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80화 (380/427)

건축의 신 380화

브리핑(01)

한 교수가 용건을 꺼냈다.

“내일 왕 회장께서 방문하신다면서?”

한 교수의 물음에 성훈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모를 수가 있냐? 회장 맞이한다고 온 사무실이 도떼기시장 같은데?”

“네. 사장단이랑 같이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갑자기 왜? 왕 회장이 여기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았냐?”

왕 회장이 성훈에게 관심이 많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KT에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장실에는 많이 들렀음에도 말이다.

그만큼 이번 방문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KT 팀원들로서는 처음으로 기업 총수를 만나는 것이었다.

“다른 계열사 사장들 때문이겠죠.”

“훗. 그 어른이 아들들 눈치를 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한 교수는 코웃음 쳤다.

왕 회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반응이리라.

“그리고 제 부탁도 있었고요.”

“무슨?”

“처음 KT 팀을 만들고 나서일 거예요. 회장님이 관심을 두시면, 계열사 사장들과 원하지 않는 기 싸움을 하게 된다고 말이죠.”

“그 소문 때문에?”

한 교수라고 그 소문을 모를 리가 있나?

왕 회장의 숨겨진 사생아라는 소문 말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뜬소문이었지만, 이미 퍼져버린 루머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네. 그 소문요.”

“부인하지 그랬냐?”

“부인하면요?”

“DNA 검사라도…….”

성훈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다고 쉽사리 가라앉을 소문인가?

음모론자들은 그 또한 조작이라고 할 게 분명한데.

“다 쓸데없어요. 그냥 놔두면 돼요. 저한테 직접 피해가 오는 건 없으니까.”

성훈의 부정이 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루머라는 게 그런 것 아니던가?

회장이 호통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고.

서로의 얼굴에 먹칠만 할 뿐이다.

근거라고는 일절 없는 뜬 소문이었던 것이 성훈의 승승장구와 함께, 이제는 실체를 가진 소문이 되어, 그룹 내부를 떠다니고 있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은 더 신나서 떠들어 댈 테니까요. 음모다. 조작이다. 하면서요.”

정작 성훈은 그 소문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의외로 그 소문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았다.

어떻게 회장의 비호 없이, 회사 내에 자기 팀을 만들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걸 아는 한 교수가 혀를 찼다.

“쯧쯧. 어쩌다가 그런 소문이 나서…….”

지금의 KT 팀을 만든 성훈의 노력보다는, 회장의 후원 때문에 가능했다고 폄하 당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 말에 성훈은 속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 소문이 났을 때, 은근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자신이 생각나서였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게 있었기에,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죠.’

곽 이사나 현재 건설 내부의 이사들이 성훈의 힘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그 이후의 약진은 순전히 성훈의 노력이었지만!

성훈이 손을 휘휘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는 그 소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킁! 당연하지. 널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겪어봤다면……. 당연히 그런 소리 못하지!”

“하지만 처음에는 사장들이 많이 경계했었거든요. 뭐.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었죠.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한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그래서 왕 회장께서 일부러 여기로 발길을 안 하신 거로구만.”

“그렇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왕 회장에게 경원시 받는다고 걱정을 했구만.”

여기서 우리란, 대목장 이하 학교에 있는 성훈의 관계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죄송합니다.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지나간 일이니 뭐.”

입맛을 다시던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방문하시는 거냐?”

“걱정돼서겠죠. 이번은 좀 다르잖아요.”

한 교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공이 아니라, 설계라서?”

“그렇겠죠. 이쪽으로 보여드린 게 없으니까.”

스타 타워를 함께 설계한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성훈이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회장이 보기에는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보여드려. 안심하실 수 있도록.”

성훈이 말을 이었다.

“네. 그것도 있겠지만, 요즘 제가 너무 잘 나갔잖아요. 그러니까.”

“의욕이 넘쳐서 무리를 할 수도 있다?”

성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그걸 방지하려고 이 인원들을 다 불러모은 건데. 흐흐.”

“그래 봤자. 고만고만한 피라미들이잖아요.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그분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려나?”

한 교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성훈이 키를 꽉 쥐고 있으니 그럴 위험은 없어 보였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세계를 상대로 하는 승부에, 전문가를 모두 불러모아도 모자랄지도 모르지.”

“응원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그런데, 회장이라고 별다르랴?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단들은 왜 오는 거냐? 상관도 없잖니?”

성훈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제가 데려오라고 했어요.”

“하하. 벌써 사장들을 부릴 만큼 큰 거냐?”

“에이. 무슨 소리세요. 부탁드릴 일도 있고 하니까 부르는 거죠. 설계 소개도 할 겸.”

부탁이라는 말에 한 교수가 물었다.

“사장들에게? 무슨 부탁?”

“계열사에 심어뒀던 애들만으로 충분할 거로 생각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더라고요.”

“어떤 것 말이냐?”

“자재 때문에요.”

“자재?”

“신소재를 좀 도입하려고 합니다.”

한 교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신소재를 쓰려고?”

“네. 화학 쪽이랑 철강 쪽에서 개발 중인 소재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훈을 직시하며 입을 오므렸다.

“오호!”

“애들이랑 얘기하는데, 신소재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오호! 신소재라…….”

흥미로운 이야기에 맞장구치던 한 교수가, 속셈을 알겠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걸로 거장들과의 승부에 우위를 점하시겠다?”

