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86화 (386/427)

건축의 신 386화

초빙(01)

팀장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부사장님, ‘이민호’라는 사람, 어디 있는지 알아보세요.”

“네?”

말을 뱉고 나니,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무슨 소리입니까?’라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면서도 즉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굽니까?”

오늘 새벽까지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한 끝에 떠올린 이름.

‘이민호!’

그는 몇 년인가 후쯤에 4배 강도의 강철 합금을 발명했었지.

지금 현재 철강에서 개발 중인 것보다 2배나 강하고, 생산 속도 또한 더 빠른 강철 합금.

‘기왕이면 더 강한 게 좋지!’

철강 사장이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

‘유비무환이지. 뒤통수 맞은 뒤에 대책을 찾으면 이미 늦다고.’

마음만 급해지고, 결국은 철강 사장이 원하는 대로 질질 끌려가게 될 것이다.

곽 부사장이 생각에 빠진 나를 멀뚱하게 보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팀장님.”

“아뇨,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찾으면 될는지요.”

‘그러게.’

찾으라고 해놓고 보니,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머쓱함에 나도 모르게 눈썹을 긁적였다.

뭐 하는 사람인지 힌트를 줘야 찾지.

‘어제 밤새도록 이 이름을 떠올리다 보니, 참.’

그게 생각난 것만으로 안심해 버렸던 모양이다.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철강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사람입니다.”

“근무하던?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아뇨.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도 소문만 들었거든요.”

바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지금은 연구소에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워낙 바람 같은 사람이라.”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쪽 계통으로 일했었다는 건 확실하니, 재직자, 퇴사자 할 거 없이 관련된 연구원이면 몽땅 훑어보세요.”

“알겠습니다.”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빨리 수배 부탁합니다.”

나가려는 그를 보며 말했다.

“아, 참!”

“더 하실 말씀이 남으신 겁니까?”

돌아서는 그에게 말했다.

“아뇨.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이민호라는 분을 찾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강철 합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그도 짐작하리라. 그가 묻는 이유는 다른 것일 터!

하지만 뭐라고 그를 이해 시켜야 하는가?

아직 전혀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사람인데.

‘나야 알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그 사람을 만나 보지 않고는 뭐라고 설명을 못 드리겠네요.”

그는 내 눈을 응시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되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의미가 있겠지요. 나중에 설명해 주십시오.”

“네, 그러죠.”

“바로 아이디어 회의가 있다고 하셨는데.”

“네. 자료 정리가 좀 남았습니다.”

부사장이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몸도 좀 챙기십시오.”

그의 말에 머쓱하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나가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한 사람 더 필요하기는 한데…….’

이민호는 지금부터 몇 년 후에, 획기적인 강철 합금을 발명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혼자서 한 게 아니라는 것.

그와 함께 연구한 독일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도, 어디 소속되어 있었는지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이민호를 찾고 나면 떠오르겠지.’

아무 연관 없는 두 사람이 우연히 함께 작업했을 리는 없으니까.

지금으로써는 퍼즐을 맞춰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막혔는지는 알거든.’

물론 그들의 인터뷰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을지라도.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는 느낄 수 있었고, 스스로를 뿌듯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걸 푸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고 했었지!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고.’

모든 걸 뒤로 하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보란 듯이 결과를 보였고, 잠시간이지만 돈방석에 앉았었다.

‘하지만 그 끝은 좋지 못했지.’

그 독일인이 재직하던 연구소에서 원천 기술을 빼 갔다고 소송을 걸었고, 그 여파로 순식간에 특허를 빼앗겼거든. 물론 알거지가 된 건 물론이고.

단지 그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 그 사람이 그 연구소에서 일했었다는 이유가 참작되어 독일 법원은 연구소의 손을 들어줬었다.

만드는 것만 생각했지, 지킬 능력은 없었던 거지.

물론 이민호는 변호사를 사는 등 전력으로 대응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국제특허분쟁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였던지라,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변호사 비용이라는 빚만 더 생겼지.

생각할수록 열불 치밀지 않아?

‘그게 무슨 개똥 같은 경우냐고? 자기들은 그 시간이 되도록 개발을 못 했으면서 말이야.’

‘춤은 곰이 추고, 돈은 장사꾼이 챙긴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것이리라.

‘안타깝지만, 어설픈 내 기억력을 탓하는 수밖에.’

생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설계를 진행해야 할 때였다.

***

영상 관람은 끝이 났는지, 한석이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나를 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래. 고생이 많다. 다 걷었냐?”

“네! 거의 정리 끝났습니다.”

한석이 설문지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박람회 선배님들은 왜 안 오신 겁니까? 같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

“왜요? 오랜만에 얼굴이나 뵈려고 했는데.”

반가운 얼굴을 하는 한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다 너희들 생각해서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 직장 생활에 이골이 난 녀석들을 붙여놓으면, 애초에 토론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후배 녀석들, 주눅 들어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가 없거든!’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소피는?”

응당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공항에 갔어요. 귄터랑 어르신이 도착할 시간이라서 마중 나갔습니다.”

대답과 함께, 그는 수북이 쌓인 A4 용지를 톡톡 쳐서 정리하고는 내게 내밀었다.

“의견은 많은데, 정작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제까지 생각한 아이디어에 오늘 본 것까지 함께 적어낸 설문지들.

몇 장 뒤적여 보니, 별의별 말이 다 있었다.

터무니없는 의견도 많이 있었다.

‘아니, 거의 대다수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녀석도 정리하면서 읽어 봤었는지, 굉장히 멋쩍어하고 있었다.

수준이 그것밖에 안 돼서 미안하다는 듯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했다, 진짜.”

