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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66화 (366/427)

건축의 신 366화

왕의 거처(10)

그렇게 고객들의 객실 독점 문제는 일단락을 지었고, 호텔의 일은 지배인 아미르의 지휘 아래 순탄하게 굴러갔다.

덕분에 성훈은 공사에 매진할 수 있었고, 덕분에 공사도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성훈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공사의 품질보다는 기사와 인부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상한 자부터.’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최 과장은 ‘신영 산업, 심 사장이 아닐까요?’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그를 타겟으로 삼아 다른 공장에 본보기를 보였으니까!

누가 되어도 상관없는 거였지만, 신영은 운이 나빴다.

나한테 걸린 게.

하지만 난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그에게 기회를 준 것만 해도 나로서는 큰 호의를 베푼 거였다.

***

언제였던가, 최 과장이 물었다.

“팀장님. 이건 좀 심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뭐가요?”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에 그가 물었다.

“공장을 지휘해야 할 사장이 이렇게 현장에 나와 있어서야…….”

나이 지긋하신 사장이 작업복을 입고 땀 흘리고 있으니, 안쓰럽기도 하겠지.

그가 말을 이었다.

“공장은 공장의 일이 따로 있고, 현장은 현장의 일이 따로 있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공조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나름 논리적인 말이었지만, 내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기각되었다.

‘사장의 정신머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그에게 물었다.

“최 과장님, 혹시 공장 생활 해 보셨습니까?”

“네?”

되묻는 걸 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문제 있을 때, 품질 확인하러 공장에는 몇 번 들른 게 다죠?”

“네. 아무래도 현장 담당이다 보니.”

지난 삶에서 난, 그들을 맞이하는 처지였다.

그를 직시하며 물었다.

“그럼 공장이 왜 몰딩 몇 개를 우습게 보는지, 이유를 모르시겠네요?”

“우습게 본다고요?”

미간을 좁히는 그에게 말했다.

“현장에서는 자재 가지러 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당연하죠. 거기까지 가는 거리가 있는데요.”

그의 당연한 대답을 들으며 웃었다.

‘그 거리가 문제죠.’

“공장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 그게…….”

“공장이 현장을 이해한다고요? 제가 보기엔 아니던데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기본 환경이 다릅니다.”

눈만 멀뚱거리는 그에게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는 몰딩이 부족하면 현장이 정지되지만, 공장에서는 몰딩이 바로 손닿는 곳에 있거든요.”

“아!”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몰딩 하나 가지러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저렇게 지랄을 하는 거냐고요. 그 자재 가지러 갈 시간이면, 해당 작업을 열 개는 더 할 수가 있는데 말이죠!”

“음…….”

“이해하기 싫은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바로 옆에 있는 거 가져오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 그거죠.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인건비는요? 공장 직원 인건비보다 현장 인부들의 인건비가 배나 비싼데도 말이죠.”

비쌀 수밖에 없다.

공장 직원들은 단계별 단순 작업을 하는 노무자이지만, 현장에서는 베테랑만이 공구를 손에 쥘 수 있으니까!

어중이떠중이에게 연장을 맡겼다가는 공장에서 공들여 만든 물건을 쓰레기로 만들 수도 있다고!

그 잘못된 제품 하나 때문에 수십 분이 허비되는데, 그 수가 백 개라고 가정해 보라.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는 돈이 줄줄 새는데도, 공장은 그걸 전혀 이해 못 한다고요.”

답답함을 토로하며 말을 이었다.

“이해하려면, 직접 와서 겪어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장을 직접…….”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네! 그것도 작업자가 아니라, 사장이 직접 겪어야 합니다. 그게 싫으면 물건을 하자 없이 만들겠죠!”

***

그 뒤로 최 과장은 심 사장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가장 힘들었겠냐?’라는 물음에 제일 먼저 꼽은 사람이 신영 심 사장이었다.

‘한 번으로 끝낼 공사면 몰라도, 다음 공사를 위해서는 좋은 기억도 만들어야 한다고.’

끝맺음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성훈이 물었다.

“과장님. 신영 심 사장님, 오실 때 안 됐어요?”

그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네. 이제 거의 다 왔을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손수 차를 타서, 심사장에게 내밀었다.

“할 만하세요? 사장님.”

몰딩 납품 건으로 호되게 당한 다음에는 아예 붙박이로 눌러앉아 품질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현장을 우선시한다는 말도 되지만, 현재 건설에서 넣은 압박도 한몫했으리라.

지금은 한국에 가 있지만, 이런 일이라면 시키지 않아도 잘할 곽 이사였다.

그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할 만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매끼 뷔페에, 잠도 호텔에서 자는데 말입니다.”

“사장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공사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네요.”

감사의 말이었지만, 그는 긴장하며 슬며시 너스레를 떨었다.

“그게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 팀장님께서 잘 지휘하신 덕분이지요.”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던 거 압니다.”

“아니요. 애초에 저희 쪽 실수였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성훈이 그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그때는 몰딩을 바로 반품하고 다른 공장을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성훈이 입에 담은 그때란, 아마 처음 난리가 났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만 해도 사장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그의 마음을 성훈이 어떻게 모르랴?

‘얼마나 애간장을 졸이며 비행기를 탔겠어?’

자칫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는 위기였을 것이다.

