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70화
인원 보강(04)
“그런데 한석이, 넌 성훈에게만 너무 기대는 것 아니니?”
당당하게 비비겠다고 말하는 한석을 어이없는 눈으로 보며 묻는 소피아였다.
한국에 지사를 내면서 U 대학 전통건축학과에 편입한 뒤, 그녀를 가장 편하게 대해 주었던 친구가 한석이었다.
생판 모르는 남들보다는 전통박람회에서 얼굴을 익힌 한석이 더 편했고, 성훈과의 관련도 있었기에 쉬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한 교수의 염려도 이어졌다.
“그러게. 그걸 대목장 어르신께서 아시면 노발대발하실 텐데. 괜히 성훈이 귀찮게 한다고.”
“크크크. 그러니까 안 계실 때, 후딱 해치워야죠. 성훈 선배님 허락만 받아내고 나면 별말씀 않으실 테니까요.”
확신에 찬 얼굴로 너스레를 떠는 한석이었다.
소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참 넉살이 좋아. 혼날 걸 뻔히 알면서.”
그녀의 물음에 한석이 코웃음 쳤다.
“흥.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정도밖에 없다고. 다른 분들은 체면 때문에 힘드시지. 총장님도 선배님한테 이런 제안은 못 할걸!”
한 교수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현재 건설 사장도 안 건드린다고는 하더라.”
“요즘 선배님 영향력이 장난 아니야. 게다가 성훈 선배님 또래에서는 감히 이런 말을 건넬 수도 없지.”
확신하며 한 교수를 돌아보았다.
“사실 이건 교수님도 바라시는 거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한 교수가 눈을 슬쩍 피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기는 하지. 그것만 되면, 다른 작전은 의미가 없지.”
“향후 몇 년 동안은 아마…. 압도적으로 앞서갈 걸요.”
“그렇지. KT 팀을 앞지르는 시공팀이 나올 때까지는 계속되겠지.”
“이건 우리 학과와 학교의 미래를 위해서 꼭 되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소피아가 말리며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니? 네가 변태도 아니고, 맞는 걸 좋아하지는 않을 거 아니니?”
“훗! 역대 학생회장 중에 성훈 선배님한테 뭔가 얻어내는 사람은 없었을걸.”
그의 말마따나 성훈의 선례를 따랐을 뿐, 뭔가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한 교수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간 큰 놈은 없었지.”
“학생회장으로서 이보다 더 큰 공로가 어디 있어? 게다가 누군가는 선배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면, 그건 응당 내가 되어야지.”
“하지만 그런다고 성훈 씨가 득 되는 게 뭐 있다고 해주겠니?”
소피아의 타박에 한석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이건 성훈 선배님한테도 좋은 거라고. 소피아. 생각해봐. 더 영리한 후배들이 뒤를 받쳐주면 선배님도 더 일하기 편할 거 아니야.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선배님의 후일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무작정 성훈 씨한테 기대지만 말고, 다른 경우의 수도 생각해 둬요. 아니면 뭔가 거래할 만한 걸 생각해 두던지.”
“걱정 마. 소피아는 아직 내 진가를 몰라서 그래.”
“진가가 뭔데?”
“성훈 선배님한테 엉길 수 있는 유일한 남자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소피아가 반박했다.
“얻어맞는다면서?”
“이 정도 제안을 몇 대 맞고 얻어내면 싸지. 그리고 세 대쯤 넘어가면 민수 형이 도와주실걸. 흐흐흐.”
“민수가 안 도와주면 어쩔 거냐?”
한 교수의 말에 한석이 비장한 표정으로 허벅지를 두들겼다.
“그때는 저 자신을 믿는 수밖에요.”
그러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 설명하기만 하면 이런 부탁 정도는 쾌히 들어주실 겁니다.”
잘 설명하지 못해서 맞은 건데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한석이었다.
하기야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한석이, 그 마무리는 민수가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미움받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소피아의 염려에 한석이 비장하게 웃었다.
“괜찮아. 선배님의 로우킥은 죽도록 아프지만 그만큼 뒤끝도 없거든.”
“그래도….”
“성훈 선배님한테 맞은 사람도 나뿐이고. 맞을 자격이 있는 사람도 나뿐이야.”
그가 튼실한 허벅지를 탁탁 소리 나게 쳤다.
둘의 오고 가는 대화를 보며 한 교수가 씨익 웃었다.
‘생각해보면 한석이만한 적임자도 없지.’
