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16화
공모전 (09)
공모전 당선 발표까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발표장에서 바로 공표를 했으니까!
각 참가자는 연회가 끝날 무렵, 사흘 후로 예정되었던 발표가 갑작스레 다음 날로 변경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었다.
잠시 어리둥절했었지만, 주최 측이 그렇다는데 뭐라 항변할 것인가?
정확한 정보의 근원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들었다는 주최 측 관계자의 투덜거림에서 원인을 추측할 뿐이었다.
‘뭐가 그리 급하신지……. 빨리 발표하고 시공을 시작하라 하셨다더군요.’
‘누가요?’
한 건축가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탑 시크릿입니다.’
***
사회자가 말했다.
“쿠웨이트 공모전 당선작!”
공모전 참가자와 그 관계자들은 물론이요,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개미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발표장은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일순 긴장된 분위기를 읽었지만, 그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KT팀! ‘알라의 불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성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하지만 큰 소리로 기뻐할 수는 없었다.
옆을 슬쩍 돌아보니, 다른 참가자들이 눈짓으로 성훈에게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었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성훈도 고개를 슬쩍 숙이며, 그들의 축하에 답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으로야 환호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들은 건축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장들.
앞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해야 하며, 또한 도움을 받을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성훈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중에서도 사회자의 말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KT 팀원들이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당선이다!”
“이거! 진짜예요?”
그들 또한 공모전의 주역이 아니던가? KT팀!
다른 참가자들의 눈치를 볼만도 하겠건만, 그들은 아랑곳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았다.
“와! 대박이다. 대박! 이거 20억 달러가 넘는 공사라고!”
순식간에 회장을 시장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말릴 것인가?
사회자 또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힐 생각이 없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KT팀!”
성훈을 따라 지금까지 일해오기는 했지만, 그들 또한 당선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따내게 될 줄이야!”
어떤 자는 울고, 어떤 자는 웃으며, 저마다 서로 다른 기분으로 오늘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사회자가 참가자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당선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의 작품 모두!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압둘을 보며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왕세자 전하. 심사위원 대표로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지명받은 압둘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나갔다.
마이크를 건네받고는 청중을 향해 똑바로 섰다.
“흠흠. 사회자의 말대로였습니다. 저명한 건축가들의 솜씨만큼이나, 거의 박빙의 승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 하나 참신하지 않은 것은 없었으므로, 당선작 선정에 우리 심사위원들은 꽤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압둘이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알라의 불꽃’은 그중에서도 단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언의 동의를 구하듯, 그의 시선은 참가자들에게로 향했다.
“무엇보다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쿠웨이트의 기상을 잘 표현하고 있었으며, 특히나 객실의 이동이라는 콘셉트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세계와 소통하는 쿠웨이트의 미래를 보았다고나 할까요?”
시선이 다시 청중에게로 향했다.
“그의 설계는 쿠웨이트의 미래라는 공모전의 주제를 가장 잘 이해했다고 심사위원단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쿠웨이트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 주신 건축가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압둘은 마이크를 넘겼다.
어제 성훈과 나누었던 ‘알라의 불꽃’, 그 체인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그들 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지만, 공모전에서 성훈이 말하지 않았기에, 이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라 생각했으리라.
또한 은밀한 추진을 위해서는 비밀 유지를 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며!
압둘이 말하는 동안, 참가자 하나가 머쓱하게 말했다.
“고민은 무슨…… 며칠 뒤에 발표할 거라더니, 하루 만에 발표해 놓고는…….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프랭크가 그의 투정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그만큼 KT팀의 작품이 압도적이었다는 거 아니겠나? 규모 면에서나, 시공 면에서나.”
그 말에 참가자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프랭크.”
맨 끝자리에 앉아 있는 성훈을 눈짓하며 프랭크가 말을 이었다.
“그럼 아무 말 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게. 자네가 당선되었다고 해보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지.”
역지사지라 했던가?.
그 또한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했던 모양!
“명심하도록 합지요. 프랭크.”
그 사이, 마이크를 다시 건네받은 사회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압둘 왕세자셨습니다. 그럼 계속 진행을 해보도록 할까요? 당선자께서는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성훈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모두 진심 어린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성훈이 자리에 서자, 압둘이 성훈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넸다.
“고생이 많았네. 성훈 군.”
“감사합니다. 압둘.”
기자들이 든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졌고, 청중석에서는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압둘이 비어 있는 양손으로 성훈을 안아주며 속삭였다.
“아바마마께서 기대가 크시다네. 알지?”
더 말해 무엇하랴?
하루라도 빨리 완공을 시키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 결정하셨는데요?”
성훈의 장난기 어린 속삭임에 압둘이 콧김을 내뿜었다.
“자네도 내 상황이 되어보게. 부왕께서 다그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야. 2년.”
