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68화
인원 보강(02)
사무실로 돌아가니 선객이 있었다.
“성훈 님! 다녀왔습니다.”
성훈도 함께 인사하며, 소파로 그를 안내했다.
“곽 전…… 아니. 부사장님. 죄송합니다. 자꾸 습관이 되어놔서.”
“아닙니다. 뭐로 부르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하긴 그렇죠!”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곽 부사장이었다.
그리고 성훈은 팀장이었다.
입사할 때부터 팀장, 그리고 지금도 팀장!
현재 건설 본사 건물의 세 개 층을 차지하고 있는 KT팀의 팀장.
곽 부사장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성훈 님의 직급도 좀 올리시지. 아직도 팀장님이시니.”
“그거야말로 뭐가 중요합니까?”
“그래도…… 저는 벌써 부사장인데…….”
“저는 팀장이면 충분합니다.”
곽 부사장의 관자놀이가 빠직거렸다.
‘그게 어디! 성훈 님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당신 위에 누구요? 하고 물으면, 부사장이니 으레 사장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의 상관은 팀장!
‘말하기도 뭐하고, 안 하기도 뭐하고!’
부사장, 전무, 이사들을 거느린 팀장!
그 깐깐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현재 건설 사장이, 일체 일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KT팀.
“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 주시고 그러세요?”
성훈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일 얘기나 하시죠? 앉으세요.”
서류가방을 탁자에 올리며, 성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성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압둘이 내건 조건이 좀 까다롭다면서요?”
“물경 30억 불짜리 공사입니다. 그럴만하지요.”
“어떤 조건인지 들어보도록 할까요?”
곽 부사장은 신이 난 듯했다.
높은 금액에 고무된 게 아니었을까?
“이게 성사된다면, 지금까지 수주한 것 중에 단일 건으로는 최고의 물량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거저먹는 것이 있던가?
덩어리가 클수록, 대어가 모이는 법!
“이번에는 프랭크도 참가한다면서요?”
“네. 그 어르신도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면서 열정을 불태우시더군요.”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 외에는 오타다, 이아젠만, 호울! 이 건축가들이 참가합니다.”
거론되는 건축가들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이 아니던가?
어깨를 견주며 경쟁한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지난 삶에서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아니던가?
절로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휴!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네요.”
하지만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 성훈의 눈은 전혀 떨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를 불태운다고 할까?
성훈의 마음을 알았던가?
곽 부사장이 말했다.
“우리 KT 팀도 이름만 가지고는 밀리지 않습니다. 지난 삼 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쌓아온 명성은 이때를 위한 것이었다.
‘진짜배기들을 위한 무대는 따로 있거든!’
스스로의 레벨을 올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들과의 같은 리그에 참여할 수 없는 법!
그러나 순수하게 우리 팀만의 힘만으로 그 무대에 올랐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면, 그 대답은 ‘노’였다.
“압둘이 신경 많이 써 줬네요.”
성훈의 말뜻을 알아챈 부사장이 빙긋 웃었다.
“네. 쿠웨이트 국왕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지요. 그런데도 성훈 님께서 직접 가시지 않으셨으니…….”
성훈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뭐라고 하던가요?”
부사장이 근엄한 목소리를 흉내냈다.
“‘일하기 싫으냐?’라고 전하라 하더군요.”
“단지 제가 직접 안 갔다고요?”
“다른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훈이 코웃음 쳤다.
“우리 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갔으면 됐지! 뭘!”
명목상의 대표자는 누가 뭐래도, 최상급자가 아니던가?
고로 팀장보다는 부사장이 위!
대외적인 대표는 누가 뭐래도, 곽 부사장이었다.
실무를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는 부사장 대신, 자신이 갔지만, 사진을 찍거나 혹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곳은 반드시 부사장을 보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서로 인사하고 약간의 설명만 들으면 되는 모임!
성훈이 투덜거렸다.
“칫! 완전히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왕이면 다야? 오라 가라 하게!”
