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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94화 (394/427)

건축의 신 394화

초빙(09)

그들이 나오는 걸 보며, 그에게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

“일단 우리 둘만 있게 해주세요.”

“네! 맡겨만 주십시오.”

첸은 인사하고는 뒤로 돌았다.

“어이! 리! 오랜만이구만. 여기는 어쩐 일인가?”

‘오랜만’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강하게 넣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부하도 만만찮게 넉살이 좋은지 바로 대답했다.

“엇. 형님!”

방금까지 통화한 사람들이…….

계획 없이 나오는 반응치고는 장단이 잘 맞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말도 많겠지.’

첸이 부하의 손을 맞잡으며 한쪽으로 끌고 갔다.

“아이구! 이게 얼마만이야!”

부하가 이민호에게 양해를 구했다.

“고객님, 오랜만에 뵙는 동네 형님이라 잠시…….”

뭐라 타박할 것인가?

이민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우리 둘만 남게 된 상황.

이민호는 어색한지 내게 등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면 난감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중국 오지에서.

그의 등으로 시선을 스치며 자연스럽게 말을 뱉었다.

“거참! 고객도 내팽개치고 말이야.”

느닷없는 한국말에 이민호의 등이 움찔했지만, 나를 본다거나 하는 반응은 없었다.

‘상대할 생각이 없다, 그거냐?’

잠시 후 내가 한국말로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내가 말을 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그가 나를 향했다.

“제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한국말 하는 가이드를 쓰는 게, 한국인밖에 더 있냐?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당신 가이드가 한국말을 하는 것 같아서요.”

“아!”

무시했던 게 무안했던지, 눈가를 긁으며 말했다.

“한국인 맞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답형. 그러고는 침묵.

‘어라? 나 지금 무시당한 거야?’

일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떤 용무로 왔어요?”

“그냥…… 뭐 좀 사러 왔습니다.”

‘훗. 희토류 광산에서 뭘 살까?’

딱 보니, 말 섞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요거 봐라? 무시하는 거 맞지? 이거 아주 습관적이네!’

아까 도청하는 내내 불편했던 느낌.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은연중에 나오는 이민호의 말버릇.

가이드가 물었을 때의 반응은 줄곧 이랬다.

‘말하면 아세요?’

‘어차피 모르실 거면서…….’

말은 높이는 듯 보이지만, 명백한 무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냐?’는…….

녀석이 의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포항 연구소 사람들의 이민호에 대한 박한 평가는 이 행동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무시의 감정에 민감하다.

그 느낌이 싸하게 들었다.

‘자신과 말을 나눌 수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애송이가?’

이민호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끄는 거야?”

부드러웠던 내 인상이 차가워졌다.

‘되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글렀군.’

가능하다면,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싶었다.

재능 있는 인재는 구하기 어려우니까.

하나 첫 번째 만남부터 이래서는, 이 인연이 오래가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부하에게 무시당하는 상사는 결코 존중받지 못하지.’

이민호에 대한 분석은 끝났다. 그리고 배려할 생각도 사라졌다.

‘여기서 고삐를 꿰는 게 낫겠군.’

기왕 쓸 생각이라면 누가 갑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낫다.

일면 냉정해 보이지만, 그게 그를 위한 길일 터!

어설픈 배려는 두려움을 희석시키고, 그 모호한 기준은 세상 물정 어두운 천재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럼 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해야겠지.’

난 그를 일회용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해주지.’

첸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첸!”

대화를 나누던 그와 부하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예! 따꺼!”

‘이 양반아, 따꺼는 오버지!’

하지만 그는 넉살 좋은 웃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얼굴이라…….”

그에게 물었다.

“동생 분은 무슨 일로 오셨답니까?”

“희토류를 구하러 왔겠지요.”

말하고 싶지 않아서 숨겼는데, 가이드가 발설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민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에 첸이 마뜩잖은 듯 말을 이었다.

“묻을 필요도 없습니다. 희토류 광산에 올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구할 수 있습니까?”

