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17화
정부의 의뢰 (01)
출근시각 지하철.
꾸벅꾸벅 조는 동료에게 김 과장이 물었다.
“박 과장. 왜 그래? 병든 닭마냥?”
“엊저녁에 윗집 애들이 얼마나 뛰어다니던지.”
그 심정을 아는 듯, 김 과장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쯧쯧. 애들 뛰는 거 보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애초부터 집을 잘 샀어야지.”
“그게 내 뜻대로 되냐? 그 인간들이 나중에 이사 왔는데?”
그의 투덜거림에 김 과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야! 결국 KT팀이 해냈구만!”
그 탄성에 흥미가 돋았는지, 박 과장이 어깨너머로 신문을 훔쳐보며 물었다.
“KT팀이 뭐야?”
그는 설명 대신, 보고 있던 신문을 내밀었다.
모든 일간지의 첫 면을 장식한 문구였다.
“이게 뭐? 공모전에서 우승했나 보네.”
김 과장은 답답한 마음에 신문을 펼쳐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등신아! 이게 한두 푼짜리 공사인 줄 알아? 이거 봐! 자그마치 20억 달러야. 20억!”
“이, 이십억 달러?!”
“그래! 거기서 세계 최고라는 건축가들을 다 때려눕히고, 일등을 먹은 거라고. 그냥 공모전하고는 차원이 달라. 차원이!”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이렇게 정보가 어두워서야.”
동료의 핀잔에 ‘지는 얼마나 밝다고?’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물었다.
“잘하나 보지.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젠체하기는!”
“이 팀이 보통 팀인 줄 아냐? 업계 탑이야. 탑!”
“그럼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현재건설에 소속된 팀이지만 독자적이지. 아예 현재건설하고는 분리해서 보는 사람도 많아.”
“그래?”
“응! 국내 건설사들하고는 품질의 수준이 다르다고 하더라고.”
“엥? 진짜? 그런데 왜 난 KT팀을 모르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한국에서는 활동을 못 했으니까 그랬지.”
“왜?”
무슨 음모라도 꾸밀 참인가?
김 과장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나도 들은 건데 말이야. KT팀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건, 국내 건설사들끼리 모종의 합의를 한 것 같다는 거야.”
뒷담화는 언제나 재미있는 법.
동료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건설을 상대로 거래한 거겠구먼. 국내는 건드리지 마라. 해외에서 뭘 하든 상관 않겠다? 이런 식으로? 그치?”
“그렇지.”
하지만 그게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김 과장이 투덜거렸다.
“어휴! 얼마나 시공을 때깔 나게 하면, 세계 일등이 될 수 있는 거냐?”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 사람들이 지은 집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층간 소음 없이.”
하품하는 박 과장을 보며, 김 과장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제 집 사는 것도 무섭다. 개똥 같이 지어 놓고, 돈은 또 엄청 비싸게 받아요. 안 그러냐?”
“그러게. 빨리 KT팀인지 뭔지 국내에서도 집 좀 지었으면 좋겠다. 집 같은 집에서 좀 살아보게.”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흥밋거리일 뿐!
이때만 해도 KT팀의 등장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
청와대 오찬 장소.
“더 보고할 건 없소?”
장관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아침부터 보고하느라 고생들 많으셨소.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내고 식사나 마저 합시다.”
미역국을 뜨던 대통령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건 여담인데 말이오.”
장관들의 귀가 대통령에게로 쏠렸다.
“내, 김 장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
지명받은 건설부 장관이 씹던 밥을 꿀꺽 삼키고는, 대통령과 눈을 맞췄다.
“네! 말씀하시지요.”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까, KT팀이 공모전에 우승했다고 나오던데.”
“네. 저도 그 기사 봤습니다. 20억 달러 규모의 대공사를 따낸 거지요.”
화답하는 김 장관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에 대통령도 마주 웃으며 물었다.
“그게 그렇게 대서특필할 정도의 일입니까? 경제면도 아니고 일면에?”
대통령이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랴!
그렇기에 자신 같은 전문가가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대단한 거지요. 시공이 아니라 설계 부문에서 따낸 거니까요.”
“호오!”
“시공으로 그런 규모를 따내는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국내 건설사의 역량은 세계에서도 인정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쉽지만, 한국의 설계는 시공에 비해서 그리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입꼬리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흐음…….”
