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85화
브리핑(06)
내 설명에 이해가 된다는 듯, 회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저게 가능하다? 그 말이제?”
“그래서 계열사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는 말이 회장의 마음에 드는 모양.
그는 흔쾌히 웃으며 물었다.
“무슨 협조?”
“전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뭐할라꼬?”
“공모전을 시작하기 전에 제 경쟁자가 알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아하. 공모전에 출품하고 나면 바꾸고 싶어도 몬 바꾸니까, 니 혼자 할 수 있다. 그 말이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회장이 말했다.
“그 정도는 문제 있겄나? 큰 손해날 것도 아이구마.”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확답이었다.
변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
“하모 가는 기 있는데, 오는 것도 있겄제?”
그의 속내를 왜 모를 것인가?
“그 제품을 제 현장에 쓰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원한 대답에 회장도 만족했다.
“마 됐다! 그라믄 질질 끌 거 뭐 있노?? 여서 물어보믄 되지.”
회장이 시멘트 사장에게 말을 이었다.
“일곱째, 우째 생각하노?”
핵심이 되는 신소재가 강철 합금과 시멘트.
그러니 관계자인 그에게 질문하는 것이리라.
시멘트 사장은 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요. 아부지.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도, 공모전에 나갈 정도에는 100% 완성될 겁니다.”
그리고는 헤벌쭉 웃으며 내게 물었다.
“이봐! 성훈이. 단가는 제대로 쳐줄 거지? 이거 만드느라 애 좀 먹었다고!”
“어련하겠습니까?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럼 좋아! 우리 것 좀 팍팍 넣어 달라고. 이거 안 팔리면 우리 회사 문 닫아야 돼!”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엄살을 부렸다.
기분 좋게 협상이 마무리되자, 회장의 물음은 강철 사장에게 향했다.
당연히 될 것이라 믿으며.
“막내. 니도 당연히 할 거제?”
하지만 철강 사장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사장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동시에 회장의 표정도 돌처럼 굳었다.
“와? 무신 고민?”
회장의 못마땅한 표정에도 사장은 고집을 굽힐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결단을 내린 얼굴이랄까?
“회장님.”
“회, 회장님?”
노회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공식 석상에서 부르는 호칭.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자는 의미가 다분했다.
회장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좋다. 말해 보그라. 뭐 땀에 그라는지.”
“회장님! 이 연구는 제가 회사를 물려받고 처음으로 시도했던 프로젝트입니다.”
회장의 불퉁스러운 대꾸가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도 저와 부하들은 그것의 완성을 위해서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본론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음인가?
회장은 쭈글쭈글한 눈썹을 치떴다.
“흥. 그래서? 여 니만큼 고생 안 한 놈도 있다 카더나? 다 좋다 그거야. 글타카믄 이거야말로 고생한 대가를 얻을 절호의 기회 아이가?”
성난 회장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지만 사장은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차분하게 답했다.
“성훈 군은 거의 완성단계라고 했지만, 저는 아직도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못 미더운 듯, 회장이 물었다.
“그기 참말이야?”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애초에 기대했던 효과는 나오지 않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살짝 짜증 어린 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막말로 저라고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겠습니까? 회장님의 기대에 못 미쳐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는 되려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의 표정도 갑갑해졌다.
안 된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거참!
하지만 송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뭐? 아직도 완료 단계가 아니라고?’
절대로 아니었다.
다시금 예전 기억을 되살려 봐도, 분명 두 회사는 거의 동시에 신소재를 개발했었다.
‘시멘트는 완료되었다고 했는데…….’
그는 ‘노력해 보겠다’는 말도 아니고, 공모전에 제출할 즈음엔 100%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철강 사장의 말이 변명을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단순했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을까?
두 신소재는 좋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지는 못할 거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었다.
다른 자재들에서 무게를 줄이지 못하면, 그 효과가 미비하기 때문이었다.
‘가성비가 나쁜데 누가 굳이 그걸 쓰겠어?’
하지만 운 좋게 두 제품이 동시에 나오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반드시 경량화가 요구되는 일부 분야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팔렸다.
그 덕에 해당 회사들은, 전문가들을 비웃듯 애초 예상을 몇 배 뛰어넘는 수익을 거뒀었다.
그 기사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철강 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의심 가는 게 당연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까발릴 수는 없었다.
‘뭘 근거로? 아까도 우연히 알았다고 했는데!’
그의 행동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삐딱하게 바라보던 회장이 ‘지금 말장난하자는 거냐?’는 투로 말을 뱉었다.
“그래서 약속도 몬 하겄다?”
“저는 못 지킬 약속 따위 하지 않습니다.”
“낸중에 출시 예정을 맞추겠다는 약속도?”
“못 맞추면 어떡합니까? 저 공모전이 출품되었을 때, 우리 제품이 완성이 안 되면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회장이 말했다.
“안 되믄 안 되는 대로 발표만 하면 되는 거지.”
“네?”
“성훈이 절마 설계가 말뿐이 아니다! 실제로 가능하다! 그것만 보이주고, 낸증에 완성시키면 될 거 아이가?”
“그래도…….”
사장이 머뭇거리자, 회장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개발하는 거는 확실한 사실 아이가? 공모전 당선되고 바로 공사하나? 아이거든? 실시도면 맹글고, 업체 선정하는 데만 일 년 훌쩍 넘어갈 건데? 그 안에도 몬 맹글어?”
그는 답답하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것도 아이믄 성능이 쪼매 떨어져도, 경량화된 건 확실하다 아이가? 그라고 성훈아. 그 정도는 설계에 큰 지장 없제? 니, 그 정도 유도리는 있다 아니가? 안 글나?“
막무가내의 회장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니, 속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네.’
