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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77화 (377/427)

건축의 신 377화

건축가란?(05)

한석의 눈도 성훈을 바라보았다.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성훈이 굳이 건축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는 것에 관심이 쏠렸다.

“한석아, 건축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냐?”

그 말에 한석이 떫은 표정으로 물었다.

“건축이 즐겁다고요? 매일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데요?”

그의 반박에 성훈이 웃었다.

“당연하지. 현장을 돌아보는 건,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해. 아무리 계획을 잘해도 그대로 안되면 헛일이 되니까.”

한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힘들다면 몰라도 즐겁다니……. 저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다른 사람이 부탁한다고! 거기다가 돈까지 얹어 주면서! 거기다가 네 녀석이 말하는 명예와 존경은 덤이고 말이야.”

한 교수는 눈썹을 으쓱했지만, 한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유명한 사람이나 그런 거고요. 저 같은 애송이는…….”

“찾아야지. 내 작품을 사줄 사람을!”

“미켈란젤로라고 처음부터 사람들이 부탁했겠어? 아니,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건물이 아닌데, 투자를 하겠어?”

“그 말이 그 말이죠!”

발끈하는 한석에게 성훈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매혹될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라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김한석! 너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돈 보따리 들고 찾아올 거다.”

터무니없는 소리에 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가 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당연하지.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거든.”

한숨을 내쉬는 한석을 위로했다.

“그러니까 너만의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소신을 만들라고! 시간 투자 없이 돈과 명예를 탐하면…….”

한 교수가 그 말을 받았다.

“그건 모래성이지. 쿡 찌르면 무너지는.”

성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성급할 필요가 없어. 하루하루 벽돌을 쌓는 기분으로 탄탄하게 자신을 만드는 거야.”

“그래. 성훈이 말대로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알겠어요. 하지만 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입술을 삐죽이는 한석에게 성훈이 말했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브랜드가 완성되지.”

“그래서 언제 성공하겠어요?”

“운이 좋으면 일찍 발견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좀 늦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어. 진정한 실력자는…….”

“휴.”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이 있지.”

“그게 뭡니까?”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지.”

“그건 또 무슨 이유로요?”

“기본이 탄탄한 데다, 너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을 테니까. 남들과 전혀 다른.”

“그래 봤자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언제 올지도 모르고.”

녀석의 불안한 마음을 왜 모르랴?

답답해하는 한석을 한 교수가 위로했다.

“답답하고 더디게 보여도, 착실하게 전진하는 게 성공을 오래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야. 그리고!”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반드시 나타난다. 널 알아봐 주는 사람이. 이건 내 인생을 걸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교수의 호언장담이 그다지 미덥지 않은 듯, 한석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차피 그때가 되면, 교수님은 계시지도 않을 거면서…….”

어지간히 늙어서 성공할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허허허. 네놈은 어떤 성공을 바라는 거냐?”

“하지만 선배님은 이미…….”

그 말에 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아! 기도 안 차네. 너야말로, 비교할 놈이랑 비교해라. 딴 놈도 아니고, 이런 놈이랑…….”

“칫!”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런 맹랑한 놈을 봤나? 성훈이 이 녀석은 괴물이야. 사람 같지가 않아! 그냥 천재라는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놈이라고.”

“그리고 이번 건은 성훈이에게도 설계에서는 새로운 도전이란 말이다.”

“하지만 선배님은 이미, 스타 타워를 설계한 경험이…….”

“야! 그건 얻어걸린 거고. 어차피 세계에서는 알아주지도 않아. 코딱지만 한 한국에서 인정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한 교수의 냉정한 평가였다.

허나 그의 말, 어디에 반박할 점이 있는가?

KT 팀이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건설업계에서의 명성이었다.

성훈이 한국에서 50층짜리 건물 설계한 건, 건축계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의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성훈이도 그걸 아니까, 이번 공모전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거란 말이다. 안 그러냐?”

성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셈이죠.”

“그동안 착실하게 실력을 쌓았기 때문에 이런 기회도 오는 거란 말이다. 지금 한석이 네 경력으로는 턱도 없어!”

한석에게 호통치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저 명성 자자한 건축가들 사이에서 어깨를 겨눈다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모르겠냐? 성훈이가 이번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우란 말이다. 안 되는 깜으로 눈만 높이 두지 말고.”

성훈을 바라보는 한석의 눈빛이 바뀌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성훈이 머쓱하게 존경의 눈길을 피하며, 입맛을 다셨다.

‘딱히 큰 노력을 기울인 건 아닌데…….’

칭찬이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 성훈이 그런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도 뭐하고.’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한 교수의 칭찬을 듣고 있었다.

‘나 잘했죠?’ 하고 맞장구치고 뭐하고.

성훈이 눈을 데굴거렸다.

‘화제 바꿀 거리가 없나?’ 하면서 말이다.

다행스럽게 그런 어색한 상황은 금세 깨졌다.

“교수님, 성훈 씨가 그렇게 노력한 건 아닌 것 같던데요?”

“뭐! 응?”

한석의 말대꾸인 줄 알고 대뜸 호통을 치려던 한 교수가 말을 버벅거렸다.

“아! 소피아구나. 뭐, 뭐가 아니라는 말이냐?”

찻잔을 내려놓으며 소피아가 말했다.

“교수님 말씀처럼 말이 안 되잖아요. 다른 건축가분들과 비교하면 명성이 부족한 성훈 씨가 그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게요.”

“소피아,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 아니냐? 불가능을 가능으로…….”

소피아가 새침하게 말을 끊으며, 성훈에게 눈을 흘겼다.

“저도 들은 말이 있다고요.”

