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82화 (382/427)

건축의 신 382화

브리핑(03)

-위잉.

‘무슨 소리야?’

“인자 시작인기라. 저거 보래이.”

회장은 연신 흥겨운 소리를 질러댔고, 스크린을 본 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던 틈새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뭐, 뭐 하자는 거냐? 왜 자꾸 벌어져?’

-철컥!

틈새의 확장이 멈췄다.

용건이 끝난 듯, 카메라는 천천히 지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부릉! 부릉!

‘웬 굉음이?’

어안이 벙벙한 사장의 귀에 노인 특유의 쇳소리가 들려왔다.

“니는 몇 년이나 같이 있었으믄서, 성훈이 절마를 그리 모리나. 에잉!”

-부릉. 부릉.

그 소리는 카메라의 하강에 따라, 점점 커졌다.

‘캐터필러!’

광산에서나 쓰이는, 그 몬스터 트럭이 점점 확대되어 눈을 채웠다.

최대 적재량 363ton!

그야말로 괴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개조를 한 듯, 트럭에는 적재함 대신 평평한 철판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타이어 하나가 웬만한 승용차 크기는 넘을 듯!

‘어디서 나온 거야?’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트럭들이 아스팔트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줄지어 달리는 방향으로 보아 목적지는 사장이 의아해했던 레일의 아래쪽이 분명해 보였다.

건물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뒤편에서도 이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치뜬 사장의 눈꺼풀이 한계까지 올라갔다.

‘저걸 나르겠다는 거냐? 집을!’

“이, 이게 뭔 일이냐?”

사람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인 듯.

입 달린 자는 다들 한마디씩 하는지, 웅웅대는 벌떼의 파장으로 회의장이 울렁거렸다.

그때 성훈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압둘 왕세자는 쿠웨이트가 대표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투덜대더군요.”

어쩔 수 없었겠지.

역사가 짧으니 전통이랄 게 없고, 쿠웨이트가 있던 땅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아무 쓸모없는 불모지였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버려진 땅.

청중을 아우르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건물을 만들어줄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성훈의 말이 귀로 들어갈 리 있나?

저마다 옆 사람과 얘기하기에 바빴다.

귀는 옆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설명은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회장의 감탄 어린 음성이 들렸다.

“오호! 40층 이하로는 기반시설인갑다? 저거는 안 움직이는 걸 보니까.”

미처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지요. 필요한 시설들이 많을 테니까. 병원, 수영장, 헬스장, 상점…….”

어느새 회장은 스크린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사장은 성훈을 힐끔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리 귀띔이라도 줄 것이지. 녀석!’

회장이 미간을 모으며 눈에 힘을 줬다.

“저거. 다 옮길 생각인갑네?”

그의 말처럼 각 객실 간의 틈이 다 벌어지자, 집들이 줄줄이 레일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크르릉. 칙!

화면이 흔들리는 느낌!

가로로 이동하던 집들이 일제히 레일에 올라타는 소리였다.

-우우웅!

세로로 선 기차가 저런 모습일까?

천천히 객실 간의 차이를 벌리더니,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섰다.

-위잉!

질서정연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회장이 건설사장에게 툭 말을 던졌다.

“그란데 저거 참말로 가능한 기가?”

목을 축이다가 날아온 불시의 물음에, 사장이 버벅거렸다.

“켁켁.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저 녀석이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를 놈도 아니고.”

다시 한 번 성훈에게 눈총을 보냈다.

뭘 알아야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당장으로서는 기안자인 성훈을 믿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수직 이동을 끝낸 객실이 대기하던 거대 트럭의 등에 몸을 실었다.

-철컥! 철컥!

객실을 고정하던 걸쇠가 풀리는 소리!

그 중량을 버텨내려는 듯, 트럭의 육중한 타이어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부릉! 부릉!

마후라가 터지기라도 한 것일까?

트럭은 거친 굉음을 토해내며, 레일로부터 인계받은 육중한 손님을 나르기 시작한다.

***

“형님. 저거 이사 가는 모양새 아닙니까?”

스크린을 가만히 보던 막내, 철강 사장이 옆의 형에게 말을 건넸다.

“뭐? 이사? 집을 통째로?”

어이없다는 중공업 사장의 대꾸에 그는 자신의 추측을 덧붙였다.

