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93화 (393/427)

건축의 신 393화

초빙(08)

연길의 광산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여기는, 지프 말고는, 들어올 수가, 없어서…….”

중국 지사의 첸 과장은 미안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연길 토박이치고는, 꽤 또박또박하게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30분 전부터 포장도로가 사라졌고, 산을 탄 뒤부터는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지프의 좌석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러니 말이 끊어질 수밖에!

속이 메슥거리는 듯, 울 듯한 그를 보며 말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일도 바쁘실 텐데, 저 때문에. 이제 거의 다 왔나 보네요.”

“휴우. 얼른 내리고 싶습니다.”

멀리서 거대한 채굴기계와 돌을 실어 나르는 레일이 눈에 들어왔다.

첸 과장의 말이 맞다면, 저기에 이민호가 있을 터!

멀미가 심한지, 창 틈새로 심호흡하는 그를 흘낏 곁눈질했다.

‘굉장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네.’

그를 처음 봤을 때 느낀 내 감상이었다.

***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이민호 어디 있는지 파악하셨습니까?”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왔지만, 이 넓은 땅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어떻게 쉬운 일이랴!

“네! 팀장님!”

그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겨드랑이에 끼우더니, 잽싸게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액정을 확인하며, 내게 답했다.

“흠. 지금은 여기서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광산으로 가는 중입니다.”

추측이나 예상이 아닌, 정확한 답변!

‘호오!’

저 휴대전화가 위치추적기도 아닐 테고!

부사장도 그의 소재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데 그는 어디로 향하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도 실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 사람?’

첸이라는 인물에게 궁금증이 동했다.

그에게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그 폰에 답이 있나 봅니다.”

그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이민호 씨에게 사람 하나 붙여놨습니다.”

‘사람을 붙였다고? 무슨 수로?’

그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의심하지 않던가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가이드로 자연스럽게 붙였으니까요. 연길에서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의 일 처리에 속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가이드요?”

“네! 또한, 여기에 혼자 오는 외국인은 반드시 가이드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

“연길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보통 중국어를 한다고 해도 알아먹기 어렵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가이드는 누굽니까?”

“사실은 제 부하직원입니다. 제법 똘똘한 녀석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 직원분이 문자를 보낸 거로군요. 용케도 가이드를 붙일 생각을 하셨습니다.”

내 칭찬에 그는 무안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 나라 욕하는 것 같지만, 중국에서 외지인이 가이드 없이 움직이는 건 미친 짓이죠. 그래서 반드시 가이드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확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내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데?’

중국인은 게으르고, 돈만 밝힌다는 편견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가이드로 붙였으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차피 팀장님 오시면 모시고 가야 하고, 또 엄한 일이라도 당했다가는 곤란하지 않습니까.”

지프에 올라타며 물었다.

“그래도 용케 한 번에 찾으셨나 보네요? 자료도 변변치 않던데.”

그도 그럴 게, 서류에 붙어있는 흑백 사진의 품질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것 아닌가?

눈, 코, 입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랄까?

그는 차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앉으며 말했다.

“연길에서 사람 찾는 일이라면, 서류 같은 거 없어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공안에 아는 놈들이 좀 있거든요.”

말하는 투로 보아, 꽤 친한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요?”

“비행기에서 내릴 때, 친구 놈에게 좀 붙들어 놓으라고 했지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본 시리즈 첩보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무엇보다 이 시절, 중국 공안은 한국 경찰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특히나 공항 공안은 고압적이지!’

미소를 지며 그에게 물었다.

“이민호가 뜨끔했겠는데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공항을 나가버리면 그야말로 오리무중이 되어버리니까요.”

이 넓은 땅에서 움직이는 인간을 무슨 수로 추적할 것인가?

그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에 하나 그랬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찾아가는 건 불가능했겠지.’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바로 풀어줬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하직원에게 바로 인계했겠고요?”

“그렇지요.”

그가 지프에 시동을 걸었다.

“좀 멀미가 나더라도 참아주십시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전띠를 매며, 그의 일 처리에 혀를 내둘렀다.

‘이제 겨우 세 시간밖에 안 지났다고.’

내 출발과 동시에 그에게 오더가 내려졌을 터!

세 시간은 심양을 거쳐서 연길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미 사람을 찾아뒀다고? 상당한 수완가잖아.’

다급하게 움직였을 게 분명한데도, 그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연길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참작해도, 매우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 않은가?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에게 물었다.

“지금 어느 부서에서 일하십니까?”

생뚱맞은 물음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CS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CS팀!

쉽게 말하면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부서!

집에 대한 고객의 불만 접수, 그에 대한 해결책 마련, 그리고 현장에 피드백하는 것까지.

KT는 건설 현장 인원이 중심이 되는 팀.

그러니 중국인을 상대해야 하는 CS에 그가 배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딱 맞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의 탁월한 임기응변을 봐서는, 고객 대부분이 만족하며 전화를 끊으리라.

‘다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쓴다는 게, 문제지.’

“대우는 괜찮습니까?”

그는 나를 돌아보며 흐뭇한 웃음과 함께 엄지를 쳐들었다.

“KT는 세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지요! 덕분에 애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선이 조수석 앞에 놓인 사진으로 향했다.

귀여운 딸과 아들, 그리고 그와 아내.

“귀엽네요. 원래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십 년쯤 공안으로 일했었습니다.”

한때 중국 공안은 권력과 부패의 상징이었다.