“그래서 저는 KT팀의 공모전 당선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새로 임명한 건설부 장관은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뽑은 사람.
건설에 대해서 만큼은 그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김 장관이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승리는 한국인의 성실성이 아닌 창의력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거니까요.”
“오호라!”
대통령의 맞장구에 신이 났던지, 김 장관이 설명을 덧붙였다.
“게다가 설계만으로 그 정도 규모의 공사를 따낸 건, 한국 건축계에서는 처음 있는 대사건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대통령의 감탄이 깊어졌다.
“그런가? 한국에서 처음이라고?”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네.”
“여쭈시지요.”
“내가 건설을 잘 몰라서 묻는 건데, 160 몇 층이던가?”
“정확히는 지하 6층, 지상 167층에 총 높이는 850미터입니다.”
그의 정확한 답변에 만족하며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 공사를 2년 만에 끝낼 계획이라던데, 그거 참말로 가능한 건가?”
기사를 읽지 못한 장관들도 있는 듯, 잠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요? 850미터를 2년에 끝낸다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미친 거 아니오? 하루에 1미터 이상씩 올려야 한다는 말인데?’
‘허허허. 살다 살다 이런 소리는…….’
그 말이 귀에 들렸던지, 김 장관이 말했다.
“첨탑을 빼면 700미터입니다.”
투덜거린 장관이 헛기침하며 말을 고쳤다.
“그거나 이거나. 어쨌거나 하루에 1미터씩은 지어야 한다는 건데……. 오타 난 거 아니오?”
김 장관이 신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흠. 솔직히 저도 그 기사를 보고 오타가 아닌가 해서 외신까지 확인해봤습니다. 한국 건설사의 기술력으로는 어림없는 소리였으니까요.”
김 장관은 물컵을 들어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걸 하겠다는 건설사가 KT팀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확신 가득한 그의 말에 대통령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시공 순위 탑으로 꼽히는 곳이 KT팀입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일위!”
“그런 곳이 왜 알려지지 않았을꼬?”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동안 국내 활동이 전무하였기에.”
대통령이 입매를 씰룩이며 말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에서 활동하면 더 좋았을걸.”
고용부 장관이 말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제가 전임 건설부 장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시작했던 말이, 장관들의 진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실은 전임 박 장관도 KT팀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경계했었습니다.”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붕어들 사는 연못에 가물치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냐고 하더군요.”
“흐음. 그렇게 생각했던 건가?”
한국이라는 동네 상권 가지고 아웅다웅하는데, 세계 일등이라는 KT팀이 등장한다 해보라.
기존의 건설사들이 어떻게 될지!
고용부 장관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KT팀은 현재건설에 속해있는 팀입니다. 현재건설이 국내 시공을 독점할까 우려했던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훈은 더러운 꼴 보기 싫다며 일부러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지만, 상황이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법.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대통령은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 장관이 그 의견을 반박하고 나섰다.
“한국의 건설업계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합니다.”
“왜요? 잘 되고 있는데?”
“적당히 담합해서 나눠 먹기 하는 게 잘 되는 겁니까? 그건 건설사 배 불리기밖에 안 돼요.”
“그럼 김 장관 당신 말은, 그 건설사들 다 죽이자는 말이오? 그럼 그 밑에 딸린 직원들 일자리는 어떡하고?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
하지만 김 장관은 동의하지 않았고, 대통령을 향해 말했다.
“대통령님. 이건 다른 관점에서 보시면, 오히려 정당한 경쟁을 함으로써 경기 부양은 물론이며, 건설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복지부 장관이 그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건설부 장관이라고, 너무 당신 편의만 생각하지 마시오. 안 그래도 일자리가 부족해서 죽을 판에, 기업들 휘청거리게 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나무만 보지 말고 산도 좀 보시오!”
논의가 격해지자, 대통령이 대화를 멈췄다.
“그만들 하게. 이 자리서 논의할 사안은 아닌 것 같군.”
각 부처의 사정이 있는데, 어찌 모두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겠는가?
김 장관도 그의 눈빛에 수긍했다.
대통령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이 오찬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 흥분할 것이 뭐 있소. 내, 처음부터 여담이라 하지 않았소? 얼른 업무 부서로 돌아가시오.”
장관들이 돌아가고, 대통령과 건설부 장관 둘만 남았다.
