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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99화 (399/427)

건축의 신 399화

초빙(14)

나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의 선택에 따라, 처우가 달라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리라.

‘당장 위기를 모면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지금 한 말을 번복하는 순간, 난 당신을 파멸시켜버릴 테니까.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눈빛이 말하는 걸 눈치챘음인가?

그의 고민이 길어졌다.

연신 이마를 훔치며,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어떤 게 이득일지 주판알 튕기는 거겠지.’

하지만 그때 당신에게 가치가 생기는 이유는, KT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지.

다른 기업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 가치가 KT보다 높기는 지극히 어렵다.

‘열심히 계산하셔!’

급한 건 내가 아니거든!

팔짱을 끼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참 후, 식은 차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크. 못 당해내겠습니다.”

그의 말에 조용히 눈을 떴다.

“계산은 끝나신 겁니까?”

“쩝.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알아내신 겁니까? 저는 상상조차 못 해 봤는데?”

그런 대답을 바라는 게 아니거든! 알려줄 생각도 없고!

가만히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하셨을 때, 혹한 건 사실입니다. 팀장님 말씀대로 된다면……. 휴. 못해도 뱀 대가리는 되는 거 아닙니까?”

“…….”

“왜 하필 접니까? KT에 인재들이 넘쳐나던데요.”

“한국인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왜요? 왜 저냐고요?”

‘당신 정도 능력 되는 사람은 못 봤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왜 한국인은 안되냐고?

다르게 생각하면 더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조선 시대, 고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누구라고 답할까?

사또?

이렇게 답한다면, 그는 세상에 어두운 자이리라.

그럼 누구냐고?

‘나라면 육방(六房)의 이방이라고 말할걸!’

육방이란, 조선 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향리를 말한다.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이 그들이다.

사또의 수발이나 드는 그들이 왜 더 강하냐고?

간단하지. 더구나 백성 입장에서 보면 사또는 바뀔지언정, 향리는 바뀌지 않는다.

고을의 대소사를 소상히 알며, 백성과 얼굴을 맞대며, 그들을 직접 통치하는 향리!

사또는 백성을 모르지만, 향리는 어제 김 서방네 암퇘지가 새끼 열 마리 낳은 것도 안다.

그럼 백성은 누구를 더 신뢰했을까? 그리고 더 두려워했을까?

향리 중에서도 최강자는 이방이 아닐까?

그것도 사또를 따라온 이방이 아닌, 토박이 이방!

그 ‘힘’을 ‘영향력’이라 본다면, 내 생각에 이견을 달기 어려우리라.

똑같은 말일지라도, 동네 사람이 하면 인사지만, 외지인이 하면 욕이 되는 말도 있다.

‘그 미묘한 뉘앙스를 외지인은 평생 가도 모르거든! 그게 당신을 선택한 이유야!’

입술을 씰룩이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대답은요?”

“KT에 뼈를 묻겠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절대 변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도 남은 차를 들이켰다.

“바로 연락 가겠지만, 내일부터 CS 팀으로 안 나가셔도 됩니다. 한국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부사장에게서 인사발령과 지시가 내려갈 겁니다.”

“휴! 알겠습니다. 바로 업무지시입니까?”

“네. 그만한 대우를 해주니까.”

바로 말을 이었다.

“중국 정부의 대처에 필요한 인선 파악해 두세요. 꼭 KT 팀이 아니라도 됩니다.”

“제 소속은 어디입니까?”

“부사장 직속입니다. 나와 그의 지시 말고, 다른 건 무시해도 됩니다. 설령 중국 지사장이라 해도!”

“…….”

눈을 홉뜨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지사장 지시를 받고 싶은 겁니까?”

그가 멋쩍게 웃으며, 이빨을 보였다.

“너무 놀라서 그랬습니다. 윗분은 적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가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제게 원하시는 게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KT를 중국의 국민 기업으로 만들어 놓으세요.”

“네……. 네? 국민 기업? 그게 뭡니까?”

“인민 기업이라고 합시다. ‘인민에게 무한 사랑을 받는 기업이다.’ 그 뜻입니다.”

KT의 품질은 누구나 엄지를 치켜든다. 그러니 품질 면에서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

하나 쫓아내려고 하면 무슨 수를 안 쓰겠어?

