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61화
왕의 거처(05)
‘이 양반아! 당신이 그렇게 강하게 나오면 내가 상당히 난감하지!’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속으로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좋은 걸 어쩌라고!’
돈에 휘둘리는 사람의 주인은 돈이다.
아마 지금보다 많은 월급을 지급하겠다고 하면, 당장 자리를 옮기겠지.
‘게다가 보기보다, 꽤나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 와 있는 동안, 호텔의 경영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호텔은 알아서 굴러갔다.
알리라고 신경을 썼겠어?
그렇게 바쁜 양반이 호텔 경영에 정신을 쏟았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
‘그럼 누가 관리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는 이 호텔을 처음 지었을 때부터 함께 했다고 들었다. 부지배인으로 들어와서 총지배인이 되었다고 했으니, 이 사람이 다 관리를 했을 것이다.
그 말은 이 호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속속들이 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알리의 신뢰도 대단했었지. 왕의 호텔까지 이 양반을 데리고 가려고 했었으니까.’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을 데리고 갈 알리가 아니지!
‘이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인데?’
절대 버리면 안 되는 패인데?
그 패가 고집을 피우며, 뻗대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억지라면, 힘으로라도 누를 텐데. 그것도 아니라고!’
왜 한낱 지배인을 이리 중요하게 여기냐고?
세상은 넓고 지을 건물도 많은데, 허구헌 날 이 호텔에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여기에 신경을 끄고 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중요하지 않겠어?
그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휴! 이 양반을 만족시키자니 내 길이 막히고, 내 길을 뚫자니 호텔을 관리할 사람이 없네.’
“그러니까 지배인의 불만은 내가 고객을 쫓아내려고 하는 거죠?”
“불만이 아닙니다. 호텔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거지요. 서비스를 파는 곳이니까요. 사장님의 말씀은 그 기본에 완전히 반대되는…….”
“그만!”
누구나 아는 말은 듣고 있기 괴롭다.
게다가 그게 나를 질책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알고 있는데, 왜 못하느냐고? 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꼼수를 쓸 수도 있지만, 그건 나 같은 얍삽한 놈에게 어울리는 것이고, 세상에는 그게 통하지 않는 고집쟁이들이 있다.
어금니를 물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배인 말씀은 결국! 힘으로 쫓아내지만 않으면 된다. 그거잖아요?”
그가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눈썹을 으쓱했다.
“네. 결국은 그 말이겠네요.”
“그럼 그 고객들에게 좋게 말로 설득하면요?”
“사장님의 그 설득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장 왕세자 전하께서도…….”
그의 씁쓸한 미소의 의미가 그거였던가?
하긴 나는 내 의지를 관철할 힘이 있었다.
‘젠장! 상당히 까다로운데.’
옳은 말을 하는 자를 날렸다가는, 종내에는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아니. 간신들은 줄을 서 있겠지.’
그렇게 진실에서 멀어진 채, 그들의 뜻대로 휘둘릴 것이다.
수만의 간신보다, 하나의 충신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 아니던가!
하지만 그만큼 더 답답했다.
양손을 벌리며 그에게 말했다.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들을 설득하겠다는 말이라고요.”
“가능할 겁니다. 사장님이라면…….”
수긍하는 듯한 그의 말에 웃으며 물었다.
“그렇죠? 그건 가능하다는 거죠?”
“네. 아마 채 오 분도 안 되어서 그 고객들을 설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답과는 반대로 그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아우! 그냥 말 안 하고 조용히 쫓아내 버렸어야 하는 건데. 이 입이 방정이야!’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후!”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자신의 말을 잇고 있었다.
“설령 그게 아니라 해도, 그분들은 두 번 다시 이 호텔을 찾지 않으시겠죠.”
‘아! 이 벽창호 같은 양반아! 내 말을 아주…….’
“사장님의 말에는 충분한 권위가 있으십니다.”
그는 진심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 쳤다.
‘흥. 그래놓고는 어느 순간 호텔을 떠나겠지!’
저 정도 경력의 사람은 갈 곳이 널렸다고!
당장 알리라도 양팔 벌려 환영할 텐데!
