성훈에게로 어깨를 바짝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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