긴장하던 한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로 쓸 만한 게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정답이라며, 한석에게 웃어주었다.

딱 봐도 ‘정상적이다. 혹은 정리되었다’라는 것들만 있었다면, 화가 날 뻔했거든!

“이 녀석들의 강점은 물들지 않은 거 하나밖에 없거든!”

뜨악하는 표정으로 한석이 몸을 뒤로 젖혔다.

“에이. 그거 하나뿐이라뇨? 그래도 나름 한가락 하는 놈들입니다.”

한석의 자신감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어리다고 무시하시는 겁니까? 지금 당장 KT 팀원들과 경쟁해도 맥없이 밀리지는 않을 겁니다.”

한석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좋을 때구나. 무서운 게 없는 시기.’

4년간의 노력이 학점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그것에 고무되어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이겠지.

허나 네가 우물 안 개구리란 걸 깨닫는 데는 일 년도 안 걸릴걸?

‘그러기에 지금 너희들의 의견이 필요한 거라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 미장손에 맞아봤냐?”

“네? 그게 뭡니까?”

반문하는 녀석을 보며 작은 한숨이 나왔다.

‘현장 가면 네가 만날 사람들이거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후우. 나중에 미장 데모도한테 엄청 맞겠구만!”

“네? 제가 왜 맞습니까?”

삼두근에 힘주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다.”

현장에는 직급 외에, 짬밥이라는 서열이 엄연히 존재한다.

기사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돌아다녀도, 실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간혹 성질 더러운 목수한테 걸리면, 되레 개무시 당하기 십상!

시멘트 가루가 날리는 먼지 구덩이에서, 적어도 몇 년은 굴러야 제대로 된 기사로 인정받는다.

그 기간은 대략적으로 현장 하나를 완전히 마무리 짓는 시간으로 정해진다.

‘그걸 모르니, 저런 소리를 하지.’

녀석이 인상을 쓰거나 말거나, 설문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진짜 보물이지.”

얼굴 가득 웃음을 보이는 내게, 한석이 물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이런 자료들을 들고 어떻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을까?’

회의장 뒤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기 뒤에 팔짱 끼고 있는, 최 과장 알지?”

한석이 즉각 답했다.

“당연히 알지 말입니다. 칼로 재단한 것처럼 현장을 진행하신다는 KT팀의 자랑, ‘깐깐돌이’ 최 과장님 아니십니까?”

존경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포함하여 몇몇 과장은 한 교수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교로 특강을 갔었기 때문에 후배들 대부분은 그를 알고 있었다.

한석이 감격에 겨운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최 과장님이야말로 제 롤 모델이십니다.”

‘훗, 최 과장 현장을 보기나 했어?’

직접 봤다면, 칼 어쩌고 하는 표현이 많이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했을 텐데.

‘보통 사람들은 입이 딱 벌어지지. 마감은 더더욱 그렇고.’

그의 현장에는 타 건설사의 견학자들을 안내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우리 팀 4대 교두(敎頭) 중 한 명이지.”

“교두…… 라고요? 무협지에 나오는 금군 교두?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어?”

“으엑! 촌스럽게시리…….”

한석은 뜨악하며 손발을 오그라뜨렸지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신입이든 경력이든 그들의 밑에만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어서 나온다.

이른바 컴퓨터 기사라고 해야 할까?

‘현장 기사’라는 타이틀에 딱 어울리는 실력과 배짱을 가지게 되니까.

“그 네 사람 덕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럼 KT팀의 명성도 그분들이?”

솔직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넷이 없이 나 혼자서 했었다면, 그렇게 많은 현장을 동시에 돌린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한석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럼 선배님이 하신 건 뭡니까?”

“뭐긴 뭐야? 난 그 사람들의 교두였지!”

한석이 나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이런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그저 어디서 저런 괴물들을 뽑았느냐고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최 과장이 첫 현장 사우디아라비아부터 따라와서 고생 많이 했지.’

최 과장이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 참. 저러니, 안 믿을 수도 없고.”

손에 든 설문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게 이런 거다.”

“에이, 최 과장님이 얼마나 전문가이신데요. 전 저분 특강 듣고 감동했습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현장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

한석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데, 전문가이고 뛰어난 최 과장이 왜 못하겠냐는 반문이겠지.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평범을 초월하는 완전함을 위해서는, 그렇지 못한 모든 것을 배제해야 한다.

창의적 생각이란, 어쩌면 완전함과 반대편에 위치하는 걸지도 모른다.

“저울의 양 끝단과 비슷한 관계 아닐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에 든 설문지를 보이며 물었다.

“넌 최 과장 같은 사람이 이런 설문을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되지도 않는 소리를 들은 듯, 한석이 귀를 후볐다.

그러고는 따지고 들었다.

“선배님! 무슨 그런 뚱딴지같은 말씀을 하세요? 저분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한단 말입니까? 하실 리도 없지만.”

정확히는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시도도 하지 않겠지만!

“내 말이 그 말이야.”

“…….”

“이런 생각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어.”

특별하다는 말에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어떤…… 사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 번도 직장 상사에게 까여 보지 않은 사람!”

“네?”

달리 말하면, 딱딱한 현실에 머리를 맞아 보지 않은 부드러운 뇌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인상 쓰는 녀석에게 말했다.

“선배님, 저 예비…….”

녀석의 말을 끊었다.

“군대를 직장이라고 하지 마라.”

직장은 제대 만기가 없는 군대와 같다.

“쳇!”

과연 최 과장처럼 완벽한 현장감을 지닌 사람이 시작부터 어설픈 건축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보는 순간 흠잡을 부분부터 눈에 들어올 텐데.

“안타깝지만 직장인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없어.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한석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 넌 자리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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