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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403화 (403/427)

건축의 신 403화

저마다의 꿍꿍이(04)

뚱한 걸음걸이로 거실을 나서는 막내를 보며, 회장이 혀를 찼다.

“쯧쯧. 걱정이다. 걱정! 저거 언제 철 드노!”

회장의 빈 잔에 물을 따르며 안심시켰다.

“막내도 다 컸잖습니까? 알아서 잘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꽁한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는 없고.”

“지금은 막내가 섭섭해서 저러는 걸 겁니다. 제가 나중에 녀석과 술이나 한잔하면서…….”

“내 말은 그기 아이다.”

“그럼요?”

“주제도 모르고 뎀비믄, 성훈이 글마가 우째 반응할지……. 그기 걱정되는 기지.”

“훗! 성훈이가요? 상대나 해줄까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마는. 파리도 자꾸 뎀비믄 성가신 법이다.”

씁쓸한 표정으로 회장이 말을 이었다.

“내라꼬 와 절마 응원 안 하고 싶겠노?”

싸움과 흥정은 붙이라 하지 않던가?

허나 그건 같은 체급일 때 이야기!

누가 다칠지 뻔히 보이는 싸움을 어찌 응원할까?

속내를 아는 사장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큰 싸움은 안 나도록 제가 중간에서 잘 조율하겠습니다.”

성훈의 성격도, 막내의 성격도 잘 아는 사장이지만 속으로 작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둘 다 성격 면에서는 만만치 않네.’

큰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라는 말에 회장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쩝. 됐다 마! 인자 그 얘기는 고마하고. 인자부터 우짤기고?”

“계약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지요. 막내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성훈이 성격에 이미 연구소까지 차렸다는 건. 이미…….”

“훗. 누구 탓을 할 끼고. 제 발로 걷어찼는데. 성훈이 글마가 질질 매달릴 놈도 아니고.”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란데 지금은 그기 중요한 기 아니란 말이지.”

회장의 의도를 알지 못한 사장이 가만히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성훈이가 어떤 제품을 개발하든, 막내가 맹그는 거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의외의 말에 사장이 미간을 좁혔다.

“아버지? 정말 가능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회장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되레 물었다.

“안될 이유는 또 뭐가 있노?”

“아니 그 말씀이 아니라, 막내 말처럼 시간도…….”

하지만 회장은 확신하듯 말했다.

“된다! 다른 놈은 몰라도, 글마가 하믄 된다!”

회장이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니, 벌써 잊아뿐나? 느그 회사에 들어온 첫날 글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만으로도 사장의 얼굴에 웃음이 고였다.

‘일하고 싶어서 안달 난 놈 같았지.’

부서도 정해지지 않은 인턴이 자신을 찾아와, 일을 따오는 조건으로 팀을 만들어 달라 하지 않았던가?

‘그게 KT 팀의 시작이었지!’

게다가 총수익의 10%를 인센티브로 달라며 조건을 걸고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훌쩍 날아갔었다.

‘그리고 따온 게……. 2억4천만 불짜리였지. 아마.’

사장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잊을 리가 있습니까? 단지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요.”

당연하다는 듯이 회장이 말을 이었다.

“글마가 마음먹고 하는 일이 실패한 적 있더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라모 실망시킨 적은?”

“역시 없네요. 놀래킨 적은 많아도.”

“글타카이! 성훈이 글마가 쥐면 뭐가 나와도 나온다.”

확신하는 회장의 말에 절로 수긍이 갔다.

저런 강렬한 확신이 있는데, 어찌 근거니 설명이니 하는 구차한 것들을 갖다 붙일 것인가?

사장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저도 그건 동의할 수밖에 없겠네요.”

원래는 확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묘하게 신뢰가 가는 것을 어찌할까?

회장은 성훈의 신제품 개발을, 이미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했다.

그만큼 그의 입사 첫날의 일은 사장의 뇌리에 아직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녀석이 한다고 하면……. 되는 거라고.’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회장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말씀하시지요.”

“성훈이 기분이 어째 보이더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거래 파기로 기분이 안 좋다거나 그런 거는 없더나?”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습니다.”

“참말로?”