“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따꺼!”

‘제발 그 따꺼 소리 좀!’

이민호 모르게 눈치를 줬지만, 그는 그 캐릭터를 계속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속으로 한숨 쉬며, 이민호를 눈짓하며 물었다.

“이 친구는 못 구한 모양이던데.”

내 말에 이민호는 표정을 구겼지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 겁니까?”

“네! 희토류의 밀반입은 당에서 금지하는 겁니다. 물정 모르는 외국인이 구할 물건이 아니죠.”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저라고 해 주겠어요? 나도 똑같은 외국인인데?”

첸은 대답 대신, 비릿한 냉소를 보였다.

이민호에게 보내는 명백한 비웃음!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민호가 첸을 쏘아보았다.

‘너는 뭐 다를 것 같냐?’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첸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듯, 웃으며 내게 말했다.

“따꺼께서는 격이 다르시지요. 원하시는 만큼 즉시 구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감히 저런…….”

‘애송이와 비교를 하냐?’는 뉘앙스!

‘어지간히 열 받았었나 보군.’

도청하는 내내, 첸의 얼굴도 찌뿌둥했으니까.

이민호의 건방진 태도에 대한 불만을, 약 올리는 연기로 표출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한편 이민호도 기분이 상한 듯 뚱한 음성으로 말했다.

“흥!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는데!”

옆구리의 두툼한 가방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뇌물도 안 통하는 상대라고요. 저 인간은! 당신이라고 특별할 것 같아요?”

자기 나름의 논리로 불가능을 확신하는 이민호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꼬마야, 뇌물의 성사 여부는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누가 주느냐에 달려 있단다.’

세상에는 여러 바보가 있지만, 그중에 최고라면 딱 봐도 뒤탈이 보이는 뇌물을 받아먹는 놈이다.

뒤탈 없는 뇌물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만!

가당찮은 표정으로 이민호와 눈싸움을 하는, 첸에게 불을 질렀다.

“어림없다는데요? 첸.”

눈길을 거둔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깟 말싸움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아까 내가 오면서 말한 거 기억하고 있죠?”

첸이 뜨끔하며, 고개를 굽실거렸다.

“죄송합니다, 따꺼! 제가 머리가 나빠서…….”

“이트륨이랑 바나듐. 그리고 이리듐.”

순간, 이민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중에서도 이리듐이 특히나 중요했지.’

당연히 그가 원하는 것도 그 금속들이었다.

첸이 복명복창하며 물었다.

“아! 이트륨! 바나듐! 이리듐! 얼마나 달라고 할까요?”

“이리듐은 최소한 5kg! 그리고 나머지는 각각 5톤씩. 또한, 앞으로도 계속 공급할 수 있는지도 물어보시고.”

“알겠습니다. 오 분만 기다리십시오.”

첸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고, 이민호는 반신반의하는 시선으로 그의 등을 노려보았다.

‘정말 될까?’ 하는.

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첸은 사무소 밖으로 나왔고, 곧이어 배불뚝이 대머리의 중년이 그를 뒤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엇!”

이민호의 신음성이었다.

그에게 물었다.

“왜? 아는 사람이야?”

이미 존칭은 사라져 있었지만, 이민호가 나를 대하는 반응도 달라져 있었다.

마지못한 얼굴이지만, 아까보다는 성실한 답변.

“여, 여기 소장입니다.”

“흠…….”

가만히 팔짱을 끼고 그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조곤조곤한 대화라 무슨 말을 나누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표정은 뚜렷하게 보이는 거리.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첸이, 오른손으로는 담배를 꼬나문 채, 소장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장은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이민호가 제 가이드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이봐요. 아까 제가 그렇게 부탁할 때는…….”

가이드가 무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하고 저 형님이랑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알아들을 수 있게 좀.”

“원래는 말 섞을 레벨도 아니란 말입니다. 인맥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부러 저러는 거군.’

첸은 연극을 하는 거였다.

