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09화
공모전(02)
어느덧 공모전 일주일 전.
성훈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철 소재 연구소 문을 열었다.
이민호가 만든 시제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건가?’
2주일 전, 민호의 연구가 진전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연구소를 방문했었다.
‘그때쯤 막힐 거라고 생각했었지.’
생각보다 민호의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4배 강도만 되어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했었는데, 민호는 8배 강도의 강철합금을 성공시켰다고!
‘그런데도 왜 막혔었냐고?’
현장에서의 가공이 전혀 불가능했거든.
현장 재단이 불가능한 강을 어찌 현장에 적용하여 사용하겠는가?
성훈이 처음 데려올 때 했던 현장 가공성이 녀석의 머리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성훈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과연 천재는 천재야.’
그때 성훈은 ‘분체 도장 기계’를 적절히 이용하라는 조언을 해주고는 돌아 나왔었다.
지금쯤 그 조언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내 조언이 적절하게 먹혀들었다면, 좋을 결과가 나왔을 텐데.’
민호의 연구 결과에 따라 공모전 설계의 세부사항을 모두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4배 강도에 맞춰 설계를 했다가, 8개 강도로 몽땅 수정했거든.’
그것만 해도, 족히 며칠은 시간을 낭비했어야 했었다.
연구소 안에 들어서자, 민호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 있으세요? 왜 분체도장이 계속 실패하냐고요?”
“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진행했습니다만…….”
잔뜩 주눅 들린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민호의 고함이 이어졌다.
“이대로 계속 결과가 안 나오면! 저 성훈 형님한테 맞아 죽어요. 아시잖아요. 얼마나 성격이…….”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몰랐다가, 성훈이 문에 기대선 것을 본 직원들이 흠칫하며 민호에게 눈을 껌뻑거렸다.
그게 더 화를 돋운 모양!
“눈만 껌뻑거리지 말고. 말들을 하시라고요! 입은 놔두고 뭐해요! 귀신이라도 나타났어요?”
보다 못한 직원이 용기를 냈다.
저대로 뒀다가는 제 무덤 제가 팔 게 뻔했기에.
“저기……. 김성훈 팀장님이…….”
“히끅!”
성훈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모양.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쭈뼛거리며 민호가 문 쪽으로 돌아섰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성훈이 문에 비스듬히 기대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형님 오셨어요? 오시면 오신다고…….”
없는 자리에서는 황제 욕도 한다지만, 들어버렸으니 어찌하랴.
성훈이 그리 심성 고운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내 성격이 뭐? 하자라도 있어?”
“아니……. 형님! 그게 아니라!”
성훈이 삐딱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변명이 통하지 않을 모양!
“저는 형님 성격이 얼마나 좋으신지 얘기하려고 했어요.”
성훈의 눈치를 살피며 급히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중국에서 객사할 저를 이렇게…….”
민호가 다급히 뒤돌아보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안 그래요?”
직원들은 눈만 멀뚱거리며 아무 말도 없었다.
“쯧쯧.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필사적인 민호의 모습에 성훈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쯧. 당신들도 고생이 참 많아요. 이런 성격 개차반 같은 놈을 상전으로 모시고…… 쯧쯧.”
성훈의 말에 직원들이 어이없다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뭐래니. 저 말을 성훈 팀장이 한다고?’
‘와! 우리 소장 보고 개차반이래. 저한테 비하면 발톱에 때도 안 될 텐데!’
‘에구. 우리 소장 또 쫄았다!’
한 직원이 고개를 문 쪽으로 까딱하며 속삭였다.
‘야! 슬슬 피하는 게 상책 아닐까? 된서리 맞아.’
분위기를 보던 한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소장님. 급한 연구가 있어서 그러는데, 좀 있다가 다시 올까요?”
기다렸다는 듯이 민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직원들 앞에서 돌대가리라는 말을 듣게 생겼으니 말이다.
마지막 직원이 사라지고, 성훈이 빈 의자에 턱 걸터앉았다.
“앉아!”
“네! 형님!”
각 잡은 자세로 맞은편에 앉았다.