녀석의 말마따나 그것만 해결되면, 졸업 박람회에서 경쟁자가 사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학생회장으로서 할 일을 하겠다는데 무슨 이유로 말리겠는가?
‘로우킥 몇 대로 거래 가능하다면, 해보지 뭐.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한 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쯧쯧.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이번에 성훈이가 부를 때, 소피아 너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소피아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음. 저도 가고 싶기는 한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요.”
“‘Germany Craft’ 지사 건은 끝난 것 아니었어? TV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봤는데?”
소피아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이유가 지사 설립 때문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옆에서 보아온 소피아의 실력으로 봤을 때,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게 생긴 우아한 생김새와 달리,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시간이 없다라?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소피아가 말했다.
“아뇨. 그 문제는 끝났어요. 시장님과 총장님의 도움이 컸죠. 참 좋으신 분들이더라고요.”
총장이나 시장이 마냥 호의로 도와줬을 리는 없다고 확신하지만, 어쨌거나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니, 한 교수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다행이군. 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도록 해.”
그의 말에 소피아의 뺨에 매력적인 보조개가 패였다.
“아빠도 똑같은 말씀을 하세요. 정치인들과는 항상 거리를 두라고요. 제가 어릴 때 회사를 키우면서 많이 데신 것 같더라고요. 호호.”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염려할 일이 없으리라.
안심하며 한 교수가 물었다.
“그럼 달리 바쁜 일이 있나? 가구 학과 신설 건은 귄터, 그 어른께서 하시고 있잖나?”
“학과 신설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것도 있고, 항상 옆에 있던 분이 안 계시니까 적적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학과장님께 가보시라고 했어요. 여기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흐흐흐. 하긴. 두 분 인연도 3년이 된 건가?”
소피아도 빙긋 웃으며 맞장구쳤다.
“저도 깜짝 놀랬어요. 귄터 같은 고집쟁이에게 친구가 생기다니 말이죠.”
“대목장 어르신도 만만찮은 고집쟁이시거든. 거기서 합이 맞았는지도 모르지.”
“이십 년 가까이 산에서 혼자 지내시다가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기니까, 사람이 어찌나 바뀌던지. 전 그런 할아버지 모습은 처음 봤어요. 귄터가 말은 안 했지만, 사람이 많이 그리웠나 봐요.”
“마음 맞는 친구라….”
한 교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수밖에. 두 분 다 사람들의 기억에 잊혀지고 있다고 체념하시던 분들이거든.”
“맞아요. 귄터도 산장에서 칩거하듯 십몇 년을 지냈거든요. 성훈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희미하게 웃으며 소피아는 눈을 아래로 깔았다.
“성훈은 귄터에게 은인이에요. 아빠에게도.”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한석이 감탄했다.
“우리 총장님도 능력도 좋으시지. 어떻게 독일의 유명 장인을 이렇게 붙들어서 학과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소피가 고개를 들며 빙긋 웃었다.
“할아버지가 부탁하신 거야. 성훈에게.”
“네? 선배님한테 왜요?”
그 말에는 한 교수가 답했다.
“어쩔 수 없지. 너도 알겠지만, 그 어르신이 성훈이 말 아니면 콧방귀나 끼실 분이냐?”
“귄터도 꽤나 명성 있는 분이던데, 굳이 한국에서…. 기술이라면 독일이 더 뛰어날 텐데.”
“그게…. 그때 박람회를 보고 느낌이 딱 왔었나 봐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국인의 이런 재주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직은 기계문명보다는 손재주가 더 돋보인다고.”
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도 전 이해가 안 되네요. 두 분이 그렇게 친하다는 게. 사실 두 분을 개별적으로 뵈면, 숨이 턱 막힌다니까요. 이마에 써 있잖아요. ‘나 고집쟁이야.’ 라고.”
“호호. 나도 그래. 어느 순간부터인가 두 분이 어울리고 계시더라고.”
“그 일등 공신은 나라고.”
한 교수의 말에 둘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귄터가 가구만 만들었지, 학과를 만든 적이 있었겠는가?
당연히 한 교수에게 물어보러 왔었고, 그는 얼마 전 전통건축 학과를 신설한 경험이 있는 대목장을 소개해줬던 것이다.
“거의 같은 계통이니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딱 맞았지!”
한 교수의 으쓱함에 소피가 핀잔을 줬다.
“저를 힘들게 하신 원흉이 교수님이셨군요.”
