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12화
공모전(05)
쿠웨이트 공항.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로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수와 함께 네 명의 교두들!
그들이 성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어쩐 일들이세요? 현장들 바쁠 텐데.”
매일 화상 회의를 한다고는 하나, 그게 어찌 직접 만나는 것과 비길 것인가?
미주 담당 박 과장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오늘을 놓칠 수는 없지요. 우리 대장이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이름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인데. 안 그러냐? 김 과장?”
김 과장이 옆구리를 찌르며, 그의 말을 받아쳤다.
“아이고! 우리 박 과장. 미국에 있으면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손바닥 비비는 연습만 한 거 아니야? 왜 그리 혓바닥이 유들유들해?”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 역시 반가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성훈에게 인사했다.
“팀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성훈이 핀잔을 주며 말했다.
“매일 보잖습니까? 몇 년이나 못 본 사람처럼…….”
“크. 화상이랑 이리 직접 보는 게 같습니까?”
김 과장이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 오늘 공모전만 끝내고 바로 한국으로 가실 건 아니죠?”
그의 말에 성훈이 뜨끔해서 물었다.
“그건 왜요?”
그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하늘로 튕겼다.
“당선 축하주 한잔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 그에게 성훈이 핀잔을 줬다.
“김 과장님. 아직 공모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축하주 얘기를 하십니까?”
그는 성훈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되레 성훈을 타박하며 말했다.
“에헤이. 우리 팀장님! 또 속에도 없는 소리 하신다.”
김 과장이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흥! 제가 다른 사람 말은 몰라도, 제가 팀장님 자신 없다는 말은 안 믿습니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습니까? 당선! 무조건 당선입니다.”
김 과장은 성훈에 대한 무한 신뢰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박 과장과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친구야!”
그의 물음에 박 과장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마!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박 과장이 성훈을 빤히 쳐다보며 답했다.
“당연히 당선이지.”
지난 삼 년 동안 성훈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쌓인 신뢰의 결과였다.
성훈이 피식 웃으며 다른 세 명을 살피니, 그들 또한 오늘 밤의 축하주를 기대하는 모양인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에구.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붙들리겠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매몰차게 거절했겠지만, 이들은 성훈에게 땡깡을 부릴 자격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KT팀이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
성훈의 손발이 되어 전 세계를 돌며 KT를 키워온 사람들이었다.
성훈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또 시간이 되겠습니까? 당선되든지 말든지 간에.”
이내 화제는 바뀌었다.
이젠 어디서 먹느냐로 말이다.
“힐튼이 분위기가 좋다니까!”
“어허이! 그랜드가 좋아!”
성훈의 뒤를 따르며 옥신각신하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야. 차 편은 어떻게 하기로 했냐?”
“네. 압둘에게 연락했더니, 리무진 보내주기로 했어요. 그게 안 막힐 거라면서요.”
“그래?”
어설프게 시내로 들어가 교통체증에 발이 묶이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왕족의 차가 지나가면 모든 신호가 그 차의 움직임에 맞춰지니까.
민수가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오네요. 형.”
아직도 그들은 의견을 맞추지 못했는지, 격렬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과장님들!”
성훈의 부름에 즉각 말다툼을 멈추고 정렬했다.
“네! 팀장님!”
성훈이 리무진에 올라타며 말했다.
“장소는 네 분이 알아서 정하시고, 먼저 현장으로 갑니다. 확실히 스탠바이 되었는지, 확인부터 합니다.”
“네! 팀장님!”
***
공모전 발표장.
성훈이 도착하니, 프레젠테이션 팀이 대기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성훈이 물었다.
“기계들 작동은 문제없지?”
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다 체크했어. 성훈이 넌?”
“나야 뭐. 말만 하면 되는 건데. 어려울 게 뭐 있어?”
하지만 보람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
크게 심호흡하며 물었다.
“긴장되고 안 그러냐? 우황청심환 있는데, 주, 줄까?”
말끝이 떨리는 것이, 정작 무대에는 오르지도 않을 보람이 성훈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허 참!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발표하는 줄 알겠다. 응?”
“그러게 말이다. 왜 내가 긴장되는 건지.”
“너 그러다가 실수하는 거 아니냐?”
성훈의 농담에 보람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미소 지었다.
“걱정마쇼! 그럴 거 같아서 우황청심환 세 개나 깠으니까.”
그러고는 보람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 보안 완전 빡빡해. 다른 팀들은 어떻게 했는지 슬쩍 보려고 했는데…….”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리허설 할 때, 아예 관계자들 말고는 발표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더라고. 억수 살벌해!”
보람의 말처럼 이번 공모전은 타 공모전과는 성격이 달랐다.
“애초에 공모전 요강에 들어있던 거야. 네가 못 봐서 그런 거지.”
“그래도 이렇게 살벌한 데는 첨 봤거든!”
만약 어떤 참가자가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면, 공모전 주최 측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는 법.
그런 쓸데없는 분쟁을 방지하고자 하는 궁여지책이었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 정도로 거액이 상금으로 걸렸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성훈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을 탐색할 수 없다면, 그들도 KT를 탐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나한테는 더 이득이지!’
성훈이 물었다.
“거기서는 잘됐고?”
