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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74화 (374/427)

건축의 신 374화

건축가란? (02)

한 3초?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드렸다.

1㎡당 300달러.

적지 않은 금액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기본이지!’

발주자 측에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때의 기본인 것이다.

다른 건축 공모전에서는 기준을 명확히 준다고.

헌데 내게 기준을 잡으라고?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것은 곧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것과 뭐가 다르랴?

발주자의 고민을 대신해준다면, 그 일의 대가 또한 마땅히 청구해야 할 터!

‘돈을 받는다고 해서 무료로 추가 봉사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

수고한 만큼 더 받는 건 당연한 이치!

보상받지 못하는 땀방울은 바닷물보다 못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압둘. 우리 설계가 당신의 마음에 들었을 때를 가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왜 가정이라는 말을 하느냐고?

압둘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공모전에서 탈락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탈락자가 설계비를 요구할 수는 없다.

공모전은 가장 냉정한 승자독식의 시스템이거든.

그러므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설계를 하지 못한다면, 지금 하는 말은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난 자신이 있다고.’

그 근거로 내세우기에는 확실성이 부족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이미 난 그에게 합격점을 받은 적이 있지.

‘알리와의 몰딩 레이스에서 그의 취향을 확인했다고!’

그 경험을 근거로 말하자면, 압둘은 자신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에 약하다.

세계적 대부호인 그가 못 본 것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 당시 내 몰딩의 디자인은 그를 사로잡을 만했었던 것 같다.

그걸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서 나는 압도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

다른 건축가들은 그들만의 건축관을 세웠다.

그들의 이름으로 세워진 건축물이 세계 도처에 즐비하다.

‘그 말은 곧 익숙하다는 말이지.’

이번 공모전에서 조금이라도 이전 작품의 색이 묻어난다거나, 혹은 조급함에 떠밀려 자신의 설계에 어중간하게 현대의 기술을 접목한다면, 압둘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날고기는 베테랑들이 그런 실수를 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말해 보게.

“인센티브를 붙여주세요.”

-응? 인센티브?

그의 물음에 당당하게 말했다.

“네. 고민의 폭이 훠얼씬 넓어졌거든요. 만드는 놈에게 주제를 정하라니. 이건 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내 너스레에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그가 물었다.

-얼마나?

“5% 인상!”

-설계비에서?

“흥!”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총공사비에서요!”

‘부가세보다 못한 그 금액을 받아서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갑부가 쩨쩨하게!’

어지간히 당황했던 모양이다.

-어이, 어이, 성훈!

“왜요?”

-그건 설계비의 50%를 인상해달라는…….

“아니면 주제를 정해주세요. 그대로 진행할 테니.”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날강도 같으니!

-크윽.

압둘의 신음성이 이어졌다.

“물론 다른 건축가들에게도 똑같은 주제가 주어져야겠죠.”

당연한 거다.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하니까.

‘없던 주제가 갑작스레 나올 리가 있나? 그것도 나라의 미래가 달린 건데.’

쿠웨이트에 인재가 없긴 한 모양이다.

잠시 후 압둘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흠.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대신 돈 가치만큼 일을 할 테니까요.”

“어차피 마음에 안 들면 돈 안 줄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야 당연히…….

어디서 뒤통수를 까려고 해!

돈만 딸랑 들고 와서 꽁으로 먹으려고 하면서!

압둘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에 어렵다면?

“내가 고작 2억도 안 되는 돈 때문에 이러는 거로 보여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압둘은 잘 알 테지.

내 호텔의 수익이 얼마인지 말이다.

-물론 그건 아니겠지.

잠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유가 뭔가?

‘이유는 간단하지. 약오르니까!’

그렇다고 ‘당신의 심보가 고약해서 그런다!’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 합당한 설명이 필요했다.

“당신이 주제를 명확하게 정해줄 수 없다면, 전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걸 만들고 싶어요.”

-그거랑 설계비가 무슨 관계가 있나?

“그럴듯하게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공학을 다 접목할 생각이구요.”

