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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406화 (406/427)

건축의 신 406화

저마다의 꿍꿍이(07)

팀장실로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많이 기다리셨죠? 부사장님.”

소파에서 일어난 그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부르시는데 어찌 지체하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실수라도 한 것인가 싶었는지, 곽 부사장이 머리를 조아렸다.

성훈이 탕비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잠시 앉아 계세요. 차나 드시면서 말씀하시죠. 곽 부사장님은 커피시죠?”

“네. 감사합니다.”

차를 타온 성훈이 소파에 앉았다.

“주식 매입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번 계약 건 때문에 더는 철강 쪽에서 귀찮게 할 일은 없겠더군요. 깔끔했습니다.”

성훈의 칭찬에 부사장도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현재 건설 쪽에서도 철강 주식을 매입하는 정황이 파악되었습니다. 우리처럼 전방위적이지는 않아도 말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성훈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사장님이 신경 써 주시는 건가?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는데요?”

“일이 그게 불거지면 사장님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니, 미리 움직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성훈은 결재 서류를 뒤적였다. 그리고 대여섯 장으로 철해진 파일을 꺼냈다.

“사실은 이거 때문에 뵙자고 한 겁니다.”

부사장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이건 저번에 결재받을 때 참고하시라고 끼워두었던…….”

성훈이 눈을 빛냈다.

“네. 철강 쪽의 회계를 간략하게 정리해 두셨더군요.”

“아!”

성훈이 형광펜으로 그어진 부분을 가리켰다.

“거기 줄 그은 곳 보이시죠? 30억의 사용처가 애매해요. 곽 부사장님은 그게 뭔지 아시죠?”

“네. 추측하기로는 국토교통부에서 기획 중인 사업 관련으로 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훈이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이른바 뇌물이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걸 제게 말씀하신 이유는?”

KT 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건을, 부사장이 아무 생각 없이 부록으로 넣었으랴!

지금 성훈은 그것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성훈의 의중을 파악한 그가 설명했다.

“제가 철강 사장을 좀 압니다.”

“그래요?”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까요.”

그가 회사에 몸담은 세월과 철강 사장의 나이가 비슷하니, 충분히 공감이 갔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좋은 추억은 아닌 듯, 혀를 찬 그가 말을 이었다.

“그는…….”

표현을 고르던 그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좋게 말하면 영리하고……. ‘나쁘게’ 말하면 비열합니다. 이번 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더 많은 이득을 위해서 거부한 거죠.”

“그렇겠죠.”

“게다가 자기밖에 모르고,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속이 좁은 인간이군요.”

자본주의 속에서 활동하는 인간이,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이득을 충분히 확보했음에도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건 상생이 아니라, 약탈이니까.

‘그건 애초에 거래할 마음이 없다는 거지.’

그게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거지만 말이다.

부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힘의 원리는 무시할 수 없지요.”

그래서 각 계열사의 주식을 모은 것 아닌가?

주식 매입을 실행한 그가 이 문서를 준비했다?

성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더 들어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부사장이 커피로 입을 축였다.

“지금부터는 그냥 제 의견일 뿐입니다.”

“기탄없이.”

“이번에 데려온 연구원 있잖습니까?”

“그런데요?”

“그 친구가 삼 개월 내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할 겁니다.”

“자기가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거래처 모두를 합친 것보다, 우리 공모전 하나가 더 물량이 많을 테니까요.”

“우리로 뽕을 뽑으려고 할 거다, 그 말씀이시죠?”

성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공모전 못할 경우는 생각 안 하나? 그 인간은?”

“그럴 일 없잖습니까? 누가 하는 일인데!”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는 부사장이었다.

“일단 넘어가고요. 그래서요?”

“하지만 성공했을 경우는…….”

“그럴 경우에는요?”

“자신의 제품을 팔지 못하게 되죠.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시비를 걸어올 겁니다. 그런 인간이니까요.”

“예를 들면?”

“연구원들을 빼간다든가 하는 사소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KT 팀을 타깃으로 공격할 겁니다.”

