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64화 (364/427)

건축의 신 364화

왕의 거처(08)

설명이 끝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흥분한 대신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비슷하기는커녕, 완전히 다른데?’

‘난 세 번째 객실이 딱 마음에 들더구만. 특히 꽃살 무늬에 붙은 창호지 향이 참 좋단 말이지.’

‘그랬나? 나는 비단 깔린 침대가 참 좋던데. 그 병풍 앞에 있는 거 말이야.’

‘이 무식한……. 아까 설명할 때, 귀 막고 있었나? ‘이부자리’라 하지 않던가? 다리도 없는데, 무슨 침대야?’

‘흥. 자기도 방금 안 주제에! 뭐, 어쨌거나 그게 마음에 들더구먼. 폭신하니, 잠도 솔솔 잘 올 것 같아.’

흥분한 그들에게 성훈이 물었다.

“잘들 구경하셨습니까?”

대신들이 기분 좋은 듯,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네. 아주 잘 봤네. 아주 마음에 들어.”

“개장하면 반드시 묵어보도록 하지.”

“3차분은 언제 개장하나? 내 그것까지 몽땅 예약하도록 하지.”

“크크크. 세 개 몽땅 예약할 생각이군요. 법무대신께서는!”

“바로 그거지. 번갈아가면서 즐기는 거지.”

신난 얼굴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훈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쩝. 당신들이 그럴 것 같아서! 내가 이 수고를 하는 거라고.’

돈 주고 쓰겠다는 고객을 무슨 명분으로 말릴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겠어? 이제 선택의 시간이라고.’

“그 객실들을 내일부터 예약받을 겁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다면서?”

성훈이 입매를 올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예약이죠.”

성질 급한 대신이 말했다.

“좋군. 그럼 내일 바로 예약하도록 하지.”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야.

‘이제부터가 승부처가 될 거야.’

그들의 호응에 성훈이 웃음을 띄며 말했다.

“관심 감사합니다. 그 전에 먼저 주지시켜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우리 호텔에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을 규칙을 무엇하러 만들었나?”

‘걱정하지 마셔! 이제부터 쓸 거니까.’

지금 만들었으니까, 사용한 적이 없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지.

다른 대신이 물었다.

“어떤 규칙인가?”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객실을 잡을 수 없다는 겁니다.”

대신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지만, 성훈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그동안 한 고객이 의도적으로 두 개 이상의 객실을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괜히 말이 길어질까 봐서 급히 말을 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객실을 두 개나 잡겠습니까? 사실 자는데 방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몸이 두 개도 아닌데요?”

마뜩찮은 눈으로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기는 하지.”

“그러니 있어도 사용하지 않았던 거죠.”

한 대신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내 지금까지 이 호텔에 수도 없이 묵었는데, 한 번도 그런 소리는…….”

“혹시 객실을 두 개 잡으셨던 겁니까?”

그가 뜨끔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적은 없지.”

“그러니까 말씀드릴 이유가 없었죠! 다른 분들께서는 있으십니까?”

있을 리가 있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지!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전산 오류나 고객의 실수가 아니고는 그런 경우는 절대! 없었거든요. 그렇게 유명무실한 규칙이니,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성훈의 눈빛이 강해졌다.

‘이제 규칙은 말해 줬어!’

규칙을 어기는 고객을 쫓아낼 명분이 생긴 거지!

대신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 묻고 있었다.

‘이런 규칙, 들은 적 있냐’고?

다른 어떤 호텔에서도 들은 적은 없었을 거야.

‘당신들처럼 사용하지도 않을 방을 두세 개씩 잡는 미친 인간들은 없거든!’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돈이 썩어나는 사람들! 확인이 필요해?’

성훈이 지배인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지배인! 우리 호텔에 그 규칙이 있죠?”

지배인은 피식 미소가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작 십 분 전에 정해진 규칙이니 ‘미처’라는 말은 어폐가 있었지만, 지배인은 말을 아꼈다.

규칙이 있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 아니던가?

지배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대답만 하라는 게 이런 의미였군요.’

이미 유명무실하다며 실드를 쳐뒀으니, 다른 설명도 필요 없었다.