“엉 내가 왜?”
뜬금없는 화살에 한 교수가 반문했다.
“두 분이 하루걸러 하루씩 집에 오신다고요.”
“왜?”
“두 분이 의기투합한 게 뭔지 아세요?”
“술?”
“네. 말도 마세요. 이틀에 한 번씩 전을 부쳐야 한다니까요.”
해달라고 하면 해주는 소피아가 기특하기도 했지만, 잠자코 있으면 그녀의 하소연이 길어질 것 같아, 한 교수가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흠흠. 말을 들어보니, 한국에는 안 계신 모양이네?”
“네. 심심하시다면서 대목장 어르신께 가셨어요.”
“엉? 홍콩으로?”
놀라는 한 교수를 놀리듯 소피아가 눈웃음쳤다.
“아뇨. 지금은 라스베이거스에 계세요. 거기 힐튼 호텔에도 인테리어 공사가 있잖아요.”
“허. 왔다는 말씀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거기까지?”
“네. 한국에 왔다가 가면 이틀이 더 소요된다고 하시면서, 거기서 바로 가셨어요.”
“허허허. 나한테 말씀도 없이 가시다니. 요즘은 성훈이 녀석보다 어르신이 더 바쁘신 것 같아.”
한 교수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시다가 병이라도 안 나시면 좋겠는데...”
“워낙 힘이 넘치시니까요.”
한석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럼요. 예전에 일이 없어서 고달플 때에 비하면 지금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을 더없이 편하다고 하시던데요?”
“협회장 일도 바쁘실 텐데, 현장까지 일일이 돌아다니시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지.”
“저도 걱정은 되는데, 주변 분들이 잘 챙기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소피아는 못 간다는 거네.”
“네. 아쉽지만 이번에는 그래야겠어요.”
“성훈이가 많이 아쉬워할 거야.”
“설마요. 성훈 성격에….”
소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한 교수가 어찌 그녀의 마음을 모르랴.
성훈이 섭섭해 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당사자가 없는 데야 무슨 말이든 어떠하리.
‘뭐 어때? 소피아의 마음만 편하면 되는 거지.’
한 교수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아니야. 많이 섭섭해 할 거야.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한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한석이는 우리 과에서 성훈이가 맘에 들어할 만한 학우로 골라내는 작업 해두고.”
“걱정 마세요. 선배님 취향이라면 제가 꽉 잡고 있으니까요.”
“그럼 내일 오전까지 정리해서 내게 전달하도록.”
그리고 소피아에게도 말을 이었다.
“학과 개설 문제 잘 마무리하도록 하고.”
“네. 교수님.”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성훈이가 된다고 해서 안 된 게 없거든. 자네 전통건축학과도 봐. 삼 년 동안 수많은 학교가 우릴 따라서 전통건축학과를 만들었지만….”
그의 말을 한석이 이었다.
“모두 파리 날리고 있죠.”
“왜 그런지 알지? 소피아.”
“네. 성훈이 몇 년에 걸쳐서 준비한 걸, 한 번에 따라잡으려고 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녀의 말에 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밖에서 보기에는 엄청 쉬워 보였나 봐. 선배님이 일류장인들 끌어오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어중이떠중이들 모아놓고는 전통학과입네 하니 그게 먹힐 리가 없지.”
장인들을 모은 것은 대목장이었지만,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한 것은 성훈이었으니, 그가 불러모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U 대학의 전통건축학과의 활성화는 산학협동에서 시작되었다.
해외 건설현장은 넘쳐나고 전통문화 인력은 부족했으니, 항상 수요가 넘쳐났다.
그 증거로 장인들은 학과 수업이 없을 때는 거의 해외로 일의 진척상황을 점검하러 다녔다.
특히나 방학이 되면, 학과 학생들을 해외 현장에 연수를 보내기 때문에, 배운 것을 바로 써먹어 익힐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안착되었다.
물론 등록금을 충분히 웃도는 급료를 지급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방학 때 높은 급료의 아르바이트를 뛰기 위해서는 교과과목을 완벽히 이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안 좋은 점이라면, 방학 때 충분히 놀지 못한다는 것이겠지만.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한석이 말했다.
“소피아. 너도 충분히 준비했잖아. 선배님도 괜찮다고 했었고.”
“그래. 염려할 건 없어.”
소피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지.”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한 교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녀석도 양반은 아닌가 보다.”
다시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하며 핸드폰을 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성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