이실직고하라는 눈초리였다.

성훈이 당황하며 물었다.

“누, 누구?”

“…….”

“곽 이사님?”

“네! 곽! 부사장님요.”

“그, 그래……? 언제 만났어?”

“차 타러 가다가요.”

성훈이 볼을 씰룩거리며 투덜거렸다.

“입도 가벼우시지, 그새 그걸 또 말씀하셨대?”

아무리 입단속을 시켜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왜 소피냐고? 약점 잡힌 것도 아닐 텐데.’

하지만 코 닿을 거리에 있는데, 그 말이 안 들릴 리가 있나?

소피아가 물었다.

“왜요? 제가 들으면 안 되는 비밀인가요?”

“뭐 그런 게 비밀까지야…….”

한 교수가 턱을 내밀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별건 아니고요. 일이 풀리려고 하니까, 이렇게도 풀리더라고요.”

“뭐가?”

차를 들이켠 성훈이 대답했다.

“별건 아니에요. 이제 팀도 안정됐잖아요? 일머리도 잡혔고, 명성도 좀 얻었고요.”

“하긴 더 올라갈 곳도 없지.”

“이제 제가 딱히 간섭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겠더라고요. 다들 능력이 좋으시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 면면으로는 세상 어느 현장에 꿇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 KT 팀이었다.

달리 세계 최고라는 평을 듣겠는가?

찻잔을 들고 소파에 기대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제가 할 일이 없더라고요. 심심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던 차에 압둘이 공모전 한다는 소문을 들은 거죠.”

한 교수가 눈썹을 모으며 물었다.

“그래서 끼워달라고 했다고?”

“네.”

“간도 크다. 그분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더냐?”

성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안 된다면 그만인 거죠.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죠. 우리 사이에.”

“압둘이 아무 말 없이 승낙하더냐?”

아무렇지 않은 듯, 성훈은 차를 또 한 모금 머금었다.

“소피, 차 맛있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경험하고 싶다고 둘러댔죠. 설령 당선이 안 된다고 해도, 건설은 제가 해주기로 하고.”

“그래서 허락했다고? 그 깐깐한 압둘 왕세자가?”

‘저한테는 전혀 깐깐하지 않던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면서, 흔쾌히 승낙하던데요.”

“허허허. 그렇게 쉽게 되었다?”

“어차피 압둘이 결정권자니까, 시비 걸 사람은 없죠.”

주최자가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딴죽을 걸 건인가?

하지만 한 교수에게는 충격이었던가 보다.

참여한 건축가들 하나하나가 한 교수에겐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거장들이 아니던가?

눈도장만 찍어도 영광인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그렇게 쉽게…….”

그의 눈이 서서히 천정을 향했다.

소피아가 대견하다는 눈초리로 물었다.

“그래도 용케 허락을 얻어냈네요. 저도 압둘, 되게 깐깐하게 봤는데, 보기보다 좋은 사람이네요.”

하지만 마냥 좋은 친구는 아니지.

앞으로 삼 년간 공사 일정이 꽉 차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현장을 먼저 해달라고 말도 안 되는 땡깡을 부렸으니까.

그래도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석은 실망한 듯, 김빠진 소리를 냈다.

“에이. 그럼 그냥 대충 경험 쌓는 거예요?”

큰 노력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석은 흥미가 반감된 듯했다.

‘제 녀석이 따온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실망할 건 또 뭐냐?’

하지만 성훈도 처음에 받은 느낌은 그랬다.

‘이렇게 쉽게?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느낌.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찌른 거지만, 그렇게 덥석 허락해 줄 거라는 예상은 못 했거든.

‘다른 건설팀에게 공사를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한 교수는 아직도 천정을 바라보는 가운데, 소피아는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성훈 씨, 대충 경험만 쌓을 건가요?”

그녀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건 압둘 생각이고!”

그러고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 거면 시작도 안 했지!”

“그럼요?”

“쉽게 왔다고, 쉽게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뽕을 뽑아야지.”

한석이 투덜거렸다.

“그래 봐야 일등은 요원한데요. 뭘.”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우리 말고는 다 이름만 대면 아는 거장들이라고요. 휴.”

한석의 염려를 왜 모르랴!

그의 말처럼, 공모전은 제로섬 게임이다.

‘일등!’ 아니면 전부 ‘나가리!’

참가상 따위는 타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은 거장들과 함께 참여했다는데, 의의를 둘지 몰라도!

‘난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거든!’

한편, 소피아가 한석을 타박했다.

“한석, 그런 소리 하지 마! 누군 처음부터 거장 소리 들었겠니?”

“상대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넌?”

말을 해놓고도, 너무 기분 처지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던지, 한석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압둘 왕세자께 고마워해야겠네요.”

그의 말에 성훈이 코웃음 쳤다.

“확실히 압둘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해.”

“그런데요?”

성훈이 입술을 말았다.

“감사는 하지만,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고.”

꼬인 스케줄은 풀면 되지만, 기분을 푼다고 자존심이 회복되는 건 아니다.

소피아가 물었다.

“어쩌려고요? 그래도 고맙게 받았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이번뿐이야. 다음에는…….”

“다음에는요?”

소피아의 말에 성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압둘이 부탁하게끔 만들어야지.”

“제발 설계 좀 해달라고요?”

“그렇지!”

한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선배님, 저도 패기가 있는 놈이라, 이런 말씀 안 드리는데 말입니다. 무슨 수로 그 거장들을 이기냐고요?”

“한석이는 그만하고!”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한 교수가 성훈에게 물었다.

각오를 다잡은 표정이었다.

“승산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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