내가 그런 사람을 한두 번 본 줄 알아요?
‘내 손에 안 들어왔으면 몰라도, 들어온 이상은 놓치지 않아.’
하지만 이렇게 흥분해서는 될 것도 안 되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럼 만약 그 고객들이 전혀 불만이 없다면요?”
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거봐! 자기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방법이 없는 게 어딨어? 한 발만 물러서서 보면 돼!
뚱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내게 그가 말을 건넸다.
“사장님.”
“왜요? 방법이라도 생각났나요?”
내 퉁퉁거리는 소리에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놓치신 부분이 있으신 것 같아서, 이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요?”
“분명 사장님 말씀대로 고객의 대부분, 아니 전부는 왕족입니다.”
“저도 압니다.”
“정말 왕족들이 순수하게 국왕께만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구 객실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옳지 않겠습니까?”
자리가 없으니, 다른 객실에도 들어갔겠지.
“네.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 객실의 수요만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정말입니까?”
그는 말 대신, 구 객실의 예약 명단을 내밀었다.
잠시 후 그에게 명단을 넘겼다.
“사실이군요.”
“다르게 말하면, 분명히 이 고객들은 사장님의 새로운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으냐고, 그는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이런 고객을 꼭 쫓아내야만 하겠습니까?’
나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그것도 지극히 이기적인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호텔리어의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 약 오른다고!
지배인의 말이 맞으면 맞을수록, 내가 억지를 쓰는 거로 보이니까!
‘차라리 그놈들은 관심을 안 가져줬으면 한다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미쳤다.
‘아니지! 내가 그러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잖아?’
놈들이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거라면?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지배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 그들이 국왕이 아니라, 내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어느 정도로?”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뒤로 빼며 움찔했다.
“그야 저는 잘…….”
“여기에 온 바퀴벌레 녀석들이 관심이 있는 건 분명하다는 말이죠?”
고객을 벌레 취급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많이 승격시켰어요.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이제 조금 마음에 드는 바퀴벌레들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입니다.”
“근거는요?”
채근하는 내게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평소에도 안면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 중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가장 비싼 ‘로열 스위트룸’만을 사용하신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요?”
“그런 분들이 더 값이 싼 신 객실을 요청하셨습니다. 단지 휴식을 위해서라면 그러지…….”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네?”
“돈을 뿌리더라도 편안함과 화려함을 찾는 그들이, 좁고 작아도 좋으니 새로운 객실을 달라고 했다. 그 말이죠?”
물론 좁은 거야, 그들의 기준이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좋아요!”
“마냥 좋아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가장 가격이 나가는 ‘로열 스위트룸’은 빈 곳이 많습니다.”
“흥! 그건 곧 헐어버릴 건데요. 뭐. 신경 쓰지 마세요.”
내 말에 어이가 없었던지, 그가 헛웃음을 뱉었다.
‘편안함보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지? 이게 사실이라면 승산이 있지.’
하지만 그 전에!
지배인의 기준을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우리 호텔에도 규칙 같은 거 있죠?”
“네. 있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그 규칙은 오너가 바꿀 수도 있는 거죠?”
그는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당연히…….”
“오너가 만들 수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내키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휴식을 방해하는 강제적인 거라면…….
“칫! 그건 당신이 반대하겠죠.”
투덜거리는 내 말에 그가 헛기침했다.
“흠흠. 저는 오너가 아닙니다. 사장님.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흥. 그럼 다른 데로 갈 거면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한다지만, 중을 떠나보내기 싫으면 절이라도 노력해야지.
아쉬운 놈이 바짓가랑이 붙드는 게, 세상 이치 아니야?
오는 놈 안 막고, 가는 놈 안 잡는다고?
그건 맹자* 정도 되는 철인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이고,
나한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난 그 정도 능력도 배짱도 없거든. 손에 들어온 거라도 잘 간수 해야지.’
“…….”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내 눈을 피했을 뿐이다.
장난기가 돌아 그의 안색을 살피며 재차 물었다.
“아닌가요?”
내 물음에 그가 뚱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저의 권리입니다.”