“그렇잖습니까? 멀쩡한 집을 가져가는 게……. 이해는 안 되지만, 집도 짐이라고 생각하면…….”

“흠…….”

“그리 보면, 이사 말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보통 이사라고 말할 때는 집을 옮기는 게 아니라, 짐을 옮기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집을 옮긴다고 이사가 아닐 이유는 없지 않나?

‘저기 사는……. 돈이 썩어나는 미친놈들이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중공업 사장은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라……. 스케일로 치면 세계 최고다. 집을 통째로 가져가다니…….”

허나 그 이전의 의문.

“그런데…… 저걸 뭐로 옮기려는 걸까요?”

“글쎄…… 나라고 알겠느냐?”

무조건 뗀다고 끝나나?

목적지에 도착해야 이사가 완료되는 거지.

어찌어찌 객실의 분리 목적은 이사라고 결정지었지만, 그 물음에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얼빠진 표정으로 상대를 보기만 할 뿐.

철강 사장이 트럭에 실린 집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저거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흐흐흐. 난들 알겠냐?”

중공업 사장은 별 관심 없는 듯했다.

하지만 철강 사장은 뭔가를 가늠하는 듯, 눈매를 좁히다 중얼거렸다.

“저거 철이 못해도 50톤은 들어갔을 것 같은데…….”

그리고는 물었다.

“형님. 저거 옮기려면, 컨테이너선 아니면 어렵겠죠?”

중공업 사장이 조선소를 운영하니, 그에게 묻는 것이리라.

아랫입술을 툭 내밀더니 그가 말했다.

“쩝. 한꺼번에 이사 간다 치면…… 가능하겠지만. 피난 가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가겠느냐?”

“흐음…….”

“그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이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사람이 먼저 가도 집이 없을 텐데. 같이 배 타고 갈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빨라도 한 달 뒤에나 도착할 텐데.”

철강 사장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미련한 짓을 할 리가 없는데. 녀석이…….’

그리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 비행기밖에 없겠네요. 그것도 거대한 화물 수송기. 저게 들어갈 만한…….”

저만한 용량과 중량을 버틸 수송기를 떠올리려 고민하는 그에게 중공업 사장이 말했다.

“수송기가 있다고 해도 문제야.”

“네? 왜요?”

“공항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저 부지에는 활주로를 놓을 수가 없어. 너무 짧아. 최소 2km는 되어야 한다고 하던데.”

“항공모함을 보면 500m 될까 말까 하던데…….”

“얌마! 그건 전투기일 때고. 그렇게 이륙하다가 집 다 부서질걸?”

“그럼 방법이 없는데요? 저 녀석 뭔 생각으로?”

한편 성훈은 사장들의 쑥덕거림을 보고, 피식 코웃음 쳤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훤히 보이거든요!

‘그 정도 생각도 안 했겠습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장님들!’

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성훈의 바람대로, 그들의 의문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어엇! 형님. 저기요.”

천천히 선회하던 카메라는 어느새 건물을 넘어 해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넘실대던 파도가 뒷걸음질 친다.

기다렸다는 듯 땅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변화에 중공업 사장은 혀를 찼다.

“허. 간척사업을 하겠다는 거냐?”

이내 물기 없는 마른 땅에 아스팔트가 도미노처럼 촤르륵 깔려간다.

그 위로 호쾌하게 하얀 선이 그어졌다.

활주로 완성!

중공업 사장은 기가 찬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허!”

“하하하! 순식간이네요.”

“그런데 막내야.”

“네. 형님.”

“저래도 되는 거냐? 부지가 정해져 있는데?”

타당성 있는 의문이었다.

팔짱을 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글쎄요. 저것도 부지 활용이 아닐까요? 바다에서 뭘 하든지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영토 확장도 겸사겸사 되는데 싫어하겠습니까?”

“그런가?”

세상에 예외 없는 규칙이 있던가?

이 부분에서 성훈도 할 말은 준비하고 있었다.

‘당신네들도 부지 확장하던지!’

거장들에게 뻔뻔스럽게 대꾸할 생각이지만.

저 멀리 창공에서 흐릿하게 보이던 비행기들이 속속들이 활주로에 안착했다.

그 모습에 철강 사장의 눈매를 좁혔다.

‘정말 비행기로 옮기시겠다? 저 무게를?’

