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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402화 (402/427)

건축의 신 402화

저마다의 꿍꿍이(03)

사흘 후 현재그룹 회장의 저택.

회장이 물었다.

“성훈이, 연구소 차린다 카면서?”

현재 건설사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경영에는 손을 뗐다면서, 그룹이 돌아가는 상황은 담당 사장보다 더 잘 아는 회장이었다.

“내 아직 안 죽었데이. 어데꺼정 진행됐노?”

“이미 연구 들어갔습니다.”

“으잉? 뭐라꼬? 벌써?”

화들짝 놀란 회장과 달리, 사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비 구입 완료했고, 연구원도 이미…….”

회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 장비는 글타 쳐도, 연구원은 구하기 쉽지 않았을 낀데?”

“압둘 왕세자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캬! 기가 차네. 기가 차! 고마 행동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쟈?”

“네. 저도 이렇게 빠를 줄은 상상도 못 했지요.”

회장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장비캉 연구원 구할라 카믄, 아무리 성훈이라케도 고생 쪼매 할 줄 알았디마…….”

그러고는 바로 질문을 이었다.

“설계는? 그거는 어데꺼정 됐노?”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성훈의 공모전인 것처럼 보였다.

“그저께 대목장 팀이 합류해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무실 불이 꺼질 틈이 없습니다.”

“참말로 복댕이가 굴러들어온 기라. 어설프게 찝적거리다가 놓치지 말고! 끝까지 잘 안고 가그라. 알긌나?”

회장의 말하는 바를 어찌 모르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장을 보며, 회장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막내는 와 여적지 안 오노? 니 괜찮겄나? 안 바쁘나?”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제 올 때가 되었네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현관문이 열리며, 철강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저 왔어요.”

건설사장을 보고는 움찔했으나 그것도 잠시, 자리에 앉기도 전에 투덜거렸다.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르신 건데요?”

“니가 바쁠 기 뭐 있노?”

“그야 당연히 신제품 때문에…….”

말을 하다 뜨끔한 느낌이 들어, 철강 사장은 눈치를 살폈다.

회장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음을 어찌 모르랴?

기다렸다는 듯이, 회장의 고성이 울려 퍼졌다.

“니 이노무 자슥! 그때 니 내한테 뭐라캤노? 느그끼리 알아가 잘한다 안 했나?”

느닷없는 날벼락에 철강 사장이 투덜거렸다.

“아버지. 그거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안 그라믄 내가 뭐 따문에 니를 부르겠노?”

되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철강 사장이 말했다.

“흥! 처음부터 그놈은 저와 거래할 생각이 없었다고요.”

그 말에 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니가 뒤통수 맞았다……. 이 말이가?”

“네! 아시면서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욕을 하시려면 그놈에게 하셔야죠.”

“다섯째. 아까, 그거 일로 줘보래이.”

건설사장이 들고 있던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곽 부사장이 협상을 위해 작성했던 서류였다.

모든 결재는 사장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비록 성훈의 전결서류라 해도 말이다.

“여기 있습니다.”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 회장은 서류를 빼앗듯 잡아채 철강 사장의 앞으로 내동댕이쳤다.

“니는 내가 경영에서 손 띴다고 귓구녕이 처막힜는 줄 아나? 으잉!”

노한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 조건을 불렀는데, 걷어찼다고? 니가 정신이 있는 놈이가? 엉!”

그러고는 탁자를 탕 치며 역정을 냈다.

“뒤통수? 뒤통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늙은 회장에게 너무 강한 흥분은 좋지 않은 법.

건설사장이 회장을 진정시켰다.

“아버지. 일단 화 좀 가라앉히시고.”

하지만 진정이 되랴?

사장의 생각도 회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업이든 무엇이든, 기회가 왔을 때는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성훈은 처음부터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고, 막내는 그걸 발로 차버렸다.

‘나였다면 절이라도 하면서 받았을 텐데.’

적어도 수천만 톤의 강철이 소요되는 현장!

‘1킬로당 10원만 단가를 올려받아도, 순수익 수백억 원이 더 생기는 건데. 쯧!’

그러니 어찌 회장이 화내지 않을 손가?

하지만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 법!

회장은 그 시기를 놓친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었다.

냉수를 벌컥 들이켠 회장이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등을 묻었다.

“좋다. 이걸 걷어찼을 때는 계산이 있었겠제. 우데 함 들어나 보자.”

왜 이리 아버지가 과민반응하는 걸까?

이해되지 않는 철강 사장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협상 한 번 어그러진 것뿐입니다. 뭐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십니까? 아직 기회는 많다고요.”

“무신 기회?”

“녀석이 원하는 건 저밖에 개발 못 해요. 그러니 제가 잘 마무리 지을 테니까 마음 놓으세요.”