‘그 권리,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네. 백만 달러라도 투자할 생각 있는데. 거 참!’
입맛을 다셨지만, 어쩌랴!
없을 때는 돈만 있으면 만사형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지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돈으로 안 되는 건 많았다.
‘쯧! 돈, 별거 아니네. 사람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는 게, 무슨 만능이람.’
주제를 바꾸고 싶었던 모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칙을 말씀하시는지요?”
“음……. 예를 들면 이런 거 있잖아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한 사람이 두 개의 객실을 예약할 수 없다는 규칙 같은 것.”
아직 그런 규칙은 없었는지, 미간을 좁히며 말끝을 흐렸다.
“글쎄요. 그런 규칙이 필요할까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규칙에 위배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필요해질 겁니다.’
그에게 물었다.
“만약 그걸 내가 규칙으로 내건다면?”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없습니다.”
“당신이 보기에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굳이 두 개의 객실을 예약하는 고객은 없지요. 예약이 잘못된 경우가 아니라면요. 하지만 굳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전 그걸 첫 번째 규칙으로 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요!”
“네?”
무슨 규칙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냐는 얼굴로 어이없어했다.
“문제 있습니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럼 그게 첫 번째 규칙입니다. 아시겠죠?”
“명심했습니다.”
책상을 탕 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되었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갑시다.”
“네?”
“설득하러 가자고요!”
“네? 고객을요?”
“네!”
“고객을 설득하는데, 저랑 간다고요?”
그걸 말이라고 해!
그의 소매를 꽉 붙들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당신이 같이 가야죠.“
“제가요? 왜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고객을 설득해서 내보내고 싶은 건 사장님이신데, 제가 왜 가야 합니까?’라는 황당한 표정.
하지만 그래서 더 당신이 동행해야 한다고!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까 제가 설득한다고 했을 때, 당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당연히 그건 불가능한…….”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죠? 고객이 그걸 원했으니까?”
그가 어깨로 버티며 말했다.
“그게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고객의 선택이니까요. 저는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습니다.”
지금 그의 고집스러운 표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요. 바로 그 표정!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고요.”
“그야 사장님께서 당연한 걸 아니라고 하시니!”
내게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설득을 위한 어떤 말도 할 필요 없어요.”
“네? 정말이십니까?”
“또한,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강요를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요?”
“네!”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떻게요?”
“그건 가면서 얘기하도록 하고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제가 사장님과 동행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 저한테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의 정장 소매를 놓고 말했다.
‘어차피 이 말을 들으면 당신은 안 따라올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지금 이대로 가서 설득하고 오면, 당신이 나를 믿겠어요? 전혀 강제적인 압박 없이 설득했다는 걸?”
그가 눈을 피하며, 입매를 씰룩거렸다.
“거 봐요. 못 믿을 거 아닙니까? 가슴에 불신을 품은 채로, 계속 내 비위를 맞출 정도로…….”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는 눈으로, 내게 슬쩍 시선을 보냈다.
‘뭐! 어때. 사실인데.’
“그렇게 요령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크흠!”
내가 당신에게 얻고 싶은 것은 마음 없는 복종이 아니라고.
‘당신의 진정한 신뢰이지.’
작가 주
<진심편 하(盡心篇下)>권에 나오는 이야기.
맹자가 등(藤) 나라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영빈관에 묵고 있을 때, 그곳 관리의 짚신이 없어진 일이 있었다.
묵고 있는 손님이 맹자와 제자밖에 없었기에, 관리는 그들을 의심했고, 관리가 맹자에게 빈정거렸다.
“선생, 선생과 동행한 자들이 한 짓 아닙니까?”
그때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 제자들이 당신 짚신을 훔치려고 나를 따라왔다는 거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제자를 들일 때, ‘왕자불추내가불거(往者不追來者不拒)’ 한다네. 배움에 뜻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제자로 받아들이니까 말이야.”라고.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맹자의 말이었네요.
순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인터넷, 네이버 등등.
왕자불추내가불거
往者不追來者不拒
‘가는 자는 쫓지 않고, 오는 자는 막지 아니한다.’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인간관계를 가졌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맹자 정도의 자신감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이런 말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