그는 슬며시 팔짱을 끼며, 의자로 몸을 기댔다.

‘흠. 우리 연구를 이용하시겠다?’

중공업 사장이 물었다.

“왜 문제라도 있냐? 왜 그리 심각하냐?”

그는 눈썹을 으쓱하며 둘러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네가 그럴 때는…….”

그 순간 철강 사장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엇! 저기 형님 좋아하시는 거 나오는데요?”

“어디서 얄팍한 수작을?”

그가 생각하기에, 아버지의 영악한 면을 가장 많이 닮은 녀석이 막내였다.

하지만 막내의 수작에 못 이긴 척, 고개를 돌린 그는 다음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막내의 말마따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속셈이 있기는 한데……. 엇!’

공항 간척지 우측 바다에 줄을 긋듯이 방파제가 형성되더니 항만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줄줄이 정박하는 요트와 카고선.

저 화물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찌 모르랴?

이 건물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저 배가 운반할 화물은 집밖에 없으리라.

그걸 본 중공업 사장이 눈을 번쩍거렸다.

‘저 배들을 우리가 납품한다면?’

코딱지만 한 요트로는 어림도 없었다. 다른 짐도 아닌, 집을 실어야 하니까.

새 건물을 지은 압둘 왕세자가 중고 화물선을 구입할까?

‘그럴 리가 없지!’

그건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항만의 널따란 부지.

‘저 널따란 땅에 우리 회사 크레인을 설치할 수만 있다면……. 꿀꺽!’

항만 유통의 중심으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화물선이 필요하지. 그리고 쿠웨이트의 바다는 전부 유전!’

머리를 어지럽히는 돈 냄새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아쉽게도 벌써 적재가 끝난 것인지, 스크린에서는 객실을 실은 수송기가 양 날개에 불을 뿜으며 하늘을 향했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활주로의 빈자리를 또 다른 수송기가 채웠다.

***

성훈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 건물은 ‘꺼지지 않는 불’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설계의 컨셉을 설명하려는데, 사장들에게 그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

사장 하나가 대뜸 큰 소리로 물었다.

“이봐. 팀장! 집이 왜 움직이는 거야?”

중공업 사장이 그에게 주의를 시켰다.

“어허! 아버지도 계시는데…….”

조용히 있다고 해서 회장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너무 흥분했다고 여겼던 듯. 헛기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큼큼. 내가 좀 성급했군. 현재 시멘트 사장이라네.”

성훈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까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을 들려줄 수 있나?”

“집이 왜 움직이는 거냐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아! 그래야 잘 팔리지!’

무엇보다도 저 정도는 되어야, 압둘을 기죽일 수 있다. 세상에 안 본 게 없는 압둘이라도, 집이 통째로 움직이는 건 못 봤을걸!

성훈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제 질문에도 답해 주시겠습니까?”

“뭘 말인가?”

“집은 왜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그야…….”

무슨 답을 할 것인가?

너무 당연한 의문을 말했는데, 성훈은 그게 왜 당연하냐고 되물으니 당황할 수밖에.

누가 집은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정의했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누가 저걸 옮긴다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성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부동산으로 분류되어서요?”

“아니…… 그건 아니네만…….”

버벅거리는 그에게 성훈이 말했다.

“그럼 따로 대답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가 머쓱하며 말을 이었다.

“한 번도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군.”

머리를 긁는 그를 보며, 성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은 그렇죠.”

집은 부동산(不動産)이다. 움직일 수 없는 재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고정관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정정하지. 집은 움직일 수 있는 걸로.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할지는 염려가 된다네.”

그는 동의를 구하듯,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들, 생각해 보시지요. 저 무거운 걸 옮기려고 하면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들지, 게다가 저렇게 움직이면 망가지지 않겠어? 가구도 한번 옮기면 상하는데.”

충분히 타당성 있는 의견이었다.

사장단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중공업 사장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런데요?’라며 인상을 찌푸리는 시멘트 사장과 잠시 눈을 맞추고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집이 움직이는 사실’이 아니라, ‘왜 움직여야 하는가?’가 아니겠어?”

그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다들 ‘집이 움직인다는 사실!’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때.

그가 성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시나마 마음이 기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돈 냄새가 풀풀 난다 해도, 압둘이 이 안을 선택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성훈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눈썹을 으쓱했다.

‘나를 납득시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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