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62화 (362/427)

건축의 신 362화

왕의 거처(06)

지배인이 나를 따라오며 물었다.

“정말 말씀대로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쫓아내시려는 게 아니라요?”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데려가는 거죠. 억지로 할 거면, 그냥 당신에게 잘 해결됐다고 통보했겠죠.”

급히 따라오는 그의 옆얼굴을 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 믿지 않겠지!”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사장님의 존재 자체가 압박인 것을. 저는 도무지 사장님의…….”

“그냥 따라와서 잠자코 지켜만 보세요.”

“허허허.”

하지만 걸음을 빨리하며 나와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지금 국정 회의 중이라고 했죠?”

“네. 아까 다들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궁금한 듯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실 요량이신지, 적어도 저는 알아야…….”

나를 말리든지 말든지 하겠다?

그렇게 염려가 되었으면, 데려오지 않았지.

나는 확신이 있었다.

“당신이 간과한 게 한 가지 있어요.”

“간과했다니요? 그게 뭡니까?”

“고객이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변덕이 심한 줄 모른다는 거죠. 만약 고객이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는 경우에는 취소할 수 있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당신도 할 말 없겠죠?”

그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말했다.

“고객이 싫다는데, 제가 무슨 권한으로 이래라저래라 하겠습니까?”

“그럼 됐어요. 당신은 지켜보기만 하고, 내가 묻는 말에 답이나 해요.”

***

성훈이 꼭대기 층에 도착했을 때, 왕과 대신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럼 외무대신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전하.”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켜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닙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한다고 할 때, 재빨리 한 손 거드는 것이 나은 선택이 아닐는지요? 전하.”

“내무대신! 그게 아니래도 그러십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주변 국가들에게 빈축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전 왕세자의 군비 확장 때문에 국경의 긴장이 팽팽한 상황인데.”

그들의 열띤 토론을 왕이 중재했다.

“그만들 하게. 미국에서 사람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지! 이만 물러들 가도록 하라.”

대신들을 아우르며 왕이 말을 이었다.

“더 이야기할 대신들이 있으면, 나와 같이 찜질이나 하면서 하지. 어떤가?”

국왕의 제안에 대신들이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며, 왕의 눈을 피했다.

지배인을 보며 씨익 웃었다.

“딱 시간 맞춰 왔네요. 엉? 그런데 사람이 마흔 명 정도밖에 안 되네요?”

“그렇군요. 다음에 올까요?”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고객이 맞는 거죠?”

“네. 맞습니다. 사장님!”

“됐어요. 그럼. 잔챙이들 일일이 상대하는 것보다 대가리부터 치는 게 더 쉽겠죠.”

여기 있는 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인물들임이 분명했다.

지배인은 저렴한 성훈의 언어구사에, 대신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많이 출세했네요. 아까는 벌레였는데!’

왕의 옆에서 회의 문서들을 정리하던 알리가 성훈의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그를 보며 성훈이 입술을 비틀었다.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든 원흉이 저기 있군요.”

잘못을 왕세자에게 돌리는 성훈을 지배인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맨 처음의 원인을 따지자면, 사장님께 있지요.’

왕에게 거처를 만들어 준 이는 다름 아닌 성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성훈에게 할 수는 없는 법.

사실 반신반의하면서도, 성훈의 확신에 이끌리듯 따라왔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우기는 성훈에게 일말의 희망을 거는 마음도 있었다.

입술을 비틀며 투지를 불태우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저 왕족들을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니, 어쩌면 쉽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가 보기에 성훈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국왕의 권위에 기대는 것일 터!

알리의 얼굴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전하.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

알리가 호텔을 떠나던 날.

지배인은 그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사직서? 혹시 내가 섭섭하게 한 것이 있나?”

예상치 못한 사직서를 보며, 알리가 한 말이었다.

“아니오. 사장님께서는 지금까지 모신 어떤 분보다 더 좋은 오너셨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도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사직서를 건드리지도 않고 미간을 좁혔다.

