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97화 (397/427)

건축의 신 074화

초빙(12)

“한국에 돌아가면 바로 연구 시작할 거다.”

이민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가능할까요? 포항 연구소 쪽에 가서 사과도 해야 하고.”

그의 말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물정 모르는 너한테 맡겨봤자, 시간 낭비야.’

“됐어. 그런 자질구레한 일 잘하는 사람 따로 있어. 넌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연구만 해!”

“감사합니다.”

“연습하는 셈 치고 느긋하게 해! 알았지?”

“네, 형님!”

녀석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시간은 삼 개월. 그 정도면 널널하지?”

미소 지으며 묻는 내게, 이민호는 괴성을 질렀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혀, 형님! 사, 삼 개월이요? 육 개월도 아니고?”

되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너? 고작 이딴 걸? 반년이나 낭비하겠다는 거니?”

허허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요거 봐라? 너 지금,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면서 하겠다. 그거지? 내가 만만한가 보네?”

“형님, 그런 게 아니라.”

“난 원래 한 달 생각했던 거야, 한데 보아하니 네가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많이 모자란 것 같아서 삼 개월이나 준건데……….”

실망 어린 내 눈빛에 이민호는 각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이민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믿는다, 민호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민호의 목표는 당분간 나여야만 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민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천재!

당분간은 그 이미지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리고 더 발전된 모습의 연구자가 될 것이다.

‘내가 왜 이러냐고?’

녀석 주변에 있는 사람 중, 녀석과 겨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KT 팀에 있는 사람 중 실력자는 많았지만, 연구 분야의 전문가는 아직 없었다.

‘이걸 시작으로 천천히 모아봐야지.’

저 경박한 녀석이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되면 과연 최선을 다할까?

‘또 기고만장해지겠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녀석에게는 막강한 경쟁자가 필요해 보였다.

그것도 웬만한 노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자라면 더할 나위 없지!

물론 나중에는 내가 연기한 사실을 알 때가 오겠지만!

‘그때 돼서 욕하든지!’

이민호에게 물었다.

“미립자 분체도장기 써 봤냐?”

“아뇨. 그게 뭔데요?”

“사줄 테니까, 틈틈이 사용법 익혀둬라.”

“그건 뭐 때문에요? 필요 없는 데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에 오르면, 그게 필요해진다.”

“네?”

‘네가 그걸로 합금의 가공성을 높이게 되니까.’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말해준 것만 해도 충분히 많은 힌트를 준 거였다.

‘스스로 깨달아야 성장하거든!’

그의 물음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연구에 도움이 될 사람 있으면, 지금 얘기해.”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혹시 외국인도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아직 연구소와 계약이 안 끝난 사람이라서,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네가 걱정할 게 아니거든!’

작게 한숨 쉬었다.

“쓰읍! 그래서 누구?”

“독일…… 라이프니츠 연구소에서 주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하인리히 하이젠베르크입니다.”

“알았다. 사흘 후에 널 만날 수 있게 해 주지.”

슬슬 퍼즐이 맞춰져 가고 있었다.

‘삼 개월. 그 안에 무슨 수를 쓰든 만들게 해 주지. 난 본전은 반드시 뽑는 사람이니까.’

뒷좌석에 등을 기대자, 룸미러에 첸이 보였다.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 * *

공항에 도착하자, 이민호가 휴대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말했다.

“형님! 엄마 전화 왔는데, 좀 받아도 될까요?”

“그래. 그러도록 해. 아무 염려하지 마시라고 전해드리고.”

부사장의 신속한 일 처리!

‘우선순위를 정확히 아는 양반이란 말이야!’

지금도 모친이 이민호에게 전화하도록, 알게 모르게 유도했을 테지.

이로써 이민호는 더욱 확실하게 마음을 잡을 것이다.

첸도 다급하게 움직였다.

“티켓 끊어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이따 라운지로 안내하겠습니다.”

첸이 사라지고,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어떻게 벌써 데리고 오시는 겁니까?

궁금한 게 많은 듯, 말을 줄줄이 쏟아냈다.

하지만 내일 바로 연구를 시작하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연구실 하나 마련하시고, 포항 연구소에 있는 상이금속 밀도 제어기, 지금 즉시 가져오세요. 가면 바로 연구 시작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립자 분체도장기라는 기계, 최고급으로 구해주세요. 늦어도 사흘 내로.”

-네, 염려 마십시오.

그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민호 수배 걸린 거랑 포항 쪽, 깔끔하게 정리해 주세요. 김포에 들어갈 때 아무 문제없게끔!”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다른 지시사항은 없으십니까?

“네, 그 정도면 급한 불은 끄겠군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부사장이 말했다.

-팀장님, 이건 제 노파심일지 모릅니다만…….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그는 KT 팀의 사업으로는 내게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옆에서 조력할 뿐.

그렇다면 그룹 내부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리라.

사업은 내가 주도한다고 해도, 현재 그룹의 소식에는 그가 훨씬 더 밝았고, 또한 그가 중간에서 잘 조율했기에, 나는 계열사들의 간섭에 신경 쓰지 않고 일만 할 수 있었다.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배트맨에게 알프레드가 있다면, 내게는 곽 부사장이 있다고 할까?

그리고 그동안 그의 일 처리를 봐온 나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이번에 연구소 개설하면, 계열사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재 철강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는 나보다 계열사의 공기에 민감하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제안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좋은 조건으로! 그걸 걷어찬 건 저들이라고요!”

정론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렇기는 합니다만…….

“협상도 여지가 있을 때나 재개하는 거지. 제 눈에는 협상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던데요?”

내 단호한 말에 부사장이 머뭇거렸다.

