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98화
초빙(13)
중국의 변화!
‘곧 주석이 바뀌지.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그에 따라 중국의 대외정책도 변화를 맞는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중국의 변화에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라고 해야 할까?
‘좀 있으면,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기업들이 대거 국내로 쫓겨 오게 된다고.’
늦어도 3, 4년 이내에 실현될 미래.
거대한 소비 시장에 매혹된 한국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에 공장을 세웠지만, 갖가지 이유로 벌거숭이가 되어 쫓겨난다.
‘투자금도 못 건진 곳도 있었지. 아마!’
명목상의 철수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지나친 ‘자국 기업 보호’ 때문이 아니었을까?
‘준비가 부족했던 대가치고는 꽤 타격이 컸지.’
외국계 기업이 몽땅 쫓겨나는데, 거기서 KT라고 온전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이미 철수하기엔 늦었으니, 최대한 피해가 작도록 막겠지만, 그건 손절매일 뿐, 이득은 아니다.
그때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사장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국인이었다.
‘순식간에 돈방석에 올랐지!’
이게 첸의 등용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내 눈에는 첸이 조조처럼 보이거든!’
<삼국지연의>의 허소가 조조를 평하기를,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하지 않던가?
그리고 치세인지 난세인지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첸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일 터!
그때 만약 내 편이라면 방패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테지만, 적이라면 정확히 KT의 급소를 찔러올 인물!
‘아는 만큼 보인다지. 나라면 탈탈 털어먹을걸!’
그리고 내 입의 혀처럼 구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첸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오지! 그 변화의 바람을 어떻게 이용할지!’
그가 KT의 직원이라고 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훗. 이것 때문에 뒤통수가 간질거렸던 거군.’
지금까지 보고 느낀 첸에 대한 것들을 다시 복기해 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하고 많은 기업 중에 KT에 들어왔을까?
첸은 공안을 관둔 이유가 애들에게 부끄러워서라고 했지만, 그 이유가 과연 몇 프로의 비중을 차지할까?
그리고 그가 변혁의 시기에 내 쪽으로 칼날을 돌린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중간한 관리자는 첸에게 일초지적도 안될걸?’
빼앗기는 줄도 자신의 밥줄을 빼앗길 터!
웃고 있는 첸에게 마주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첸!’
* * *
그는 다 안다는 듯,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평범한 팀장은 부사장에게 지시하지 않죠.”
첸이 벌써부터 딴마음을 먹을 리는 없지!
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건, 삼 년 후였다.
변화의 시기에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다른 선택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우를 해 주니까.
‘하지만 내가 부리는 직원이 언제 돌변할 지 두려워하면서 쓸 수는 없잖아.’
내 선택은 두 가지.
확실히 내 사람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위험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하든지!
‘꼽게 생각하지는 마셔! 뛰어난 만큼 위험한 법이거든.’
그러게. 왜 내 눈에 띄었냐고!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뭡니까? 제가 아는 거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죠.”
“중국 정부는 한국 기업의 진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진지한 물음에 그의 표정도 바뀌었다. 천천히 찻잔을 놓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글쎄요. 공안에서도 미관말직이었던 제가 뭘 알겠습니까? 높은 사람들의 생각을…….”
한발 물러서는 그에게 물었다.
“전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은 거죠.”
사실 그의 의견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삼 년 후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밑밥이니까.
그는 고민이 되는 듯 작은 한숨을 쉬었다.
“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 팀장님.”
“어렵다. 라…….”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네. 셀 수도 없이 많은 한국인을 만났습니다만, 그걸 물어본 분은 팀장님이 처음이십니다.”
물어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창 잘 나가고 있는데,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처럼 잘 나갈 거라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고.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입술을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갑자기 그걸 여쭈시는 이유가 뭡니까?”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싶어서일까?
호기심 가득한 얼굴.
멋쩍은 웃음으로 대응했다.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랄까요?”
“변화라…….”
한참이나 입술을 매만지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변화라고 하면, 공산당의 세대교체가 떠오르는군요.”
“네. 내년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겠죠.”
누구나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일!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장쩌민 주석이 다른 뭔가를 시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임기 마무리하기 바쁘니…….”
“그 뒤에는요?”
“일단은 부주석 후진타오가 가장 유력하지만, 정권을 쥔다고 해도 한동안……. 어쩌면 계속 장쩌민에게 눌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죠. 그런 상황에서 변화라…….”
큰 변화는 없으리라 예측하는 모양이었다.
“만약 후진타오가 정권을 틀어쥔다면요?”
“어렵습니다. 팀장님께서 중국 국내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아닐까요?”
내 걱정이 기우라는 듯,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일반적인 중국인의 예상이겠지만 제 예상은 전혀 다릅니다.”
“네?”
중국인도 아닌 당신이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는, 의혹의 시선!
의아해하는 그에게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미 물밑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장쩌민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게.”
“진, 진짜입니까?”
그러면서 주변이 신경 쓰이는 듯,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건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확신하시는 이유라도…….”
근거는 필요 없다.
나만이 아는 역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그건 두고 보시면 알 일이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완전한 정권 교체까지 채 삼 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고개를 저으며 되레 내게 되물었다.
“에이. 설령 그렇다 쳐도, 걱정하실 게 있을까요? KT 정도의 탄탄한 팀이라면.”