“신임 사장에게 직접 제출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마음을 굽힐 뜻이 없는 듯, 그는 사직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허. 아리프!”

왜냐며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에게 알리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이렇게 관두게 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는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 내가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찌 모르겠나?”

알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달랬다.

“자네는 아직 그에 대해 알지도 못하질 않나?”

지배인이 말했다.

“신임사장님께서는 괴팍하신 데다, 돈에 관해서는 양보가 없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호텔이란 거금이 오가는 곳.

대부분의 신임 오너들은 초반에 들인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선택은 호텔 경영에 무리를 주고, 결국은 호텔의 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었다.

호텔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어찌 예측하지 못하겠는가?

허나 적은 투자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었음에도 당연한 듯 행해졌고, 더구나 호텔의 미래보다는 돈을 먼저 생각하는 애송이 사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배인이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 온 경력에 흠을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장님.”

어쩌면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일 것이다.

희미한 실망이 깃든 그의 표정은 ‘제가 모실 분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며 알리가 호통을 쳤다.

“감히! 어떤 놈이 내 동생에게 그딴 소리를!”

“전하께서 말씀하셨지요.”

“그건 말……. 켁! 켁!”

사레들린 듯, 급한 기침을 내뱉던 알리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흠. 다음 말은 기억나지 않는가? 녀석은 분명히 괴팍하고, 돈에는 양보가 없지.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지.”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절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아!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렇습니까?”

“그래. 그건 자네도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지배인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게 있어서 호텔이란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닙니다. 고객의 편안한 휴식을 위한 곳이지요.”

“훗! 자네의 굳은 신념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그럼 그걸 아시면서도?”

그는 ‘그런 분과 일을 하라는 말입니까?’하는 말을 삼켰다.

그 의미를 알리라고 어찌 모를 텐가?

하지만 알리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아니까 하는 말이야. 녀석이 자네를 실망시키거든, 그때 이걸 내밀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알리는 사직서를 집었다.

“자네가 나를 십 년 동안 지켜본 것처럼, 녀석에게도 자네에게 잘 보일 기회 정도는 주어야 공평하지 않겠나? 그러니 한 달만 지켜보게.”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지배인에게 다가가, 미소 띤 얼굴로 그의 상의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집어넣었다.

가슴팍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내 약속하지. 녀석의 행동이 실망스럽다면, 언제 떠난다고 해도, 자네를 원망하지 않겠네.”

알리와 약속한 한 달은 벌써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훈은 한 번도 호텔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

들은 바와는 다르게 오히려 전혀 돈에 관심이 없어 보일 정도로 말이다.

***

서너 달이 지난 오늘, 의외의 사건에 처음으로 의견이 충돌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지.’

이미 전임사장인 알리와의 약속을 지켰다.

아리프는 양복 상의 안주머니를 들추며, 사직서를 다시 확인했다.

‘어쩌면 오늘이…….’

알리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성훈. 여기는 어쩐 일인가?”

하지만 성훈은 인사는커녕, 콧방귀를 뀌며 옆을 지나쳤다.

“됐습니다. 당신에게는 할 말 없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왕에게로 향했다.

영문도 모르고 무시를 당했지만, 알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왜 저렇게 퉁퉁 부어 있어? 공사에 차질이라도 생긴 건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지! 공사 관련이라면, 여기까지 올 이유도 없지.”

피식 웃던 알리의 눈이 지배인에게로 향했다.

“아리프. 오래간만이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왕세자 전하.”

“하하. 전하인 거로군. 이제는…….”

지배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거. 사람 고지식하기는! 그냥 사장이라고 부르면 어때서?”

“저희 호텔의 최대 고객이시죠.”

“훗 알았어. 그런데 호텔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지배인과 함께 왔으니, 호텔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추측하기 쉬웠으리라.

하지만 지배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얼버무렸다.

“별일은 없습니다.”

감추려는 그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그의 입을 통해서 호텔의 기밀이 세어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이고! 됐네. 됐어! 내가 바랄 걸 바래야지.”