“네. 그게 불쾌했으면 바로 찾아가서 따졌을 놈이지, 이리 행동할 녀석은 아니지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 또한 명확한 녀석이 아니던가? 그리고 기분이 상했다면, 사달이 났으리라.

그리고 사장의 확신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녀석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습니까?”

회장이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난 또 글마가 계열사 주식을 끌어모으고 있다기에, 혹시 딴생각 하나 걱정했지.”

사장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건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도 아버지 말씀처럼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거겠지요.”

“하기사……. 그러려고 했으면 벌써 했겠지.”

회장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현금 보유량은 자신보다 적다고 해도, 그 동원 가능한 자금량은 성훈이 자신을 압도한다는 것을…….

아무리 기업이라도 한 나라를 이길 수는 없지 않겠나? 그게 중동의 산유국이라면 더더욱…….

여차한 경우에는 신용만으로도 빌릴 수 있는 놈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간을 좁히며 고심하던 회장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흠. 그라모 일단은 우리가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기네.”

“먹다니요? 뭘 말씀하시는 건지.”

“니는 딴 생각하지 말고. 성훈이캉 막내캉 잘 한 번 이어붙여 봐라.”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장고를 하시나 했더니.

사장이 속으로 코웃음 치며 물었다.

“그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회장의 심정이야 백분 이해를 하지만, 이미 성훈과 막내의 거래는 끝났다.

“제 생각에는 큰 싸움 안 나게 하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회장이 심각하게 물었다.

“참말로 방법이 없겠나?”

아마도 두 번 다시 둘 사이에 거래가 진행되기는 어려우리라 사장은 전망하고 있었다.

회장도 능히 알 텐데, 왜 이 말을 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막내가 큰 거래처를 잃은 건, 안 된 일이지만……. 더는 둘이 만날 일이 없어 보입니다.”

만난다 해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우리라.

자신을 응시하는 회장에게 설명을 이었다.

“성훈이도 자기 연구팀을 꾸렸고, 막내도 새 거래처를 뚫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서로 미련 가질 일이 없지요.”

파는 자와 사는 자의 지향점이 다른데, 공급과 수요 곡선이 만날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은 경쟁자인데 말이다.

회장이 혀를 찼다.

“쯧쯧. 내가 막내 때문에 이라는 걸로 뵈나?”

“그럼 뭡니까?”

아직 자신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건설사장이 못마땅한 듯,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니는 사업 한다는 노무 자슥이! 어째 그리 생각이 짧노?”

“네?”

“성훈이가 제품 개발하면, 그거 누가 생산할 끼고? 성훈이 글마가 직접 회사 차릴 거 같나?”

그 말에 사장이 이마를 탁 쳤다.

“아!”

그걸 생산하려고, 공장을 세울 성훈은 아니었다.

분명히 어딘가에 생산을 맡기려고 할 터.

회장의 선견지명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캬!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으신다니까!’

회장이 의미심장하게 입 끝을 올렸다.

“적당한 생산처를 찾을 거 아니가? 그쟈?”

“그렇겠지요?”

“그라고 우리 성훈이가……. 의리는 있다 아이가? 우리한테 기회를 먼저 줄 거란 말이지.”

“크게 감정만 상하지 않았으면 가능하겠지요.”

회장이 느물거리는 미소를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는! 이번 거래가 성사되어서 얻는 이득보다, 그기 훨씬 더 크다.”

이미 회장의 머릿속에는 그 거래를 통한 이득이 숫자로 계산되고 있는 모양.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채, 회장이 말을 이었다.

“뭘 맹글든지 품질이 다를 거거든. 글마 거는. 흐흐흐.”

새로 개발되는 제품의 품질이 높다는 말은 시장 독점 기간이 그만큼 더 길어진다는 것!

“그걸 눈 뻔히 뜨고 놓치믄, 그기 등신이 아이모 뭐꼬? 아이가?”

“그렇지요.”

회장의 웃음에 사장이 제동을 걸었다.

“아버지. 그렇게 되면 막내는 망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신제품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게 되면, 더 나은 품질의 것만이 살아남을 터!

사장의 눈에도 생존 가능성은 성훈 쪽이 높아 보였다.

