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9화
왕의 거처(03)
다음 날 아침, KT 팀장실 앞!
“아크람. 곽 이사가 잘하고 있을까?”
“전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곽 이사가 이미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 친구 믿을 만한가? 내 보기에는 고기 굽는 거 말고는 딱히 믿음이…….”
아크람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어제 듣지 않으셨사옵니까? 그 사람만큼 성훈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 자가 또 있겠습니까?”
“크흠. 그렇기야 하지만…….”
알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부왕.”
확신의 말이었지만, 왕이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너라서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아버님 아들 알리입니다. 알리!”
항변하는 그에게 국왕이 혀를 찼다.
“쯧쯧. 녀석하고 엉켜서 네 녀석이 이긴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더냐? 압둘 하고 둘이 쌍으로 성훈에게 휘둘린 녀석이!”
곽 이사가 말했던 알리와 성훈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커헉! 부왕. 그게 언제적 일인데…….”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는 우리 가문의 문장을 얻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불쌍해서 만들어준 것 같더만.”
알리가 고개를 세우며 대꾸했다.
“그거나 저거나! 압둘 녀석은 아무것도 못 얻었습니다.”
“압둘은 문장 대신, 성훈이라는 친구를 얻었지!”
“커흠. 커흠! 곽 이사, 그 친구 참!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뻘쭘해 하는 알리에게 왕이 말을 이었다.
“쯧쯧. 호텔 하나를 통째로 주는 것도 모자라서, 대출금에……. 공사비까지…….”
알리는 억울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부왕! 대출금은 부왕께서…….”
찔리는 게 있었던 왕이 말을 잘랐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중간에 말이 잘린 알리가 고개를 돌리며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어쨌건 저만 믿으십시오. 부왕!”
“그래. 너만 믿는다. 들어가자꾸나.”
아크람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왕의 방문에 성훈이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의부. 어서 오십시오. 알리, 아크람도.”
그리고는 곽 이사에게 말을 이었다.
“이사님. 차 좀.”
“네. 쌍화차로 달달하게 올리겠습니다.”
왕이 눈으로 재촉했다.
‘아크람.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게나.’
아크람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말씀들 나누시지요. 제가 곽 이사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성훈이 눈인사로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집사님.”
그리고 상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부, 앉으시지요. 알리도요.”
“커흠. 고맙구나.”
왕이 자리에 앉자, 성훈이 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곽 이사와 같이 황토방에서 시간을 보내셨다면서요? 어떠셨는지요?”
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좋더구나! 아주 좋아.”
“그런 것 같아 다행입니다. 혈색이 좋아지셨습니다.”
성훈의 말처럼 왕의 안색은 어제보다 좋아 보였고, 몸도 한층 가벼워져 있었다.
왕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그리 좋은 걸 왜 이제 알았나 싶더구나. 이 뜨거운 나라에서 장작을 때며, 땀을 빼다니, 내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저도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하하.”
왕이 뜨끔한 눈으로 성훈을 흘겼다.
‘요 녀석아! 당사자를 데리고, 계획을 짤 수는 없잖느냐?’
아크람이 왕에게 차를 대령했다.
눈앞에 차를 내려놓는 아크람에게 왕이 작게 소곤거렸다.
‘뭐라던가?’
‘말은 했다는데, 아직 확답은 듣지 못했답니다.’
‘에잉!’
‘하지만 잘 이야기했답니다.’
국왕의 눈초리에 곽 이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왕 체면에 직접 말할 수도 없고!’
천상 그가 믿을 사람은 알리뿐이었다.
왕이 헛기침하며 알리에게 눈짓했다.
“크흠.”
왕의 재촉에 알리가 입을 열었다.
“험. 성훈. 부탁할 것이 있어서 들렀네.”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네.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해 드릴게요.”
“그렇지. 그러니까 어떤 대가를…….”
성훈이 재차 대답했다.
“그냥 만들어 드리겠다니까요.”
“예를 들면…… 뭐? 진짜?”
눈이 휘둥그레진 알리가 왕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왕도 마찬가지 표정!
‘난들 아냐?’
아크람이 흐뭇한 눈으로 왕과 눈을 맞췄다.
‘곽 이사가 해냈군요!’
‘그러게…… 기대도 안 했는데…….’
성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곽 이사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얼떨결에 왕이 물었다.
“엉? 뭘 말이냐?”
말을 하고는 왕이 뜨끔 놀랬다.
‘내가 녀석과 이리 친밀했던가?’
하지만 감정의 변화란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함께 황토방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양아들의 마음을 느꼈고, 마음의 거리는 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새, 말투가 변했던 것 같다.
성훈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제가 생각이 짧았더라고요.”
“엉?”
삐딱하니 성훈을 바라본 왕이, 진지한 표정의 성훈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새, 생각이 짧아? 성훈이, 네가?”
그리고는 바로 알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성훈이 뭐, 잘못 먹었냐?’
알리는 ‘반드시 부왕의 의지를 관철하여, 성훈에게 이겼다고 인정받고야 말리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각오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
허탈해진 알리는 머쓱한 듯, 뒤통수만 긁고 있었다.
‘그걸 저라고 알겠습니까? 부왕!’
허탈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하는 건 하는 거고,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왜 이러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걸 기회로 뭔가 요구를 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여간 성훈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성훈을 가장 잘 아는 곽 이사조차도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왕이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심경의 변화가 생겼누?”
“아들이 아버지께 해드리는 겁니다.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예상치 못했던 말에 놀란 왕은 잠시 입술을 오므렸다.
심각한 왕의 표정에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한참 수염을 쓰다듬던 왕이 말문을 열었다.