부사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분께 그리 말할 수 있는 분도, 성훈 님뿐이시지요.’
“‘얼굴 한 번 비추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냐?’고도 하셨습니다.”
“거기 갈 시간이 어딨어요? 작년에 거기서 살았으면 됐지.”
작년에 압둘 호텔의 인테리어를 한다고, 거의 육 개월 가까이 쿠웨이트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보고 싶으면 자기가 오라고 전해 주세요! 비행기라도 한 대 주던가? 그럼 오라 그럴 때마다 날아가지! 안 그래요?”
부사장이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 말씀,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농담이 많이 느셨습니다.”
부사장이 속으로 다짐했다.
‘앞의 말은 전할 수 없지만, 뒤의 말은 꼭 전하겠습니다. 흐흐.’
이제는 성훈 대신 현장을 뛰어다니기보다, 사내에 머물며 관리를 하고 싶은 부사장이었다.
‘더 이상은 올라갈 자리도 없다고!’
사장은 오너 일가가 버티고 있으니 안 되고, 성훈을 넘어설 야망은 애초에 없었다.
성훈이 물었다.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까부터 웃음이 떠나질 않으시네요.”
뜨끔한 부사장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세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까요.”
“아직은 아니죠.”
머쓱하게 웃는 부사장에게 말을 이었다.
“우리 팀에 대해서 경계를 많이 하던가요?”
부사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경계를 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시공팀으로 온 줄 알고 쌍수를 들어 반기더군요.”
“하하. 그랬어요?”
부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그럴 수밖에요. 시공하면 KT 팀이 세계 원탑이잖습니까? 경쟁자가 없는!”
“그래서 뭐라 그랬어요?”
“설계 따러 왔다고 했지요.”
성훈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멋진 경쟁이 되길 원한다며 악수를 청하더군요.”
“그러고는요?”
“시공은 저희더러 꼭 해 달라는 말도 하면서…….”
성훈이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
“그게 웃을 일입니까? 얼굴이 붉어져서……. 참 내!”
“좋잖아요. 우릴 경쟁자로 안 여긴다는 말이니까. 적어도 보안 걱정은 없겠네요.”
물론 꼼뻬에서 꼭 뒤통수를 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가진바,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면 되는 것!
하지만 비슷한 기량의 경쟁자가 모여들 경우는, 실제 작업보다는 보안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그건 꼭 전쟁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면, 정찰은 무의미하지.’
그럴 시간에 내실을 다지는 게 옳은 판단이다.
그게 아직은 세계에서 바라보는, KT 팀의 현주소였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냉정한 분석!
성훈이 웃음을 멈추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 일이 끝난 뒤에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겠어요.”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사장도 이를 악물었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선 거네요.”
“삼 년이 걸렸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부사장님은 내부 관리에 신경써 주세요.”
부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입니까?”
“설계는 부사장님 전문이 아니잖아요.”
“그, 그렇지요.”
부사장이 시선을 천정으로 돌렸다.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압둘을 놀라게 해 줘야죠.”
부사장도 각오를 다졌다.
“그래야지요. 세상을 놀라게 해 줘야지요.”
짝!
성훈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자! 그럼 이제, 필요한 사람을 모아볼까요?”
“그건 제가 인사부장에게…….”
성훈이 손을 내저었다.
“아뇨! 지금 부장님은 기사들 모으는 것만으로도 과부하이신 것 같아요.”
부사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고 싶은 말도 같이 삼켰다.
‘당! 연! 히! 과부하지요! 사람이 양심이 없어요!’
입을 열면 그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으니까!
성훈이 인사부장에게만 사람을 모으라고 했을까?
곽 부사장이 아는 인맥 또한 총동원해야 했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고액 연봉을 주는 직장을 소개해 줘서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러나 감사의 말이 원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 그렇게 살지 마시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소!’
곽 부사장이라고 할 말이 없으랴!
