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13화
공모전(06)
다른 사람들의 발표는 뒷전인 듯, 참가자들의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8배 강도 강철합금이 나왔다는 게 정말이오?”
“그렇답니다. 조금만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한국에서 발명된 거라면서요? 저기 저 KT 팀장하고 연관된 거 아니오?”
그만큼 ‘민호강’의 등장은 핫이슈였다.
공모전 날짜에 딱 맞춰서, 그것도 한 시간 전에 발표되다니 말이다.
공모전에서 그걸 적용한 사람이 등장한다면,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나오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KT의 설계가 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궁금해하기만 할 뿐이었다.
누군가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게. 난 저번에 KT팀을 봤을 때, 당연히 시공팀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공모전에 참가를 하더라고. 전혀 경계도 안 했었는데. 쯧!”
“이거 영 분위기가 요상해지는데.”
“우리가 들러리가 될 수도 있겠어요. 나 참!”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재료만 좋다고 됩니까? 어디? 중요한 건 얼마나 참신하냐? 하는 것이고, 저 쿠웨이트 국왕의 마음에 얼마나 드느냐 하는 것이지. 저 국왕이 보통 까탈스럽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성훈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리셔. 궁금한 점, 다 풀어드릴 테니.’
시간은 흘렀고, 성훈의 앞 참가자의 브리핑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다시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원래 예정에 없던 휴식이었지만, 국왕의 요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인당 30분이라는 브리핑 시간은 늙은 국왕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말을 사회자가 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쉬기는! 대신들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더구만.’
성훈이 귀의 이어폰을 살짝 눌렀다.
프레젠테이션 팀과의 송수신을 위한 것이었다.
“보람아, 이제 곧 우리 차례다.”
-응. 알아. 그런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더디 가냐?
총 7명의 참가자가 있었으니, 성훈의 차례에 이르기까지 거의 네 시간이 흘러 있었다.
긴장 어린 보람의 얼굴이 떠올라 성훈이 피식 미소 지었다.
“5분 안에 끝날 것 같아. 준비는?”
-응. 걱정하지 마. 시작하자마자 바로 올라가게끔, 리프트에 다 올려뒀어.
“그래. 너무 긴장하지 말고. 금방 끝날 테니까.”
순서대로 진행하면 되는 일이지만, 성훈이라고 떨리지 않으랴?
통화를 끝내고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승부의 시간이야!’
휴식 시간이 끝났다.
사회자가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참가자군요. 참가자들께는 기나긴 여정의 막바지가 되겠군요. 미리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사를 꾸벅하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마지막 차례를 시작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도 한 번 돌리시고.”
마이크를 내리고는 자신의 말을 실행하려는 듯,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어깨를 휘휘 돌렸다.
“자! 이제 마지막 참가자를 소개합니다.”
두구! 두구! 두구!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회자가 손을 펴 성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KT팀입니다. 나와주시죠!”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가 국왕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런 자리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직 그럴듯한 명성이 없음에도 참가를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성훈을 보며 국왕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자네 작품들을 본 적이 있지.”
성훈 소유의 호텔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국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 전용 불가마는 더더욱 감동적이었다네.”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성훈의 활약은 왕세자 압둘을 통해 누누이 듣지 않았던가?
기대의 눈빛으로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닐세. 자. 보여주게. 우리 쿠웨이트를 위해 뭘 준비했는지.”
국왕은 얼른 시작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다시 한번 왕에게 인사를 건넨 성훈이 돌아섰다. 그리고 이어폰을 누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시작!”
위잉!
무대 바닥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리프트의 상승에 따라 KT의 모형도 모습을 드러냈다.
성훈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하 6층, 지상 167층, 총 높이 850미터. 현존하는 건축물 중에서는 최고의 건물이 될 것입니다.”
청중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 세계 최고라니.”
