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08화
공모전(01)
일주일 후.
후배들과의 옵션 회의를 끝낸 성훈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들어서자 응접 소파에서 도면을 정리하는 소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까닥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회의는 잘 마무리되었나요?”
성훈이 머쓱하게 인사를 받았다.
“뭐. 그럭저럭.”
그런데 소피아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시선에 성훈이 움찔하며 물었다.
“어.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뭐가?”
“당신도 이럴 때가 있구나 싶어서.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자신의 외모에 대한 말이란 걸 대번 깨달았다.
“아! 이거.”
피식 웃고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수염 깎을 시간도 안 주더라고.”
그의 말처럼 거뭇거뭇한 수염이 턱과 구레나룻을 뒤덮고 있었다. 머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하며 성훈이 소피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함! 사흘 동안 한잠도 못 잤거든.”
소피아가 미간을 좁히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사흘 동안이나요?”
“이 녀석들이 쉴 시간을 줘야 말이지. 한 놈 끝나면 다음 놈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는데, 죽일 듯이 덤벼들길래 하나하나 상대해 주느라…….”
소피아가 그 모습을 모를 리 있는가?
지금이야 옵션 설계를 성훈이 담당하고 있지만,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외부 일로 바쁜 성훈 대신 소피아가 옵션 팀을 관리하지 않았던가?
“우리 애들이 열정적이긴 하죠.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작품을 빨리 완성하려 그런 거니까.”
“알아. 응당 그래야 하고. 열정이 넘쳐서 그런 건데.”
기분 좋은 듯 성훈이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해주니, 되려 내가 감사해야지.”
멋쩍게 웃는 성훈에게 소피아가 말했다.
“당신의 열정적인 모습도 멋있어요.”
그 말에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산적처럼 부스스한 모습이 뭐가 멋있겠는가?
‘네가 기다리는 줄 알았으면 세수나 하고 올걸.’ 칭찬이 어색한 듯 성훈은 얼른 탁자 위 서류를 집어 들었다.
“훗! 멋있기는. 완전 거지꼴인데.”
그러고는 페이지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이거 검토해달라고 가져온 도면 맞지?”
도면을 뒤적이는 그에게 소피아가 말했다.
“네. 하지만 급한 건 아니니까, 좀 쉬었다가 해도 돼요.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하지만 그녀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성훈은 도면을 넘겼다.
“괜찮아. 죽을 정도로 피곤한 것도 아니고. 내가 검토를 해야 어르신들도 다음 일을 진행하지 않겠어?”
도면을 훑어보며 그녀에게 눈짓했다.
“어르신들은 어때? 여전히 투덜대셔?”
소피아가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틈도 없을 걸요. 할아버지랑 대목장께서 경쟁이 붙어서…….”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소피아가 말을 이었다.
“항상 당신 얘기를 하죠.”
“뭐라고?”
“성훈 씨에게 착취당한다고.”
그 말에 성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고 소피아에게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애들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더라.”
새침한 미소로 소피아가 답했다.
“몰랐어요? 저 인기 많은 거?”
“학교 가면 또 볼 거면서. 쯧쯧.”
성훈이 도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좋은데! 딱히 흠잡을 곳이 없어.”
탁! 탁!
도면의 모서리를 정리하고 손으로 탁 치며 말을 이었다.
“됐어. 이 건은 이대로 진행하자고. 그리고 소피 고생했어. 말 많은 어르신들 달래느라 말이야.”
“제가 뭐 한 일이 있나요? 그리고……. 제 할아버지이기도 하니까요.”
피곤한 눈빛으로 성훈이 소파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제일 상대하기 껄끄러운 분들이 그분들이야. 그분들의 전문적인 지식은 내가 따라갈 수 없거든. 그럴 네가 보조해 주니 이렇게라도 결과가 나오는 거지. 그래서 고맙다는 거야.”
도면을 탁자 위로 툭 던지며 말을 이었다.
“그런 분들께 각각 다섯 개씩이나 작품을 뽑아내다니.”
성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라면 절대 못 했을 거야. 암!”
그리고 고개를 젖히고 소파의 목 받침에 머리를 기댔다.
“고마워. 소피.”
그 모습을 보던 소피아가 말했다.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고개를 젖힌 채, 성훈이 물었다.
“뭔데?”
“코어는 지금 그대로 가실 건가요?”
“코어? 왜?”
“물론 지금 당신의 설계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고개를 들기도 귀찮은 듯, 성훈이 말했다.
“으음! 잡설 빼고 용건만.”
그 무관심한 태도에 소피아가 못마땅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금은 말을 돌려도 될 정도로 성훈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소피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이건 제 생각일 뿐인데요. 일정 구간에서 객실들을 아래로 내린다는 생각은 동의해요. 하지만 과연 그 객실주들이 한꺼번에 이사를 할까요?”
성훈이 자세를 바로 했다.
눈은 여전히 피곤함에 절어 감길 듯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지금 콘셉트대로라면……. 한 집이 이사할 때마다 그 층의 집들이. 적어도 삼각별 모양이니까 1/6 정도는 이사에 따라서 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소피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만약 삼각별의 맨 끄트머리에 있는 집이 이사를 한다면, 그 양편의 집들이 어떤 식으로든 비켜줘야 이동 공간이 생기는 거였다.
