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414화 (414/427)

건축의 신 414화

공모전(07)

사회자가 국왕의 눈치를 보는 동안, 성훈은 재빠르게 이어폰을 눌렀다.

“보람아. 시공 순서 3D로 만들어둔 동영상 있지? 내가 나중에 쓴다고 했던 거.”

-응!

“지금 바로 찾아!”

-시간이 좀……. 파일을 찾아봐야 해.

“얼마나?”

-3분? 그 정도면 찾을 거야.

“알았어. 찾으면 연락해. 그동안 시간 좀 끌고 있을 테니까.”

-오케이!

공모전 진행하는데 작품 설명하기도 시간이 빠듯할 거로 생각되어, 잡다한 것들은 다 빼버렸는데 그게 필요할 줄이야.

‘솔직히 공사 기간으로 이렇게 딴지를 걸 줄은 몰랐네.’

하지만 준비되어 있으니, 성훈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곧 당신들의 불안을 종식해 주지’

웅성거리는 관중을 둘러보고는,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국왕 전하. 이 상태로는 진행이 어려울 것 같군요.”

그도 그렇게 느꼈는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말일세. 나도 자네의 호언장담에 마음이 당기기는 하나…….”

국왕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쩝! 여태껏 그렇게 빠르게 공사를 진행한 선례가 없었으니.”

그리고 그 옆의 압둘 또한 성훈의 말에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당신도 많이 궁금하겠지?’

압둘도 처음에 건물의 규모에 압도당했지만,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얼굴이 구겨졌지. 그들이 더 전문가 같았으니까.

하지만!

‘시공은 우리 KT가 훨씬 전문가라고! 어디서 공사 기간으로 시비를 털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KT 팀!

‘내가 된다고 하면 되는 거야! 괜히 2년을 말한 줄 알아? 시공팀과 의견을 맞춘 거라고!’

2년이라는 기간은 성훈의 노림수였다.

국왕과 압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저 둘이 이 공모전의 키맨이거든!’

압둘이 귀를 세우는 것과 국왕이 관심을 보이는 건, 비슷해 보여도 둘의 속내는 다르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고?

‘국왕은 단지 자신의 치세에 이뤄지지 못해서 섭섭해하는 거지만, 압둘은 입장이 전혀 다르거든.’

성훈이 물었다.

“왕세자께서는 이 건물을 짓는 데 십 년이 넘게 걸린다면…….”

압둘의 눈 아래가 순간 꿈틀거렸다.

“제 건물이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쉽사리 투자할 생각이 들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건설의 실무자는 그였다.

‘곧 권력을 물려줄 국왕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걸?’

아까의 참가자 말대로 10년이 걸린다면, 수조 원대의 돈을 투자만 하고 10년 동안 수익은 없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아직은 국왕이 실권을 놓지 않았다 해도, 이 공모전 이후의 일 처리는 결국 압둘의 몫이었다.

재정 집행과 더불어 그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까지 몽땅!

결국, 압둘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끄응!”

성훈이 피식 미소 지었다.

‘그래. 고민될 겁니다. 수십억 달러의 거금을 십 년 동안 퍼부어야 하니까.’

미래를 제시하라고 했지만, 십 년이면 너무 긴 기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는 공사 기간을 줄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한 건물을 빨리 지을 수 있을까? 하고요.”

압둘의 고민을 성훈은 이미 알고 있었다.

크고 웅장한 것, 좋다! 세계 최고도 좋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10년 동안 오로지 투자만 해야 한다면, 투자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딱 봐도 공사 금액이 수십억 달러를 넘어갈 것 같은데!

‘그런데 2년 만에 완성된다면, 그 후에는 돈 벌 일만 남았다는 거지.’

압둘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였다. 성훈이 둘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

‘공모전의 키는 당신네 부자 둘이 쥐고 있거든!’

-성훈아. 세팅했어! 말만 해!

보람의 연락에 성훈이 미소를 머금었다.

