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95화
초빙(10)
첸의 부하가 말했다. 이민호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첸 형님, 이민호 고객님 공항까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첸은 무슨 뜬금없는 부탁이냐는 표정으로, 시치미 떼며 대꾸했다.
“왜? 네 고객인데?”
하지만 부하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좀 봐주십시오. 지금 안사람이 출산한다는데, 늦었다가는 평생 바가지 긁힐 겁니다.”
첸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아우! 드디어 아버지가 되는 건가?”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어이! 어린 손님! 공항까지 내가 모셔다드리지. 오늘 특별히 경사가 있는 날이니, 내 추가 요금은 받지 않겠네!”
자기 손님도 아닌데, 말을 높일 필요가 뭐 있을까? 데려다준다는 것만 해도 어딘데!
이민호는 고맙다는 말 대신, 내게 물었다.
“저…… 따꺼 형님!”
“김성훈이다.”
그는 삐쭉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민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난 지 십 분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통성명을 나눴다.
“그래. 나도 반갑다. 그런데 왜?”
“그게…….”
뭔가 부탁을 하려는 모양인데, 우물쭈물하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이미 첸의 부하는 지프를 몰고 와서는 운전석에서 인사를 건넸다.
“이민호 고객님, 끝까지 가이드 못해서 미안허우. 형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까 둘이 하는 말은 듣지도 못한 듯, 이민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이봐요. 가이드 아저씨!”
하지만 가이드는 이민호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는, 제 할 말만 하고는 액셀을 밟았다.
“첸 형님한테 부탁드렸으니 공항 가는 건 문제 없을 거유. 잘 가쇼!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허!”
황당함에 눈을 끔뻑거리는 그에게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차 타고 가지. 네 가이드는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으니.”
어찌할 줄 모르고, 어깨를 움츠리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한국 갈 거 아니냐? 여기서 네 힘만으로 희토류를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네? 아, 네.”
이민호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첸이 차를 가져왔다.
“타라. 가자.”
그가 인사를 꾸벅하며, 뒷좌석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성훈 형님.”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첸 씨, 그럼 공항까지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이민호의 태도에, 첸은 눈썹을 으쓱하며 고갯짓했다.
“빨랑 타슈! 곧 어두워지니까!”
뒷좌석에 올라타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첸! 아까는 운전이 험하시던데요? 엉덩이가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내 눈짓에 첸이 머쓱하게 웃었다.
“저도 초행이라 죄송했습니다, 따꺼! 이번에는 포장도로로만 골라 가겠습니다.”
이 정도만 말해도, 그는 내 의도를 이해했으리라.
올 때야 시간을 맞추느라 험한 길도 질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적어도 나는!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출발하시죠, 첸!”
“네! 따꺼, 출발하겠습니다!”
지프가 출발하고 나는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어둑어둑해지는 밤에 볼 것도 없었다.
이민호가 원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자! 어떻게 날 설득할 생각이냐?’
그가 말을 꺼내기까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목마른 자가 손을 내미는 법이니까.
* * *
차가 출발하고도, 한참을 미적거리다 이민호가 말을 건넸다.
“저…… 성훈 형님, 저한테 희토류 좀 파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목적은 녀석을 스카우트하는 거지, 그의 성공을 돕는 게 아니었다.
희토류는 그의 관심을 끌 미끼일 뿐.
‘게다가 아직 듣고 싶은 게 많거든!’
스르륵 눈을 떴다.
산은 어둠이 빨리 온다 했던가?
가로등 하나 없는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구름 없는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내를 이뤄 흐르고 있었다.
은하수를 보며 지나가듯 물었다.
“뭐가 필요한데?”
내 감상적인 모습에 용기를 낸 것 같았다.
“이, 이트륨과 바나듐 그리고……. 이리듐도요.”
훗. 아까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더니…….
하긴 사려고 하는 물품을 말하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지.
물론 난 거래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하늘로 향한 채 물었다.
“응? 그걸 다? 어디에다 쓸 건데?”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었을까?
어두운 창에 이민호가 미간 좁히는 게 훤히 비쳐 보였다.
녀석이 반대편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그건 아실 필요 없잖아요. 그냥 파시기만 하세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너랑 나랑 평등한 거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다면 응해줄 필요가 없지.
어차피 이민호는 이게 없으면, 연구 자체를 진행할 수 없거든!
