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69화
인원 보강(03)
“한 교수님. 부르셨어요?”
한석이 학과장실을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결재서류를 보던 한 교수가 책상에서 일어나며 소파로 손을 내밀었다.
“오! 한석이, 이리 앉아라. 학생회 일 때문에 바쁠 텐데 불러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학과장님이 부르시는데, 총알같이 튀어와야죠. 참! 소피아도 같이 왔습니다.”
한석의 말이 끝나자, 소피아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소피아의 인사를 받으며,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소피 양도 부르려 했는데, 잘했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게, 소피아가 찬장에서 찻잎과 다구들을 꺼내며 물을 데웠다.
그 사이, 한 교수가 말을 꺼냈다.
“학생회장. 신입생 설명회는 잘 준비되고 있어?”
“네. 이번에도 경쟁률이 치열할 겁니다.”
한석의 장담에 한 교수가 미소를 보였다.
“흠. 그래?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텐데?”
그의 염려를 알고 있다는 듯, 한석이 물었다.
“다른 학교 박람회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한 교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삼 년 전, 현재 건설의 후원으로 시작된 U 대학의 졸업 박람회로 이슈를 모았었다.
결과의 귀추를 떠나. 일부의 대학들은 차가운 냉소를 보냈다.
배움의 터가 되어야 할 대학이 너무 취업에만 목을 매단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리라.
그 중심에 서울의 명문대들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학생들을 취업시켜야 하는 지방대학에 대한 동정도 있었겠지.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쪽에서는 산학협동의 올바른 모습이라며 칭찬했지만, 다른 편으로는 취업에 치우쳐 진정한 학문에는 집중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었다.
하지만 비판의 말들은 다음 해 봄이 오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결과가 모든 의혹을 종식시켰지.’
U 대학의 졸업 박람회의 결과를 본 수능 응시자들이 대거 입학 원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에 지원해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주목할만한 것이 건축학과.
공대 평균 지원율만 해도 ‘45 : 1’로 학교 생긴 이래 없었던 일인데, 건축학과는 그걸 뛰어넘어 ‘103 : 1’이라는 살인적인 경쟁률을 보였다.
은연중에 응시자들이 ‘U 대학 건축학과는 현재 건설로 입사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해에는 성훈을 비롯한 50명의 팀원, 전체가 현재 건설로 특채 입사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많은 학생이 현재 그룹 지원 시 5%의 가산점이라는 특혜를 부여받았고, 학교 창립 이래,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대학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박람회를 따라 한 대학은 비난의 선두에 섰었던 S. K. Y 대학이었다.
‘자기 학교로 들어왔어야 할 재원들이 몽땅 우리 대학으로 지원했으니, 억울할 만도 했겠지.’
비등비등한 상대였었다면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이 보기에는 같은 레벨로 놓아줄 수 없는 지방대학이 아니던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S. K. Y 대학은 현재 건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태림, 삼송, 태우 건설과 각각 연계하여 자신들의 졸업 박람회를 대외적으로 홍보했다.
그리고 다른 대학들도 줄줄이 졸업 박람회를 개최한다고 광고를 했었다.
‘그렇게 졸업 박람회 붐이 일었지.’
학교 내부 행사로 여겨지던 형식적 졸업 전시회가 아닌, 실력으로 대기업에 어필하려는 졸업 박람회를 대부분 대학이 개최했던 것이다.
***
‘하필 이런 시기에 한석이, 이 녀석이 학생회장이라니. 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한 교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함없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한석이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그래? 수성(守成)이 공성(功成)보다 어려운 건 알지?”
누가 말했던가?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명문대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방심은 끝났다고.”
명문들의 견제가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U 대학이 다시 지방의 삼류대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터!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시잖아요.”
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교수님은 저 만나서 복 받은 줄 아십셔!”
밑도 없는 그의 자신감에 한 교수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왜? 난 네 녀석 때문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데.”
“왜요?”
한석은 자신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제가 누굽니까? 바로 성훈 선배님 직계 아닙니까!”
하긴 선거에서도 ‘성훈 선배님의 직계’라는 말로 학생회장에 입후보했었다.