그러고는 건설 사장에게 타박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형님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저하고 KT 팀의 일일 뿐인데, 그걸 사장인 형님까지 나서시면, 제 꼴이 뭐가 됩니까?”

원래의 단가로 구매하기 위해 회장에게 도움을 청한 것으로 오해한 모양, 명목상 KT 팀은 현재 건설에 속한 팀이었으니까.

사장이 섭섭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난 부르셔서 온 것뿐이다. 게다가 너희들 일에 일체 간섭할 생각도 없고!”

둘의 대화를 끊으며, 회장이 차갑게 물었다.

“니! 그거는 들었나? 성훈이가 기술자 데불고 와가꼬 연구소 맹글었다는 카던데?”

“아! 그거요?”

‘왜 이러시나 했더니! 훗!’

철강 사장은 자신이 있었다.

기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있었다.

‘대체할 기술이 없다는 건, 몇 번이고 확인했다고! 게다가 애송이 하나를 데려왔다고 뭐가 될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그라고 아무 생각 없이 협상을 내쳤겠는가?

성훈은 자신이 할 수 있다 믿고 나대는 거겠지만, 그에게는 시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단가에 협상을 마무리 짓자는 시위!

‘상대를 보고 공갈을 쳐야지. 괘씸한 놈! 그게 네 무덤을 파는 거라고. 값은 더 올라갈 거다. 알고나 있어라. 독점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어?’

철강 사장은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훗! 그 친구 진짜 어이가 없네요. 연구가 무슨 소꿉장난인 줄 아는가 봐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다 불러서 개고생하면서 만든걸.”

“그래서?”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고요. 아버지. 제가 삼 년이나 고생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공모전이 석 달도 안 남은 지금 시점에서 만들겠다고요?”

그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그 친구 똑똑한 건 아는데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무슨 수를 써도!”

확신에 찬 음성이었다.

누가 들어도 믿음이 가는 단호한 확신!

회장도 왜 그렇게 믿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난 삼 년간 성훈이 현재 건설을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아는데, 어찌 막내의 손을 들어줄 수 있으랴!

“내도 니가 원하는 대로 됐으믄 좋겠다.”

“그러니까 믿어보세요. 아버…….”

회장의 낙관적 희망에 웃으며 말하던 그의 표정이 변했다. 바로 이어진 말 때문에.

“니 상대가 성훈이 글마만 아니믄.”

철강 사장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숨긴 채, 아니꼬운 듯 입매를 꼬았다.

‘그놈의 성훈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어찌 된 노릇인지, 형들도 성훈의 이야기만 나오면 꼬리를 말지 않던가?

대 현재그룹의 사장들이!

‘좀 똑똑하고 실적이 있다는 건 나도 알죠! 하지만 ‘오너’라는 사람들이 일개 직원에게, 그것도 다른 계열사의 직원에게 꼬리를 만단 말이야?’

형들의 그런 모습에 얼마나 실망을 했던가?

‘쯧쯧. 현재그룹은 제왕이어야 한다고!’

고난과 역경은 성장의 밑거름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형들과 다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모습 또한, 형제들의 대응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은가?

‘이게 뭡니까? 고작 직원 하나와의 충돌을 두려워해서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회장의 불신에 감춰왔던 속내가 튀어나왔다.

철강 사장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괘씸한 놈! 한 번 튕긴 걸 가지고, ‘이때다.’ 하고 그런 얍삽한 짓을 하다니!”

회장이 튕기듯 허리를 세우며 호통쳤다.

“뭐라꼬? 한 번 튕겨?”

눈을 찌를 듯한 삿대질과 미간의 꿈틀거림이 그의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니 지금 제정신이가? 니야말로 사업이 얼라들 소꿉놀이맹꾸로 보이나?”

뜨끔한 철강 사장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막내라 회장의 귀여움을 가장 오래 받았지만, 저럴 때의 아버지에게 대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그의 분노를 받아내고 있었다.

보다 못한 건설사장이 나섰다.

“아버지. 흥분을 가라앉히시지요.”

“흥분? 내가 지금 흥분을 안 하게 생깄나? 절마 주디 놀리는 꼬라지 봐라. 엉?”

“막내가 실언한 겁니다. 넌 얼른 사과 안 드리고 뭐 하냐?”

철강 사장이 머리를 조아린 채,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건설사장이 재빨리 회장의 잔을 채우고는, 주전자를 건네며 턱짓했다.

“너. 얼른 가서 냉수 좀 더 받아오고.”

그동안 아버지를 달랠 테니, 자리를 피하라는 말이리라.

그 속내를 어찌 모르랴.

형에게 슬쩍 눈인사를 건네고 정수기로 향했다.

