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404화
저마다의 꿍꿍이(05)
사장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물러나시기는! 전혀 그럴 생각 없으시면서.’
경영에서 물러났다고 말하면서도, 그룹의 돌아가는 사정을 한눈에 꿰뚫고 있는 회장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건설회사에서 벌어지는 영업사원 채용 같은 소소한 일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네. 제가 필요해서 뽑은 게 아니라, KT 팀에서 뽑은 겁니다.”
의외의 말에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훈이 글마가?”
“네!”
지금까지 KT 팀에는 자체적인 영업부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KT는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팀!
이건 팀의 창설 이래,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회장이 입술을 비틀며 물었다.
“글마가 지금까지 영업팀을 쓴 적이 있었나?”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 번도 없었지요. 그럴 이유도 없었구요.”
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글치. 글마한테 영업팀 같은 기 뭐하러 필요하겠노?”
세계의 부호들과 두터운 인맥을 가진 것은 물론이요, 게다가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성훈이 아니던가?
그런 그에게 영업팀이 왜 필요하겠는가?
명목상으로는 곽 부사장이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의 역할은 성훈과의 이견 조율이 끝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오는 역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회장이 아니던가?
그런 성훈이 영업팀을 만든다?
그게 회장의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이유였다.
“지금까지는 관심도 안 보이던 자슥이 영업사원을 뽑았다. 이 말이제? 그것도 직접?”
회장의 눈을 가늘게 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거 아니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건설을 나가서 자신의 회사를 차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이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중국 진출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하려는 게 아닐까요? 시장도 커졌으니…….”
그 말에 회장도 대뜸 수긍했다.
“하기사! 엉뚱한 맘을 먹을 거였으면 진즉에 했을 놈이지.”
그가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그란데 안 이상하나?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말이다. 중국에 한국 기업들이 을매나 많이 진출했는데. 뒤늦게 뒷북이나 두드릴 속셈은 아닐낀데…….”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는 녀석이 아닌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혀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끄응…….”
신음성을 토하며 회장은 소파에 등을 묻었다.
‘대체 무신 짓을 꾸미는 기고?’
열 길 물속도 알 수 없건만, 사람 속을 어찌 알 수 있으랴?
팔짱 끼고 눈을 감은 회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글마는……. 당최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지!’
속으로 투덜대던 회장의 뇌리로 홱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아! 어쩌면 기회일지도!’
크게 심호흡하며 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거는 분명히 뭔가 있다. 그쟈?”
눈감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회장을 보며 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니는 우째 생각하노? 안 그렇나?”
“…….”
하지만 뭐라고 대꾸하랴?
뻘쭘한 표정으로 사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유 없이 일을 벌일 녀석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아닌가?
‘저라고 그걸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 ’무엇‘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지요.’
허나 뉘 앞이라고 함부로 말하겠는가?
그저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
회장이 자세를 바로 하며 물었다.
“니는 성훈이를 어떤 인간이라 생각하노?”
“네?”
뜻밖의 물음에 사장은 대답 대신, 입만 움찔거렸다.
자신보다 성훈에 대해 더 잘 아는 회장이 왜 이렇게 묻는 걸까?
게다가 질문을 던지는 회장의 표정이 진지함을 넘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녀석을 표현할 말이야 많고 많지요.’
잘난 놈!
성실한 놈!
실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거기다가 운까지 좋은 놈!
하지만 과연 그런 단어로 성훈이라는 인간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턱없이 부족하지.’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장의 침묵에 회장이 물었다.
“억수로 운 좋은 놈이라 생각하나?”
그 물음에 사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훗! 아버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의 운이란 운은 혼자 다 독식해도, 성훈이처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장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운이라는 건 어쩌다 한 번인 걸 말하는 겁니다.”
할 때마다 대박을 터뜨리면, 그걸 어찌 운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니가 생각해도 그렇제?”
“네!”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이던 늙은 회장의 주름진 입매가 묘하게 비틀렸다.
“내도 그래 생각한다! 그란데……. 있다 아이가?”
회장을 주시하던 사장이 움찔했다.
‘저건 무슨 의미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버지의 표정.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조용해 눈을 끔뻑거렸다.
회장이 찌푸린 입술을 열었다.
“인간이 우째……. 한 번도 실패를 안 할 수가 있노? 그기 인간이가?”
회장의 투덜거림에 사장은 입을 꽉 다물었다.
그 표정의 의미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설마? 아버지……. 질투를 하시는 겁니까?’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느낌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평생 질투와는 연관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람.
그는!
누군가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지언정 누군가를 질투해본 적은 없는 거목이었다.
적어도 평생을 지켜본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도 모르셨을걸!’
그에게 질투할 여유가 있었다면, 그 여유조차도 경쟁자를 어떻게 꺾을까 하는 고민에 투자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졌기에,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라는 명성을!
그는 사장에게 아버지이기 이전에, 가장 존경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그의 나이 반절도 안 되는 젊은이에게 질투한다고?
고개 숙인 그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꿈틀거렸다.
어이없음과 전율이 뒤섞인 미소가 이렇지 않을까?
하지만 차분하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휴. 아버지.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하지만 회장은 그 감정이 질투란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회장의 꾹 다문 입술이 그걸 반증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잔잔히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는 사장에게 회장이 탐탁지 않은 듯 물었다.
“내 말이 틀맀나? 와 말이 없노?”
진지하기 그지없는 말투.
사장이 다시 한 번 심호흡하며 얼굴을 들었다.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저도 그 녀석이 인간이 맞는지 가끔씩 궁금하더군요.”
회장이 쓰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쟈? 니가 봐도 글체?”
고개를 끄덕이자, 회장이 말을 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글마는…….”
“네?”