“적어도 설계에서 오는 경험 차이를 좁힐 수는 있겠죠. 아주 조금.”

성훈의 대꾸에 한 교수가 빙글거리며 놀렸다.

“몸 사리는 거냐? 엉?”

“오롯이 실력만으로 덤비기에는 제가 너무 딸리죠. 새로운 기술의 도움도 좀 받아야 균형이 맞죠.”

“설계만으로는 자신이 없으시다?”

“놀려도 소용없습니다. 베테랑을 상대로 맞짱 뜰 정도로 제가 겁 없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없느냐고 놀리기는 했지만, 오히려 실력 차를 인정하는 성훈이 한 교수는 마음에 들었다.

‘이미 느끼고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

흐뭇하게 웃으며, 한 교수가 물었다.

“그래서? 계열사의 지원을 좀 받겠다?”

“네. 개발 완료 단계에 있는 소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거냐?”

호기심이 동한 듯, 그가 얼굴을 바짝 앞으로 당겼다.

“강철 합금인데, 성공하면 강철의 3배 정도의 강도를 가질 수 있답니다.”

“오호! 그래?”

“가격은 좀 되지만, 그래도 절약할 수 있는 철근의 양을 생각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죠.”

“흠…… 그럼…….”

“건물을 가볍게 만들 수 있죠. 그건 제 설계에 있어서도 큰 장점입니다.”

성훈이 계획하는 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암! 중량을 줄일 수만 있다면, 설계의 범위가 훨씬 넓어지지.”

“이번 기회에 계열사들과도 연을 좀 맺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그 회사들의 장비와 소재들도 이용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죠. 제가 도움될 것도 좀 있거든요.”

성훈의 말에 한 교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그 회사에 도움될 게 뭐 있다고?”

“신소재 관련해서 정보를 줄 수도 있고…….”

한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서라! 아는 거라고는 건축밖에 없는 놈이. 흐흐흐.”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건만, 성훈은 툴툴대며 대꾸했다.

“왜 제가 건축밖에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성훈으로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미래에 관련된 지식을 가급적 활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활용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역사의 변화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옳겠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승부를 걸어야 할 타이밍이라고. 그리고 약간의 힌트를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현재는 변했다.

‘내 존재 자체가 원인인데 뭐.’

적어도 십 년 뒤까지는 어떤 소재들이 나오는지 대략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힌트를 줄 수는 있으리라.

허나 그 속을 한 교수가 어찌 알 수 있을까?

터무니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야! 네 녀석은 지금만 해도 충분히 괴물이야.”

성훈이 말없이 미간을 좁히자, 그는 말을 이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말이다.

“난 지금도 신이 충분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거든. 너한테 재능이라는 걸 몰빵한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요?”

“그런데! 다른 분야에도 재능이 또 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거든!”

성훈이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만약에 있으면요?”

도전적인 성훈의 말에, 한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냐? 그때는 신을 원망하는 수밖에!”

“두고 보세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성훈의 호언장담에 한 교수는 피식 웃다가, 표정을 바꾸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흠…… 그래도 필요한 사람만 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왜요?”

되묻는 성훈에게 그는 찜찜한 얼굴로 말했다.

“너, 해외로만 나돌아서 국내 사정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니냐?”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번에 애들 불러모은 거 때문에 말 많았던 거 알고 있지?”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사장도 말하지 않았던가?

계열사 사장들에게 투덜거려서 사정사정했다고.

물론 그 이면에는 계열사 간의 힘겨룸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왕 회장도 경영권을 많이 넘겼다고.”

“네? 벌써요?”

이전 삶에서의 왕 회장은 마지막까지 경영권을 놓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해 있었다.

‘이거, 너무 방심했는데…….’

성훈의 놀람에도 한 교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슬슬 다음 세대를 준비하시는 거지.”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들의 반발에 대비해서 왕 회장과 같이 부른 것이었다. 적어도 회장 앞에서 경거망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하에.

그런데 회장의 응원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에서 과연…….”

한 교수는 성훈의 일에 초를 치는 것 같아 말끝을 흐렸지만, 그의 염려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곽 부사장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물론 경영권 승계에서 건설사장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한 손으로 열 명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많은 게 반드시 득은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씀이시죠?”

“그렇지.”

염려하는 그를 보며 성훈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꼭 나쁘게만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응? 넌 걱정도 안 되냐?”

“제 설계에서 이득을 볼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건축은 종합예술.

망라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흐흐. 네 편이 될 수도 있다?”

“그렇죠.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반대하는 자들을 설득하겠죠.”

미처 이런 경우는 생각을 못 했던지, 한 교수가 비릿하게 웃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흐흐흐.”

“어쨌든 미루기는 늦었으니, 계획대로 가야죠.”

한 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말이다. 네 말대로 될 가능성도 크니.”

사람은 단순하다.

욕망이 때로는 감정을 앞지르지 않던가?

“어쨌든 대비는 단단히 해야겠네요.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

눈을 빛내며 결의를 다지는 성훈에게 물었다.

“뜻대로 안 되면, 달랠 거냐?”

성훈은 입술을 비틀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내일이 되어 봐야 알겠는데요.”

한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아서 잘하겠지.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만 마라.”

성훈이 그를 배웅하려 일어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 때문에 제 일이 어그러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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