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15화
공모전(08)
교두 네 명이 성훈에게 다가와 얼싸안았다.
“거 보십쇼! 팀장님! 당연히 우리 차지라 하지 않았습니까?”
김 과장의 호들갑에 성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통보가 난 것도 아닌데요. 뭘.”
김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국왕 눈에 하트가 뿅뿅 떴던데, 무신 그런 소릴 하시는 겁니까? 흐흐.”
그의 너스레에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고요. 먼저 자리 잡고 드시고 계세요. 전 만찬에 참여하고 나서 그리 가겠습니다.”
“그러시죠. 김 과장! 이제 그 손 좀 놔라! 만찬에 가셔야 하니까!”
박 과장이 동료들의 등을 떠밀며 말을 이었다.
“우리끼리 먼저 한잔하고 있자고. 김 과장! 여름 MT 때 보고는 처음이지.”
박 과장의 팔에 끌려가던 김 과장이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팀장님. 적당히 드시고 오십쇼! 밤새도록 기다릴 테니! 축하주 말아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교두님들이랑 오랜만이니 한잔해야죠. 이따 뵙겠습니다.”
***
프랭크가 만찬장에 들어서며, 주변을 살폈다.
“오! 성훈이 저기 있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서 있는 성훈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겠는가?
탈락자는 당선자에게 다가가기 어색할 것이고, 더군다나 이전까지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신출내기라 하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당선자가 위로를 건넬 것도 아니니.
몰려서 얘기하고 있는 다른 건축가들을 보며, 프랭크가 혀를 찼다.
“쯧쯧.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가 축하해 주지는 못할망정, 젊은이를 시기하다니.”
당선을 말하기는 이른 시기이지만, 이미 국왕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보았으니,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프랭크가 지나가던 웨이터의 접시에서 샴페인 두 잔을 집어 들며 빙긋 웃었다.
“삼 년 전만 해도 애송이더니, 이제 거장의 태가 나는구먼.”
프랭크가 성훈에게 다가갔다.
참가자가 말했다.
“압둘 왕세자와 장난 아니게 친한 사이 같던데…. 이거 처음부터 저 친구에게 너무 유리했어.”
그 투덜거림에 다른 참가자도 맞장구쳤다.
“쩝. 완전히 들러리가 되었네요.“
지나가던 프랭크의 귀에 그 말을 들어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참가자에게 말을 붙였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나? 난 그 작품의 창의성에 진심으로 감탄했네만.”
투덜거리던 이가 움찔하며 뒤돌아서며, 상대를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프랭크 교수는 화도 나지 않으십니까? 들러리가 되셨는데?”
그 말에 프랭크가 피식 웃었다.
“이보게. 우리가 들러리 된 적이 한두 번이던가?”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특히나 공모전은 승자 독식의 시스템이 아니던가?
여기 참가자들은 수십 번의 공모전에 참가했고, 항상 당선된 것은 아니었으니, 프랭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머쓱해 하는 그에게 프랭크가 들고 있던 잔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아젠만! 질투가 나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게.”
“프랭크 교수님!”
정곡을 찔린 듯, 움찔하는 그에게 프랭크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솔직히 질투가 나던데?”
“네? 정말이십니까?”
건축계 거장의 솔직한 말에 나머지 참가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다른 하나의 잔도 투덜거리던 참가자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 작품에 어떤 하자가 있던가? 나는 진심으로 한숨이 나왔단 말일세. 요즘의 젊은이들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내가 너무 늙은 것인가? 하고 말일세.”
“아직 정정하십니다. 교수님!”
“게다가 화가 왜 나나? 실력으로 밀렸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난 오히려 서른 밖에 안된 젊은 친구가 시공 계획까지 꼼꼼하게 짠 걸 보고는 감탄했는데. 이미 국왕의 마음에 들 준비를 하고 오지 않았나? 그렇지 않은가?”
프랭크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들러리를 선 게 아니라, 건축계의 새로운 돌풍을 몰고 올 작품, 그리고 그 디자이너를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걸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했다네.”
“그야….”
실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 그리고 왕세자와의 친분, 이 모든 것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투로 눈을 가리게 한 것뿐!