사장이 되묻자, 회장은 딴청을 하며 말꼬리를 돌렸다.
“아이다. 아무것도 아이다!”
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그리 짐작한 사장도 회장에게 맞장구쳤다.
“하하. 뛰어난 놈이기는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아버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회장이 대뜸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말이 아이고!”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기지.”
사장이 멀뚱거리며, 대답을 요구했다.
뭐가 그리 다른 거냐고?
“잘 보래이. 나는 불도저맹꾸로 돌진하는 타입이다 아이가?”
사장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그러셨지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란데 글마는 다르다 그거지. 처음부터 딱딱 주판을 뚜드리보고 뎀비는 것 같단 말이다.”
사장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계획 없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던가?
콩 한 쪽을 살 때도 계산을 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인 거지요.”
사장의 웃음에 회장이 혀를 차며 대꾸했다.
“어허이! 그런 말이 아이라카이!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한 수 한 수 정확히 알고 뎀비는 것 같다. 이 말이제.”
사장이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아부지. 말도 안 됩니다. 그건 아무리 수 싸움에 능해도 그렇지, 그게 가능합니까? 아니면 녀석이 미래를 본다면 모를까?”
사장의 말이 맞지 않는가?
계획한 순서대로만 진행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살기 편하랴?
하지만 세상은 냉혹하다.
수시로 끼어드는 변수로 인해, 결과적으로 목적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
아들의 웃음에 회장은 은근히 짜증이 났다.
‘차라리 내도 글마가 미래를 보는 놈이믄 좋겠다! 그라믄 이래 짜증도 안 나지!’
어쩌다 한 번이면, ‘참 운 좋은 놈이구나!’ 하며 입맛 다시고 말 테지만…….
‘이건 뭐. 손대는 것마다 초대박이니!’
성훈의 감당하지 못할 성공에, 몇 번이나 제 일인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는지 모른다.
‘운 같은 거는 땅바닥에 구르는 개똥만치도 안 보는 내가! 글마 일은 몽땅 운이라고 치부하고 싶을 정도로……. 대성공이라꼬!’
언젠가 혼자 있을 때, 하늘을 보며 삿대질한 적도 있었다.
‘신이 이따구로 불공평해도 되는 기야!’며.
하지만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하랴!
회장도 멋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쩝. 미래는 무신. 택도 아인 소리 하고 앉았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말씀이 설명이 안 되죠.”
사장의 말도 영 허튼소리는 아니지 않던가?
회장이 씁쓸하게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글마 선견지명이, 그만치 대단하다. 그 말이지. 뭘 그래 말꼬리를 잡고 있노? 으잉!”
회장의 역정에 사장의 입가에 은근한 웃음이 맺혔다.
사장이 그의 마음을 어찌 모르랴?
돈이나 힘, 회장의 모든 것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
그리고 재능이나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질투.
‘그런 복잡한 감정의 어우러짐이겠지요.’
이미 그가 성훈이 입사하던, 3년 전에 느낀 감정이 아니던가?
사장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내렸다.
“네. 네.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하하.”
“그란데 니 오늘 뭐 잘못 묵었나? 와 오늘따라 실실 웃고 있노?”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처음으로 제 아비가 인간으로 보였으니 사장의 기분이야 푸근하지만, 회장에게 말할 수 있으랴?
그저 뻘쭘하니 속으로 웃을 수밖에.
못마땅한 표정의 회장이 말했다.
“어쨌기나! 차라리 내맹꾸로 걸리적거리는 거는 몽창 뚜드리 빠사가꼬 결과를 맹글었다카믄 이해라도 하겠다!”
회장이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성훈이 글마가 하는 일에 그런 기 있드나?”
강제적이었거나 무리를 한 적이 있었던가?
사장의 시선이 서서히 천정으로 향했다.
“음…….”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결론은 나왔다.
‘녀석의 일은 언제나 자연스러웠지.’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신음을 흘리며 수긍했다.
“끙. 없었네요.”
회장의 얼굴이 만족의 미소가 어렸다.
“거 보래이. 내 말이 맞다카이!”
결과론을 말하는 그런 말이야 누가 못하는가?
사장이 고개를 외면하며 눈알을 굴리자, 회장이 말했다.
“안 그라모! 니는 성훈이 들어오고 삼 년간의 변화를 우째 설명할 낀데? 그기 인간이가?”
분명 성훈에 대한 말임에도, 자신이 질책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난 삼 년간 회사의 순이익은 5배 상승했고, 업계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회장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단한 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진에 사장 자신이 이바지한 바가 지극히 작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녀석에 비하면, 기여도가 아예 없다고 해도…….’
사장의 머릿속으로 지난 삼 년이 스쳐 지나갔다.
‘녀석이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다고.’
아무리 뛰어난 사원이라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라는 게 있는 법!
성훈을 높이 봤던 만큼, 사장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녀석이 실수를 한다고 해도, 크게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훈을 단련시키겠다고!
‘실수하기만 기다렸다고!’
그러면 사장이랍시고, 호통도 치고, 위로도 하면서 힘을 얻게끔 케어해줄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그의 기다림은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했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고! 단 한 번도!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지금까지 성훈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애초에 도움의 ‘도’ 자도 꺼내지 않고 말이다.
‘세상이 이런 놈이 어디 있냐고!’
회장의 말이 일면 이해가 가는 사장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럼 인간이지! 신이라도 됩니까?’
그런 말을 해봐야 회장에게 불을 지르는 셈이니, 조용히 속내를 삼키며 사장은 그를 진정시켰다.
“저도 그렇게 생각되는군요.”
뚱한 회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회장이 얼마 없는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비장한 각오의 음성이었다.
“그래! 이거는 찬스다.”
“차, 찬스요?”
“그래. 두 번 다시, 없을 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