가장 염려되는 것은 이미지였다.

중국 인민을 착취한다는 이미지, 중국 것을 빼돌린다는 이미지 등.

‘이미지 손상에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흑색선전에는 경계가 없는 법!

‘하지만 성역은 있지!’

먼저 좋은 이미지를 심어두면, 좀처럼 쳐내기 어렵지.

지금부터 삼 년간, 끊임없이 중국인의 뇌리에 ‘KT는 좋다. 선하다.’ 라는 이미지를 심으면 어떻게 될까?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기업은 다 쫓아내도, KT만큼은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도록 이미지를 만들어 두세요.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중국인인 당신이 중국을 가장 잘 이해하겠죠.”

“사,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군요.”

이런 오더는 생각 못했는지, 첸은 대놓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쉬운 일이면 당신을 왜 시켜!’

“대신 원하는 건 뭐든 지원하죠.”

첸이 직접 할 필요는 없다.

결과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

“전문 광고인을 쓰든, 입소문을 내든, 공무원을 구워삶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눈 밑이 씰룩거렸다.

“그, 그 말씀은 전방위적으로 모두 커버하라는…….”

“그 정도 되어야 인민의 기업이죠.”

왜 이렇게 돈을 쏟아부을 각오를 하느냐고?

중국은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라고!

전 세계 유명 기업들이 물러난 중국은…….

‘말 그대로 무주공산이지!’

그 시장을 내가 독차지하는데, 돈이 아까울 리가 없지!

그가 주저하며 물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만약 원하시는 결과가…….”

“뭐든 지원한다고 했습니다만?”

큰 권한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주저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전 능력 이상의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확신의 말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의 주저함에서 보이는 묘한 씁쓸함.

‘그 능력을 갖추고도,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뭐냐고?’

그의 상관들이 정말 첸의 실력을 못 알아봤을까?

낭중지추의 묘를 부리는 인간인데?

분명히 알아봤을걸!

그런데 왜 그를 중히 쓰지 않았을까?

‘간단하지. 치졸한 인간이니까!’

그들은 용납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부하가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관료 조직의 서열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부하가 치고 올라오는 것도 싫어하고!’

오히려 이후로는 그의 실력을 자신의 상관이 모르도록, 일부러 한직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어떤 정신 나간 탐관오리가 청백리를 머리 위에 두고 싶어 하냐고!

‘당신이 그랬잖아.’

상인들 돈 뜯는 게 부끄럽다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는 그렇게 찍혔으리라!

그도 처음에는 실력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을 테니까. 능력을 보일수록 자신을 더 옥죈다는 걸!’

그리고 환멸을 느꼈겠지.

하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계획도 없이 일을 관둘 수는 없었을 테고!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같은 게 뭘 알겠습니까? 팀장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

“그게 아니면, 실패 후의 처우를 듣고 싶은 겁니까?”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확실한 대우를 하되, 확실한 대가를 받아낸다고!

“아닙니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첸이 입술을 다물며 의지를 굳혔다.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벌써 일어날 시간이네요. 이민호 찾아서 게이트로 데려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힘 있게 말하며, 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뛰어나가는 뒷모습이 약간 더 활기차 보였다. 아까보다는.

‘나는 당신의 꿈을 모른다.’

내 편이 되기를 결심하기까지, 그의 장고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녹아 있었으리라.

그와 가족의 미래, 자신의 명예, 부 등등.

그 지향하는 목적은 분명히 나와는 다르지만,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는 것만은 똑같지 않을까?

하지만 입장은 다르지.

‘내가 데리고 왔으니, 끝까지 책임져 주겠다.’

첸, 당신은 앞으로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성공하지 못함은 당신 책임이 아니니까.

그의 패착이라면, 어설픈 시기에 태어나, 제대로 된 상관을 만나지 못한 것.

그 무엇 하나 그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아니한가?

천 년 묵은 잉어라 해도, 어설픈 바람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교활한 낚시꾼의 한 끼 식사가 될 뿐이지.

‘부하의 역량도 모르는 멍청하고 치졸한 것들!’

경멸당해 마땅하다.

제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알아봐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그것을 경계하면 드러내지 아니함만 못하다.