그리고 성훈이 졸업하고 삼 년이 지난 지금, 성훈과 직접 연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석은 일 년간 성훈과 어울려 다니며 모든 작업을 함께하지 않았던가?
한 교수가 낸 첫 번째 과제에서부터 시작해서, 한석이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한, 성훈이 유명세를 치르기 전부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으니, 영 빈말은 아니었다.
대학과 현재 건설의 연계성을 최우선 순위로 놓았던 학생들에게 ‘성훈의 직계’라는 말이 크게 호감을 사면서 학생회장의 감투를 따냈던 한석이었다.
한 교수가 그의 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왜 내 기억에는 네가 성훈이한테 얻어터지는 장면만 남아있을까?”
이것이 한 교수가 한석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못 미더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직계는 그렇다고 치고. 뭐 특별한 방안이라도 있는 거냐?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조건은 똑같은데.”
그의 말처럼 조건은 삼 년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현재 건설 입사 지원 시 5%의 가산점과 수상 시 특채로 바로 입사할 수 있다는 점.
삼 년 전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학교들도 건설회사를 등에 업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뭐가?”
“현재 건설의 위상이 다르죠. 예전에는 현재, 태림, 삼송, 태우, 이 네 건설회사가 나란히 어깨를 견주었다면, 지금은 현재 건설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 있거든요.”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 한 교수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한석의 말에 한 교수는 턱을 까닥였다.
“비책이 있으면 말해봐. 간 보지 말고”
“제가 지난 삼 년간의 치열한 방어전에 종지부를 찍을 겁니다. 이제 더는 도전할 엄두도 안 날 겁니다. 흐흐흐.”
한 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한석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바로! 박람회 최종 우승자에게 KT 팀에 바로 입사를 시킨다는 조건을 내 거는 겁니다.”
미처 예상 못 한 말에 한 교수의 눈이 커졌다.
“엉? KT 팀에?”
“네!”
“그게 메리트가 될까?”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는 닳고 닳은 베테랑들도 채 일 년을 버티기 어려운 곳이라고!”
말을 하다 답답했던지, 언성이 높아졌다.
“오죽하면 연봉이 다른 회사의 몇 배가 넘는데도, 때려치우고 나오겠냐?”
한석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고작해야 인턴으로 넣어달라는 건데요. 뭐.”
어이없는 눈으로 한석에게 말했다.
“네가 성훈이를 몰라도 엄청 모르는구나. 그놈! 쓸모없다 싶으면, 바로 내치는 놈이라고. 물론 그 전에 다들 관두고 나오겠지만.”
하지만 한석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말했다.
“만약 이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수님.”
그의 말에 한 교수가 조용히 눈을 굴렸다.
승리의 전략이 무엇이던가?
적에게 없는 것을 자신의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던가?
한 교수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실행만 된다면 확실한 한 수가 되겠군.”
다른 형식은 모방할 수 있을지언정, KT 팀의 이름만은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형식을 갖춘다 해도, 알맹이가 다른 것을 어찌할 손가?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KT 팀은 여타 건설회사들과 인지도가 다르지.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시공팀이지.”
“그렇죠. 현재 건설이라면 그냥 건설회사지만, KT팀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죠.”
국내에서는 단 한 건의 시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었다.
한 교수의 칭찬에 한석이 맞장구쳤다.
“그렇죠?”
한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그 학교들이 다른 건 다 따라 해도 이건 못할 테니까요.”
KT 팀은 성훈이 만든 브랜드나 마찬가지였다.
브랜드의 가치는 시공 오차 1mm.
공사를 맡긴 건물주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였으니,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기는 한데…….”
말을 흐리는 한 교수에게 물었다.
“다른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래도 거기서 버티지는 못할 거야.”
그의 염려에 한석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버티고 못 버티고는 자기 능력이라고요. 거기도 못 가서 애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KT 팀에서 콜하는 사람은 신입 말고는 모두 그 계통에서 20년은 구른 베테랑이라고요. 그나마 신입에 대한 비중은 코딱지만큼이고요. 아시잖아요. 교수님도. 성훈 선배님이 실력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알지. 냉정하다 못해 매정하지.”