‘왜냐고? 여태껏 해온 걸 봐서는……. 녀석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하기 어렵고, 게다가 막내보다 못한 제품을 만들려고 연구소를 차렸다고는 상상하기 어렵거든. 그 녀석 성격에…….’

허나 성훈의 성공은 막내의 손해와 직결되는 것.

삼 년간 투자해온 제품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어찌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있을까?

하지만 회장은 그리 생각지 않는 듯, 태연한 음성으로 답했다.

“뭐가 걱정이고? 막내가 생산하면 되는데. 아무리 성훈이가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지금 당장 어디서 생산처를 찾을 끼고?”

그리고 기분 좋게 물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잘 사바사바 해갖고 기술이전도 받으면 더 좋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회장이 말을 이었다.

“애당초 이 거래는 없었다고 여기믄 된다.”

그 말에는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성훈이도 이번 거래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충돌할 마음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별다른 불만 제기 없이, 곽 부사장에게 조용히 주식 확보만 지시한 거로, 충분히 향후 성훈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장이 말을 이었다.

”이겨도 녀석이 얻을 게 별로 없을 테니까요.“

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아니면 애초에 싸울 상대가 아니라 생각한 기지! 쨉이 되야 싸우든가 말든가 할 거 아이가?”

사장이 동의하며 결론 내렸다.

“적어도 건드리지만 않으면, 성훈이가 먼저 시비 걸 일은 없을 겁니다.”

회장도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글치! 그런데 여기서 막내가 글마 심기를 툭툭 건드리 봐라! 줄 것도 안 줄라꼬 할 끼란 말이지. 그러니까 막내를 좀 달래놓던가, 적어도 쓸데없이 분탕질 못 하도록 막으라는 말이다. 무신 말인지 알아 묵겄나?”

회장의 의도는 알았지만, 둘의 감정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 사장의 솔직한 심정!

그래도 어쩌겠는가?

막내는 망하고, 제품은 놓치게 생겼는데?

마지못해 대답했다.

“쩝. 알겠습니다.”

마뜩잖은 표정의 그에게 회장이 말을 이었다.

“우짤끼고! 그기 돈이 얼만데, 기분 나쁘다고 안 받는단 말이고. 안 그렇나?”

현재 그룹은 응당 얻어야 할 이득을 놓치고, 다른 회사가 그것을 차지하게 될 터!

그러면 원하지 않는 경쟁자를 제 손으로 만들어주는 꼴이 아니겠는가?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요. 그 오더가 다른 회사로 갔다가는…….”

회장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내는 그 꼴 못 본다.”

“그래도 막내 자존심에 성훈이에게 일을…….”

회장의 얼굴이 똥 씹은 듯 변했다.

“자존심? 그기 밥 멕이준다 카드나? 내 이 회사를 일굴라고 을매나 똥 밭에서 굴렀는데, 뭣이 어쩌고 저째?”

흥분하던 회장이 말을 이었다.

“니, 자금 여유 좀 있제?”

“네!”

“철강 쪽 주식 미리 확보해 놔라! 자꾸 땡깡 부리모 쫓까내구로! 깜도 안 되는 놈한테 회사 맽기 봐야 망하기밖에 더하겠나? 말 잘 듣는 놈 그 자리에 앉히면 된다.”

돈이 안 되는 곳에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겠다는 회장의 단호한 결정이었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말이다.

“니도 알겠지만, 세상은 결과가 말하는 거다. 삼 년이고 십 년이고, 시간을 들인 기 중요한 기 아니란 말이지. 그만치 기회를 줬으믄 나도 할 만큼 했다 아이가?”

막내를 쳐낸다며 공언하는 회장이었지만, 아비 된 처지에서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을 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

“그래. 안 됐다고, 니한테 뭐라 안 할 테니까, 하는 데까지만 해라. 평양 감사도 지 싫으면 몬한다 안 카더나.”

막내와 성훈과의 이야기는 일단락 짓고 싶은 듯, 물을 쭈욱 들이켠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거는 고까지만 하고……. 중국 쪽에 무신 소스라도 있었나? 영업사원을 뭐 그리 많이 뽑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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