사무소 안에서도 능히 해결할 수 있지만, 일부러 이민호에게 보이려는 행동!

무시로 일관하던 이민호가 내게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혹시…… 중국 조직 폭…….”

“아냐. 난 한국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일반 시민이야. 중국 조폭하고는 전혀 연관 없어.”

“그런데 왜 따꺼……라고.”

“첸, 저 사람 습관인가 보지.”

“아, 그러시구나.”

거만한 연기 중인 첸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더 할까요? 팀장님?’

그에게 보일 듯 말 듯 턱을 쳐들며 부추겼다.

‘좀 더. 강하게.’

고작 그 정도로 물정 모르는 이 녀석이 알아듣겠어?

딱 한 번의 연극으로 그에게 각인시켜야 했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그걸 위한 연극이니까!

첸의 고성이 들려왔다.

어찌나 컸던지, 이민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장이 안절부절못하며,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들으라는 듯이, 첸의 부하에게 물었다.

“첸이 왜 저러는 걸까요?”

“아! 지금 물건이 없는 거 아닐까요?”

일리 있는 추론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형님이 저렇게 화내시는 건 처음 봅니다만…….”

이민호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어떤 핑계를 대든, 못 구한 것은 못 구한 것!

하지만 나는 불쾌하지도, 대꾸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이 연극이 끝나면, 이민호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테니!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나는 첸의, 첸은 소장의, 소장은 이민호의 갑!

이 유치한 부추김에는, 어린 녀석에게 예상치 못한 무시를 당한 내 울분도 약간은 있었다.

그보다는 첸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첸 과장! 볼수록 물건이네.’

입안의 혀처럼 굴지 않는가?

탐색이라도 한 것처럼 내 속을 헤아리고 있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주문을 소화하는 융통성!

갑이 을을 쪼개는데, 뭐 그리 복잡한 이유가 필요해? 군기 잡으려고도 쪼개는데…….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고, 또 그걸 적절히 이용도 할 줄 하는 사람.

내 중국 출장의 최대 성과는 이민호가 아니라, 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일부터 맡겨봐야겠어.’

인물됨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해야겠지만, 양심에 꺼려서 공안을 관뒀다는 사람이었다.

잠시 후, 첸이 소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내 앞으로 도착한 첸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따꺼! 죄송합니다.”

“못 구했습니까?”

첸이 고개를 들며 설명했다.

“시기가 안 좋았습니다. 오늘 오전이 마침 이리듐 수집하는 날이라, 채굴한 전량을 당으로 보냈답니다.”

이민호의 비웃음을 온몸으로 받으며, 냉랭하게 물었다.

“그래서요? 전 당장 필요한데?”

“내일 아침까지 갖다놓겠습니다.”

“가능합니까?”

첸이 고개를 들었다.

“네!”

그리고 설명을 이었다.

“오늘 야간작업을 해서라도 맞추라 했습니다. 5kg 추출한 완제품으로, 내일 아침까지 따꺼 책상 위에 올려두겠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전 밀수 같은 거 취미 없습니다. 희토류 수출 금지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요?”

첸이 양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밀수 따위로 누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런 하자 없이 깔끔하게 조치하겠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민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아니! 어떻게 이리 간단히…….”

설명을 요구하는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뭘 어떻게 설명하랴?

이미 그 얼굴의 비웃음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내가 너였다면……. 내가 잘되기를 바랐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든 비벼서 한 덩이라도 얻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이봐, 어린 친구! 세상은…….”

나를 올려다보는 이민호에게 말을 이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니겠어?”

이민호가 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크윽! 젠장!”

그 틈에 첸에게 눈짓을 보냈다.

‘보내요, 저 사람.’

불필요한 인물은 없는 게 나았다.

괜히 이민호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리면 곤란하다고.

‘물고기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을수록 좋지!’

오로지 나만 눈에 보이도록!

‘이제부터 시작이야. 공항 가는 길은 꽤 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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