건설사장이 회장을 달랬다.

“아버지. 막내도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벌써 배 떠났는데, 생각은 무신 생각?”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화 좀 가라앉히시고 차분히 물어보시죠.”

그 사이 주전자에 물을 받아온 철강 사장이 자리에 앉았고, 급히 입을 축인 회장이 물었다.

“대책은 있는 기야? 니?”

일단은 회장의 화가 가라앉은 것 같자, 철강 사장이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하죠. 어차피 KT 팀에서 공모전 당선된다고 해도, 바로 공사 들어갈 거 아니잖아요. 몇 년은 설계 수정한다고 시간 보낼 거 아닙니까?”

진짜로 성훈을 모르는 말이었지만, 회장은 반박하지 않았다. 당장 들어야 할 대책이 급했기에.

철강 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은 다른 거래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미 믿을 만한 거래처 확보해 뒀습니다.”

“그기 뭔데?”

“국토교통부에서 하는 사업입니다. 아직 발표는 안 났지만요.”

그 말에 회장이 건설 사장에게 슬쩍 턱짓했다.

‘이거, 참말이가?’

국토교통부 사업이라면 현재 건설이 가장 소식에 밝을 것이니 묻는 것이리라.

‘네. 맞습니다. 일단은…….’

사장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함부로 속단하기는 이른데…….’

그 속내를 모르는지, 회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그래?”

대안이 있다면 당장 성훈과 충돌할 일은 없었다.

시간을 가지고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말!

일단은 안심하며, 그의 말을 종용했다.

“그래가. 그거는 어데꺼정 진행됐노?”

“그건 계약하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미심쩍은 표정으로 회장이 물었다.

“그라모,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 말이가?”

“아뇨. 하지만 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회장이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

“되모 되고, 안 되모 안 되는 기지. 그런 말이 어데 있노? 그기 말이가, 방구가?”

“아직 발표도 안 났는데, 잘못하면 담합 말이 나와서…….”

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회장에게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버지. 그냥 지켜봐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어떻게 하는지!”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미덥지 못한 막내아들이었지만, 일단 맡겼으면 어디까지 해내는지는 봐야 할 것 아닌가?

‘하기사! 하루 이틀 사업할 거도 아닌데. 내가 일일이 간섭하면 우째 회사를 이끌겠노?’

안심이 안 되는 건 어느 아들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막내는 첫 번째로 성과를 내려던 참이었다.

그게 무위로 돌아가자 더 화가 났던 거였고.

‘쯧쯧. 어쨌기나 이번 일로 막내도 배우는 기 있겠지.’

회장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쩝! 무신 말인지 알았다. 사내새끼는 말로 하는 기 아이다. 결과로 보이주는 기다! 알제?”

“네. 아버지.”

철강 사장이 가시방석 같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먼저 가볼게요. 일정 맞추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요.”

건설 사장에게도 돌아보며 인사했다.

“형님. 그럼 저 먼저 일어나볼게요.”

건설사장이 막내의 엉덩이를 툭 치며 위로했다.

“그래. 수고해라. 그리고 정부 쪽 일은 너무 성급하게 진행하지 말고. 상황이 정 급하면 성훈이 일은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일부러 동생을 신경 써서 해주는 말이었지만, 그에게는 되레 경쟁심만 불러일으켰다.

‘형님은 실적이 많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거죠.’

어깨를 으쓱하며 철강 사장이 말했다.

“에이.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형님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돌아서려는 그에게 회장이 말했다.

“하여간 계약 건은 질질 끌 생각하지 말고. 이득 좀 덜 봐도, 성훈이 글마하고 다시 한 번 입 맞춰봐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해야 할 낀데, 그런 걸로 얼굴 붉히가 되겠나?”

“네. 노력해 볼게요.”

입술을 삐죽거리며 일어서는 그에게, 회장은 눈매를 가늘게 하며 물었다.

“니 혹시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 거는 아이제?”

뜬금없는 말에 철강 사장이 물었다.

“무슨 엉뚱한 생각요?”

“이참에 성훈이 글마를 니가 쥐고 흔들겠다. 뭐 그런 거?”

날카로운 질문에 뜨끔했지만, 철강 사장은 시치미 뚝 떼며 말했다.

“에이. 제 직원도 아닌데…….”

이미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가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손사래 치며 히죽 웃었다.

말하지 않는 인간의 속내를 회장이라고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자식의 성격을 모르는 아비는 드물다.

회장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며 돌아서는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딴 놈은 몰라도, 글마는!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

등을 찌르는 회장의 단호한 말에 철강 사장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아버지.’

조용히 숨을 들이쉬며, 결심을 굳혔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녀석을 어떻게 다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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