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76화
건축가란?(04)
무슨 가당찮은 질문이냐는 듯, 한석이 말했다.
“어떤 건축가라뇨? 건축주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 건축가임다! 건축의 스페셜리스트로서 당연히 건축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축가가 되어야죠.”
그러곤 되레 고개를 모로 꺾으며 물었다.
“그것 외에 다른 정의가 있나요?”
건축가란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칭한다.
건축의 스페셜리스트라는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당당한 한석의 말에 한 교수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건축가를 말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럼 뭐가 더 필요합니까?”
한 교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네 말은 음…… 직업인으로서의 건축가만 말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던 듯, 그는 말을 끌었다.
그의 심중을 짐작한 성훈이 덧붙였다.
“돈벌이라는 말을 하시고 싶었던 거죠?”
짝!
손뼉을 부딪치며, 한 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돈벌이! 딱 맞네.”
뚱한 얼굴로 한석이 물었다.
“그런데요? 돈벌이가 뭐 어때서요? 전 유명해져서 돈 많이 버는 유명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요.”
“성훈이가 묻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한 교수의 말에도 한석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많은 물주 마음에 들어서 큰 건물을 많이 짓는 게 짱이라고요.”
그리고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만요.”
한석은 가슴을 내밀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한석을 보며, 한 교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한석이 눈치를 보며 말을 맺었다.
“하, 하지만 제가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한석의 말에 한 교수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내 가르침에 문제가 있었나 보구나.”
그의 실망감이 눈에 보였던지, 눈을 데굴거리던 한석이 성훈에게 속닥거렸다.
“선배님? 제가 뭐 잘못 말한 거라도…….”
“난 어떤 건축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는데, 남의 집 지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뭔가 좀…… 안 맞는 답이지 않냐?”
그리고 성훈이 말을 이었다.
“돈을 보고 건축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한석이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에이. 그거야. 선배님 정도 되니까 그런 말씀 하시는 거라고요. 막말로 맨손으로 뭘 합니까?”
그러고는 한 교수에게 눈을 돌렸다.
“교수님도 그래요! 제자라고 다 같습니까? 성훈 선배님과 절 동격으로 보지 마시라고요!”
“누가 성훈이랑 비교했다고?”
“에이. 교수님 눈이 너무 높으신 거죠. 다른 사람들은 다 저처럼 생각한다고요. 선배님이야 학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으니 이런 고민 안 해보셨겠지만, 전 다르다고요.”
입술을 뚱하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처음이니까, 남의 집 지어주면서 돈도 좀 벌고 해야, 나중에 제가 하고 싶은 건축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남의 눈치 안 보고 말이죠. 안정적으로 가야죠. 안정적으로……. 네!”
“야! 녀석아!”
발작적으로 끼어드는 한 교수를 제지하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시작이니까 하는 말이다. 뭐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니까.”
한 교수의 얼굴을 힐끔거리면서도, 한석은 제 할 말을 마저 했다.
“시작이 다 미약하지. 어떻게 제 고집만 세우며,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갑니까?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건데요.”
그런 한석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주는 기회가 많은 청춘일수록 더더욱 성공할 거라 믿으면 바란다.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해도, 젊은 치기가 스스로를 세뇌한다.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전의 내가 그랬지.’
성공을 위한 시도가 없었기에, 딱히 실패한 경험도 없다.
‘하지만 인생은 실패작이 되었지!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도전을 거부한 데 대한 당연한 대가일 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행동은 한 교수가 더 빨랐다.
그는 탁자를 탕 치며 물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건축이 뭔데?”
“그야…….”
“넌 어떤 건물을 짓고 싶냐고?”
“그야…….”
“그야? 그냥 건축주가 지어달라는 대로 지어주는 거냐? 그럼 그 작품에 넌 어디에 있는데? 도면에 네 도장만 찍혀있으면 되는 거냐?”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붙였다.
