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75화 (375/427)

건축의 신 375화

건축가란?(03)

똑똑!

“들어오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렸다.

“성훈 선배님! 우리 왔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한석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한 교수와 소피아도 모습을 드러냈다.

절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따라 후배들도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살짝 긴장이 어린 얼굴들.

‘얼굴이나 익혀둘까?’

앞으로 나오며 내 소개나 하려는데, 한석이 선수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잘 봐둬! 우리 동문 중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선배님이시다!”

제 일이라도 된 것처럼 한석이 너스레를 떨었고, 그 덕에 후배들의 긴장도 한층 풀어졌다.

한석의 지시에 따라 두 줄로 정렬한 후배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반갑습니다! 성훈 선배님!”

힘찬 인사에 손을 들며 답했다.

“반갑다. 후배들. 김성훈이다.”

고개를 든 후배들의 면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급히 불러 경황이 없었을 텐데도 군말 없이 와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뭐라고 대답을 할 만도 하건만,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니야? 대체 나에 대해 뭐라고 들었기에…….’

웃으며 한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미간에 주름 잡힌 한석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 녀석은 또 왜 이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눈빛은 간절하달까?

‘뭔가 언발란스한데?’

그 옆에서는 한 교수가 그 긴장한 모습을 힐끔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장난을 치나? 하면서 인상을 살짝 찌그리는데, 소피아가 눈치를 주면서 중얼거렸다.

‘한석이 아는 척 좀 해줘요.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 앞에서 가오 좀 잡고 싶다! 그거냐?’

내 이름을 들먹이며,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다고 들었다.

꼭 눈으로 봐야만 아는 건 아니질 않던가?

녀석의 성격상 우리 관계를 부풀려 얘기했겠지.

하지만 그 당시에 나와 한석의 접점을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을 리가 만무하지.

‘녀석이 제대했을 때는 내가 학교에 없었으니까.’

나와의 관계를 증명하고 싶었으리라.

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말을 해뒀는지 몰라도, 잔뜩 기대한 후배들이 한석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녀석! 하나도 안 변했네.’

허세는 부리고 싶은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바짝 긴장한 모습이랄까?

거기서 발생하는 불균형이었다.

긴장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쉴 새 없이 목울대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못 알아채면 바보겠지.

한 교수도 그걸 보고 웃은 거였고.

하지만 한석을 따르는 후배들은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한석의 듬직한 등만 보일 테니까.

‘누굴 속이려고! 또 한 방 맞고 싶은가 보지?’

한석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간절하던 시선을 보이던 동공이 내가 접근하자, 해일 위의 종이배마냥 쉴 새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 맹랑한 녀석을 어떻게 할까?’

입술을 쓱 쪼개는데, 한 교수가 눈썹을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성훈아. 이번에 올라오는데, 학생회장이 힘 많이 썼어. 참가자들 시험도 남아 있었는데, 일일이 교수들 찾아가서 리포트로 조정하고…….”

긴장한 한석의 엉덩이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랬으면, 아마 다음 주 초에나 왔을걸?”

‘설마? 정말이냐?’

신뢰할 수 없다는 듯 한석에게 눈을 돌리자, 녀석은 자세를 바로 하며 외쳤다.

“후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선배님!”

한 교수가 고개를 작게 갸웃했다.

‘칭찬해 줘라. 좀!’

내가 무슨 힘이 있나?

한 교수와 소피아가 한목소리로 갈구는 데야…….

‘운 좋은 줄 알아.’

후배들이 없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한석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옳았다.

앞으로도 계속 후배들 관리는 녀석이 도맡아 할 텐데, 그 정도 입지는 굳혀줄 수 있지 않나?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우리 한석이 고생 많다는 얘기 들었다. 이번 공모전 기간에도 네 활약을 기대하마.”

감격스러운 미소로 한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맡겨만 주십시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예전의 히죽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숙소 알지? 오늘은 급할 거 없으니까, 일단 애들 거기서 쉬도록 조치해.”

한석이 허리를 꾸벅 숙이고 후배들을 인솔했다.

나가는 잠깐 사이가 참기 힘들었는지, 한석이 입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봤지! 짜식들아. 선배님이 내 이름 부르는 거. 우리 한석이라도 했잖냐! 우리 사이가 이래! 글구 어떤 놈이 내가 구라친다고 했어? 엉! 나와!”

아까의 긴장은 흔적도 없고,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니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말이야. 이 KT 팀의 실질적인 이인자, 민수 형님은 나 없이는 못사는 분이야. 나하고 의형제나 마찬가지라고!”

제 딴에는 소곤거린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흥분된 목소리는 사무실을 울리고 있었다.

‘민수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자리에 있었으면 인상을 찌푸렸으리라.

그 한없이 착한 민수가 말이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한석이 말했다.

“선배님, 숙소 배정만 하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셔!”

***

한 교수와 악수하며, 성훈이 인상을 썼다.

“쓰읍. 저게 나가라니까…….”

한소리 하려는 걸 한 교수가 말렸다.

“들떠서 그런 거야. 너 만난다고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냐?”

한석을 변호하려는 듯,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학과 역대 최고의 학생회장이야.”

“네?”

“진짜야. 너보다 카리스마는 없어도 애들 잘 챙기고, 일도 꼼꼼해. 입으로 점수를 까먹어서 그렇지…….”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어쨌든 오신다고 수고 많으셨어요.”

그 옆의 소피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소피도 반가워. 바쁘면 안 올라와도 되는데…….”

한창 지점 때문에 바쁠 거라 생각해서, 미안한 마음에 한 말이었는데 오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 것일까?