‘누가 계약하라고 떠밀었어? 계약서 보여준 것뿐인데!’
그렇게 부사장은 다단계 하는 사람들보다도 빨리 인맥을 잃어버렸다.
‘그 사람들! 이제 제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
회장이 물었다.
“각 계열사에 박아뒀던 지 새끼들, 다 데려오라고 했다면서?”
사장이 대답했다.
“네. 일주일 전에 각 계열사로 협조문 띄웠습니다.”
“놈! 결국 지가 원하는 대로 다 했구만!”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난 듯, 사장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뭘 할지 기대가 됩니다.”
“반대하는 사장들은 없었고?”
“왜 없었겠습니까? 일 제일 잘하는 사원들로 뽑아간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회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우짜겠노? 니가 제일 힘이 센데.”
대기업의 계열사들은 위급할 때 서로를 돕기 위해 다른 계열사의 주식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반대로 그것은 한 계열사의 독주를 막는 방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 년 사이에 현재 건설 사장의 위상은 확연하게 바뀌어 버렸다.
다른 형제들을 앞지르고, 압도적인 1위!
회장은 우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다른 놈들 도움 없이, 니 혼자서 경영권 보호할 수 있제?”
“네. 가능합니다.”
사장의 말에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놈들이 멍청해가, 이래 벌어진 기 아니라는 거는 니도 뻔히 알고 있을기고.”
“네. 알고 있습니다.”
“글마들이 성훈이를 델고 갔으믄, 아마도 입장이 완전히 뒤바뀠을끼라!”
사장도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건 인정합니다. 아버지.”
조금도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장에게 안심한 듯, 회장이 주제를 바꿨다.
“이번 수주액은 얼마라꼬?”
“30억 불이랍니다.”
어이없다는 듯 회장이 웃었다.
“뭐 그래 크노?”
“압둘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만들겠다고 했답니다.”
“그래가 글마는 그걸 하겠다고 덤빈 기고?”
“네. 이번에는 설계와 시공을 다 먹어야겠답니다.”
“크. 글마 욕심을 누가 말릴꼬? 승산은 쪼매 있어 보이드나?”
회장의 감탄과 걱정이 이어졌다.
사장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답했다.
“솔직히 이번에는 저도 장담을 못 하겠습니다.”
회장의 의문스런 시선에 사장이 답을 이었다.
“워낙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덤벼들었고, 아무래도 설계 쪽은 좀…….”
“뭐! 몬 해도 시공은 안 갖고 오겠나?”
그 말에는 사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공은……. KT 팀 따라갈 회사가 없습니다.”
“느그집 막둥이. 이번에 유학 마치고 온다캤나?”
“네. 두 달 후에 귀국할 겁니다.”
“글마한테 회사 이을 생각라면서? 참말이가?”
“네.”
“그랄 거믄 성훈 밑에 보내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만…….”
사장의 염려가 뭔지 왜 모르랴?
“몬 버틸 거 같제?”
사장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베테랑들도 나가떨어지는 판에.”
“글마 밑에서 못 버티믄, 사장 자리 줄 생각하지 말고, 걍 성훈이한테 줘 뿌라.”
농담이 아닌, 진지한 말이었다.
“지 뜻대로 안 되믄, 경영권 확보할라고 덤빌 놈이고!”
회장의 선견지명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거 갖고 싸우다가는, 회사 작살날 낀데, 고민할 필요 있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다가 배알 꼴리가 회사라도 차리가 나가뿌믄? 니 그거 뒷감당할 수 있겠나?”
그거야말로 큰일이 아니던가?
“성훈이하고 호형호제 하믄서 회사일 할 수 있으믄, 성훈이가 회사 알아가 돌릴 거고.”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도 못할 그릇 같으믄, 주식이나 갖고 다른 일 알아보라 캐라. 언놈을 붙이놔도, 성훈이, 가한테는 안 된다!”
회장의 단언이었다.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크. 알겠습니다. 막내에게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