이건 맞는 말이잖아. 지금 이 프로젝트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을 모았고 말이다.

‘공과대의 모든 분야를 모았다고 해도 빈말은 아닐 거라고.’

압둘이 귀가 솔깃했던 모양이다.

-그럼 하이-테크인가?

“흥. 나도 모르죠!”

-혹시……. 이미 계획이 서 있는 건…….

서둘러 그의 말을 잘랐다.

내가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테니까.

“압둘 당신은 결과가 나온 후에 평가만 하면 돼요. 과연 이 작품이 추가금 50%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내가 왜 이렇게 배짱을 튕기냐고?

어차피 다른 건축가들도 나처럼 옵션을 걸 거라고. 나와 방법은 좀 다를지 몰라도.

‘나처럼 추가금을 요구하던지, 아니면 다음 공사 수주를 약속받던지, 방법은 많지.’

거기까지 내가 관여할 필요는 없지만, 확실한 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다.

그의 제안을 그대로 받을 거라고 봤다면, 압둘은 나를 호구로 본 것이다.

‘앞으로도 호구로 보겠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성이 큰 만큼, 그 보장 또한 확실해야 한다.

왜 이런 추가 제안을 하느냐고?

일반적인 공모전에는 주제가 있고, 그 주제는 작품 선정의 기준이 된다.

주제가 철이라면, 누가 봐도 ‘아! 철이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게 작품을 만든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그런데 쿠웨이트의 미래?

개 풀 뜯는 소리 하고 있네. 압둘 제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거잖아.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 기준을 논한다고!

세상에 갑질도 이런 갑질이 어딨어!

이런 공모전에서 객관적 잣대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가 하는 짓이다.

상금 내거는 사람의 시선이 곧 기준이다.

‘그럼 보상이라도 확실해야지.’

-어쨌거나 추가되는 50%는 내 결정에 따르겠다! 그 말이지.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주든 안 주든 자신의 마음이니까.

그의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 그리고 사람을 더 투입하는데도 명분이 서고요. 알다시피 전 직장인이잖아요. 결재를 받아야죠. 사장님께.”

-흠. 확실히 면이 서기는 하겠군.

“그리고 그 약속을 한 만큼, 좋은 작품을 위해 박차를 가하겠죠.”

하지만 호쾌한 허락 대신 압둘은 걱정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만약에 당선이 안 되면? 그 부담은 모두 자네 몫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런……?

그는 뒷말을 삼켰지만,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내가 베팅을 안 받으면 어쩔 셈이었냐?’ 겠지.

거기에 추가적인 설명을 붙이자면 이거 아닐까?

지금까지 한 설계가 허사로 돌아갈 텐데, 두렵지 않은가 정도?

‘내가 미쳤어? 한 일을 허사로 만들게?’

공모전 주최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건 돈을 내는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흥! 그깟 상 안 받으면 그만이라고.’

무모한 협상이 아니냐는 물음에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압둘. 공모전에 입상작이라도, 상금 안 받으면 주최 측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건 알죠?”

-에잉?

이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이런 거금을 포기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애초에 돈이 오가지 않은 상태의 계약서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선금 없는 계약에 무슨 강제성을 부여하랴?

당연한 말이겠지만, 공모전에 참가 신청을 한다고 주최 측에서 계약금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강제력이 없어요. 압둘. 고로 억만금이라도 내가 안 받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왜요? 제 말이 틀렸나요?”

-케켁!

사레라도 들린 건지, 캑캑대며 압둘이 말했다.

-하지만 대체로 공모전 입상작은…….

“압둘. 전 호구가 아닙니다. 돈 받은 만큼 일해주고, 일한 만큼 돈 받아냅니다. 다른 공모전과는 투자한 자원과 시간이 다른데, 같은 돈 받으면서 일할 생각은 없어요. 게다가 지금은 조건도 아주 안 좋죠. 완전 맨땅에 헤딩하기니까.”

-그럼 그 작품은 의미를 상실하는 거 아닌가?

누가 그래? 의미가 없다고.