그의 말에 재빨리 답했다.
”네. 뭐. 그래도 되고요.“
”요는 말만 맞추면 된다 아니가? 맞제?“
”맞습니다. 회장님.“
다시 회장의 시선이 사장에게로 향했다.
”그라고 먼저 나오면 둘이서 입 딱 맞춰서 출시 시기 맞추고! 그기 뭐 어렵노? 아가 와 그리 유도리가 없노? 유도리가?“
”그래도 그건…….“
설득이 되지 않자 심사가 뒤틀렸는지 회장은 비비 꼬는 투로 말을 던졌다.
“그것도 아이믄, 그 안에 맹글 자신이 없는 거야? 미스릴을 맹글라카는 것도 아이고, 뭐가 그리 복잡노? 으잉!”
자존심 상한 사장은 얼굴을 붉혔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 없어 보이는 모습도 아닌데.’
철강 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 저도 수많은 직원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사장입니다. 제 입장도 고려해 주십시오.”
“되는지 안 되는지만 말하그라!”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이 안건은 연구팀은 물론이고, 기획팀하고도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의 눈 아래가 꿈틀거렸다.
“협조할 생각은 있고?”
“저라고 왜 이리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겠습니까?”
“그라믄 기다리 주께! 시간이 얼매나 필요하노? 30분이믄 되나?”
선심 쓰듯 기다리겠다는 회장이었다.
당장 결론을 내놓지 않으면 경을 치겠다는 표정.
회의 소집하는 데만도 하루는 걸릴 텐데…….
사장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사흘은 필요합니다.”
“뭐! 사흘?”
30분을 준다고 했는데 사흘이라니!
회장이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었다.
“무신! 말 몇 마디 하면 되는 거를 사흘이나 달라카노? 지금 당장 전화 몇 마디면 되겠구만.”
회장이 역정을 내든 말든, 사장은 침착한 표정으로 뒤를 향해 물었다.
모두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박 전무, 자네 생각은 어때?”
전무는 회장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보좌를 잘못하여…….”
하지만 그는 회장의 눈총에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회장이 호통쳤다.
“당장 전화 안 하나? 내 꺼 빌리주까?”
“송구스럽습니다. 회장님.”
사장의 사과에 회장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어떤 말로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고개 숙임.
‘회장님도 딱히 명분은 없어 보이는군요.’
어떡할 수 있나?
막내 아들놈 주리를 틀 수도 없고.
회장이 씩씩거리며 분을 삭였다.
“잘하는 짓거리다. 으잉! 명색이 사장이라 카는 기! 직원들한테 질질 끌리댕기는 꼬라지하고는!”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뿐이지, 불같은 성격은 여전했다.
속에서 솟구치던 불이 입 밖으로 퉁겨져 나왔다.
“그래가 무신 노무 사업을 하노! 당장 때리 치아뿌라!”
내 귀로 사장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러면 그렇지! 오늘은 왜 아버지 입에서 저 말이 안 나오나 했습니다. 형님.”
시멘트 사장이 중얼대며 불평하는 소리였다.
반면 중공업 사장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저거 저러시다가 아부지 뒷골이라도 땡기믄 큰일인데?”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막내는 평소에는 아부지 말씀이라면 껌뻑 죽는 놈이 오늘은 왜 저러냐?”
“그러게요. 평소에는 안 개기는 놈이 오늘은 좀 이상하네요.”
중공업 사장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합금 연구 말이야. 아직 끝이 안 보인다는 말이 정말이냐?”
“네? 무슨 소리세요? 얼마 전만 해도 지가 먼저 완성한다면서, 저보고 긴장하라고 하던데?”
“흠. 그래?”
그의 말에 시멘트 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엇! 그럼 나한테 뻥 쳤다는 말이네? 저게! 막내한테 질까 봐서 직원들을 얼마나 쪼아댔는데…….”
시멘트 사장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중공업 사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막내를 주시했다.
“흠. 그랬단 말이지.”
한편 속은 걸 안 시멘트 사장이 흥분했다.
“저게 어디서 개구라를 치고 있어? 아버…….”
흥분해서 당장에라도 고자질하려는 그를 중공업 사장이 팔로 제지했다.
“잠시 있어 봐라. 녀석도 생각이 있어서 하는 것 아니겠냐?”
“생각은 무슨 생각?”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그러게요. 돈 냄새가 풀풀 나는 걸 지나칠 놈이 아닌데…….”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구만.”
시멘트 사장이 형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
“뭡니까? 그 꿍꿍이가?”
“낸들 어찌 알겠냐? 그나저나 아버지 더 흥분하시면, 혈관 터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에도 회장의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시뻘건 안색에, 입을 꾹 다문 모습.
‘진짜,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겠네. 이걸 어쩐다?’
작게 한숨을 쉬는데, 어제 한 교수가 토닥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성훈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만 마라.’
나로서도 아직 현재 그룹은 이용해 먹을 구석이 많았으니, 굳이 사이를 벌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지켜볼까?’
사흘 안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나도 굳이 불필요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입맛을 다시며, 철강 사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형제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뚱하니 천정을 보는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철강 사장님과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는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킁! 느그들 끼리 알아서 해라. 나는 간다.”
철강 사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네. 이해해주게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회장이 돌아서며 사장들에게 호통쳤다.
“그라고! 느그들은 몽땅 따라와!”
“네!”
사장단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무슨 꿍꿍인지 보겠습니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말을 꺼냈다.
“이로써 브리핑을 마칩니다.”
스크린을 끄고 곽 부사장에게 말했다.
“부사장님은 제 방으로 오세요.”
혹시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