내무대신이 빙긋이 물었다.

“내일 말씀하시면 될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눈치 빠른 사람이 있으면 말하기가 편하다고.’

“지금 말씀드리지 않으면, 여러분께 기회가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씀은…….”

“간혹 가다가 일 년 치 숙박부를 끊으시는 고객들이 있더군요.”

눈을 피하는 대신들을 아우르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1차분 객실이 만석입니다. 그럼 내일 예약을 받으면 다른 고객들도 일 년 숙박을 끊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은 운이 나쁘면…….

“일 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내무대신의 말에 성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네! 바로 그 말입니다. 게다가…….”

지배인 쪽으로 시선을 툭 던졌다.

“저희 호텔에 이렇게 응원하시는 분들께 새로운 객실을 이용할 기회를 미리 공지하지도 않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기존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지배인이 말하더군요.”

고마움을 전하는 대신들의 눈인사에 지배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쫓아내지 말라고 했지. 제가 언제…….’

다시 성훈에게 시선이 모이자, 말을 이었다.

“굳이 지금 말씀드린 건 우선 선택권을 드리자는 의도였지요. 기존의 고객들이 일 년 동안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저로서도 마음이 아프거든요.”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일 년 동안 눌러앉을 거고, 내 계획에 아주 큰 차질이 생기겠지! 아주 진상들이야. 진상!’

진상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런 몰상식한 놈들이 있단 말인가?”

뭘 자기는 아닌 척을 하고 있어?

이 중에서 90%는 다 그렇다고!

속내를 숨기며 말을 이었다.

“간혹 그런 몰상식한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몰상식한 고객들이 웅성거렸다.

‘그럼 진짜 일 년 기다려 하는 건가?’

‘그게 싫으면 지금의 객실을 내놓아야 한다고!’

‘무지막지한 놈들일세. 일 년을 예약하다니.’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이던가?’

‘흥! 난 육 개월밖에 안 끊었다고.’

‘방법이 없을까? 놈들이 예약하게 못 하는 방법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던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미래의 고객들을 성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하나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고. 지극히 평범한 이치니까.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솔직히 일 년은 너무한 거 아닌가?”

성훈이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렇게 예약한 고객이 있는 이상은…….”

“하지만 녀석들은 우리보다 계급도 낮고…….”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3만 왕족 중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직계혈족에 가깝고, 현 국왕의 주위에 있는 자들.

하지만 성훈의 생각은 달랐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제게는 모두 똑같이 귀한 고객입니다. 지극히 평등하지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별을 말하기만 해 봐!’

알리를 내세워서 다 밟아 버릴 테니까. 이길 놈 있으면 나와!

제 입으로 말한 거니까, 피할 수도 없으리라.

내무대신이 분위기를 보다 말을 꺼냈다.

“이쯤에서 교통 정리가 필요한 것 같군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대신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런 기회 없이 예약이 진행되었었다고 해도, 우리가 호텔 측에 항의할 수 있는 건 없소. 그렇지 않소?”

수긍하는 대신들에게 그가 말했다.

“호텔에서는 기존 고객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데, 여기서 득 되는 방향으로만 하라는 건, 억지에 지나지 않소.”

“호텔 측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텔에서 말하는 새로운 고객 또한, 왕국의 백성일 터, 조정의 중진답게 포용의 정신으로 양보를 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되오만.”

그의 차분한 눈빛에 무어라 항의를 할 것인가?

수긍하는 대신들을 보며, 그가 성훈에게 물었다.

“사장님께서 고객을 배려하시는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문제는 기간인데, 어느 정도의 기간으로 정하면 가장 적절할는지요?”

그는 성훈에게 은근히 결정권을 밀어주고 있었다. 대신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다양함을 살리기 위해서 3차분의 디자인을 모두 6종류로 나누었습니다. 고로 18가지의 다른 객실이 있다는 거지요.”

“허. 18가지나 있다고?”

놀라는 그들에게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은 한 달에 한 번씩 바꾼다고 해도…….”

“다 보려면 1년 하고도 육 개월이 걸린다는 말이구려.”