고개를 저은 알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새로 개장한 객실은 꽉 찼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문제 있을 게 없는데?”

알리도 성훈이 이 호텔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을 쏟고 있었다.

선물로 주었으니, 잘 돼야 선물하는 처지에서도 체면이 설 것이 아니던가?

‘잘 안 된다고 다른 거랑 바꾸자고 어깃장이라도 놓으면 곤란하다고.’

그래서 대신들에게도 슬쩍 언질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좋을 줄은 몰랐지. 뭐야!’

입을 닫고 있는 지배인을 옆구리로 툭 쳤다.

“이봐. 아리프. 내외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십 년간 한솥밥을 먹은 사인데 말이야.”

곤란한 표정으로 지배인이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내부적인 일이라…….”

알리가 실눈을 뜨며 물었다.

“아니면 녀석이 그렇게 마음에 들던가?”

약속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있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알리는 얼버무리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런데 할 만한가?”

“호텔은 별문제 없습니다. 아직은.”

“그걸 물어서 뭐하게? 자네가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 돌아가려고. 저 녀석에 대해 묻는 거지? 이제 몇 달 겪어 봤잖아.”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지배인은 답했다.

“공사에 온 정신을 쏟으시는 중이시라, 아직…….”

“아하! 그랬었군.”

왕과 대화를 나누는 성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녀석을 겪어보면 알겠지만, 만만치 않을 거야.”

달리 할 말이 있으랴?

지금 여기 와 있는 것도, 성훈 때문에 억지로 온 것이 아니던가?

말없이 웃는 그에게 알 리가 말했다.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오라고. 내 호텔에는 언제든지 자네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전하의 관심,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

왕에게 다가간 성훈이 말했다.

“아버지.”

처음에는 어색했던 말이지만, 자꾸 쓰면서 입에 익으니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습관적으로 ‘의부’라는 말을 했다가, 왕의 씁쓸한 표정을 본 다음부터는 특별히 조심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냐? 바빠서 얼굴 한 번 보여주기가 어렵다던 녀석이?”

아까부터 성훈을 보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가운 인사로 그를 맞았다.

“그야 매번 쓸데없는 일로 부르시니까 그런 거죠!”

“쓸데없다니 녀석아! 각국의 정상과 요인들과 만나는 게 나중에 네가 건축 일을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것이냐?”

인맥왕이 될 것도 아닌데, 남의 나라 대통령을 알아서 뭐할 것인가?

그들을 만날 틈이 있으면, 건축의 거장들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좋았다.

전쟁이나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인들보다는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축가들이 훨씬 더 말이 잘 통했다.

“쳇! 건축하는 사람에게 그런 인맥이 왜 필요해요. 괜히 어깨에 힘만 들어가죠.”

국왕이 혀를 찼다.

남들은 어떻게라도 한 번 연줄을 이어보려 하는데 말이다.

“쯧! 녀석, 고집은! 그런데 무슨 일이냐? 부자간에 같이 찜질이나 하려고?”

“징그럽게 무슨 소리세요?”

아비와 자식 사이에 주고받는 게 어디 있느냐며 가슴을 따뜻하게 한 건, 처음 꼭대기 층에 자신의 집을 지을 때, 그때 한 번뿐이었다.

아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나 할까!

“그 착하던 아들놈은 어디 가고. 용건이 뭐냐?”

“대신들을 좀 모아 주세요. 호텔 관련으로 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대뜸 호텔 사장이라고 하면, 이 사람이 모일 것인가?

호텔 사장 정도는 길가에 껌 취급할 사람인데.

그렇다고 강제로 모으면 안 된다고.

지배인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그런 일이라면 알리도 있는데.”

“좀 해 주세요. 아버지.”

“아이고 어깨야.”

“알았어요. 황토방에서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국왕이 양어깨를 휘돌리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거기 대소 신료들은 퇴청하지 말고, 모두 여기 모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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