‘고로 당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건 내 책임이다.’

왜냐고?

명검을 가지고도 그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검의 잘못일까? 쥔 자의 잘못일까?

장인이 도구를 탓해서야…….

더구나 이미 검의 능력을 확인한 이후에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지 않을까?

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안의 말단으로만 전전하던 그가, KT에 들어와서는 단지 일 년 만에 과장으로 인정받았다.

‘난 당신이 지금껏 섬겨왔던 그들과 다르다.’

당신의 능력, 그 끝을 볼 수 있게 해 주지.

‘중국이라는 무대에서 기량을 맘껏 펼쳐보라고. 내가 당신의 구름이 되어주지!’

나라는 존재를 이용해도 좋다.

‘아니, 철저히 이용해라.’

당신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

구름을 밟지 않고 용이 어떻게 승천하나?

난 그가 중국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힘 있는 인물이 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대단한 인물이 되면 더 좋지.’

내 일을 더 잘 도와줄 테니까.

너무 커지면 다른 야망을 갖지 않겠느냐고?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중국인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지극히 실리적인 민족. 나쁘게 말하면 의리 없고!

‘하지만 그건 비단 중국인에 한정된 건 아니지.’

모든 인간은 돈 앞에 한없이 약해지니까!

하지만 오늘의 대화를 기억하고, 앞으로 벌어진 일을 비교한다면, 과연 그런 역심이 생길까?

‘그래도 덤비면?’

밟아주면 그뿐!

행동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줄 뿐이다.

* * *

게이트로 걸어가는데, 첸이 민호를 데려왔다.

“엄마가 너무 기뻐해서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어요.”

눈 밑에 허옇게 소금을 묻히고도, 환하게 웃음 짓는 이민호였다.

“괜찮아. 그만 들어가자.”

“부족한 절 이렇게 거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인 첸의 말이었다.

이민호만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어깨를 세우며 말했다.

“첸,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당신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당신 입에서 이런 말을 하게 해줄게요.”

“어떤……?”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단 말이야?”

농담처럼 하는 말에, 그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에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모양!

굳은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도대체 어디까지 부려먹으시려고…….”

적어도 내 의지는 전해졌겠지!

그가 말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하하하. 어쩌면 팀장님 눈에 든 오늘을…….”

말해보라며 눈썹을 으쓱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늘 듣는 말입니다.”

“네? 누가 또 그런 말을…….”

“제 직원은 다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말에 이민호가 내게 물었다.

“부하 직원들이 형님을 엄청 싫어하나 봐요?”

“왜?”

“부하 직원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할 정도면?”

“하하하. 그렇게 되나?”

“그런데 언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언제부터였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 얘기가…… 곽 부사장하고 사우디 갔었을 때 처음 들었으니까……. 아마 4, 5년쯤 됐지?”

민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청 오래 사시겠네요. 욕을 많이 먹어서…….”

그의 농담에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다.”

게이트 앞에서 첸은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벌써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니, 정말 아쉽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첸.”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만나 뵈어 영광이었습니다, 따꺼!”

허리를 깊숙이 숙인 첸이 보였다.

이민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첸, 저 사람 습관이야.”

이민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재밌는 분이네요. 들어가요, 형님!”

* * *

비행기가 떠올랐다.

‘짧았지만, 꽤 보람 있는 하루였잖아!’

부사장 말처럼, 현재 철강 쪽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맘대로 해보라고.’

뭘 하든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테니까.

도리어 철강 사장을 편드는 계열사가 있다면, 그 회사를 박살 내주지!

비릿한 미소를 짓는데, 이민호가 물었다.

“형님? 저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럼. 넌 잘해낼 수 있을 거다. 네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거야.”

그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날 잘 따라오기만 하면 돼! 네 재능을 최대한 꽃피워주지.’

이전에 알던 이민호는 4개 강도 강철합금을 만든 후, 국제 소송에 휘말리면서, 인생이 망가졌었다.

그러니 다른 발명을 할 정신적 여유도 없었겠지.

하지만 난 다르다고!

‘철저하게 지켜주지. 넌 발명만 하면 돼!’

네 발명은 건축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거야.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방향도 말이야.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걱정하지 말고 한숨 자. 금방 도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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