프랭크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 친구야! 저걸 뛰어넘을 구상을 해야지. 에잉! 나잇살이나 먹은 친구들이!”
가장 연장자인 프랭크의 핀잔에 그는 입맛을 다셨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이게 얼마짜리 프로젝트인지 아시잖습니까? 그게 눈앞에서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프랭크가 그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당선만 되면, 거금과 함께 명성이 따라오는데.
“쯧쯧. 아직도 혈기가 넘지는 게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 기회에 성훈과 친해져 두는 게 어때? 앞으로 크게 도움받을 일이 있을 걸세. 혹시 아나? 친분으로 자네들 시공을 우선순위로 해줄지 말이야.”
그리고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네만. 저 친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과도 친하다네. 상상할 수도 없이 친하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프랭크? 저 친구는 대체 어떤 인맥을 가졌기에….”
“쉿!”
프랭크가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속닥거렸다.
“압둘과 알리 왕자가 경쟁자인 거 알지? 이번에 이게 당선되면, 알리 왕세자도 뭔가를 하려 할 거란 말일세. 하지만 그 규모는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걸세.”
“그래서요?”
“지금 성훈과 친해지면, 뭔가 떨어지지 않겠나?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으니 말일세?”
프랭크의 속삭임에 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공모전만 빼고 생각한다면, 친해 둬서 나쁠 건 없는 사람이지.”
프랭크가 사람들을 등 떠밀었다.
“가세! 내가 소개해 주지. 아니! 후배가 오는 게 맞겠지?”
그리고 큰 소리로 성훈을 불렀다.
“성훈! 이리 오게나!”
참가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졌다.
프랭크와 성훈, 둘만 남았을 때, 성훈이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하시는 거 다 들었습니다. 프랭크. 감사합니다.”
그 말에 프랭크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다 들리던가?”
“제가 좀 귀가 밝아서요.”
“하하하. 자네가 이해하게. 예술가라는 작자들은 다들 저 잘난 맛에 산다네.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고집쟁이들이지.”
“어쨌거나 프랭크 덕에 잠재 고객들이 늘었네요.”
성훈의 감사에 프랭크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잠재적 경쟁자들이기도 하지. 자네도 두루두루 친해 두는 게 좋아. 아직 젊잖나. 언제 어디서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고. 저래 보여도 다들 자신의 분야에서는 한칼 하는 사람들이니 말이야.”
프랭크의 눈에 국왕의 집사가 만찬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본 프랭크가 성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런! 좀 더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성훈이 물었다.
“갑자기 왜요?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 말에 프랭크가 성훈의 뒤로 턱짓하며 말했다.
“국왕께서 자네에게 따로 할 말이 있는 모양이야. 나 같은 늙다리를 부르러 오는 건 아니지 않겠나?”
성훈이 확인하려 뒤돌아보자, 집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걸음을 빨리했다.
“거 보게! 아쉽지만 나는 저 친구들과 만찬이나 더 즐겨야겠군. 한 교수에게 안부나 전해주게.”
그리고 돌아서기 전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당선, 미리 축하하네. 성훈!”
성훈에게 당도한 집사가 말했다.
“김성훈 님! 국왕 전하께서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다 하옵니다.”
성훈이 말했다.
“가시죠. 그럼!”
***
쿠웨이트 국왕의 응접실.
상석에 앉은 왕이 물었다.
“자네 작품, 아주 인상적이더군. 잘 보았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기회를 주신 것도요.”
“그거나 어디 내가 준 것인가? 저 녀석이 준 것이지.”
성훈이 맞은 편의 압둘에게 눈짓으로 감사를 전했다.
성훈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국왕 전하. 물어보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마음이 좀 급합니다.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물론 자기들끼리 이미 판을 벌였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이 아니던가?
어차피 당선되면, 국왕의 치하는 두고두고 받을 것!
성훈의 물음에 국왕이 눈빛을 빛냈다.
“역시! 젊은 사람이라 단도직입적이구먼.”
차를 마시며 그가 말을 이었다.
“이동하는 주택이라 했는데, 보여준 게 전부는 아니겠지? 다음 계획이 서 있을 것 같아 물어보는 걸세!”