“김 장관은 KT팀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던데?”
“이 계통에 있으면서, KT팀을 모르면 간첩입니다. 대통령님.”
“흐음. 그만큼 유명하다는 건 능력이 있다는 말이겠지?”
대통령이 요구하는 것은 실적!
사람을 쓸 때는 항상 능력 위주로 뽑았다.
“네. 그렇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훈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일화는 많았다.
KT팀이 외국에서만 활약했다고 해도, 한국에는 성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던가?
옛 기억을 떠올린 김 장관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울산 참 많이 발전했지요. 오 년 전보다.”
대통령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훗. 매우 성공적인 발전을 이뤄냈지.”
지금 울산은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였다.
앙케이트 조사에서 드러났지만, 국민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라고 하면 울산이었다.
그것도 지난 3년 부동의 1위!
도시 정비는 물론이고. 삶의 질까지 최고인 도시!
“그 울산 도시 계획을 주도한 사람이 이 김성훈 팀장이었습니다.”
“정말인가? 사진을 보니 갓 이립이나 지났을까 싶던데?”
“네. 맞습니다. 울산 도시 계획을 진행할 때, 그 친구가 대학교 3학년이었지요”
대경실색한 대통령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정말 그 젊은 나이에? 게다가 주도를 했다고?”
김 장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그 프로젝트 구성원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겪어봤다는데, 뭐라 반박할 것인가?
“그 한 교수인가 하는 사람이 아니고?”
“한 교수도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만, 건축가들을 끌어들이고, 계획 전반의 뼈대를 세운 건 성훈 군이었지요.”
대통령의 눈빛이 번뜩였다.
“호오! 욕심나는 친구로구만.”
탐나는 인재를 발견했을 때, 보이는 그만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으실 겁니다.”
“왜 그리 생각하나?”
“현재그룹 성 회장도 김성훈이라면 한 수 접어준다고 하니까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성 회장. 황소고집, 그 양반이?”
“네. 더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간략한 설명에 대통령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김 장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네를 잘 뽑은 것 같으이. 평생 정치질이나 하던 인간들이었다면, 자네처럼 이런 조언은 못 했을 것 아닌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건설업계에 대해서는 자네 의견과 비슷하다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지. 너무 안이해졌어.”
“맞습니다.”
“팀장이라는 친구와 접촉해 보게. 뭐가 필요한지도 물어보고.”
“그럼 영입을 하시겠다는…….”
“영입?”
대통령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괜히 고집 센 놈 건드려서 뭐하게? 녀석이 거절하지 못할 일거리나 맡기면 돼! 사업하는 녀석이니 거절하지 않을 거고.”
“아! 그렇군요.”
“게다가 싫다는 놈 억지로 끌어들이면 분란밖에 더 나나.”
물 한잔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굳이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저 능력만 중히 쓰면 되는 것이지.”
“야당에서 반대할 수도…….”
“좋은 명분 있잖나? 세계 1위! 그리고 공모전 당선! 더 좋은 조건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든지!”
호탕하게 결정하며 말을 이었다.
“이참에 녀석을 국책 사업 책임자로 떡 앉혀 버리지. 성질도 더럽다면서?”
김 장관이 움찔했다.
“제가 언제? 그런데 왜 하필 성훈 군을…….”
“성 회장 그 양반하고 한판 붙었다면, 안 봐도 뻔하지. 보통 성질머리로 그렇게 못하거든! 앉혀만 놓으면 알아서 작두질할 놈이야!”
김 장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보기에도 대통령의 판단은 정확했다.
하지만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건설업계에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
염려하는 모습에 대통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네. 미꾸라지 운반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아나?”
뜬금없는 질문에 김 장관이 눈을 껌뻑였다.
“장거리를 달리면, 미꾸라지들이 멀미가 나서 많이 죽는다네. 상태도 안 좋고. 그럴 때는 말일세.”
“그 통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주지.”
“메기를요?”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찌 되는지 아나?”
김 장관이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말을 이었다.
“신기하게도 출발하기 전보다 더 생생하단 말이지. 그것도 거의 말이야. 물론 먹히는 놈도 몇은 있겠지만.”
김 장관과 헤어지기 전, 대통령이 말했다.
“김 장관. 살아남는 놈은 살아남는 이유가 있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