그 한때라는 게 지금 시절이고.

수입만 본다면 괜찮은 직업임에는 분명했다.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권력의 자리였으니까.

“왜 관두셨습니까?”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공안 월급만 가지고 먹고 살기 힘든 건 아시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입에 풀칠하려고 마지못해 하기는 했는데, 저하고는 영 안 맞았습니다. 찔끔찔끔 떡고물 걷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애들 코 묻은 돈 갈취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가족사진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애들 보기도 부끄럽고.”

그래서 그랬던 것인가?

국가 기관 쪽으로 인맥이 있었던 것이?

하지만 인맥이 있다고, 모두가 그런 일을 해내는 게 아님은 확실했다.

“CS 일은 하실 만합니까?”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은 고객과 싸우는 게 일입니다. 중국인에게 고객 서비스라는 게 아직 낯설거든요.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시간은 많았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첸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나요?”

시계를 흘낏 보더니, 첸이 말했다.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민호는 아직 도착 못 했겠죠?”

“네. 제 도착 시각과 얼추 맞추라고 했습니다.”

첸 정도의 수완가가 그 정도 배려도 하지 않았을까?

길이 엇갈리면, 그것대로 시간 낭비가 되며, 그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첸은 좌우로 눈길을 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런 길이라서…….”

훗. 빙빙 돌아가도 이민호가 눈치챌 수 없다는 말이겠지.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그 옆으로는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초행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그 길이 그 길 같을 터. 당장 나만 해도, 지금 위치가 어딘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네비도 없이 길을 찾아가는 게 용할 정도이니.’

창밖으로 펼쳐진 삭막한 광경을 보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 전화해 보세요. 확인해 볼 것도 있고.”

“네. 알겠습니다.”

첸이 양복 안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지금 내가 가진 정보는 이 종잇조각 몇 장.

‘이걸로 이민호에 대해 파악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 눈엔 그저 소문의 집합체로만 보였다.

직접 그의 생각을 들어봐야, 진정한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잠시 후, 첸이 수화기를 든 채 말했다.

“예상대로 30분 정도면 도착한답니다. 더 궁금하신 게 있는지요?”

‘궁금한 거 많죠! 아주!’

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물었다.

“부하분한테 이어폰 핸즈프리 있죠?”

그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을 겁니다. 운전하면서도 고객과 통화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건 왜?”

“그걸로 바꿔 끼라고 하세요.”

“네? 네.”

내 의도를 모르는 듯,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했습니다. 팀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분한테 이민호와 계속 대화하라고 하세요. 전화는 끊은 척하고.”

그제야 눈치챘는지,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런 수가! 알겠습니다.”

신상명세서에 있는 이민호에게 눈길을 던졌다.

베일에 가린 듯, 실체를 알기 어려웠던 인물.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지.

나는 이민호의 대화를 들을 수 있고, 핸즈프리로 부하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 했던가?

‘이제 네가 어떤 놈인지 알아보자고!’

***

“어이구!”

지프에서 내린 첸이 죽을상으로 기지개를 켰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묻는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이민호는 희토류를 구했을까요?”

그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개인이 구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것도 외국인이!”

“관리가 엄격한 모양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었다.

“당에서 직접 관리하는 겁니다. 몇 푼 벌자고, 당에 거스를 인간은 없죠.”

그의 호언장담에 미소 지으며 물었다.

“나도 희토류가 필요합니다. 구할 수 있을까요?”

그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필요하십니까?”

이민호를 데려와도, 희토류를 구할 수 없으면 포항 연구소와 똑같은 꼴이 되거든!

눈썹을 으쓱하며 수긍하자, 그의 입에서는 아까와 전혀 다른 답변이 나왔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절차에 맞춰서 정상적으로 통관되게끔!”

그는 확신하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아무런 하자 없이 책상 위로 대령하겠습니다.”

사무소에서 누가 나오자, 첸이 재빨리 말했다.

“저 사람인가 보군요. 그 옆의 가이드가 제 부하입니다.”

찌뿌둥한 표정의 젊은 남자와 위로하는 가이드.

첸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팀장님! 어떻게 설득하실 셈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배포가 크거나 미친놈 같은데. 천억 투자는 둘째치고, 팔기만 해도 오백억이라니. 그걸 살 사람이나 있을는지.”

도청으로 확인한 건 예상대로였다.

희토류를 지속해서 구하길 원한다는 것.

강철합금을 발명해서 거금을 벌겠다는 것.

간단히 말해 1,000억을 투자받아서 사업을 하던지, 아니면 자신의 특허를 500억에 팔겠다는 포부였다.

그의 말처럼, 스물셋의 젊은이로서는 엄청난 꿈.

자신의 사업비밀이라 생각했던지, 자세한 부분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민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발명은 몇 년 뒤에나 이뤄진다고.’

그 원인은 부사장이 보낸 문서에 나와 있었다.

집안의 파산, 어머니의 병환!

그 때문에 독일 유학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 녀석이 사방팔방으로 쏘다니며 조급하게 구는 이유였다.

‘하지만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킬 생각은 없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그 가치에는 인성도 포함된다.

길들일 수 없는 천리마는 고깃덩이의 가치밖에 없는 법.

생각을 정하고, 첸에게 말했다.

“첸. 연극 한번 합시다.”

“연극이요?”

“내 말에 맞장구만 치면 됩니다. 요령껏.”

먹이를 앞에 두고, 이리저리 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요령 좋은 중국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요령껏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