국왕도 눈을 한껏 뜨고 모형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1/100 스케일로 축소했다고는 하나, 모형의 높이가 8.5 미터였다.
청중석이 무대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껏 고개를 젖혀야 하는 높이!
“상부 첨탑을 제외한 높이는 700미터입니다.”
성훈의 설명에는 관심이 없는 듯, 청중들은 모형의 모양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삼각뿔 모양이로군요. 웅장합니다.”
“내게는 휘감아 오르는 불꽃처럼 보이는구만.”
사람의 보는 시선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이 건물의 러프 스케치를 보여주며 압둘에게 물었을 때도, 그는 이와 비슷한 답을 했었다.
‘그리고 ‘알라의 불꽃!’이라 명명해달라고 했었지.’
뜨악하는 표정의 압둘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보여드릴 게 많은 관계로 개념은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주최 측 앞이라 입바른 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눈을 먼저 사로잡으면, 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지. 개념보다 기능에 포커스를 맞추면 돼!’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작품명은 ‘알라의 불꽃’, 저는 이 작품을 디자인하는데 두 가지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첫째는 쿠웨이트인들이 유목민족이라는 것, 둘째는 원유가 메말라가고 있다는 점.”
성훈의 말에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지난 삼 개월, 압둘과 수많은 통화를 했었다.
성훈이 생각하는 압둘의 고민은 원유가 고갈된 뒤에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원유가 천년만년 나온다면, 아무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어차피 유한 자원.
자신의 대에서 원유가 고갈된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압둘의 고민이 곧 국왕의 고민이지!’
국왕은 조용하게 성훈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지금의 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모전은 최적의 선택이 아니었나? 제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헛! 움직이네.”
모형에 정신이 팔려 있던 청중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서, 설마.”
“진짜야! 저것 보라고. 내 말이 거짓말인지.”
그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려 함인가?
국왕 또한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있었다.
지잉!
강냉이 알맹이 튀어나오듯, 객실 하나가 쏙 전면으로 돌출해 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건물 외벽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작위적으로 객실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저는 유목민족이라는 점에 착안해, 건물의 이동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성훈의 설명은 귓등으로 들으며, 국왕이 중얼거렸다.
“저, 저게 가능한 거냐?”
국왕의 물음에 움찔한 압둘이 말을 어물거렸다.
“그것이……. 아바마마. 저도…….”
그리고 압둘은 성훈에게 원망의 눈빛을 날렸다.
‘보여달라고! 보여달라고! 사정해도 안 보여주더니 결국 사람을 이렇게 무안하게 만드는 거냐?’
하지만 국왕은 압둘의 대답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놀라서 혼잣말한 것일 뿐.
참가자들의 표정도 놀라기는 매한가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저게 가능한 거요? 하중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들의 말에 프랭크가 억눌린 신음성을 뱉었다.
“끄응. 8배 강도강의 목적은 저거였군.”
참가자들의 시선이 프랭크에게 향했다.
“헉! 정말로 KT팀과 연관이 있는 거요? 그걸 당신은 이미 알고 계셨고?”
원망의 눈길에 프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저 심증이 확신으로 굳었을 뿐. 이제 곧 설명하겠지요.”
“하지만 콘크리트 무게만 해도…….”
“그 또한 해결책이 있으니, 저리 나오는 거요.”
프랭크가 그들에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당신들은 저 KT 팀장이 어떤 인간인지 전혀 모르는구먼! 애초부터 나는 저 친구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소.”
그러고는 국왕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쯧. 이미 결과는 나온 것 같구먼.”
국왕은 눈 깜빡일 생각도 잊었는지, 오로지 모형의 움직임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술렁이는 청중에게 성훈이 말했다.
“물론 저런 이동은 불가능하지 않으냐? 반론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 아니던가?
성훈이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당연합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너무 무거운 하중 때문에요.“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합니다. ‘민호강’에 대한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청중들이 의아해하자, 성훈은 시선을 참가자에게로 돌렸다.