“그러면 좋겠지만. 해일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지 않을까요?”
“해일이요? 그 정도로 큰 변화라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충분히 버텨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위기를 억지로 버텨내는 건, 차선의 선택. 아예 그 위기를 피하는 게 최선이다.
다른 기업은 다 망해도, KT만큼은 승승장구하게 하는 것!
‘그걸 위해서는 당신이 꼭 필요한데, 삼 년 후에 당신이 어디에 서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고.’
대우를 얼마나 잘해주느냐 와는 다른 문제!
일을 시켜보면서 그의 성향을 파악하면 되지 않느냐고?
‘가까운 미래에 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내 심장부에서 키우라는 말이야?’
내 노파심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난 그런 의심이 자꾸 드는 걸 어떡해!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물었다.
“대체 어떤 변화를 예상하시는 겁니까? 저는 감도 잡히지 않는군요.”
‘과연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어떤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을 타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인물이다.
‘그 바람이 불지 않아, 때를 얻지 못한 거지.’
“저는 도무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중국의 외국 기업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첸은 간절하게 내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어중간한 믿음을 강요하느니, 이런 인물에게는 확실한 기준을 주는 게 나아.’
역사의 흐름을 확인하고도, 내게 칼끝을 향할 담량이 있을까?
눈짓으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첸은 즉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와, 귀를 바짝 갖다 댔다.
“후진타오가 정권을 완전히 틀어질 때쯤이면, 중국은 외국 기업의 겉으로 보이는 생산 기술은 몽땅 카피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설비까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를 챈 모양.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더는 얻을 게 없다고 생각되면? 후진타오가 계속 놔둘까요? 중국인의 노동력으로 외국인이 돈을 버는 걸?”
“그, 그러면 아마도 토사구…….”
중국 역사상 가장 도가 바닥에 떨어진 순간은, 토사구팽을 행할 때가 아니었을까?
한 고조 유방은 제국 통일의 일등공신, 한신에게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워 무참하게 죽였다.
“첸, 중국인은…….”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입으로는 신의를 말하면서, 손으로는 실리를 챙기죠.”
보일 듯 말 듯, 첸은 미간을 좁혔다. 그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애들 보기 부끄러워, 공안을 관뒀다는 말을 할 정도면, 최소한의 도리는 알겠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그 이후 중국은 자타공인 ‘세계의 공장’이 된다.
어떤 대꾸도 않는 그에게 물었다.
“그들을 몰아낼 때, 누가 그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까요? 우리 KT의 건설 기술은?”
“…….”
“분명히 거기에 근무하던 중국인들이겠죠? 그건 그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전 당신이 난세의 조조로 보입니다. 당신이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해도,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을까?’
나의 곁눈질에 그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내 말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습니까?”
“끄응!”
항상 느물거리며 웃던 그가 신음을 뱉었다.
그가 침울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하고도 남지!’
부정하는 그의 속내를 비웃으며, 단호하게 찔렀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움찔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남들이 봐주지 않으면, 당신은 스스로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지요. 아까 제게 그러셨던 것처럼!”
낭중지추란,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재주가 뛰어난 자는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
“끄응!”
첸은 재차 신음을 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를 지긋이 보며 미소 지었다.
‘내 눈에는 당신이 뭘 할지 뻔히 보인다고!’
그때가 되면, 기계를 돌리던 중국인 말단 직원은 공장장이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그 기계 돌리는 기술을 그밖에 모르니, 아무도 홀대하지 않을걸.
기껏 헐값에 양도받은(?) 기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서야, 양도받은 의미가 없을 테니.
‘당신은 거기다 적절하게 양념도 칠 줄 알지.’
공산당의 높은 분이 보기에는 마법을 부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첸은 그런 연기를 능청스럽게 잘한다.
‘아주, 아주 자연스럽지!’
아무 말 못하고 신음만 뱉는 그에게 말했다.
“아까 제가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한다고 말했던가요?”
“네, 하셨습니다.”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대우는 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내 눈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할 수 있으면 해봐!’
그는 잠시 시선을 맞추다, 다시 눈을 깔았다.
‘당신 입장에서는 중국 파이가 더 커 보일 거야. 공산당의 높은 자리가 더 많은 것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
고민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그때가 와도, 이거 하나는 명심하세요. 중국에 바람이 아니라 광풍이 분다 해도, KT는 탄탄할 겁니다.”
“어, 어떻게……?”
의아해하는 그에게 입 끝을 올렸다.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눈을 끔뻑거리는 첸에게 물었다.
“제가 못할 것 같은가요?”
날 보던 그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알고도 대처를 못 하시는 분이 아니시죠. 팀장님께서는”
‘사실, 내가 말한 미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상황이 변할 때, 첸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가 중요하지.
‘그래! KT가 탄탄할 거라는 내 말은 허풍이지!’
하나 내가 말한 미래가 대충 들어맞는다면, 과연 그가 나를 거스르면서 모험을 시도할 수 있을까?
변화가 없으면?
그럼 애초에 첸이 딴마음 먹을 이유가 없잖아?
‘위기 상황에만 대처하면 되는 거 아냐?’
내 예언이 좀 틀렸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느긋하게 등받이로 기대며 물었다.
“자!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삼 년 후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을 겁니까?”
지긋한 내 눈길에 그가 몸을 움찔 떨었다.
“팀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군요.”
그러고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