성훈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잘하는 짓이다. 일하라고 사람 데려다줬더니, 네 화풀이나 하고 있냐?”
“죄송합니다.”
“네가 돌대가리라서 그런 걸, 누굴 탓하고 있냐? 엉.”
자칭 타칭 천재, 이민호의 자존심이 확 상했다.
고개를 똑바로 들며 반문했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돌머리는 아니죠.”
“숙제 내준 거 풀었냐?”
“그게……. 아직도…….”
성훈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직도 못 풀었어? 이주나 줬는데?”
“그게……. 분체도장이 잘 안 돼서…….”
변명에 급급한 민호였다.
“이러니 내가 돌대가리를 말을 안 할 수 있나? 이 돌대가리야!”
민호가 울상을 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 씨! 돌머리란 말만 좀…….”
이런 실랑이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이그. 널 믿은 내가 바보지.”
손짓으로 부르며 말을 이었다.
“뭐가 문젠데?”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민호는 성훈의 옆으로 다가가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은 형님 말씀을 듣고, 4배 강도 합금을 만들었거든요.”
“그건 당연한 거고.”
8배 강도 합금을 만들었는데, 4배 강도쯤이야!
기분이 상했는지, 눈을 흘기면서도 민호는 계속 설명을 이었다.
“그 위에 8배 강도 합금을 도장하려고 했어요.”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미세하게 가루를 냈어요. 보이시죠. 거의 분말처럼 되었잖아요.”
“그런데?”
“이게 입혀지지가 않아요. 이 기계 되게 좋은 거거든요.”
그 말에 성훈이 옛 기사의 기억을 되짚었다.
‘뭐 전류 어쩌고 하던데…….’
확실히 이민호의 인터뷰에서는 전류를 쓴 걸 자랑처럼 늘어놓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 전류는 확실하다는 건데. 뭐 일단 질러봐야지. 세기 조절 좀 하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속내를 감춘 성훈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전류는 흘려보내 봤냐?”
“전류요?”
“4배 강도 합금 본체에 전기 저항이나 그런 게 있으면 더 잘 붙거나 하지 않을까?”
“진짜로 전류 말씀하시는 거예요?”
무슨 되지도 않는 말을 하느냐는 듯, 성훈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시도해 보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였다.
민호의 의자를 툭 차며 성훈이 말했다.
“형님이 말하면 되묻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돌!”
“아 참! 그 돌!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성훈의 손이 올라간 것을 보고, 민호는 재빨리 기기를 조작했다.
“세기 조절하면서 추이를 보자고.”
“네! 형님.”
한참 후, 민호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성훈이 물었다.
“어때?”
“억! 확실히 아까보다는 잘 되긴 하네요.”
“성공 가능성은?”
“그래도 7~80 정도밖에 안 돼요.”
“원래의 가능성은?”
민호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3~40!”
“말이 짧다!”
“퍼센트요!”
“장족의 발전이네. 그동안 넌 뭐한 거냐? 응?”
민호는 변명도 못 하고 눈만 굴릴 뿐이었다.
성훈이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저 가루는 얼마나 작게 간 거냐?”
“일 마이크로 단위로요.”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안 되지. 이 돌아!”
민호가 인상을 팍 썼지만, 안중에도 없는 듯 성훈이 말을 이었다.
“나노 단위로 갈아!”
“엑! 나노 단위로요?”
“갈아!”
무거운 성훈의 목소리에 민호는 대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네. 형님!”
성훈의 지시대로 시행한 후, 분체도장기계를 가동하고 모니터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던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형님!”
“…….”
이민호의 입이 딱 벌어졌다.
“형님은 천재십니까?”
모니터에 도장 점착률이 기록되고 있었다.
<99%>
기껏해야 80%가 최고였었는데, 이만하면 대성공이라 할 만한 결과가 아닌가?
결과를 본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99.99% 만들려면 얼마나 걸려?”
잠시 눈을 굴리던 민호가 답했다.
“한……. 사흘 정도면 안 될까요? 형님?”
민호의 말을 들으며, 성훈이 피식 웃었다.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 다 들린다. 요 녀석아!’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까지 완성시켜! 그리고 다른 사람 시키지 말고 너 혼자서 해!”