“여러분들은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아닌가요?”
성훈의 너스레에 참가자 중 하나가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었습니다. 공모전 시작 전, 그것도 한 시간 전에 특보로 떴더군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현재 시멘트’라는 회사에서 4배 강도의 시멘트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정말이오? 그게?”
시멘트 하중까지 해결된다면, 저 설계는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터!
그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네. 아마 내일 정도면 발표가 나리라 생각합니다. 거기 제가 아는 지인이 있어서,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제품화가 가능한 단계라고 확인했습니다.”
아까의 참가자가 물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개발한 거요?”
성훈이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완전히 당했군. 당했어.”
“그리고 제가 설계에 있어서 중점을 맞춘 또 한가지.”
손에 든 리모컨을 조작하자, 갑돌이 II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봐 주십시오.”
갑돌이가 보는 시선 그대로 건물의 내부를 상영하고 있었다.
“한곳에 고정된 건물이 아니니만큼, 모두 같은 인테리어를 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50가지가 넘는 옵션 중 일부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청중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들의 감탄을 들으며, 성훈은 국왕과 눈을 맞추었다.
“국왕 전하. 그만큼 고객에게 많은 선택권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성훈의 물음에 국왕이 헛기침하며 물었다.
“이따 질의응답 시간에 물어보려 했건만, 도저히 궁금해서 안 되겠군.”
어깨를 으쓱하며 성훈이 말했다.
“뭐든 여쭤 보시지요.”
“자네 건물은 앞서 브리핑한 누구의 것보다 웅장하고 화려하네. 세계 최고라니! 솔직히 마음에 들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나?”
다른 참가자의 작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크고 웅장한 건물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실제로 지어진다면 단연 세계 최고가 아닌가?
그리고 한동안 ‘알라의 불꽃’을 넘어서는 건물은 지어지지 않으리라.
쿠웨이트의 명성을 한껏 높인다는 면에서도 국왕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국왕은 아쉬운 듯 물었다.
“꼭 내 생전에 지어야 할 이유야 없겠네만…….”
그 완공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게 그가 섭섭한 표정을 짓는 이유였다.
씁쓸한 왕의 탄식에 성훈이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2년! 공사 기간은 2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공모전 참가자 쪽에서 새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뭐라고? 2, 2년?”
국왕이 있음에도, 소리칠 만큼 경악한 모양.
국왕 또한 성훈의 대답에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참가자가 격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거 보시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의 ‘패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얼마나 걸렸는지 아시오? 5년이 넘게 걸렸소! 그 당시 최고 업체라는 곳이 두 군데나 달라붙어서 말이오.”
그가 언급한 트윈타워가 현재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다.
성훈이 침착하게 답변했다.
“한국이 한 동, 일본이 한 동을 맡았었지요.”
“잘 아시는구려. 그 트윈타워보다……. 허허허.”
어이가 없는지, 그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 트윈타워보다 무려……. 두 배나 높단 말이오! 그걸 2년에 완공한다고? 십 년이 걸려도 시원찮을 판에!”
그는 따지듯 성훈에게 쏘아붙였다.
“백 보 양보해서 하중의 경감은 소재로 해결했다 칩시다! 시간은 어떻게 줄일 거요? 마술이라도 부릴 겁니까? 대답해 보시오!”
성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 이러면 시간 까먹는데.’
왕이 묻는 거야 주최 측의 질문이니 간단하게 대답했다지만, 관계자도 아닌 경쟁자의 질문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래도 일단 설명하고 넘어가야겠지?.’
여기서 청중의 신뢰를 잃으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가지 않을 터.
게다가 왕의 마음은 내 디자인에 꽂혀 있었다.
‘여기서 확실히 승기를 잡자. 마음이 기울었을 때, 확실하게 잡아야지.’
성훈이 사회자에게 말했다.
“잠시 타이머 좀 멈춰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