그의 농담에 성훈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 그 안에 반드시 완성해 보이겠습니다”
성훈의 등을 토닥이며 압둘이 말했다.
“잘 부탁하네. 우리 쿠웨이트의 미래!”
“믿어주십시오.”
압둘이 양팔로 성훈을 밀어내고, 얼굴을 지그시 보며 믿음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청중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참가자 여러분들!”
압둘이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쿠웨이트는 여러분 모두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이외다. 모두 고생 많으셨소!”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당선자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항상 있는 순서가 아니던가?
하지만 성훈은 거창하게 수상소감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저 뛰어난 건축가들을 그 시간 동안 들러리로 만드는 셈이니까! 소감은 짧게, 감사는 길게!’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든 성훈이 제일 먼저 참가자들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여러 선배 건축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좌중을 아우르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 영광을 저와 함께 참여해 주신 선배 건축가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참가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성훈을 직시했다.
“오랜 시간 선배님들이 다져오신 건축의 기본이 있었기에, ‘알라의 불꽃’을 디자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고맙다고 하는데, 누가 불평을 하겠는가?
참가자들도 흐뭇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도 더 발전적인 설계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성훈의 시선이 국왕과 압둘에게 향했다.
“이른 시일 내에 ‘알라의 불꽃’이 진정 쿠웨이트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성훈이 청중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성훈이 단상을 내려오자, 기자들이 성훈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2년 내에 완공시킨다는 게 사실입니까?”
하지만 사회자가 급히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국왕 전하께서 계신 자리입니다. 질문은 회장 밖에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황급하게 성훈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사회자가 말했다.
“이것으로 공모전 당선 발표를 마칩니다.”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훈에게로 향했다.
그걸 본 기자들은 회장 밖으로 향했다.
“기다리다 시간 다 가겠는걸. 나가서 세팅하고 있자고!” 하는 속닥거림과 함께.
***
국왕과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린 프랭크가 성훈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하네. 성훈.”
“감사합니다. 프랭크.”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한 건가?”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빨리 만들라는 압박이죠. 뭐.”
더 많은 말이 오갔겠지만, 프랭크는 자신에게 할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가면서 얘기하지.”
성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패배했지만, 다음에는 만만치 않을 테니 각오하게나.”
성훈도 미소 지으며 맞장구쳤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바로 한국으로 들어갈 셈인가?”
“네. 그래야죠. 다음 프로젝트도 있고.”
그 말에 프랭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벌써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인가?”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을 이었다.
“뭔가? 다른 공모전?”
“이번 작품과 연결되는 겁니다.”
“호오! 그래? 한 교수도 같이하는 거고?”
“네. 팀의 한 축이시죠.”
디자인의 출처가 한 교수의 제자들이고, 그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그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끄응. 한 교수가 부럽구만.”
“왜요? 저 같은 제자가 없으셔서요?”
성훈의 농담에 프랭크가 웃으며 말했다.
“푸하! 이 사람아! 자네 스승이 내 제자야!”
“그랬군요. 깜빡했습니다.”
성훈의 너스레에 프랭크가 웃으며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휴! 자네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부럽다는 말일세.”
“언젠가 같이 작업할 날이 오겠죠.”
프랭크는 차분하게 말했다.
“5년 전이었던가? 그가 갑자기 한국으로 간다고 할 때는 내가 극구 반대를 했었거든. 그는 전도유망한 건축가였다고.”
“하지만 뛰어난 스승이기도 하시죠.”
“하긴 자네 같은 제자를 키워냈으니, 그의 재능은 건축보다 가르침에 있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성훈을 곁눈질하며 프랭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는 누구의 도움이 없었어도, 성공했을 걸세.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만.”
성훈이 미래를 조금 알고, 스스로 건축적 재능을 불살랐다고 할지언정,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밀어주는 한 교수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성훈은 프랭크를 보며 고개 저었다.
“아니요. 한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성훈이 겸손을 떠는 걸로 보였을까?
프랭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자네가 반드시 성공했을 거라 생각하네.”
“왜요?”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뭔데요?”
“실패하기 싫었던 자네의 운명이 그를 끌어당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네?”
“아마 한 교수가 아니라고 해도, 자네의 운명은 누군가를 끌어들였을 걸세.”
“과연 그랬을까요?”
성훈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시작된 두 번째 생!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프랭크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반드시 그랬을 걸세!”
성훈이 말없이 미소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언제고 프랭크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성훈의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허허허. 이 친구야! 안 부르면 섭섭하지! 부르기만 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겠네. 자네와의 일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재미있을 것 같으니.”
그리고 눈을 찡긋하며 프랭크가 말을 이었다.
“어여 가보게. 기자들, 눈이 빠질라.”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건강히 지내십시오. 프랭크.”
마지막 인사를 나눈 성훈이 회장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