아까 도청하면서 의도는 들었지만, 정확히 어느 단계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들어도 모르면서…….’라는 말을 해대는 바람에!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라면, 들어도 모를 테니 제 자랑을 해댈 만도 했는데, 이민호는 연구 진행에 대해서만큼은 끝까지 함구했다.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난 그걸 들어야, 녀석과 수준 맞춰서 대화할 수 있거든!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나만의 정보를 남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녀석처럼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과 얘기하다가 바닥 드러내는 건 순식간이라고!’
그래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럼, 싫다.”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답답해하며 말했다.
“아까 건방지게 굴었던 건 죄송합니다. 돈은 섭섭지 않게 낼 테니.”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반응에, 고개를 천천히 모로 꺾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혹시?’
당연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듯한 그의 말투.
그게 무산되자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그에게 물었다.
“너 혹시! 내가 저걸 한국에 가져가서 팔기 위해서 샀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민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는 의미.
‘이거 내가 오해를 했군?’
녀석이 공손해진 건, 나를 존중하는 게 아닌, 판매업자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어쩐지 일이 술술 풀린다 했다.
‘그렇다면 오해를 풀어야지.’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건설 쪽으로 일하신다고 하셨죠?”
“그런데?”
“건설 쪽에서 이리듐을 쓸 곳이 어디 있습니까?”
“호오. 내가 건설 일을 하니 쓸 곳이 없다?”
“당연하죠. 바나듐만 해도 킬로당 50달러가 넘습니다. 그걸 취미 생활을 위해 몇 톤씩 구매할 사람은 없죠.”
그는 입에 침을 바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 있죠. 하지만 이리듐은 진짜로 희귀한 금속이라고요.”
“그래서?”
“이리듐 현 시세가 얼만지……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온스당 500달러가 넘잖아요.”
온스(oz)는 질량이나 부피를 표시하는 단위이다.
질량을 표시할 때 1oz는 28.5g으로 환산된다.
그러므로 1㎏은 대략 35oz.
나를 완전히 희토류 브로커로 여기는 모습.
이민호가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이리듐 5㎏이면 대충 17,500달러라고요.”
고개를 슬쩍 쳐들며 그의 말을 재촉했다.
‘마저 말해봐.’
이민호가 물었다.
“그걸 쓸 데가 어디 있습니까? 보아하니 희토류 전문가도 아니신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등장한 녀석의, 무시하는 말버릇!
‘빡치네. 아무래도 이대로 데려갈 수는 없겠어.’
꼭 필요하지만, 이런 놈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웬만하면 기는 안 죽이려 했는데!’
하나 그걸 깨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 들지 않을 게 뻔했다.
사람이란!
‘자신과 같은 레벨이라 인정한 사람과 진심으로 말을 섞는 법이니까!’
이민호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냐고?
‘성공할 방법을 찾았고, 그걸 자기 혼자만이 안다고 확신하니 저런 행동이 가능한 거지.’
뭐가 무서우랴!
연구에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500억을 벌 수 있는데!
이민호의 비웃음에, 같잖다는 미소로 대응했다.
삐딱한 고개로 물었다.
“내가 그걸 쓰겠다면?”
“에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건 아무나 취급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장비도 있어야 하고.”
이왕 드러내기로 한 본색, 숨길 게 뭐 있으랴?
“‘상이금속 밀도 제어기’ 같은 거?”
예상치 못한 말에 그는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바로 말을 이었다.
“이민호 하니까 떠오르더군. 너, 포항 연구소에 있던 놈이지?”
“그, 그걸 어떻게?”
눈에 쌍심지를 켜며 물음을 이었다.
“일부러 제 뒷조사를 한 겁니까?”
‘밟을 때는 확실하게!’
“누가 너 따위를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
코웃음 치자, 이민호가 대들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저를 추적할 수 있었나요?”
“네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회사에 보고도 안 하는 놈이라고 소문났던데? 꽤 유명하더라.”
“그야…….”
“그런 놈을 뒷조사해서 뭐하게? 어디 써먹게?”
할 말이 없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포항 연구소에 그게 들어왔다더라고. 궁금하잖아? 나도 마침 그게 필요했었거든.”
여전히 경계하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놈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같은 생각이요?”
“내가 왜 이리듐을 샀는지, 안 궁금해? 네 말처럼 비싼 건 둘째 치고, 잘 쓰지도 않는 그걸?”
삐딱하게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혹시? 너만 초고강도 강철합금을 발명할 수 있다! 뭐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허를 찔린 듯, 그의 눈꺼풀이 쉼 없이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내가 어떻게 그걸 아는지, 절대로 알 수 없을걸!’