“네? 왜요?”
“비밀 엄수해야 하니까.”
“얼른 완성하고 발표해 버리면 그만인데 무슨 비밀 엄수요?”
투덜대는 민호에게 성훈이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내 공모전을 위해서, 널 데려온 거 알지?”
이미 눈치를 챈 듯, 녀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중간하면 신경도 안 쓰겠는데, 그 경쟁자들이 아주 노련한 사람들이거든.”
다른 공모전 참가자들도 지금쯤 설계의 마지막을 다듬는 과정이리라.
어떤 결과들을 들고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들의 명성에 걸맞은 작품들이 나오리라는 것은 눈을 감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절대 만만치 않은 자들이지.’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노련함을 넘어서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저도 들어서 알고는 있어요. 건축계에서는 아주 저명한 인사들이라고.”
“응! 그런데 지금 나로서는 어떻게든 발톱을 감춰야 하는 처지인데, 그들이 이 연구 결과를 알게 된다고 해봐.”
성훈이 눈썹을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8배 강도 강에 맞춰서 설계 변경하는 건, 좀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이 중요한 시점에서 내 최고의 강점을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러니 공모전까지는 네 합금의 존재는 끝까지 비밀로 해야 해.”
민호의 강철합금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현대의 건축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런 물건이 나왔는데, 대가들이 어찌 적용하지 않으려 하겠는가?
성훈이 속으로 다짐했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할 수는 없지.’
공모전의 승패는 당일의 결과에 따라 갈라진다.
기간이 지난 후에 설계를 고쳐와 봐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그게 공모전의 규칙이니까!
성훈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완성 일자와 상관없이 발표일은 내가 정한다.”
“아! 진짜! 이거 끝나면 바로 엄마 보러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누가 보면 내가 네 엄마를 인질로 잡은 줄 알겠다?”
허나 엄마를 보고 싶은 그 심정, 어찌 모르랴?
여전히 입을 내민 민호에게 성훈이 말을 이었다.
“연구만 끝나면 다냐?”
“그럼 전 뭐해요? 연구 완료하고 나면 할 일도 없는데요?”
“넌 그동안 네 작품을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들을 찾아봐. 건축 말고! 일단 찾기만 하면 홍보는 이 형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네. 알았어요.”
물론 필요한 자들은 알아서 거래하자고 오겠지만, 필요성을 모르는 자들도 부지기수일 터!
제품의 성능보다 그 홍보가 더 중요하지 않던가?
제품의 사용처를 극대화할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개발자 자신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대신 이 연구는 네 단독 연구로 해 줄게.”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애초의 약속이 그랬기는 했지만, 자기 스스로도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분체도장 건도 그렇고, 방금만 해도 거의 형님 혼자서…….”
“결국은 네가 네 손으로 다 했지. 난 네가 하는 거에 힌트 약간 준 것뿐이야.”
민호가 말없이 성훈을 올려다보았다.
“너도 뭐 얻는 게 있어야, 앞으로 더 열심히 연구할 거 아니냐? 내 뒷담화도 안 할 거고. 양심이 있으면…….”
성훈을 직시하는 민호에게 확실하게 말해줬다.
“이건 네 작품이야. 자격이 있어!”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무슨 이유를 대든, 이 연구는 네 이름으로 발표되어야만 해. 그게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고.’
내 사정이 다급하여 민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도둑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계속 투덜대기만 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
“형님.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야. 네 노력의 결과이고.”
“그래도 감사합니다.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 머리를 걸고…….”
“네 돌대가리 따위가 뭐 필요하냐? 말 잘 듣는 네 손이 필요한 거지. 어머니 만나면 자랑도 좀 하고.”
“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용건은 끝났다.
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고해. 내일까지다!”
“네! 반드시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연구소를 나온 성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미’에 올라탔다.
부르릉!
시동을 걸며 생각을 정리했다.
‘무기 상태는 확인했고, 이제 옵션 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주러 가볼까?’
옵션 팀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 좀 한가해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 놔두고 노는 꼴은 못 보지!’
부르르릉!
‘카미’가 힘차게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