“제게 시간을 좀 더 허락하시겠습니까?”

아까의 참가자가 일갈했다.

“말로 때울 생각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마시오!”

진지한 표정의 압둘이 물었다.

“어떻게 시공할 건지, 지금 당장 설명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참가자의 말마따나, 말로야 무얼 못하겠는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말을 압둘은 에둘러 하고 있었다.

성훈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회만 주신다면.”

“그럼…….”

하지만 그는 국왕의 헛기침에 말을 맺지 못했다.

“어흠! 압둘. 왜 이리 성급한 것이냐?”

“부왕! 이건 아주 중대한…….”

국왕의 눈총에 압둘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쯧쯧. 왕이 될 녀석이 이리 성급하기는.”

압둘에게 작게 혀를 찬 그가 참가자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는 지금이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소!”

지금 참가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 성훈의 작품을 선택할 경우, 불공정한 공모였다는 말이 나돌 수도 있었다.

작품의 우열보다 주최 측의 기호에 따라 수상작을 선택했다고.

물론 주최 측이 선정하는 것은 맞으나, 그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설명을 듣고 지나가는 것이 옳은 듯싶은데? 그리하여도 괜찮으시겠소?”

국왕의 정중하게 참가자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 모습에 성훈이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늙은 여우가 노련하군!’

국왕이 굳이 참가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괜한 입방아에 오를 것을 염려한 행동!

화려하게 꽃을 피워야 할 공모전이 공정성을 이유로 구설에 오르내릴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인데 어느 한 참가자에게만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다니!

이처럼 거액이 오가는 공모전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행동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여기는 전쟁터라고! 흠만 잡히면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잖아.’

국왕은 천천히 참가자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저러면 나중에 딴말 못 하지.’

국왕과 시선이 마주친 참가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모든 참가자의 동의를 얻어낸 국왕이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으니, 순서에 괘념치 말고 질문토록 하시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자! 설명해 보게!”

왕과 눈을 맞춘 성훈이 말했다.

“원래 이 자료는 공모전에 쓰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우리 시공자들에게 말하려고 만든 거죠.”

성훈의 시선은 왕과 압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공모전의 키맨들.’

그런 고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스크린에 주목해 주십시오.”

해변가 대지에 스르륵 구덩이가 파였다.

이 현상에 대해 성훈이 설명을 이었다.

“터파기 작업입니다. 한 달 이상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모든 준비를 스텐바이한 상태에서 보름에 끝낼 겁니다. 우리 KT 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공사가 될 것입니다.”

다음에 구덩이 위로 수천 개의 말뚝이 박혔다.

그리고 지하 6층으로부터 한 개 층씩 층을 쌓아 올라갔다.

참가자 측에서 질문이 나왔다.

“이보시오! 지금 모형과 형태가 다르지 않소?”

‘그야 당연하지! 코어니까.’

눈썹을 으쓱하며 성훈이 답했다.

“저희는 일단 코어 시공만 먼저 시작합니다.”

“엥? 코어만?”

“아까 보셨던 것처럼 제 디자인은 조립식이죠!”

성훈이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평면이 훨씬 작아지는데, 시공이 더 오래 걸릴 이유가 없죠. 코어만 따지면 아까 말씀하신 ‘트윈 타워’랑 비슷할 겁니다.”

그가 자리에 앉으며 꿍얼거렸다.

“그, 그런가?”

그의 말에 성훈이 꼬리를 달았다.

“게다가 저희는 8배 강도의 ‘민호강’과 4배 강도의 시멘트를 사용할 겁니다. 이 시멘트는 양생 시간이 일반 시멘트와 비교하면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죠.”

30층 정도가 되었을 때, 현장 주변이 깨끗하게 치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크레인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코어 공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위치에 말이다. 그것도 50개가 넘는 크레인들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건 뭐하려는 거지?”

성훈이 설명을 이었다.

