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60화 (360/427)

건축의 신 360화

왕의 거처(04)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이 말을 해석하자면, ‘나무는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으며,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말이 나온 다음 날, 대목장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설계부터 국왕의 허락, 그 후의 공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과장을 약간 섞는다면, 번갯불에 콩 볶아먹을 기세의 신속한 진행이었다.

‘다른 공사들을 약간 미룬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고!’

성훈의 독려 아래, 3개월 만에 왕의 거처가 완성되었다.

알리가 왜 이렇게 서두르냐고 물었을 때, 성훈이 했던 말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였다.

왕이 살아계실 때, 내 작품들을 누리고 가야 한다고.

‘적어도 내 마음에 빚을 남기고 싶지는 않거든!’

그리고 옥상에 정원 공사를 시작했을 때, 성훈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진 알리가 물었었다.

“성훈. 저번에는 그리 서두르더니, 왜 이번에는 이리 느긋한 거야?”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오 년 내로는 돌아가실 것 같지 않은데요.”

아이러니하지만, 성훈의 말처럼 왕은 점점 건강해져 갔다.

후덕했던 배는 자취를 감추었고, 피부는 팽팽해졌으며, 당뇨 때문에 달고 살던 약은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주치의는 왕에게 ‘이런 돌팔이 같으니라고!’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아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할 만큼 불편했던 거동은 지팡이를 내던져 버릴 정도가 되었다.

괄목상대라 했던가?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국왕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황토방을 들락날락한 노력의 결과였다.

언젠가 빨리 정원을 보고 싶었던 왕이 앓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허리야. 죽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말했으니,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으랴!

성훈의 핀잔만 들었을 뿐이었다.

“흥!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잘도 다니시면서, 무슨 허리 타령을 하세요?”

왕이라고 할 말이 없으랴!

“녀석아! 내 이리 늙었으니, 언제 갈지 어찌 아느냐? 그 전에 네 녀석이 만든 정원을 한 번이라도 거닐어야 할 것 아니냐?”

성훈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흥! 가는 데 순서가 어디 있어요? 저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얼른 호텔 개장해서 돈 벌어야죠.”

왕이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게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대견스러운 말을 예전에 어떤 아들놈이 한 것 같은데?”

“대가도 없이 하는데, 재촉하는 건 도리가 아닙니다. 아버지!”

국왕이 투덜거렸지만, 더 어쩌랴!

‘선물 받는 입장에서 재촉하는 것도 체면 상하는 일이지.’라고 하며 입을 닫았다.

대신 아크람을 닦달하여, ‘호텔 공사 끝나기 전에 정원도 완성하겠다.’는 성훈의 약속을 받아낸 건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

2차 공사를 진행하며, 1차 공사가 끝난 객실을 개장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지배인에게 물었다.

“새로 개장한 1차분 객실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아직 공사하지 않은 객실은 전월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고, 내 관심사는 새로 디자인한 객실의 흥행 여부였다.

‘긴장되는데?’

질문에 지배인이 답했다.

“새로운 객실의 회전율은 70%였습니다.”

“호오. 70%라고요?”

자연히 얼굴이 펴질 수밖에.

첫 개장이었고, 홍보하는 기간도 있었으니, 30%만 되어도 완전히 선전했다 예상했는데, 70%라니!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데요?”

“네.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 할 수 있지요. 축하드립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지배인이 잘 해 주신 덕분이죠. 그런데 예약 상황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의 결과도 충분히 좋은 성과였지만, 오늘만 장사할 것은 아니기에, 당연한 물음이었다.

지배인이 뿌듯한 미소로 답했다.

“네. 일 년간 예약이 꽉 차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일 년간 예약이 꽉 찼다고요? 우리가 잡지와 신문 말고, 따로 홍보한 게 있었나요?”

좋아도 결과가 너무 좋잖아!

‘50%만 예약이 되어도 만족했을 텐데, 뭐! 100%? 그것도 일 년 치가 몽땅?’

“아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성과가 좋다고?”

누가 장난이라도 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고?

“예약금의 입금 상황은요?”

‘아무리 예약을 많이 해도, 나중에 취소해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돈을 입금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지.

입금 예약은 어느 정도는 떼일 각오를 해야 하고, 그게 부담이 되어서라도 취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돈이 떼일 걸 각오하고, 장난치는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지금의 고객들 전부, 일 년 치 숙박비를 완불하셨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네? 일 년 치를 몽땅?”

제일 작은 객실의 숙박비가 500달러라고!

한 객실 당 한 달에 15,000달러, 일 년이면 18만 달러였다.

“그렇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지!’

팔짱을 끼고는 입술을 씰룩이며 물었다.

“객실 300개가 다요?”

“네. 그렇습니다.”

“인당 객실 하나씩 잡은 거죠? 일 년짜리로?”

“네. 맞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고객들 리스트 가져와 봐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 알리라는 사람은, 제가 아는 그 알리죠?”

지배인이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왕세자 전하께서도 객실 하나를 일 년 동안 예약하셨습니다.”

“흠…….”

고객 리스트를 보는 내내, 미간의 주름이 점점 깊어졌다.

“자세히 보니, 이거 죄다 왕족이네요.”

“흠. 거의 그렇습니다.”

“이건 예상 밖인데, 이유가 뭔가요?”

나보다 먼저 리스트를 봤을 것이고, 직접 접객을 했을 테니, 그라면 대략적인 이유를 추측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내 대답이 나왔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눈썹을 으쓱이며 재촉했다.

“왕세자 전하께서 정권을 이어받으셨다고는 하나…….”

“하나……?”

“아직은 중대한 일에서 국왕 전하의 조언과 재가가 필요할 겁니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왕의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알리에게 모든 것을 넘겼다고 해도, 그건 거동이 불편할 때의 이야기.