자신의 계획을 절대로 발설한 적이 없을 테니까.
놀란 채 입을 벌린 그에게 말을 이었다.
“강철에 희토류를 넣어서 강도를 높인다. 쯧! 고작 이런 상식적인 걸 가지고, 세상을 다 가진 놈처럼 설치고 다닌 거냐?”
다른 말보다 상식이라는 말이 충격이었던 모양.
그가 되물었다.
“사, 상식이라고요? 그게요?”
“당연히 상식이지.”
별의별 금속을 다 섞어보고, 결국 희토류로 방향을 잡은 이민호였다.
그런데 합금 전문가도 아닌 건설업자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그게 어째서 상식입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이라도 당한 듯, 그는 으르렁거렸다.
되레 이해할 수 없다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LED 등이나 영구자석에 희토류가 쓰인다는 건 알고 있지?”
흥분한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LED 등의 수명이 일반 형광등보다 수명이 열 배나 길다는 것, 그리고 희토류로 만든 영구 자석이 일반 자석보다 자성이 열 배나 강하지.”
연신 수긍하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럼! 강철합금에도 희토류를 섞으면 10배의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엑! 고작 그런 이유로?”
“역으로 추론해야지.”
“역으로요?”
“응! 그것들의 힘과 수명은 왜 10배나 강해졌을까? 재료에서 차이 나는 건 희토류밖에 없거든!”
눈을 치켜뜨는 그에게 물었다.
“내 말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어?”
“증명은…….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 정도는 상식이야. 나한테는.”
물론 내 말은 결과론적이다.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민호는 어떤 반론도 불가능할 것이다.
‘반론할 근거가 없으니까!’
자기 아이디어를 훔쳤다고는 더더욱 말 못하지.
그렇게 입조심을 하는 녀석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리가 없지!
23살의 이민호는 그저 눈만 끔뻑거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 그 연구 얼마나 했냐?”
“사, 사오 년 정도?”
대놓고 녀석을 비웃었다.
“대가리가 돌이냐? 난 한 달 공부해보니까 답 나오던데? 다른 금속 백날 섞어봐야 답이 없어!”
이미 실험해 본 이민호는 반박하지 못했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퍼먹어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아? 넌 그 연구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발명만 가지고는 그리 큰돈이 안 돼! 네가 생각하는 결과가 내가 예상하는 게 맞다면.”
녀석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 예상이 뭔지…….”
한심한 눈빛으로 혀를 찼다.
“쯧! 말해줄 이유는 없지만, 어린놈이 고생만 진탕할 게 안돼 보여서 말해준다. ‘상이금속 밀도 제어기’만 봐도 네가 뭘 할지 답이 딱 나오지. 넌 합금을 액상 상태에서 밀도를 균일하게 조절함으로써 합금의 안정화를 꾀하려 했을 거야.”
그는 심호흡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만든 그걸 어디에다 쓸 건데?”
“그야…….”
“잘 쭈물딱거리면 대충 4배 강도쯤 나올걸?”
작게 수긍하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거 가공할 수 있어?”
“가공이요?”
“야! 그 강도면, 현장에서 안 구부러져! 알아? 그냥 흉기라고!”
‘진짜냐?’고 눈으로 묻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단점이 한두 개야? 주조 말고는 가공도 안 돼! 현장에서는 아예 변형 불가능! 현장에 그걸 가공할 장비라도 갖다 놓으리? 대체 넌, 생각이란 게 있는 놈이야? 그런 반쪽짜리를 어느 미친놈이 사?”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 예상이 틀렸냐? 아직 그거 해결할 생……. 하긴 전혀 몰랐던 것 같은데, 해결은 무슨…….”
내 신랄한 비판에 그는 눈만 끔뻑일 뿐,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강도만 생각했지, 누가 사용할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 모양이었다.
‘실무를 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지.’
책상머리 천재들이 많이 하는 실수다.
눈을 지그시 내리깔며 물었다.
“내가 못 만든다고? 이유를 대봐!”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나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 어린 나이.
침묵하는 녀석의 바지에 물방울 꽃이 피어났다.
앙다문 입으로 이민호가 신음성을 토해냈다.
“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단 말입니다. 큰돈이 필요하다고요.”
하지만 그 음성에…… 충만했던 자신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성공에 대한 꿈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후!’
아무리 내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을 보며 말했다.
“첸, 목도 마른데 휴게소에 잠시 들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