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92화
초빙(07)
현재 철강은 중요하지 않았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그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뒷순위로 밀릴 터.
결재판을 던지듯 탁자에 놓자, 그가 말했다.
“겨우 소재만 파악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시간을 촉박했을 텐데, 용케 찾으셨네요? 한군데 붙어있는 사람도 아닌데.”
“맡기신 일이니, 당연히 해야지요.”
멋쩍게 웃는 그에게 위치를 물었다.
“어디 있던가요?.”
“지금은 중국 연변에 있답니다.”
“네? 연변이요?”
기껏해야 어디 낚시터나 처박혀 있을 줄 알았더니, 연변이라니?
‘거기는 왜?’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부사장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중국에 있는 사람을 사흘도 안 돼서 찾았다고!
‘나라면 춤이라도 추겠는데.’
기뻐할 만도 하건만,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는 답 대신, 신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민호에 대해서 재고하시는 건 어떠실지요?”
합당한 사유 없이 반대를 말할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왜요?”
“좋은 소문이 하나도 없더군요. 그 사람은.”
“어떤 소문이요?”
“보고서에 기재해 뒀습니다만, 실력이 증명된 것도 없고…. 뭐랄까? 허풍이 심하다고 할까요? 책임감도 많이 없어 보이고.”
‘결과가 나온 게 없으니, 실력은 당연히….’
원래대로라면 몇 년이나 더 뜸을 들이고 나올 결과!
“그렇게 평하시는 이유가 있겠지요?”
부사장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국에서의 행적은 포항 연구소에 고작 3개월 근무한 게 전부입니다.”
“그게 문제인가요?”
“그 삼 개월 동안 무얼 했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도 안 차는 놈입니다. 연구에 꼭 필요하다고 하도 떼를 써서 고생고생해서 미국에서 분석기 들여왔더니, 그거 들어오고 한 달도 안 돼서 사라졌답니다.”
“왜요?”
“재료가 없는데 무슨 연구를 하냐면서, 전체 회의하던 자리서 박차고 나갔답니다. 그 뒤로는 연락 두절. 그게 벌써 한 달 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에 있다?”
“그것도 겨우 알아낸 겁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연변에는 왜 갔답니까?”
“그 인간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 분석기만 해도 10억이 넘는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놈 때문에 투자한 게 얼만데.”
제 일이라도 되는 양, 부사장은 험한 말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책임하고 끈기도 없는 인간은 KT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부사장 표현대로라면 그는 무책임한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끈기가 없는 인간은 아닌데?’
연변으로 도망을 쳤다 하니,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끈기없이!
끝도 보이지 않는 이런 연구에 몇 년 동안 매달렸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실력 또한 마찬가지?
실력 없이 어떻게 자타가 인정하는 성과를 낼까?
실력과 끈기, 둘 다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는 그걸 해냈다.
‘내가 이미 확인한 사실이라고.’
“그래도 능력은 인정받았나 보네요? 연구소에서 바람대로 다 사줬다는 걸 보면….”
“네. 영재인 모양입니다. 스무 살에 카이스트를 졸업했지요.”
“호오!”
천재가 아닌가?
“그리곤 바로 독일로 유학, 하지만 중도에 관두고 귀국했습니다. 그 후 바로 연구소에 취직했다더군요. 연구소장도 기대가 컸던 모양입니다.”
‘왜 중간에 유학을 관뒀을까?’
내 생각에는 관심도 없는 듯, 그가 말을 이었다.
“쯧. 일단 눈에 보이는 스펙은 번지르르하니….”
혀를 차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회사 잘못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장비 가격에 비하면 재료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실력 있는 사람에게는 대우해 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를 고개를 저었다.
“그게 연구소 측에서도 좀 구하기 어려운 거였나 봅니다.”
궁금증이 동했다.
“무슨 재료입니까?”
“희귀금속인데, 이트륨인가, 뭔가? 저는 들어도 모르겠더군요. 자세한 건 보고서에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설명을 보탰다.
“희토류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정확히 뭔지 모르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쪽은 문외한이라.”
“아직 그렇게 널리 쓰이지 않으니까요. 관계자들 말고는 잘 모르죠.”
희토류란, 원자번호 57에서 71에 배열되는 일련의 금속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 효용에 비해, 희귀함 때문에 아직은 많은 곳에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에 설명을 이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영구 자석이나, LED 등 같은 걸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연관도 전혀 없구만. 그런 걸 왜?”
부사장은 석연찮은 표정을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합금 연구에도 희토류 금속이 필요하거든요.’
왜 연변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였다.
“흠. 그래서 중국으로 갔나 보군.”
그건 그가 아직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
“네?”
부사장의 물음에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희토류가 중국에서 많이 채굴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몰랐던 것인지,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국에서만 97%가 채굴됩니다.”
“허. 중국에서만요? 그래서 희귀금속인가요?”
사실 희토류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중국의 순수 매장량은 고작해야 30%를 조금 넘는 정도.
세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중국에서만 채굴할까?
이유는 간단하지.
아직 중국은 후진국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극심한 환경 오염 때문에 채굴을 금지하는 실정이었다.
‘그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판매는 거의 독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군요.”
“그래서 중국에서 장난을 많이 칩니다.”
“...”
“가격을 제멋대로 폭등시킨다든지, 채굴량을 조절한다든가…. 지금은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모양인데. 딱 아다리가 맞은 모양이군요.”
중국에서 안 판다는데야, 연구소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 말에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 친구가 그래서 그 사고를 쳤군요.”
“사고요? 또 있습니까?”
그의 기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
“결정적으로 도망친 이유가 공금유용입니다.”
“공금유용이요?”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이 인간이?’