“아까 보여드린 옵션들을 제작할 공장입니다.”

공장?

각 요소요소를 포인터로 짚으며 성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곳에서 제작해서 오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각 옵션은 입주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어쩌면 한 가지 옵션이 수백 혹은 그 이상도 제작될 수도 있으니, 현장에서 만들어서 바로 부착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훈에게 물었다.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다’라……. 그럼 그것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 텐가?”

“그들이 건축가를 직접 고용해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협의를 거쳐야 하겠습니다만, 저희가 제시하는 기준을 준수한다면, 어떤 상상력도 존중해 줄 생각입니다.”

포인터로 점차 완성되어가는 옵션 주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기계화가 되어 한 달에 5개 정도의 객실이 생산됩니다. 그리고 크레인을 추가하여, 얼마든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50층까지 완성되었을 때, 완성된 옵션들이 하나하나 자기 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의 방식은 처음 배치할 때는 중앙레일을 이용해 순서대로 각 부에 이동고정합니다. 그게 시간이 훨씬 절약되니까요.”

“그리고 완공 후, 개별적으로 이사할 때는 아까 모형에서 보신 것처럼 건물 외부에 부착된 레일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위잉! 철컥!

성훈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모형의 객실들이 또다시 돌출되어 레일을 타고 내려갔다.

그다음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계속 층은 올라갔고, 완성된 옵션 객실들이 코어의 맨몸을 감싸고 올라갔으니까.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성훈의 시선이 국왕과 압둘에게 향했다.

둘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영상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진지했지만, 얼굴에는 옅은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다 됐군. 다른 참가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시작한 거였지만, 결국은 둘의 마음에 드는 게 우선이지.’

그 사이 건물의 첨탑까지 완성되었다.

영상이 멈추자, 성훈이 말했다.

“이 ‘알라의 불꽃’은 쿠웨이트의 미래에 방향을 제시하는 공사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는 곤란하지요.”

압둘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왕세자 저하?”

“크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헛기침하는 압둘의 표정이 밝았다.

아까의 근심은 사라지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는 공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교하고, 가장 빠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암! 그래야지!”

압둘의 호응에 성훈이 맞장구쳤다.

“하지만 공사 품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KT는 세계 최고의 시공팀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참가자가 물었다.

“프랭크 교수님! 저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믿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프랭크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낸들 알겠나?”

“그렇죠? 말이 안 되죠? 역시!”

“하지만 자네들이 저 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나? KT팀보다 더 시공 잘하는 시공팀을 데려올 자신이 있냐는 말일세?”

어떻게 KT팀보다 나은 시공팀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 최고인 KT를 앞에 두고!

프랭크의 말에 그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여기서 KT팀에 시공 의뢰를 안 해본 사람 있으면 말해보게.”

“그야…….”

“시공을 하자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팀이 KT일세. 그것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명함도 내밀기 전에 퇴짜를 맞지!”

참가자들을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저 팀은 그런 팀이야. 그리고 저 녀석은 그 팀의 수장이고! 어설픈 상식으로 시비를 걸지 말게. 저 김성훈 팀장이 된다고 하면 되는 거야. 적어도 시공에서는 그가 신이야!”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을 못 하는 그들에게 프랭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들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켰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말이야. 그것도 세계 최고의 품질로!”

성훈이 말했다.

“질문 하시지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하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국왕과 압둘을 보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이제 의문이 풀리셨습니까?”

국왕이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명쾌하군. 멋진 작품일세. 2년이라는 공사 기간도 마음에 들고 말일세. 고생했군.”

크게 숨을 들이쉰 그가 사회자에게 눈짓했다.

“이제 그만 끝내는 게 어떤가? 볼 건 다 본 것 같으니! 피곤하기도 하고.”

사회자가 다급히 뛰어나왔다.

”이로써 공모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일어서는 와중에,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국왕께서 만찬을 준비하셨으니, 참가자들께서는 왕궁으로 이동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모전 발표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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