“그럼 네가 건축주한테 물어보고 선 그어주는 사람이지. 그게 무슨 건축가야! 신념도 없고, 꿈도 없고! 애초에 돈 벌려고 건축을 배운 거냐? 4년 동안 배운 건 그게 전부냐?”
그의 일갈에 성훈이 작게 미소 지었다.
‘한 교수라면 저럴 만도 하지.’
건축이 좋아서 원래 전공이던 철학의 길을 포기하고, 졸업 후 다시 건축학과로 입학했던 그였다.
그런 만큼 한 교수에게 건축은, 철학이라는 학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었으리라.
그리고 제자들 돈벌이를 위해서 교수라는 일을 선택했을 리도 없지 않은가?
답을 못하고 버벅대는 한석에게 한 교수가 일침을 날렸다.
“그래! 넌 평생 제 소신도 없이, 남의 집 도면이나 그려줘라.”
“에이. 교수님도…… 나중에 명성을 좀 얻으면…….”
하지만 아직 한 교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중 좋아하시네? 말해줄까? 나중이 어떤지?”
좋은 말이 나올 리 있나?
하지만 한석이 잠시 멍한 사이, 그가 말했다.
“그냥저냥 늙어가다가 구청 앞에서 허가 도장이나 찍어주는 허가방이나 하게 되겠지.”
이 정도까지 말이 확장되자, 한석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아주! 악담을 하십쇼. 교수님!”
버럭 하는 한석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 교수가 비웃음을 지었다.
“흥. 악담 같으냐? 그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허가방을 하고 싶어서 건축사가 된 것 같으냐? 시작할 때부터 그냥 돈이나 사람들의 인정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얼굴이 붉어지는 한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목적을 달성한 거나 다름없지. 적어도 돈벌이는 착실하게 되니까.”
“교수님!”
“흥! 그래. 명성도 있겠지! 적어도 구청 직원들은 네 이름을 꿰고 있을 거다.”
기가 막히는 표정의 한석이 성훈에게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
‘선배님! 제가 그렇게 말을 잘못한 겁니까?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약 올리는 한 교수를 보며 성훈이 피식 웃었다.
한 교수라고 제자의 미래를 그렇게까지 단정 짓고 싶을 리가 있나?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라 할지라도, 원대한 꿈을 꾸다가 이루지 못한 것과 처음부터 소박한 꿈으로 시작하는 것은 다르다.
‘게다가 애초에 목표가 돈과 명예여서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성훈아, 이놈은 답이 없다!”
그는 꼴도 보기 싫은 듯, 쌩하게 고개를 돌렸다.
풀이 죽은 한석이 물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성훈을 통해서 답을 찾고 싶은 것일까?
“허가방이 되기는 싫은 거냐?”
성훈의 놀림에 한석이 발끈했다.
“선배님까지 그러실 겁니까?”
고개를 돌린 채 팔짱 낀 한 교수가 투덜거렸다.
“지금까지 내 수업은 뭐로 듣고, 성훈이한테 묻는 거냐?”
계속되는 비아냥에 한석이 짜증을 냈다.
“교수님께 물어보는 거 아니라고요.”
“뭐라고!”
“그만 하세요. 녀석도 나름대로 진지한 것 같은데요.”
“흥! 알았다.”
성훈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네 말대로 스페셜리스트가 맞아.”
한석이 한 교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거봐요!’
“하지만 의미는 약간 다르지.”
“뭐가요?”
“‘내 맘대로’ 스페셜리스트지.”
한석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성훈의 말을 기다렸다.
“의사를 예로 들면 편하겠네.”
“의사요?”
“사람들은 의사에게 몸을 맡기지.”
“네. 그런데요?”
“건축주에게는 몸이 아니라, 건물을 맡긴다는 게 다른 거지.”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요?”
“의사한테 몸을 맡기면서, 내 몸을 이렇게 해달라는 환자 봤어?”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환자가 인체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의 대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의사나 변호사한테는 꼼짝도 못 하면서.”
“선배님, 의료나 법은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럼 건축은 안다고 생각하는 거냐? 왜?”
한국은 기형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룬 나라다.