고작 현장 하나 때문에 그 큰 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거짓말 같아 들리지만, 전혀 아니거든!

‘왜냐면, 다 빚으로 세운 공장이니까!’

엄청난 자본가가 아닌 이상, 자기 돈만 가지고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출받아서 공장을 세우고, 원금과 이자를 갚아가며, 천천히 회사의 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중소기업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다가 사정이 안 좋아져서 이자 납부가 약간만 밀리면, 은행들이 빨간딱지를 붙이러 오지.’

그때부터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애초에 자본가들이라면 돈을 굴려 벌 생각을 하지, 생산 사업에 뛰어들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그의 신영 산업 또한, 똑같은 길을 밟고 있을걸.

그런 와중에서 현재 건설이라는 큰 업체와 척을 지면, 앞으로의 일은 끊어질 것이고, 키워 놓은 공장을 온전히 가동할 수도 없어진다.

로스는 곧 공장의 적자와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런 악순환을 석 달만 반복하면, 십 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진다고. 길어야 육 개월이겠지.’

훗! 그걸 알면서 왜 그렇게 공장을 키웠느냐고?

‘코딱지만한 공장에 어떤 대기업이 일을 맡겨!’

아무리 영업력이 있어도, 장비가 받쳐주지 못하면, 대기업의 안중에는 들지 못했다.

그들의 일을 맡아야 파이가 커지고, 맡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고, 공장의 규모를 키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구멍가게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어차피 불안요소를 안고 가기는 마찬가지지만, 파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성공의 기회가 많았다.

게다가 성훈의 오더는 값을 제대로, 아니 많이 쳐주는 제품이 아니던가?

이제는 은행 배를 불리지 않고, 자기 배를 불릴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현재 건설이라는 큼직한 오더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의 위기감의 근원은 거기에 있었다.

사장이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성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말을 지금 왜 하는 겁니까? 팀장님.’

하지만 지금 부른 이유는 그를 타박할 목적이 아닌 듯, 성훈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사장님께서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재빨리 조처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성훈이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공사도 공사려니와, 앞으로는 사장님 얼굴을 안 볼 생각이었습니다.”

사장의 가슴이 두근두근 널뛰기했다.

“이, 이해합니다.”

긴장이 과했던지, 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상주하시면서 관심 가져 주셔서 제 마음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른 웃음을 토하며 긴장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야 뭐 말단 월급쟁이 아닙니까? 사장님께서는 중소기업 오너이시구요. 안 그래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진짭니다. 제가 나중에 잘리면 사장님께서 받아주셔야 하잖아요. 안 그래요?”

성훈의 농담에 조금 자리가 부드러워졌다.

성훈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어때요. 사장님. 직접 현장에 계시니 생각하신 것과는 차이가 크죠?”

“네. 저도 예전에 현장 생활을 해봤습니다만……. 많이 다르더군요.”

성훈이 빙긋 웃었다.

“사장님께서 현장 해 보신 건 적어도 20년 전이실 겁니다.”

“그렇죠.”

“제가 걸음마를 할 때였으니, 그 경험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훗.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때보다 삶은 나아졌고 그만큼 자재의 수도 다양해졌습니다.”

심 사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에서의 한 걸음은 현장에서의 백 걸음에 맞먹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훈이 말한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공장의 정리된 라인에는 불량품을 걷어내기만 하면 되지만, 현장에서는 그걸 가지러 가기 위해 자재 창고까지 돈 안 되는 걸음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공장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 주시면…….”

그가 성훈의 말을 이어받았다.

“현장에서는 몇 배나 작업이 빨라지죠.”

그의 맞장구를 들으며, 성훈이 물었다.

“지금 현장에 공장 분들이 몇 명 계시죠?”

“지난달까지 스무 명이 있었는데 이제 물량이 줄어서 열 명이 남아 있습니다.”

“흠. 아직도요?”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현장에 딜리버리 하려면 어쩔 수 없죠. 사실 저희 때문에 현장에서도 손해를 많이 봤구요. 현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이 인원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손해가 크시겠는데요?”

그는 손을 내저었다.

“손해는요. 처음 단가가 좋아서 전혀 손해는 없었습니다. 웬만한 현장보다 더 수익이 컸습니다.”

최 과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파트너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최 과장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장이 규칙대로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집합이 아니라는 거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여 협조하면서,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실무자인 최 과장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이 정도 각오라면 충분하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전 신영, 다음 현장까지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사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이렇게 사고를 쳤는데도, 데리고 갈 생각이냐는 물음이리라.

“무엇보다 품질은 좋으니까요. 그리고 사장님께서도 제 일처럼 신경을 써 주셨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신영의 품질에 자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성훈이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어깨 펴세요. 사장님. 전 월급쟁이고, 사장님께서는 한 달에 수억씩 버시는 분이신데요.”

성훈 자신이 월급쟁이라는 말에 최 과장은 고개를 모로 돌리며 어이없어했지만, 실상을 모르는 심 사장에게는 격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성훈이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전 이미 한 번 기회를 드렸습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네. 팀장님.”

“아무리 밥을 잘 짓는 취사병이라도, 배식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심 사장은 그 눈을 직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리면 다시 돌아보지 않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팀장님.”

“그럼 바쁘실 테니, 가서 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석 달 후.

리야드 현장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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