“응. 기계 반응 속도가 좀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건 지금 기술로는 해결이 어렵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어. 뭐 계획대로 잘 됐지. 불안하면 네가 직접 작동해 볼래?”
“아니! 뭐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어?”
씨익 웃는 보람에게 성훈이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작업들을 해야 하니까, 공모전 끝나는 대로 문제점을 해결해.”
“알았어!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착수할게.”
보람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고, 성훈의 시선이 모형으로 향했다.
‘두고 봐. 보람아. 이 공모전 스타일이 KT팀의 상징이 될 테니까.’
건축주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훈의 지론이었다.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거든.’
KT팀의 이번 작품은 또 어떤 움직임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건축주의 기대를 만들어 내는 거니까.
‘끽해야 움직이는 모형일 뿐이지만, 그 효과는 엄청나다고.’
***
성훈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한 시간 남았지? 공모전 시작까지?”
“응! 아! 긴장된다. 우황청심환이나 한 알 더…….”
“됐어. 인마! 물이나 마셔!”
호들갑 떠는 보람의 어깨를 툭 치며, 성훈이 일어섰다.
“이따가 갑돌이 조종이나 한 번 더 연습하게, 세팅 좀 해놔. 렌즈 줌인 속도 약간 줄여서.”
“어디 가려고?”
“응! 전화할 데가 있어서.”
“다녀와. 금방 해놓을 테니.”
보람이 알겠다며 세팅을 시작했고, 성훈은 품속에서 전화기를 꺼내며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많이 기다렸어? 소피?”
-그럼요. 기자회견 준비 다 끝내고 당신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외신 기자들까지 다 부른 거지?”
-네. 당연하죠.
“좋아. 여기도 준비 다 됐어. 발표해.”
-네. 알았어요.
***
공모전이 임박한 시간, 성훈이 발표장으로 들어갔다.
“어이! 성훈군. 여길세.”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지, 프랭크가 성훈을 부르고 있었다.
“여기가 참가자들 자리일세.”
다른 참가자들은 성훈에게 관심도 주지도 않은 채, 서로의 이야기에 바빴다.
프랭크가 그들을 힐끗하며 물었다.
“자네, 일부러 그런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성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뭘요?”
“8배 강도 강철합금. 이름이 ‘민호강’이었던가?”
이민호가 발명한 것이니, 그의 이름을 쓰도록 성훈이 허락했었다.
성훈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하고 아무 상관 없는데요?”
“내. 한 교수를 떠봤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뭐라고 하기는!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지.”
그는 미심쩍은 눈으로 성훈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그 친구랑 한솥밥 먹은 세월이 육 년일세! 아무리 잡아떼도 알지. 말투만 들어봐도.”
그러고는 확인하듯 말을 이었다.
“미리 개발해 놓고, 소문 안 내고 있다가, 지금 자네 발표하기 직전에 터뜨린 거 아닌가?”
“뭐. 그럴 수도 있구요.”
성훈의 너스레에 확신한 것인가?
프랭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흘흘흘. 기대되는군. 자네 작품과 그 강철합금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말이야.”
***
공모전 발표회장.
턱수염을 멋있게 기른 아랍인이 단상 가운데로 걸어나갔다.
“반갑습니다. 공모전 사회를 맡게 된 압델아지즈입니다. 공모전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말을 이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국왕 전하 입장하십니다.”
회장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하얀 토브를 입은 쿠웨이트 국왕이 좌석 중앙의 레드 카펫을 따라 걸어들어왔고, 왕세자 압둘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국왕은 근엄한 얼굴, 하지만 편안한 눈빛으로 공모전 참가자들과 하나하나 눈인사를 나누며, 맨 앞 좌석으로 향했다.
국왕이 자리에 앉자, 사회자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존안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그러자 국왕은 부드러운 고개 끄덕임으로 인사를 대신했고, 사회자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그리고 몸을 돌려 공모전 참가자들에게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쿠웨이트의 미래라는 주제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어제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어떤 작품들이 나올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는 너스레를 떨면서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렇잖습니까? 참가자들 어느 한 분 대단하지 않으신 분들이 없으니까요.”
회장의 긴장감이 좀 풀린 듯하자, 그는 카드를 힐끗 훑으며 진행을 이어갔다.
“발표는 공모전 신청 순서에 따라 진행하게 될 겁니다. 그럼 보자.”
눈으로 힐끗 진행 쪽지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음……. 첫 번째 주자가 누구더라. 오!”
사회자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청중의 시선을 모았다.
“이 분은 건축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고 계시지요. 그리고……. 1989년 프리츠커상을 받으셨죠.”
수수께끼를 내던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프랭크 베리 교수님이십니다. 모두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프랭크는 참가자 석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고, 그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프랭크 교수께서 어떤 작품을 들고 등장하실지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네!”
축제에 오기라도 한 듯, 청중들의 대답 소리가 힘찼다.
그 모습에 눈썹을 으쓱한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 우리, 교수님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지요.”
다시 한 번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공모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프랭크에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주인공들이 납셨으니, 저는 물러나도록 하지요.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걸어 나오는 프랭크를 양손으로 안아주고는, 마이크를 그에게 넘겼다.
그리고 사회자 석으로 걸어가, 단상을 응시했다.
공모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