코웃음 치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압둘. 당신 나라의 미래는 되는데, 다른 나라의 미래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딨어요?”

-그럼…….

“네. 찾아보면 살 사람은 있을 겁니다.”

-흠…….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녀석인가?

그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구였을까?

“아마도……. 일 순위?”

-굳이……. 알리를 일 순위로 놓는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나……. 제가 보기에는 비슷해서 말이죠. 사막, 유전, 정치 등등. 여러 부분에서.”

-크윽!

그리고 내 말발이 먹힌다는 이유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압둘이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킁! 날 만족시킬 수 있다! 그 말이지?

“그건 압둘, 당신이 결정할 일. 전 제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기로 하지. 좋은 작품을 기대하네.

압둘의 허락은 받아냈다.

‘이제 작품 선정에 고민 좀 하셔야 할 겁니다.’

내심을 감추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게 예전에 압둘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

다른 건축가들이 압둘과의 대화를 알면, 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안 되지. 수상작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면 되니까!’

압둘에게 다른 곳에 판다고 말한 건 그저 엄포일 뿐!

현실로 구현되고 안 되고는 수상 후의 문제다.

‘게다가 이 친구들에게 설계비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지.’

당장은 여기 모인 팀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말씀이신지.”

“주제가 광범위하면, 우리의 운신 폭이 넓어지죠.”

보람은 거기에도 반론을 보탰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주최 측의 의도에 따라 ‘귀에 끼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지 않습니까?”

보람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눈치 빠른 녀석!’

“달리 말하면, 주최 측의 마음에만 들면 된다는 거죠.”

“음…….”

보람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다가, 내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혹시. 생각해두신 다른 복안이 있으신 겁니까?”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내 확신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상황을 보여주려 부른 것일 뿐, 그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주제에 대한 고민은 이미 내가 결론 내렸거든.’

이 공모전의 총괄 디자이너는 나, 김성훈이다.

사람들을 아우르며 말했다.

“분명, 이 프로젝트는 주제가 불명확해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아무도 입으로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눈으로는 강하게 동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진심으로 납득하지 못하면, 앞으로 전진하기 어려운 법.

“이건 제가 계속 기다려왔던 기회입니다. 삼 년 전, 우리가 박람회를 하던 때부터…….”

“네? 그때부터 이 공모전을 계획하고 있었다고요? 전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는데요?”

보람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공모전이 아니라, 이런 식의 프로젝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죠.”

“이런 식이라니…….”

그의 눈은 좀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 프로젝트는 설계자의 자유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죠.”

“대신 출제자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자유도가 높다는 말은 반대로 성공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말도 된다.

뭐가 되었든 모두 내 책임이 될 테니까.

“나는 좀 더 완전한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흔히 건축을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디자인, 구조공학, 유체 역학, 기계, 전기, 이 모든 학문이 거주자의 편의를 위해 건물에 적용된다.

기초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많은 기술도 앞으로 나아갔다.

비행기와 잠수함은 100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하늘과 물속을 활보하고 있는데, 건물은 여전히 땅에 발이 묶인 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뭐가 있어?’

팀원들은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건축가는 완벽한 인간도, 그렇다고 그리 뛰어난 천재도 아니죠.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하죠.”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건축가는, 설계를 함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들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건축가의 교만이 아닐까?

또한, 그 교만은 더 발전할 수 있는 건축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닐까?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시대였다면, 그건 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그들의 최선이었을 테니.’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게 여러분들을 불러모은 이유입니다. 설계의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그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여러분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이런 기술이 건축에 접목되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집에 이게 불편하던데.’하는 게 있었을 겁니다. 제안해 주세요. 최대한 수렴하겠습니다.”

그럼 중구난방의 의견으로 설계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느냐고?

아니다.

이들이 의견을 낼 때는 이미 해결책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문가니까.

건축가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그들의 머리에는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효율성을 위해서 애써 외면했을 뿐.’

그들의 눈 하나하나를 보며 말을 맺었다.

“우리는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회의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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