성훈이 코웃음 쳤다.

“뭐? 비리, 그런 거요?”

“네.”

“우리가 그런 게 있습니까? 제일 잘 아시잖습니까? 우리 팀의 산증인이시니.”

그 말에 부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없지요. 그건 제가 장담합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없는 비리를 만들어서라도 싸움을 걸어오겠지요.”

“그래서 이걸 준비하신 겁니까? 그들이 도발할 때, 같이 대응하려고?”

부사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KT 팀의 명성에 그딴 일로 똥칠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결단코!”

그의 각오를 들으며, 성훈이 입술을 매만졌다.

잠시 후 성훈이 입을 열었다.

“제가 팀을 만든 지도 어언 삼 년이 지났고……. 그동안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한국은 변한 게 전혀 없군요.”

무슨 답을 하랴? 사실인데.

작게 한숨을 쉬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후우. 부사장님. 제가 왜 한국에서 KT 팀을 시작하지 않은 줄 아세요?”

“처음 거래가 알리 왕세자의…….”

성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결과일 뿐. 전 애초에 한국에서 시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네? 그럼 계획된…….”

“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죠.”

“어떤…….”

갑자기 튀어나온 성훈의 속내에 부사장은 귀를 기울였다.

“첫째. 한국엔 걸림돌이 너무 많았어요. 팀이 크기도 전에 망가졌을 겁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아! 그러셨군요.”

성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돈 있는 자들의 횡포, 그 돈을 받아먹은 정치인들의 비호. 외국에는 없던데, 한국에는 아직도 있네요.”

“어쩔 수 없지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부사장이 물었다.

“두 번째는…….”

“그리고 한국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아직도 현재 건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겠고. 내 사람들도 보호하지 못했겠죠. 아마도.”

성훈의 작은 탄식에 부사장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는 자의 바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요.”

“네. 그것 때문에 외국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누구도 KT 팀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게 사장, 아니, 회장이라고 해도.”

부사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건 저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전 그저…….”

“여기서 시작했다면, 전 잘해봐야 디자인팀의 팀장, 그 정도를 하고 있었겠죠.”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기엔 성훈 님의 능력이 너무 아깝지요.”

“부사장님도 아시잖아요. 처음에 절 견제하는 사람이 좀 많았습니까?”

그 말에 부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 인간들 모두, 지금은 알래스카에 있지요.”

“물론 사장님의 배려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 뿐. 제가 조금이라도 약해 보였다면, 제 위에 군림하려 했겠지요.”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말씀에는 동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일을 좀 해보려 하는데……. 쯧!”

부사장이 눈을 빛내며, 은근히 물었다.

“혹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룹 활동을 하시겠다는?”

눈을 반짝이는 그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아저씨는 변하지를 않네. 정말!’

성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요. 전 사내 정치 같은 거, 관심 없습니다.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실망하는 그에게 성훈이 핀잔을 주었다.

“하려면 부사장님이나 하세요. 요즘 완전 실세시잖아요.”

부사장이 들릴 듯 말 듯,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쩝. 그럴 줄 알았습니다. 바란 제가 잘못이지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를 타박했다.

“제가 그런 데 관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

“그저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본 것뿐이지요.”

그리고 이어 물었다.

“그럼 어떤 국내 활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국내 공사를 말하는 거죠. 건축하는 놈이 그것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한국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바뀌든 뭘 하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앞으로도.”

마뜩잖은 표정으로 성훈이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결론은 놈들과 똑같이 비리를 물고 늘어져서, 진흙탕 싸움을 하자는 건데.”

“그래도 할 때는 해야 합니다.”

“그 후의 일은 생각 안 하세요? 부사장님은?”

현장의 전투적 기질이 발동한 것인가?

부사장의 말이 거칠어졌다.

“사생 결단을 할 참인데, 뒤가 어디 있습니까?”

서류를 집어 들며 성훈이 말했다.

“이걸로 철강과의 싸움에서 이긴다고 칩시다. 그다음은요?”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부사장이 물었다.