그 말에 압둘이 “네? 다음 계획이라니요?”라고 물으며, 국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에 성훈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나중에 당선되면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미 예상을 하신 것 같으니, 마저 말씀드리죠.”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압둘이, 성훈에게 눈을 부라렸다.
‘얼른 말하라고! 이 친구야!’
국왕 또한 빙글거리며 성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라의 불꽃’ 2호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옭거니! 그렇지? 내 예상이 맞았군!”
“움직이는 객실을 설계할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꼭 그 사람들이 전원생활만 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도시에 갈 경우도 고려해야 했지요.”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다른 곳에도 그 건물을 세우자? 그럼 체인이 되는 건가?”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세계의 대도시에 체인을 세우면, 쿠웨이트와 연결이 되는 거지요. 사실 규모나 높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코어만 세워둬도,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왕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세계와 쿠웨이트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진정 쿠웨이트의 장래가 밝아지겠군.”
전 세계에 쿠웨이트의 자본으로 세워진 건물이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국왕은 이미 행복해진 듯 보였다.
“그리고 체인을 만드는 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왕이 고개를 갸웃하자, 성훈이 말했다.
“이 객실의 주인들은 아마도…. 세계 상위 0.01%에 포함되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건 당연한 사실.
국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겠지. 웬만한 돈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지.”
“압둘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한 염려도 하고 있더군요.”
“잘 알고 있군.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지!”
“하지만 전 세계 부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기는 어려울 겁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재산의 침해를 끔찍하게 싫어하죠.”
“허튼짓하다가 그들의 재산을 파손시킨다면….”
국왕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전 세계 부자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혹시 압니까? 부자들이니, 미국이나 러시아의 최고 통수권자들을 부추길지요?”
성훈이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냥 제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왕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계 부자들을 방패로 삼을 수도 있겠구만. 크하하.”
압둘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 앞이라 내색은 않았지만, 혼자 소외된 기분에 자연스레 말투가 투덜거렸다.
“아까 발표 때, 얘기를 하지 그랬나?”
“당선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괜히 아이디어만 흘리는 거죠.”
“나한테만이라 귀띔을 해주던지. 킁!”
“그럼 공모전의 공정성이 흐려지죠.”
성훈이 눈썹을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잖아요.”
“됐네. 됐어! 이 친구야!”
가만히 둘의 말다툼을 보던 왕이 물었다.
“흐음. 당선되지 않았다면 어찌할 셈이었나?”
“다른 판매처를 찾아봤겠지요.”
왕이 눈을 반개하며 물었다.
“생각해둔 곳이 있는가?”
“딱히 생각해 두지는 않았지만….”
왕의 눈을 슬쩍 피하며 말을 이었다.
“쿠웨이트의 미래가 되는데, 다른 나라의 미래가 되지 않을 리는 없지요.”
두루뭉술 대답하는 성훈을 보며, 국왕이 장난스레 물었다.
“크크크. 사우디아라비아에라도 팔 생각이었나 보군.”
‘당연하지 않아요?’라는 표정으로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자, 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살만 국왕이 알리보다 자네를 더 애지중지한다고 하더니. 농담이 아니었군. 살만 국왕, 이번에 약 좀 오르겠는데?”
웃던 왕이 말을 이었다.
“축하하는 사람들이 많아 바쁘겠구만. 얼른 일 보게나. 늙은이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주어 고마우이!”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왕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지. 다음에는 좋은 소식으로 만나겠구만. 잘 가게. 성훈!”
압둘과 성훈을 마중하며 말했다.
“아직 발표는 시기상조이지만, 자네가 당선인 건 확실하네. 아바마마께서 이미 마음을 정하셨으니.”
“고마워요. 압둘! 좋은 경험 했습니다.”
“아닐세. 자네 덕에 나도 큰 공을 세운 것 아닌가? 축하하네. 당선자! 오늘 밤을 마음껏 즐기라고!”
성훈이 악수를 나누고 궁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성훈은 네 교두, 민수 그리고 보람을 비롯한 모든 팀원과 밤새 축하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