성훈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객실을 분리하는 것만 생각했지, 구체적으로 다른 객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네. 생각을 해보니까.”
졸린 눈을 비비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다른 집이 이사할 때마다 내 집이 움직여야 한다!? 나 같아도 그 집에는 안 살겠는데?”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걸 알면서도 입주자의 삶에 불편을 끼친다는 건, 설계가로서 기본을 망각하는 일이 아닌가?
성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까칠한 턱을 움켜잡았다.
“상당히 심각한데…….”
생각해둔 게 있는 듯, 소피아가 말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그러지 않으려면?”
“층을 회전시키는 건 어때요? 그럼 그 층 전체가 움직이는 거니까, 다른 객실에서 불편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을 거고.”
이마를 짚고 생각하던 성훈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그건 좀 힘들어.”
“왜요?”
성훈이 두 손을 겹치며 설명했다.
아래 손과 위의 손을 겹친 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잘 봐. 문제는 평면이 삼각별이란 점이야. 이렇게 회전하는 동안 돌출되는 부분은 아래에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말 그대로 공중 부양이 되는 거지.”
“헐!”
소피아의 놀람에 성훈이 설명을 이었다.
“물론 방법은 있지! 각 객실이 하중을 분산할 수 있게끔 걸림쇠를 단단하게 채우면 돼.”
진중하게 설명하면서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말이야.”
소피아와 시선을 맞추며 성훈이 말했다.
“일시적이나마 네 발밑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해보라고. 그런 집에 살고 싶은지.”
성훈의 설명에 소피아는 오금이 저렸다.
다른 집이 이사할 때마다 허공에 떠 있어야 한다니,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 아닐까?
소피아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지는 않겠네요.”
“응. 게다가 그걸 다른 입주자들이 본다고 해봐.”
능히 상상이 가지 않는가?
일생의 모든 것을 담은 집!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집을 계획했는데, 그런 집이 허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
공학적으로 아무리 완벽한 계산을 세웠다 해도,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성훈의 설명이 이어졌다.
“평면이 원형이라면 네 생각이 충분히 먹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건물이 너무 평범해져!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아까의 졸음은 온데간데없는 듯, 성훈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이내 성훈은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 이거 상당히 곤란한데…….”
성훈이 고민하는 사이, 소피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요?”
소피아를 보지도 않고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땡큐!”
소피아가 커피를 내려올 때까지도 성훈은 고개 숙인 채,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었다.
고민이 역력한 모습!
커피를 탁자에 올리며 물었다.
“아직도 적당한 해결책이 안 떠오르나요? 그럼 좀 쉬었다가…….”
그 순간 성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아, 진짜! 간단한 문제인데 말이야.”
소피아가 고개를 모로 돌리며 물었다.
“간단하다고요? 그게?”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레고! 레고처럼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레고요?”
건물이 애들 장난감인가?
그것도 백 층이 쉬이 넘어가는 것이라면, 어느 하나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훈은 생각이 달랐다.
“응. 각자 독립적인 개체로 만드는 거지. 게다가 상호보완적이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소피아가 눈썹을 으쓱했다.
좀 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성훈이 뜨거운 커피잔을 후후 불었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지만, 다른 객실이 이사할 때는 받침대가 되어주는 거지.”
그래도 설명이 부족한지, 소피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성훈이 손으로 건물을 만들었다.
“자! 이렇게! 내 건물이 있는 거야!”
“네!”
그러고는 어느 한 부분을 손으로 집어 뽑았다. 마치 레고 조각을 뽑아내듯이!
“이사할 때 이리저리 다른 모듈을 옮기는 게 아니라, 그 집만 쏙! 빼서 그 아래층을 타고 내려오는 거지.”
그러고는 레고 조각이 건물 벽을 타고 성훈의 손을 따라 탁자 위까지 부드럽게 활강했다.
“이해 안 돼? 그 객실만 뽑아서 아래로 내리는 거지.”
말로 안 되는 게, 세상에 뭐가 있으랴?
미간을 좁힌 소피아가 물었다.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봐요?”
건물은 레고 블록 하나의 수천만 배에 달하는 하중을 가졌다.
집이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땅에 붙어 있을 때의 이야기!
상식적으로 집이 움직인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수백 미터 높이에서 움직인다고?
그것도 쏙 빼서?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요!’
소피아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음에도, 성훈은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거 아니야. 각 객실에다가 아래로 이어지는 레일을 부착하면 돼!”
“아니! 그러면!”
“아! 미관상의 문제는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어.”
“어떻게요?”
거론할 가치도 없다는 듯 성훈이 말했다.
“그 까짓거 일도 아니지! 돈만 좀 더 들이면 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피아가 말했다.
“전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당연히 쉽지는 않지. 하지만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야. 전문가들 널렸는데.”
그 말에 소피아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또 누구 입에서는 곡소리가 나오겠네요.’
성훈이 히죽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당장 실행해 봐야겠는데. 흐흐흐.”
통화 버튼을 누르며 성훈이 중얼거렸다.
“재미있겠어. 아주.”
-네! KT 설계1팀 이중원입니다.
성훈이 말했다.
“어! 중원이냐? 팀장이다.”
-네! 팀장님! 말씀하십시오.
각 잡힌 그의 대답에 성훈이 말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설계 1, 2팀, 그리고 지원팀! 컨퍼런스룸으로 모두 집합! 10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