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72화
인원보강(06)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성훈 팀장. 목이 빠지라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부른 거냐?”
보람을 필두로 3년 전 박람회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람이. 오랜만이네.”
그리고 뒤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모두 반갑다.”
성훈의 말에 동기들은 눈인사로, 후배들은 일렬로 도열해 우렁찬 함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들을 흐뭇하게 보며 웃음 지었다.
“너희들 빠지니까,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던?”
제대로 인정받으며 일했느냐고 성훈이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묻고 있었다.
후배 하나가 정색하며 답했다.
“그럼 말씀 마십시오. 부장님께 쌍욕을 먹고 나왔습니다. 일 좀 할 만하니 도망친다고요.”
어깨를 으쓱하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그의 동기가 피식 웃으며 대응했다.
“잘도 그랬겠다. 너 같은 뺀질이를.”
“뺀질이? 내가? 너라면 몰라도 말이야.”
주먹을 치켜드는 그에게 동기가 말했다.
“훗. 난 이사님이 붙드시는 거, 사정사정하고 빠져나왔거든!”
모두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는 건, 성훈도 알고 있었다.
‘중심축이 될 놈들만 골라서 빼가면 어쩌냐고 욕이란 욕은 다 먹었어. 실망 시키면 안 되네!’라는 건설 사장의 엄포를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원을 누가 붙들려고 하겠는가?
그들의 농담을 들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잘 인수인계하고 왔겠지?”
“네! 그렇습니다.”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일하다가 중간에 딴짓하는 놈은 자동으로 아웃이니까 그렇게 알아!”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말투는 우렁찼지만,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정이 들었겠는가?
그들의 표정에는 이전 직장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여러 감정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들 중 묘한 표정의 후배에게 물었다.
“야! 넌 왜 울 것 같은 얼굴이냐?”
성훈의 질문에 후배가 자세를 바로 했다.
“네?”
“원래 있던 곳이 더 좋은 거냐? 돌아가려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옆 동기에게서 나왔다.
“이 자식. 애인을 두고 와서 그런 겁니다.”
회의실 모두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러면 그럴 만도 하지.’
모두 아직은 피 끓는 청춘이 아니던가?
돌아서면 보고 싶고, 마주 보고 있어도 그리운 청춘 말이다.
성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넌 이번 프로젝트만 하고 가!”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애인을 두고 온 후배가 물었다.
“네? 다음 프로젝트도 있습니까?”
그건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당연하지! 이거 한 건 하려고 너희들을 거기다가 삼 년씩이나 박아뒀겠냐?”
“그럼?”
“계속 프로젝트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해외로 나갈 일도 있고, 한국에서 할 일도 많이 있을 거다. 당분간은 일이 끊어질 일은 없어.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프로젝트팀에 합류할 생각이라면 애초부터 그만두라는 말이야.”
그 후배에게 말을 이었다.
“특히 너! 나 때문에 애인이랑 헤어졌다는 원망은 듣고 싶지 않거든.”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그녀는 이해해 줄 겁니다.”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는 급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속 좁은 여자 아닙니다. 그리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선배님!”
보람이 나서며 상황을 종결시켰다.
“어쨌거나 중도 하차할 마음은 없다는 거네?”
“네. 그렇습니다.”
“그럼 됐지 뭐. 나중에 딴소리만 안 하면 돼. 각자 빈자리에 가서 착석하도록.”
자리를 정리한 보람이 성훈에게 말했다.
“팀장님! 이제 시작하시죠?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
성훈이 손을 들며 그의 말을 저지했다.
“아니. 아직 한 팀 더 남았어. 거의 다 도착했을 거야. 아까 연락 왔으니까.”
“누굽니까?”
고개를 갸웃하는 보람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회의장의 뒷문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오라방. 우리 왔어요!”
자신의 작은 체구가 안 보일까 봐, 정희는 깨금발을 한 채 크게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김선우와 그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박람회에서 알던 얼굴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경계의 눈빛들이 그에게로 쏠렸다.
“누구지?”
그 답은 컴퓨터 공학과 출신에게서 나왔다.