“그렇군.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겠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에 이유가 없듯, 반대의 관계 또한 동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정했나? 부모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성훈이 말했다.
“어제 그렇게 흡족해 하시는 걸 보고, 먼저 여쭤 봤어야 하는데,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훈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왕의 경우는 달랐다.
돌려주려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이미 늦은 것이 된다.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빚지고 갚지 못하면, 그것보다 억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선한 빚이든, 악한 빚이든, 무슨 상관이야?’
갚지 못하면, 평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나를 아들처럼 믿어주는 국왕이다.
‘아니, 오히려 알리보다 날 더 예뻐하신다고!’
그런 분께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겼는데, 어찌 대가를 요구할 수 있냐고?
돈의 문제가 아님에도, 그걸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내 통장에는 오천억이 넘는 숫자가 찍혀 있다.
지난 2년간 일하고 굴려서 만든 돈이었다.
사용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내 통장에는 지출 내역을 보기 어렵다.
눈덩이처럼 불어서 5천억이 되었지만, 그 2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의 선물을 주신 분이 국왕이었다.
‘그걸 단숨에 선물하신 분이라고!’
세상 어느 누가 그런 짓을 하는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알리와 거래를 해서 뜯어내었든, 대출금을 갚아주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애초에 국왕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리야드 호텔은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금전적 이득을 바라지 않는데, 내가 그럴 수 있어?’
그에게 돈을 바라고, 거래를 청하면, 그건 인간도 아니지! 암!
사실 곽 이사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호! 기회가 되겠는데?’
내 통장의 숫자를 늘릴 기회!
돈이 부족한 왕이 아니니, 밀당만 잘하면 또다시 수억을 뜯어낼 기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왕을 맞이하고 그의 밝아진 얼굴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훗! 평생 쓰지도 않을 돈. 그 숫자를 늘려서 무얼 하게?’
고작 황토방 하나에 저렇게 기뻐하는 분인데?
내가 지금! 돈이 부족해? 밥을 굶어?
내가 언제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지?
그리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나, 김성훈이 인간쓰레기가 될 뻔했다고!’
내가 만약 왕에게 거래를 걸었다면, 내 안의 김성훈은 나를 욕했을 것이다.
‘너 같은 놈이 무슨 건축을 해! 뭐, 투명한 건축? 지랄하네. 개가 웃겠다. 개보다 못한 놈아!’하면서 말이다.
왕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감사했다.
‘받은 빚,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를 줘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국왕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인간 김성훈에게는!
왕은 아직도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전했어.’
이제는 구체적인 사안을 이야기해야 할 때였다.
“어떤 객실이 마음에 드시던가요?”
딴생각에 빠져 있던 왕이 이제는 식어버린 쌍화차를 후르릅 들이켰다.
“아! 나는 다 마음에 들었지만, 그 퓨전 말고, 정통 한국식이 마음에 들더구나.”
“네. 그러셨군요. 그럼…… 음…….”
고민하던 성훈이 말을 이었다.
“아예 한 층을 터버리죠?”
곽 이사가 놀라서 되물었다.
“아예 한 층을 통째로 말입니까?”
“국왕의 품격에 어울리려면 그 정도는 돼야죠.”
성훈의 배포에 곽 이사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 말이 끝이 아니었다.
“옥상의 수정 불가한 부분을 제외하고, 몽땅 합쳐서 정원을 만듭시다. 연못도 만들고, 누각 하나 세우고 말이죠.”
“네? 연못에 누각…….”
“대목장 어르신이 언제쯤 오신다고 했죠?”
“네. 이 차분 물량이 들어올 때 오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럼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는 거네요.”
곽 이사가 머리를 조아렸다.
“네. 그렇지요.”
“지금 연락 넣어서, 바로 오실 수 있게 조치하세요. 생각난 김에 바로 해버리죠.”
“그분은 한국에서도 아직 할 일이…….”
“그 어르신 안 계셔도 할 사람 천지예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니까.”
성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대목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요.”
단호한 명령에 누가 반박을 할 것인가?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성훈이 왕에게 말했다.
“대목장이 오면, 디자인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왕의 거처와 정원에 대한 계획이 마무리되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러도록 하자꾸나.”
성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마음에 드시게 나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왕은 성훈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누가 만드는 건데, 마음에 들지 않겠느냐?”
둘의 모습에 알리와 아크람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차를 다 마신 왕이 잔을 내려놓았다.
“내 생전 이렇게 맛있는 차는 처음이었느니라.”
흡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성훈아.”
“네. 의부.”
“네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던가?”
“네.”
성훈의 대답에 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런가?”
잠시 후, 왕이 말을 이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하려 해도, 네 녀석을 보니,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령 그럴 일이 있다손 쳐도, 알리 녀석과 먼저 의논하겠지. 어디 내 차례가 돌아오겠느냐?”
성훈이 알리를 마주 보며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하하.”
“잘난 아들을 둔 것도 씁쓸하기 그지없구나. 허나…….”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왕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의부’라는 말이 내심 걸리는구나.”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미소를 머금은 왕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나를 아버지라 부르도록 하라.”
“허나. 의…….”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지, 그 말을 끝으로 왕은 일어섰다.
“구체적인 사안은 아들놈들끼리 의논하라 하고. 아크람. 일어나지.”
아크람도 기분 좋게 웃으며 왕의 팔을 부축했다.
“그러시지요. 전하.”
문을 나서며 왕이 말했다.
“아크람! 같이 황토방이나 가는 게 어떤가?”
아크람이 뜨끔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전하. 좋은 것도 너무 자주…….”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네.”
“크흑. 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