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8화
왕의 거처(02)
왕이 궁금해졌던 모양이다.
“성훈 자네 부하들은 특수부대원들만 모았나?”
“네? 갑자기 그게….”
성훈의 물음에 왕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수십 명이 지나가는데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서 하는 말일세!”
아크람이 뒤돌아보더니 답했다.
“전하. 저들의 신발에 비밀이 있는 것 같군요.”
왕도 뒤돌아보더니 성훈에게 물었다.
“인부들 신발에 씌워놓은 게 무엇인고?”
“대리석 바닥에 흠집을 내기 싫어서요. 가죽 보호대를 씌운 겁니다.”
작업자들의 소리 없는 걸음을 보며,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그…. 뭐냐? 뭘 종이로 깔지 않더냐?”
일반적으로는 골판지를 사용한다.
보양은 각 공종의 작업을 끝낸 후 가장 먼저 하는 거니까.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작업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파손되는 건 마찬가지더라고요.”
보양재를 몇 겹을 덮었다고 해도, 외부 충격으로부터 완벽한 방어는 되지 않는다.
그저 긁힘을 최소화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일부의 몰상식한 작업자들은 일부러 흠집을 내고는 다시 보양지를 덮어두기도 한다.
기사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 공종에 악감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쓰레기들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업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보양재는 적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확신하며 말했다.
“모든 파손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죠.”
왕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호오. 그래서 아예 방법을 바꾸어 버렸다?”
“네!”
아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현장이 이렇게 깨끗한 거로군요.”
국왕이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 그래도 불편할 것 아닌가? 다시 작업장을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하고?”
“벗고 들어갑니다.”
“저걸 또 벗는다고?”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야 확실히 작업장과 분리가 됩니다. 공간이 아닌, 인식으로 말이죠.”
“이 현장 전체에서 모두 다 이렇게 한다고?”
믿지 못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부.”
“흠.”
왕이 걸음을 멈추었다.
턱을 당긴 채, 수염을 쓰다듬었다.
득실을 따져보는 모습이었다.
국왕에게 말했다.
“귀찮을 것 같지만, 이게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이게 경제적이라. 이유는 뭔가?”
“보양재를 부착하는 것도 모두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보양?
예전에는 무엇보다 중시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보양도 전부 돈이라고!’
보양재도 돈이고, 운반비도 돈이라고.
그럼 부착은?
‘가서 붙어?’
그러면 알아서 제자리에 붙는가?
기사들은 보양이 잘 되었는지를 또 확인하러 가야 한다고!
‘이 얼마나 낭비냐고?’
공사 끝난 뒤에는?
뜯고, 확인하고, 버리고!
‘보양재로 썼던 것들은 재활용도 어려워!’
깨끗한 골판지도 아니고, 시멘트 가루 잔뜩 묻은 그 골판지를 누가 재활용하냐고?
게다가 버리고 태우는 데도 돈이 든다.
‘휴!’
나열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불필요한 일이다.
‘보양하는 순간 쓰레기더미를 예약하는 거라고!’
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보양은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인가? 파손이라도 되면, 더 손해가 클 것 같은데?”
“아무리 조심해도 나가는 모서리 부분에는 해야겠지요. 그래도 최소화할 작정입니다.”
왕이 눈매를 좁혔다.
“인식의 변화로 현장을 바꾸겠다라….”
아크람 또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성훈 님의 의도는 백번 이해가 가지만,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지요.”
하지만 나는 시간이 넉넉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가 아니라, 스물 중반!
올해로 안되면, 내년에 하고.
‘지난 삶처럼 그렇게 갑자기 가지만 않는다면?’
아니!
지난 삶처럼 마흔하나에 죽는대도, 충분해.
‘아직 15년이나 남았다구!’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바꿔 갈 겁니다. 저는 이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내게 이 현장은 소중한 실험실이었다.
자재의 불량률은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 인부의 의식 수준은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장을 얼마나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인부들에게 인건비를 두 배 주는 건 아깝지 않아.’
이로 인해, 불필요한 자재파손이나 쓸모없는 작업이나 청소가 줄어든다면, 그것은 그대로 시간과 비용의 절약이 된다.
자재 불량이 안타까운 것보다, 일에 집중해야 할 작업자가 자재 찾으러 가는 시간이 더 안타까운 거라고.
게다가 이 실험의 결과는 다음 현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난 이 사람들을 그대로 데려갈 거니까.
왜 그리 확신하냐고?
나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한국에는….
‘아니. 어떤 놈이 돈을 더 주고 빼가려고 한다면, 난 더 좋은 대우를 해줄 거야! 대신 건축주에게 더 받아내면 되지 뭐.’