“어! 선우 선배잖아!”
“어! 그러네? 미국에 가 있다고 하시더니?”
아직 정체를 모르는 동기들이 물었다.
“너 아는 사람이냐?”
“응. 우리 과 선배님.”
“니네 선배가 왜? 저 선배도 박람회 참석했었냐?”
“아니? 처음에 참석했었다가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뒀었지.”
“그런데 왜 불렀지?”
컴공과 후배가 으스대며 입꼬리를 올렸다.
“무지막지 대단한 사람이거든.”
“뭐가?”
그리고는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니네 선배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고. 설마 성훈 선배보다 대단하겠어?”
하지만 컴공과 후배는 검지를 좌우로 저었다.
“성훈 선배는 한국에서나 유명하지만, 저 선배는 포브스지에 이름이 실릴 정도거든.”
“뭐? 포브스에?”
포브스!
미국의 저명한 경제 잡지가 아니던가?
유수한 경제 잡지 중에서도 특히나 순위 매기기로 유명했다.
그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년과 올해, 이년 연속으로 포브스가 선정하는 주목할 CEO에 선정되었다고, 작년엔 겨우 100위 언저리였지만 이번에는 75위에 랭크됐다고! 너도 들어 봤지. ‘KT 홈 시스템’이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흠.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그렇게 유명했냐? 게다가 한국인이 사장이었다니.”
“거기서는 대니얼 킴 이라고 하니까 모를 수도 있지.”
“한국에서만 모르지. 굉장히 유명해. 아직 한국 건설회사는 그런 기술을 도입시키기에는 시기상조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고.”
“네 말처럼 그렇게 유명하다면 여길 왜 오냐? 다른 유명 건축가들도 우리 프로젝트랑 경쟁하는 것 같던데. 그리 가는 게 낫지 않냐?”
그 말 또한 신빙성이 있었던지라, 컴공과 후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성훈 선배랑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루머가 돌았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세우며 물었다.
“무슨 루머?”
“몰라! 자식아. 성훈 선배가 선우 선배님 회사에 대주주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아. 확인되면 말해줄게.”
“어쨌거나 한국에서만 모르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 요즘 지어지는 호텔에는 저 회사 시스템이 적용 안 되는 곳이 없다고 소문이 날 정도니까.”
자기 과 선배가 아니라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진짜로 유명하긴 한가 보네.”
“그러니까 자식아. 우리 선배가 와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 돼.”
성훈이 그들을 맞이하려 하던 일을 멈추고 강단을 내려갔다.
한창 바쁜 시기임에도 자신의 요청에 만 리 길을 머다 않고 달려와 준 사람들이었다.
“선우형. 갑자기 불러서 놀라셨죠?”
선우는 성훈을 미소로 맞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 부르면 섭섭할 뻔했습니다. 보스!”
얼굴에 반가움을 한가득 품은 그에게 성훈이 어색하게 손사래 쳤다.
“보스는 무슨. 팀장이라 부르라….”
성훈의 말에 정색하며 선우는 데려온 부하들을 소개했다.
“정희는 뭐 알 거고. 톰과 제리입니다.”
다인종의 나라라서 그럴까?
톰는 흑인, 제리는 백인이었다.
“보스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길래, 안 데려올 수가 없었어.”
그리고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인사드리지. 그렇게 보고 싶어 했잖나.”
제리가 먼저 싱글벙글 미소 띤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양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빅 보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리에 이어 톰도 서슴없이 고개를 숙였다.
“빅 보스.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어라. 이 친구들은 한술 더 뜨네. 빅 보스라니….’
그들의 격한 반응에 김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 쓸만한 친구들입니다.”
톰과 제리가 이구동성으로 그의 말을 정정했다.
“빅 보스. 감히 단언컨대, 제가 최고입니다.”
“재미있는 친구들이네요. 형.”
자신감에 넘치는 그들을 자리에 앉히며 선우가 속삭였다.
“이번에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회사에서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몰라. 널 보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들어가는 둘을 보며 말했다.