당신들이 그렇게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일 년씩 묵으면 십팔 년이 걸린다고. 이 양반들아!’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한 달을 단위로 끊으면 어떨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히시는지요?”

***

국왕이 물었다.

“거기, 리야드 지배인.”

“네. 전하. 하명하시옵소서.”

왕의 부름에 지배인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평민인 그에게는 국왕의 존재는 함부로 얼굴을 대하기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게 어떤 장소이건, 시간이건 관계없이 말이다.

“내일부터 예약을 받는다는 말이 정말인가?”

물론 예약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국왕이 묻는 것은 저 말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원래 그런 계획이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리라.

“계획은 사장님께서 세우시는 거지요.”

왕이 피식 웃음을 지우며 웃었다.

“자네가 저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냐는 말일세.”

사업기밀이라 한들, 왕에게 무엇을 숨기랴?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진실을 고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방금 알았습니다.”

“훗! 그럼 방금 저 녀석 입에서 처음 나온 거로군.”

알리가 맞장구쳤다.

“그렇군요. 여우 같은 녀석.”

“그만큼 급했다는 말이지. 그보다 베테랑인 지배인과 의논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지배인이 몸가짐을 바로 하며 물었다.

“하오나 전하?”

“응?”

지배인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옵니다. 내일부터 사장님께서 시행하시면…….”

긴장이 느껴지는 그의 말에 왕이 피식 웃었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그리고는 알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중복 숙박이 안 된다는 것? 알리, 네가 있을 때 있던 규칙이냐?”

“아니오. 저도 그런 규칙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훗. 그렇다면 그것도?”

둘의 눈이 지배인에게 향했다.

강렬한 눈빛에 그가 입을 열었다.

“꿀꺽. 그게 신임 사장님의 첫 번째 규칙입니다.”

둘은 말없이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알고 있었냐는 물음이리라.

혀로 입술을 훔치며 왕께 고했다.

“오 분 전에 생긴 규칙입니다.”

“크윽. 그랬단 말이지?”

왕이 눈썹을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저들에게 하나만 선택하도록, 먼저 조건을 내건 거로구만. 영악한 놈.”

다시 꿈틀하는 지배인을 보고는 알리가 말했다.

“그래도 거짓은 아니질 않습니까? 이 사람 말처럼 말입니다.”

고개를 숙인 지배인에게 왕이 물었다.

“그럼 숙박 기간 한 달이라는 규칙은?”

“그건 저도 방금 처음 들었습니다.”

대신들에게 설명하는 성훈을 보며, 왕이 피식 웃었다.

“알리. 너는 예상하고 있었더냐?”

“흐흐흐. 저런 방법으로 쫓아내리라고는……. 저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왕.”

“그러게 말이다. 고 녀석! 끝까지 나가라는 말은 한마디도 뱉지 않는군.”

“그러게요. 원래 녀석의 성격이라면 당장 꺼지라고 난리를 쳐도 시원찮을 텐데 말입니다.”

알리를 보며 왕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중에 대신들이 녀석을 원망할까?”

“왜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질 않습니까? 종아리를 때리는 대신, 떡을 안겨 줬는데요.”

“그렇지. 대신들은 녀석의 진짜 목적이 뭐였는지는 끝까지 모를 거다. 나조차도 녀석의 속셈을 몰랐다면, 감쪽같이 속았을 테니.”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영악해. 너무 영악해.”

왕이 지배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리 표정이 뚱한가?”

알리도 그를 보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그는 고개를 들어 왕과 눈을 마주쳤다.

“국왕 전하. 외람되오나, 저의 사장님께서는 누군가를 속이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긴…….”

우물쭈물하는 그에게 왕이 말을 이었다.

“할 말이 있다면 마저 하도록 하라.”

“그것이…… 영악하다기보다는 영민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전하.”

알리가 지배인에게 눈썹을 세웠다.

“아미르! 자네 감히 전하께…….”

지배인은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욱한 마음에 말을 하기는 했지만, 주제넘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성훈을 편들어줄 사람이 자신 말고 누가 있는가?

그리고 혼이 나더라도 틀린 말은 정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왕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누굴 악독하게 속인 것은 아니잖아.’

입술을 훔치며 각오를 다졌다.

‘제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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