아니 기형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답을 못하는 한석에게 물었다.
“하긴 우리 아버지 세대에, 건축현장에서 일해본 사람들 찾는 건 어려운 게 아니지.”
“그렇죠.”
“그래서 그분들이 건축을 안다는 거냐? 4년간 건축만 죽으라고 판 우리보다?”
“그건…….”
‘그건 오만이지.’
지난 삶에서 현장을 많이 다녔다.
가구 일을 하다 보면, 아직 완공되지 않았는데도 주방과 붙박이장을 실측하러 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모든 것을 서두른다.
그런 이유로 주방에 타일 공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가구는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마감공사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 준공검사를 받고, 빨리 집을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8세대짜리 빌라였었지. 아마.’
그 현장에서 집주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가구에도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심했지만, 정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다른 사건이었다.
‘벌써 20년 전의 기억이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참!’
그는 뒷짐을 지고 현장을 거닐고 있었다. 안전모도 없이. 그때는 그게 당연했겠지만.
그가 건축소장을 불렀다.
‘어이. 김 소장!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그저 그가 전문가인 체하는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김 소장! 내가 건축을 모른다고 무시하는 건가? 내가 젊을 때 미장 데모도를 했었다고!’
그는 국가 공인 전문가인 건축사보다 자신이 집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듯 보였다.
그의 주장은 이거였다.
‘내가 현장에 모르는 건 없어! 내가 돈 주는 거니까, 내 말대로 하라고!’
거기다 더 어이가 없었던 건, 건축가의 태도였다.
굽실거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진정한 건축 전문가인 소장은 고개를 숙이고, 미장 보조 경험이 전부인 집주인이 현장을 주관하고 있었다.
‘주객전도도 그 정도면…….’
그 사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이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성훈이 뭘 하려는지 눈치를 챈 것인가?
한석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진지해진 한석에게 말을 이었다.
“벽돌만 쌓을 줄 알면, 건축에 대해 아는 거냐?”
“하지만 자기 집 아닙니까?”
“물론 자기 생각은 말할 수 있지. 그들의 생각을 모르면 설계를 시작할 수도 없으니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건축주의 의견은 ‘난 이런 집을 원한다’ 정도야.”
한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왜 그런지 알아? 그건 내가 전문가이기 때문이야!”
“그렇죠.”
“요청 외의 건축주의 다른 말은 월권이야.”
“꼭 그렇게까지 단정할 필요는…….”
“네가 의사인데, 환자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어떻게 할래?”
“…….”
“난 다른 의사를 찾아가라고 할 거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의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훈이 말을 이었다.
“있다면, 그건 돌팔이거나, 의술을 잘못 배운 거지.”
“하지만 한국에서는…….”
“잘못된 건 잘못된 거야. 삼풍 사고가 왜 일어났는데! 건축가가 단가 낮춰서 푼돈 빼먹으려고 그랬을까?”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관되지 않은 오더가 중첩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
몰상식한 건축주의 천박한 갑질이 만들어 낸 폐해였고,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건축가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건축가에게 신념이 있었다면, 공사를 중단하는 게 마땅한 행동이었으니까.”
조용히 경청하던 한 교수가 맞장구쳤다.
“암! 돈에 휘둘리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지.”
성훈이 그 말을 받았다.
“어쩌면 백화점을 지어봤다는 타이틀이 필요했을 수도 있죠. 그 사람에게는 명예가 될 테고. 다음 백화점을 따낼 수도 있구요.”
한 교수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이 말대로다. 돈과 명예 아니, 그 할애비가 온다고 해도,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게 있지.”
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교수님.”
뭔가 더 들어보고 싶은 듯, 한 교수가 물었다.
“그게 다냐?”
“그럴 리가요. 지금 말한 건, 건축가의 기본이고. 이것뿐이면 굳이 건축을 택하지 않았죠.”
피식 웃는 성훈을 보며, 한 교수도 마주 웃으며 물었다.
“훗. 건축을 택한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냐? 마저 말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