지금처럼 왕이 팔팔하게 돌아다니시니, 이른바 상왕과 뭐가 다르랴?

당연히 왕의 발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터였다.

“그래서요?”

“어차피 국왕께 보고해야 한다면, 전하의 근처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자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호텔 로비에 왕족들만 득시글거렸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왕을 만나러 온 줄만 알았지. 그게 다 고객이었을 줄이야.’

효도한답시고, 호텔에 국왕의 거처를 마련했었다.

오래 사시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내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다고!’

국정은 왕궁에서 처리하라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처음에는 황당함이, 종내에는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배인에게 화를 낼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내 문제라고!’

또한, 지배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매출만 올리고, 관리해도 그의 역할을 다하는 거니까!

황당함은 둘째치고, 왜 이렇게 짜증이 나냐고?

‘고객이 마음에 안 들어서지. 무슨 이유가 있겠어?’

고객을 차별하냐고?

‘그건 별개고, 이건 내 의도와 전혀 다르거든!’

오라는 고객은 오지도 않고!

아니지.

이것들이 버티고 있으니, 올 수도 없겠네!

‘내 목적은 세계에 이런 디자인도 있다고 자랑하고 홍보하는 거라고. 거기서 이익을 창출하고, 건축가로서의 내 이름을 알리는 거였거든!’

호텔 주인 김성훈이 아니라, 건축가 김성훈이 목표라고!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짜증이 안 나겠어?’

이 돈밖에 없는 것들이 떡하니 버티고 안 나가면, 내가 이런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누가 알겠어?

매출을 올려주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당장이야 좋겠지. 만약 국왕이 돌아가시면?’

이것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나면, 그때 또 홍보하라고?

5년 더 사신다고 하면?

그 시간이면 낡을 대로 낡는다고!

내 디자인이라고 유행을 타지 않겠어?

나는 지금 현재의 시류를 노린 거라고!

나중에는 또 그 시기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고!

이건 이것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겠지만, 구시대의 유물이 될 뿐이리라…….

내 디자인이 알려지지 못하고 낡아가는 동안, 한국의 경쟁자들은 다른 디자인을 내놓을 것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선두주자의 위치를 확립해야 하는데, 저놈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 자랑을 하고 홍보를 하느냐고!’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지.’

가슴앓이만 앓고 있으면 김성훈이 아니지!

책상을 탕 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왜! 저것들은 정치를 궁에서 안 하고 여기서 설레발을 치는 거야?”

“사장님. 이 나라에서 왕족을 모욕하시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이 나라 사람들한테나 왕족이지, 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욕한 것도 아니라고요.”

명단을 돌돌 말아 책상을 탁탁 쳤다.

“이 바퀴벌레 같은 것들을 어떻게 쫓아내지.”

지금부터 내게 왕족들은 고객이 아니라, 어떻게든 쫓아내야 할 바퀴벌레였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들, 그중에 왕 바퀴벌레는 알리, 이 인간!

‘당신이 떡 하니 있으니까, 줄줄이 사탕으로 붙는 거 아니야!’

지배인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사장님. 그걸 제게 말씀하셔도…….”

그의 일은 고객 유치와 관리였다.

하지만 고객은 항상 만원이니, 당장 고객 관리만 해도 그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을 터!

게다가 전부 왕족!

지배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국왕이 건재한 이상, 계속 눌러앉아 있겠죠?”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왕족 전용 숙박소가 되어 버릴 판이었다.

돈이 마르지 않으니, 아까워하지도 않을 거고!

‘이것들이 진짜! 남의 장사를 망치려고!’

“다 쫓아내죠!”

지배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당장 가서 알리한테 말해요. 나가라고!”

지배인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차!’

쫓아내야 하는 상대가 그의 전 고용주인 데다, 이 나라의 이인자였다.

‘그런 사람을 지배인에게 쫓아내라고 하다니!’

“아니! 제가 직접 가서 해결하죠.”

그리고 문을 나서며, 지배인에게 말을 이었다.

“당분간 새 객실에 고객이 없어도 문책하지 않을 테니, 매출에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문을 나서려는 내게 지배인이 조용히 물었다.

“사장님. 혹시 어찌 처리하실 요량이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왜요? 능력 안 될까 봐서요?”

내 찡그린 얼굴에도, 그는 보조개를 만들며 고개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습니까? 국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쫓아버릴 생각이시겠지요?”

“네!”

“아마 사장님께서 그걸 원하신다면, 왕세자 전하께서는 양보하실 겁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면 땡깡이라도 부릴 거라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명분이 왜 필요해? 내가 사장이라고!’

내가 안 팔겠다는데, 제깟 것들이 어쩔 거야!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지식한 양반이 반대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는걸!

의외의 반박이었다.

‘이유가 있겠지. 적어도 그는 나보다 호텔에 관해서는 전문가일 테니까.’

하지만 내 의견에 대놓고 반대를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마뜩찮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왜 안 되는데요?”

지배인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건 호텔의 목적에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내 물음에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네. 사장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저는 모르고, 이 호텔은 사장님의 소유이시니, 결정하시는 바에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의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저는 이 호텔을 포함하여, 이쪽 계통에서만 수십 년간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네. 그거야…….”

“고객이 사장님의 의중과 부합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호텔은 고객의 휴식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 고객들은 그 목적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정석이었다.

맞는 말을 하는데, 어깃장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럼 나는?’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대응책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세요?”

그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호텔에 종사하는 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된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관둘 기색이시네.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제가 만약 그래도 해야겠다고 하면요?”

그는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았다.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사장님께서 이 호텔을 위해 노력해 주신 것들, 그리고 제게 해 주신 배려들,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각오가 서린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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