그녀는 뚱한 얼굴로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흥. 누구 좋으라고요?”

‘뭐지? 이 맥락 없는 대화는?’

아직 한국 문화에 적응이 덜 된 건가?

아닌데? 대목장 어르신하고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성훈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음…… 여자는 어려워.’

한 교수가 뜨끔한 표정으로 소피아의 눈치를 살폈다.

‘벌써 시작인 거냐? 아직 분위기 파악도 안 됐는데?’

그리고는 다급하게 성훈에게 물었다.

“성훈아. 여, 여기 커피는 어디서 타면 되냐?”

“저기 오른쪽으로 돌아가시면 탕비실 있는데요?”

눈치 없는 성훈의 말에 한 교수가 눈동자를 휘돌렸다.

‘눈치 없는 녀석! 커피나 타오라는 말인데.’

성훈을 보내놓고 소피아를 달래보려 했건만, 전혀 먹히지를 않는 것이다.

‘여기서 둘이 다퉈 봐야…… 쯧.’

한 교수도 소피아를 응원하지만, 그것도 성훈이 마음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이지.

‘너무 급해. 소피아.’

일 문제라면 누구보다 소피아와 죽이 잘 맞는 성훈이었지만, 연애라면 영…… 젬병이 아니던가?

소피아도 그의 마음을 알았던지, 혀를 삐죽 내밀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타올게요. 교수님은 홍차. 성훈 씨는?”

“으, 응. 나도…….”

소피아가 나가고, 성훈이 물었다.

“쟤, 왜 저래요?”

한 교수가 한눈을 찡그리며 묘한 시선으로 물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냐?”

“제가 뭐 소피한테 책잡힐 만한 짓이라도 했나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교수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끄응.”

성훈이 코끝을 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곳이 없었다.

“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저러지?”

한 교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하니까 문제지!”

“네? 무슨 말씀 하셨어요?”

“아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으이구. 이 무심한 녀석아.”

“네? 제가 뭘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성훈에게 한 교수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 관심 좀 가져라. 벽창호 같은 놈아.”

“엥? 관심요?”

되레 성훈이 큰소리쳤다.

“제가 소피 문제에 얼마나 발 벗고 뛰었는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휴. 그거 말고. 네가 보기에 소피아 어떠냐?”

“뭐. 이쁘고 일 잘하죠.”

한 교수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여자로 보지 않는군!’

“그게 다냐?”

“또 뭐가 필요해요?”

결국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허허. 이역만리 타국에서 저 하나 보고 온 여자에게 할 소리냐?’

아무리 말하면 무엇하랴!

애초에 핀트가 안 맞는 것을.

‘이렇게 둘이 같이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난 내 할 일 다 했어!’

왜 더 붙여놓지 않았느냐고 나중에 대목장에게 잔소리를 듣기는 하겠지만, 인력은 안 되는 게 연애라지 않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성훈아. 넌 남녀관계에 대해서 나한테 강의를 좀 들어야겠다.”

그 말에 되레 성훈은 피식 웃으며 응수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총각으로 늙어가시는 교수님께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요? 흐흐.”

한 교수가 씁쓸하게 천정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 내가 말을 말자!”

그사이, 한석이 돌아왔다.

한 교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또 얻어터지는 줄 알고 긴장했잖습니까? 헤헤헤.”

녀석의 너스레에 웃으며 답했다.

“한 따까리 할려다가, 노력이 가상해서 한 번 봐줬다.”

“어쨌거나 선배님 덕에 얼굴 좀 세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 숙소 배정하랬더니?”

“제가 직접 움직일 군번은 아니잖습니까? 헤헤.”

“까불기는. 녀석!”

소피아가 홍차 소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수고했어. 소피.”

성훈의 말에 소피아가 나긋나긋한 소리로 말했다. 성훈에게 등 돌린 채.

“맛있게 드세요. 교수님.”

“어, 어. 그래. 고마워. 소피아 양.”

없는 사람 대우를 당하자, 성훈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탕!

“여기요!”

잔 받침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이거 뭔가 내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인데?’

쌓인 감정이 있다면, 화해를 청하는 것이 도리.

뜨끔해서 소피아에게 손을 뻗었다.

“저…… 소피. 왜 이러는…….”

하지만 둘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석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님!”

녀석의 진지한 목소리에 소피아를 향하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으, 응. 왜? 다른 할 말이라도 있냐?”

“오다가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

“KT 팀 선배들하고 통화하는데 말이죠. 공모전 주제가 모호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진지한 표정에 성훈이 잔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응. 그럴 거라 생각했어. 동의를 구한 건 아니었으니까.”

어제의 브리핑은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이었고,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요청한 것이었다.

“선배들이 염려를 좀 하더라고요. 그런 공모전은 처음이라고 하고. 저도 선배님이 그걸 그냥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고요.”

“그런 말이 나올 건 알고 있었어.”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람을 이해시키면서 일을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만인에게는 만개의 생각이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쭤봐도 됩니까?”

“이미 말한 대로 미래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춰서 진행할 거다.”

“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선배님. 이런 시작으로 과연 압둘 왕세자가 원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석은 동의를 구하려는 듯, 한 교수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잖아요. 교수님. 자칫하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잖아요!”

성훈이 고개를 차분히 끄덕였다.

“다른 후배들도 비슷한 생각이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가만히 경청하던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난 딱히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왜요? 교수님? 의뢰자의 의도를 명확히 모르는 거잖습니까?”

그의 반박에 성훈이 말했다.

“한석아, 의도가 명확하든 모호하든, 결국 설계는 건축가가 하는 거야.”

성훈이 찻잔을 들며 물었다.

“한석이, 넌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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