“작살 내면 끝이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돈 먹은 놈은요? 가만히 있겠습니까? 제가 철강 사장이라면, 그 인간부터 붙들고 늘어질 텐데?”

그 뇌물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기부하지는 않았을 터!

성훈이 말을 이었다.

“돈이란 곧 효용 가치와 같은 말이죠. 물론 그 전에 그룹 차원에서 중재가 들어오겠지만.”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돈 먹은 놈이 우리 KT 팀을 좋게 보지는 않을 거란 말이죠. 앞으로도 사사건건 방해하겠죠.”

“아! 그건 미처……. 그냥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군요.”

작게 한숨을 내쉬던 부사장이 중얼거렸다.

“성훈 님께서 뇌물을 바치지 않는 한.”

그 말에 성훈이 비릿하게 웃었다.

“바칠 것 같습니까? 그런 놈들에게.”

“후우. 그럴 리 없으니까 하는 걱정이지요.”

그의 한숨을 보며, 성훈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전 지금까지 저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뭘 먹이든 먹든 신경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셨지요.”

일할 때 보여주는 결벽증에 가까운 성훈의 성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중의 하나였다.

부사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이의 뇌물 때문에 일을 방해받는 것은 아주 싫어하시죠. 그리고 같은 이유로 실력이 없다고 저평가되는 건 더 혐오하시고.”

성훈이 그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전 자폭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저는 단지 살고 싶어서, 뛰쳐나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성훈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실력이 충분한데도 일을 할 수 없고,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도 저 성격에?’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해외에서의 시작은 성훈 님의 탁월한 선택이었군요. 한국에서는 절대로……. 3년 만에 이룰 수 없는 성과였으니.”

“지금까지 모른 척 넘겼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네요. 너무 걸리적거려요.”

부사장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진흙탕 싸움을 하기 싫다 하셨는데 어쩌시려고요?”

“판 새로 깔고, 실력으로 먹어야겠어요.”

“판을 새로 깐다니?”

눈치 보던 부사장이 물었다.

“혹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성훈이 매서운 눈으로 서류를 짚었다.

“여기! 이 돈 먹은 놈, 누군지 알아오세요.”

뜨악하는 표정으로 성훈을 만류했다.

“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거물일지도 모릅니다. 신중히…….”

하지만 성훈은 단호했다.

“저도 그쯤은 짐작합니다. 연 매출 1,000억도 안 되는 코딱지 같은 회사에서 30억이 들어갔어요. 되지도 않을 놈에게 그렇게 먹일 리가 없죠. 확실하니까 질렀지.”

“그걸 뻔히 아시는 분이…….”

“내놓으라는 놈이 있으니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겠죠. 게다가 이번에 정리 못 하면, 계속 진흙탕 속에서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합니다. 결국, 전 패배할 수밖에 없고.”

열 손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나와는 다른, 그들의 규칙을 뻔히 알면서 뛰어들어 투쟁하는 걸 과연 지혜롭다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죽으려고 발악하는 것과 뭐가 달라? 난 정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적어도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든지, 그게 귀찮으면 아예 엎어 버리든지.

성훈이 서류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먹인 돈 몽땅! 허공으로 날아가게 해주지.’

“그래도 너무 큰 모험이 아닐는지…….”

“거물이면 손 못 댄답니까? 언제까지 이런 놈 눈치나 보면서 일할 수는 없잖아요. 시작할 거면 대가리부터 날리는 게 나아요.”

성훈이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떤 놈인지 알기 전에, 해치워야 합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걱정하는 그에게 말했다.

“게다가 마침 좋은 기회잖아요. 정권도 교체되었고, 이번 대통령은 좀 다르다면서요?”

부사장이 푸념하며 말했다.

“훗! 그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지요.”

그에게 지시를 이었다.

“돈 먹은 놈이 한 곳에서만 먹었을 리는 없어요. 다른 곳에서는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도 같이요.”

부사장의 한숨이 깊어졌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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