-그게 저…….

“말씀하세요.”

-일차 협상이 어제였습니다.

“그래서요? 아!”

그의 염려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너무 급하게 진행했나?’

협상 결렬 후 24시간도 안 지나서 연구소를 만들면, 나 대신 설명해야 하는 부사장의 입장이 좀 난감해지리라.

마치 협상이 파투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 왜, 조율하는 부사장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실책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겼을 거라고요! 질질 끌려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투덜거리자, 그는 차분히 말했다.

-이를 말씀입니까? 다만 사흘 정도만 시간이 있었어도, 협상이 안 될 것 같다는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었을 텐데…….

그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빨리 이민호를 끌고 올 줄은 저도 미처 생각지 못한 터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나도 이렇게 빨리 녀석을 끌고 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고요!’

무안함에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흠흠! 좀 급하게 진행하기는 했네요.”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현재 쪽에서는 우리가 협상이 결렬되기만 기다린 걸로 오해할 겁니다.

“흥! 자기들이 싫다고 해놓고는! 오해든 뭐든, 덤비면…….”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만……. 흠흠.

부사장이 심하게 헛기침을 해댔다.

그들과 직접 싸워야 하는 건, 자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팀장님께서는 가급적 충돌을 피해오셨습니다.

‘말 돌리시기는…….’

어찌 되었든, 부사장 입장에서 나에게 직접 하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까요?”

-주식 보유분은 모아서, 사장님을 압박할 수도 있지요. 사실 그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사장의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말이리라.

“하긴 내가 이렇게 일하는 건 사장님 배려도 한몫했으니…….”

-네. 팀장님께서 편하게 일하도록 해 주시죠.

“흠,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계열사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두면 그들의 공격에서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가신 일은 미리 피하는 게 좋지요.

부사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귀찮게 힘겨루기 따위 할 생각 없거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주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사장은 지금 보유분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지금 얼마나 있죠?”

-현재 보유분은 계열사별로 대략 5%대입니다만, 10%까지 올렸으면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 건은 알아서 진행하십시오.”

저기서 첸이 오는 것이 보였다.

“참! 그리고 이번에 저 안내한 ‘첸’이라는 사람 이력 파악해 보세요.”

-왜 그러십니까? 혹시 실례되는 일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쓸 만한 친구 같아서요.”

-아! 알겠습니다.

* * *

아직 통화 중인 이민호에게 따라오라 손짓하고는, 첸과 작은 라운지로 향했다.

차를 내밀며, 첸이 입을 열었다.

아까 즐거운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분위기.

“팀장님, 이 첸! 오늘 진정으로 감탄했습니다.”

“왜요?”

“이민호를 정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맞는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첸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솔직히 저도 사람 다루는 일은 남 못지않다 생각했었는데, 오늘부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장님께서 분위기를 잘 잡아주신 덕이죠.”

“말을 냇가로 데려가는 것과 물을 먹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요.”

“나머지는 임기응변일 뿐입니다.”

조사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내가 알고 있던 이민호의 미래 모습도 약간은 도움이 되었지만.

“하! 그게 어떻게…… 임기응변입니까? 저조차도 처음부터 수행하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말을 이었다.

“KT 팀의 실권자는 부사장이 아니라, 젊은 팀장이라기에, 그저 그냥 소문으로 치부했었는데…… 오늘에야 진실임을 알겠군요.”

“여기도 그런 소문이 있나 보군요.”

* * *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첸, 유능한 사람임은 틀림없는데.’

아직 신뢰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는 능수능란한 상황 대처력이 있었다.

‘조조가 떠오른다고 할까?’

내가 출발하고 세 시간도 안 되는 짧은 틈에 이민호를 잡아둔 것은 분명한 그의 실력!

물론 운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 운이란, 실력을 보조하는 그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그리고 실력 없는 자에게 운이 따르지 않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설령 운이 따른다고 해도 그걸 잡을 실력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절대로 실력을 폄하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뒤로하고라도 말이다.

‘하지만 첸은 그 운을 극대화했다고! 내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확한 타이밍에 이민호와 만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소장을 혼내는 연기로 이민호를 잡을 분위기를 만들어 줬지!

‘이것도 운이야? 절대 아니지!’

그래서 나는 첸을 다른 일을 맡기려고 했었다.

CS 팀에서만 썩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인재였으니까.

‘그런데 왠지 찜찜하단 말이지.’

능력 있는 자를 발견했는데, 쓰기가 찜찜했던 적은 처음인데?

이유가 뭘까?

길을 가다가 칼을 보면 줍는 게 당연한 이치!

왜냐고?

‘내가 먼저 줍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릴 테니까!’

그리고 나를 위협하겠지.

칼의 의지가 무에 중요하랴?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 물음에 첸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확신이 들더군요.”

“근거는요?”

공항에서의 부사장과의 통화를 들었을 리가…….

“아! 오는 도중에.”

부사장과 통화를 했었군.

이민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했던 통화!

그때도 첸은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민호를 얻은 기쁨에 너무 신을 냈군.’

운전석에 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부사장을 언급한 게 실수!

하나 그걸 첸이 안다고 문제될 것도 없는데.

‘그런데 묘하게 신경 쓰인다고. 계속 힐끔거리던 게!’

그는 운전 중에도 계속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지 내 신경이 이민호에 쏠려 있어서 민감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일 뿐.

‘나를 잘 수행하기 위한 건데?’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나?’

고개를 갸웃하다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곧 중국 주석이 바뀌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 그게 난세인가?’

중국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세계의 경제 판도가 뒤바뀐다.

‘지나치게 영악한 조조. 신경 쓰였던 게 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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