부사장의 조사가 정확하다면 천하의 쌩양아치가 아닌가?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금으로 그 희토류인가 하는 걸 밀수하려다가 걸렸답니다.”
황당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쯤 되면 완전 정신병자 수준인데?’
“하하하. 밀수요?”
웃음기를 거두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거 사실입니까? 소문 아니고요?”
“이건 연구소장에게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럼 신문에도 났을 텐데.”
“미수로 그쳤기에 망정이지! 연구소 문 닫을 뻔했다고, 소장이 이를 갈더군요.”
넘치는 열정은 이해해도,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공금유용에, 일을 내팽개치는 것은 둘째치고, 밀수라니.
‘아주 사고를 골고루 쳤네. 골고루.’
“연구소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요량이랍니까?”
“사람을 찾아야 뭘 하지요. 연변에 있는 놈을 무슨 수로 찾습니까? 우리야 거기에 지사가 있으니, 찾은 거지만.”
“그래서요?”
“네. 그래서 수배만 걸어놓은 것 같습니다. 찾게 되면 포상한다고 꼭 연락 달라더군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이거야 산 넘어 산이네.”
“팀장님. 간단하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수석연구원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내 한숨이 옮았는지, 부사장도 큰 한숨을 쉬었다.
“휴. 이놈 이거, 회사 말아먹을 놈입니다.”
부사장의 염려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
‘예전 인터뷰로 봤을 땐 전형적인 학자 타입이라 생각했었는데?’
부사장에게 물었다.
“중국 간지는 얼마나 됐답니까?”
“한 달입니다. 연구소를 박차고 나간 뒤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성과가 있었을 시간은 아니군.’
이민호가 바라는 게 이뤄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금속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구한다고 해도 세관을 통과하는 것은 무리일 터!
밀수범으로 잡히기밖에 더하겠어?
‘행동력은 발군인데, 뒤를 너무 안 보는군.’
그도 그럴 것이 부사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제 겨우 23살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데? 일단은 만나보고….’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나를 보며, 부사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고민되시면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시지요!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고민해 봐야 해결되는 건 없으니, 그 말이 정답이기는 한데….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부사장님께서 직접요?”
“네! 맡겨만 주십시오!”
자신하는 그에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가겠습니다.”
“고작 그런 놈 데려오는데, 직접 움직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제가 가서….”
만류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으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신임이 부족하다 생각했음인가?
그는 못내 섭섭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못 데려올까 봐 걱정되시는 겁니까?”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떻게 데려오실지 눈에 선히 보여서 말입니다.”
“그게 무슨?”
그의 의문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부사장님.”
“…….”
“요즘도 현장 가신다면서요?”
뜬금없는 물음에 그가 되물었다.
“시간 날 때마다 갑니다만….”
그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여전히 쉰 넘은 소장들에게 ‘대가리 박아’를 시켜놓고 군기를 잡는다 들었다.
그의 방문 다음 날이면, 소장들이 끙끙 앓는다고.
“요즘도 현장 소장들 군기 잡고 그러세요?”
그가 고개를 바로 들며 답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대가리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현장에 사고가 없는 법입니다.”
“옳은 말씀!”
소장들을 쥐잡듯하는 그가 이민호에게 편견까지 있는데, 곱게 모시고 올까?
‘멱살 잡고 끌고 오지 않으면 다행이게.’
야생마 같은 놈을 그렇게 끌고 와서 어쩌자는 말인가? 달래서 데려와도 될까 말까 한 판국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부사장이 물었다.
“왜,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팀장님.”
“아뇨. 정력도 좋으시다 싶어서요.”
“허허허. 아직도 현장에서는 시멘트 포대기 3포는 거뜬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민호를 패대기치실 것 같거든요.”
부사장은 움찔하더니, 버벅거리며 말했다.
“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는 급히 얼버무렸지만, 내가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섭섭한 표정의 그를 달래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이 공모전의 색깔이 바뀔 수도 있어요. 부사장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직접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정히 그러시면야….”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언제로 일정을 잡을까요? 저도 채비를….”
당장에라도 뒤따르려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울상이 지어졌다.
‘앞으로도 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첫 만남부터 인상 찡그릴 수 없다고요!’
엉덩이 들썩거리는 그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저…. 부사장님.”
“네! 팀장님!”
“보고서에 내용이 좀 빠진 것 같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네! 그건 압니다. 제가 보기엔 이민호가 뭔가 서두르는 느낌인데,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원래 성격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석연치 않아요.”
“그럼 출생부터 학교생활까지 다 조사해서….”
‘그래서 어느 세월에 보라고요. 지금 만나러 갈 건데.’
“네. 하지만 우선은 가족관계와 계좌 흐름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계좌는 왜 말입니까?”
“돈의 흐름만큼 그 사람의 목적을 잘 보여주는 건 없죠!”
“아! 그렇군요.”
“그리고 중국에 도착했을 때 받아볼 수 있게 해주세요.”
이제 따라올 엄두는 안 나겠지!
그는 촉박한 시간에 인상을 구겼지만 바로 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일어서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아, 참! 아까 말씀하신 라이프니츠 있죠?”
“아! 예.”
“거기서 일한 적이 있다거나…. 아니 퇴사를 했든, 입사가 예정된 사람들이든, 관계된 사람은 몽땅 명단을 뽑아주세요.”
독일인은 분명히 라이프니츠에 있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실 때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마디를 꺾었다.
뿌드득. 뿌드득.
“모시고 올 건지, 멱살을 붙들고 올 건지, 일단 만나보고 결정할까?”
간만의 긴장감에 기지개를 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훗! 나도 곽 부사장과 별다를 건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