“그러니까 입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학교가 줄 수 없는 최고의 기회가 된다고요. 들어갔다가 나가떨어지면 어떡하느냐고요?”
한 교수의 말 없는 수긍에 한석이 말을 이었다.
“거기서 잘려도, 다른 건설회사에서 팀장으로 모셔간다고요! 이런데, 교수님이 학생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어차피 학교에서 졸업 후까지 책임지진 않죠.”
“그건 그렇지.”
“성훈 선배님 밑에서 6개월만 죽었다 생각하고 구르면 된다고요.”
“그 말도 맞네. 거기서 6개월만 버티면 다른 데서 6년 배울 걸 배운다고 하더군.”
한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도 제대로 배우죠. 그 잘린 사람들 연봉이 타 건설회사 팀장 두 배가 넘는데, 더 말이 필요 없죠.”
그런 한석을 바라보며, 한 교수가 빙긋이 웃었다.
“컨셉은 잘 잡았네.”
“이번에 확실히 못을 박을 겁니다. 건축은 U 대학! 으하하.”
자신만만하게 웃는 한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성훈이한테 허락은 받은 거냐?”
그 말에 뜨끔한 한석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이제부터 비벼볼 겁니다.”
“큭. 비빈다고? 자신은 있고?”
“흥. 제가 누굽니까? 바로….”
“쯧쯧.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닙니다. 성훈 선배님께 비비고 들어가는 건 제가 최곱니다. 이것만큼은 민수 형도 못하는 거거든요.”
“훗. 민수라면 애초에 무리한 시도를 안 하겠지.”
심드렁한 한 교수의 반응에 한석이 발끈했다.
“어쨌거나 교수님은 운 좋으신 거라니까요. 제가 성훈 선배님 로우킥에는 이골이 나서,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의 결말을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한 교수가 큭큭 거리며 말했다.
“그래. 잘해봐. 허벅지 멍들어서 울지 말고. 나 같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겠지만.”
소피아가 끓여온 차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누가 한석의 허벅지를 때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건축학과 학생회장에게?”
한 교수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런 사람이 있어. 저 녀석을 쥐 잡듯 잡는 놈이 말이야.”
“누구요?”
한석이 뚱하게 말을 받아쳤다.
“있어. 전전전대 학생회장.”
“전전전이면…… 성훈 씨?”
한석이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피아가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얼마나 다정다감한 사람인데?”
“뭐 다정다감? 하긴 죽지는 않게 때렸으니….”
“성훈 씨가 그렇게 폭력적이라고? 허벅지가 멍이 들 정도로? 거짓말. 그 정도면 부러지지 않니?”
놀란 소피아를 보며 한석이 당당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가루가 되겠지.”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단련한 이 허벅지는 웬만한 타격에는 흠집 하나 안 나지.”
“그렇게 폭력적일 줄은 몰랐는데.”
“응. 완전 깡패야.”
감정 섞인 평가에 소피아의 얼굴은 찌푸려졌고, 한 교수는 박장대소했다.
“네가 맞을 짓 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러냐?”
“보통 맞을 짓 했다고 진짜로 때리는 사람은 없죠.”
그 말에 한 교수도 맞대응했다.
“진짜로 때릴 때까지 맞을 짓을 하는 놈도 드물지.”
한석이 주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이 일 때문에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응. 다른 안건이 있어서지. 드디어 성훈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드디어!”
“주말에 그룹에 모여있던 녀석들을 불러들였다고 연락이 왔다. 곧 조만간 나한테도 연락이 오겠지.”
“그런데 벌써 대책을 세우시게요?”
그의 말에 한 교수가 코웃음 쳤다.
“전화해서 바로 쓸만한 놈 올려보내라고 난리 칠 놈인데, 늦장 대응했다가는 잔소리만 듣는다고. 그러니까 미리 대비해 둬야지.”
“쯧쯧. 교수님. 제자가 아니라 상전이네요. 상전.”
“어쩌겠냐? 잘난 놈은 제자로 둔 내 업이지.”
한숨을 내쉬며, 한 교수가 차를 후룩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