“쟤들 말마따나, 저 둘은 그중에서도 최고 실력자들이라고. 맘껏 부려 먹어. 네 말이라면 껌뻑 죽을 녀석들이니까.”
“그럼 저야 고맙지만, 자신감이 어마어마하던데, 제 말을 듣기라도 할까요?”
“걱정할 필요 없어. 녀석들은 네 신봉자니까.”
“신봉자요?”
성훈의 의문에 선우가 피식 웃었다.
“미국 갈 때, 네가 내준 숙제 기억하냐?”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휴대폰으로 외부에서 기기 제어하는 거요?”
“응!”
“그게 왜요? 벌써 다 된 거예요?”
설령 되었다고 해도, 하드웨어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터.
“아직…. 하지만 머지않았어. 거기 저 녀석들뿐만 아니라, 전 개발자들이 그 개념에 푹 빠져있지. 일일이 자리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내 맘대로 통제한다! 그건 꿈이라고.”
“흐. 고생이 많으셨네요.”
“녀석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더군. 빅 보스는 미래에서 온 사람일 거라고 말이야.”
“엥?”
뜬금없는 말에 성훈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잖아. 미래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 정확히 미래를 예측하느냐고. 앨빈 토플러도 그렇게 정확히 예측은 못 할 거라고 하더군.”
“그래서 내 말을 잘 들을 거다?”
“그래. 넌 쟤들에게는 신이야. 신! 일단 시켜봐. 그 뒤에 어떻게 길들일지 고민해도 안 늦어.”
“크. 알았어요.”
헛웃음을 내뱉는 성훈에게 선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보스. 이제 자리로 돌아와야지. 언제까지 내가 너 대신에 CEO 노릇 할 수는 없잖냐? 회사가 커지니까 바지사장도 슬슬 버겁다.”
“아직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전면으로 드러나면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할 텐데.”
“야! 막말로 네가 못할 게 뭐 있어?”
조심스레 언성을 높이는 그에게 성훈이 도리질을 쳤다.
“하여간 아직은 안 돼요.”
“왜?”
“귀찮아요.”
“내가 말을 말자. 휴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로 들어가려는 선우의 팔을 성훈이 붙잡았다.
“왜?”
“형. 들어가기 전에 자기소개나 하고 들어가요.”
“응?”
“저거 안 보여요. 이대로 들어가면, 아무도 내 브리핑에 집중 안 한다고.”
성훈의 말처럼 모든 중인의 시선이 선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명한 사람.
전 세계 천재들이 모두 모인 미국에서 백 손가락에 꼽히는 CEO.
여기 모인 모두가 바라는 성공을 이미 이룬 사람이 바로 선우였다.
항상 옆에 있는 성훈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선우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 네가 우리 회사 실제 주인인 거, 얘들은 모르는 거지?”
성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네. 이따가요.”
연단을 올라가며 선우가 투덜거렸다.
“귀찮다고?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욕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욕망이 터무니없이 강한 건지.”
회사 창업 동기들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어른거렸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성훈이 녀석한테, CEO 자리 해결해 달라고 하고 와! 알았어? 우리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거지, 사무를 보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 안 그래?’
외부 일 때문에 연구시간이 없어진 창업 동기들의 투덜거림이었다.
‘사장이 시키는데 어쩌냐?’
‘그러니까 이번에 가서 확실히 선을 긋고 오란 말이야. 막말로 선우, 너도 솔직히 버겁잖아.’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회사 확장을 앞둔 지금은 선우도 남의 사정을 봐줄 상황은 아니었다.
연단에 서서 중인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얘들은 알려나 몰라. 내가 바지사장이라는 거. 휴우.’
하지만 어쩌랴?
‘하지 말라는데 강제로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거고.’
그의 눈에 주변 사람들과 속삭이는 톰과 제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훗. 저 떠버리 녀석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성공한 CEO, 선우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KT 홈 시스템’의 CEO 김선우라고 합니다.”
인사와 함께 성훈에게도 눈인사를 건넸다.
‘빅 보스. 저 녀석들 입단속은 나도 불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