조리과정을 알 수 없는 짜장면, 반대로 오픈된 주방에서 만드는 짜장면이 있다면, 어떤 게 가격이 더 높을지는 금방 알 수 있잖아.
‘난 입주자가 언제 확인해도 부끄럽지 않을 현장을 만들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방식으로 훈련된 작업자들이 필요하고, 나는 자신이 있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중에 반 이상은 데려간다.’
나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가?
왕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군.”
아크람이 물었다.
“뭡니까? 전하?”
“난 누가 디자인을 했든지 간에, 시공은 무조건 성훈에게 맡길 거야.”
“아!”
“더불어 일절 간섭하지 않겠네.”
무결점의 로비로 눈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공사를 하는데, 무슨 군소리가 필요할 텐가? 안 그런가? 아크람.”
흡족해하는 왕과 눈을 맞추며 그가 대답했다.
“이를 말씀입니까? 100% 신뢰할 수 있으니까요.”
국왕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언제나 고민했었다. 아니 염려했었다.
‘이번 삶에서 나는 너무 성공했다고.’
다시 시작할 때,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이나 했던가?
그런데 성공하고 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처음 돌아왔을 때의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운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고민해봤자 알 수도 없는데, 뭐가 중요해?’
다만 하나.
후회로 점철되었던 내 인생을, 그 인생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내 목표였다.
쉬운 일은 없었다.
하늘이 나를 위해 안배해놓은 듯한 부드러운 성공도 없었다.
‘악다구니를 쓰며, 지금까지 달려온 거라고.’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자신감, 그것이 지나쳐 교만한 모습.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스스로 파멸의 구덩이를 파는 행동이 아니던가?
그래서 매일 밤, 독불장군이 되지 않기 위해 거울을 보며 되물었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김성훈!’
내 안의 김성훈은 때로는 질책하며, 때로는 격려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었다고.’
돈을 많이 벌었다.
노력의 결과로 내 가치를 인정받았다.
때로는 칭송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든 칭찬, 부러움보다 국왕의 이 말을 듣고 싶었다.
‘너라면 믿을 수 있어!’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나를 믿는다는 거잖아.
의부의 말은 몇 년간의 내 인생이, 그리고 내가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실력자들이 그에 맞는 의식까지 갖춘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현장이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아? 게다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그리고 지금까지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세계에서 현재 건설을 말할 때는 KT팀을 떠올리게 될 거고, KT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건축팀으로 기억할 거라고.’
왕이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훈! 계속 안내해주겠나?”
“그러죠. 이쪽으로.”
“오호라. 이것도 처음 보는 문양인걸.”
객실로 들어가는 문을 보며 묻는 것이었다.
“아! 이건 한국의 창호를 그대로 문에 붙인 겁니다.”
삼각 격자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창호였다.
그는 창호지 앞으로 튀어나온 살대를 손으로 만졌다.
“단순한데, 재미있는 문양이구만.”
“‘세모솟을빗꽃살’입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데, 여러 가지를 섞으면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 이 층은 이걸로만 했어요.”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어떻게 여는가? 손잡이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다, 나를 보며 물었다.
“여기는 살대가 없네. 아직 공사가 덜 끝난 모양이야.”
그의 말에 웃으며 허리 높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구멍 안에 버튼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누르자,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렸다.
“오! 미닫이문이었나?”
“네. 자동문이기도 하죠.”
왕이 성훈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껍데기는 전통식인데, 알맹이는 최신식이구만.”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해서, 그게 문명을 거부할 이유는 안 되죠.”
왕이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객실로 들어섰다.
“기대가 되는군. 어떻게 꾸몄을지 말이야.”
***
“어허. 시원하다.”
불가마에 장작을 던져넣던, 국왕의 입에서 나온 나른한 감탄사였다.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찜질이었지만, 몸에 잘 받는 모양인지 왕은 점점 수위를 높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불가마 앞에 있었다.
“어허! 이런 좋은 게 있었다니 말이야. 녀석이 말한 ‘이열치열’이라는 게 이거였군.”
그는 성훈이 가르쳐 준 대로 양반다리를 하고는 연신 탄성을 토하다가 밖으로 고함을 질렀다.
“알리, 아크람, 안으로 들어오라.”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즐기다니, 안될 말이지.”
한편, 혀를 빼물고 땀을 식히던 알리와 아크람은 부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왕! 벌써 오 분이나 들어가 계십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옥체를 생각하시어….”
뜨거워서 들어오기 싫어하는 변명임이 뻔한데, 거기 넘어갈 국왕이던가?
“그럼 내가 나가랴? 할 말이 있느니라!”
마지못해 아크람이 불가마의 문을 열었다.
훅하니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에 그의 가슴이 턱 막혔다.
타오르는 장작 앞에 왕이 찜질복 차림으로 지긋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이리와 앉게나.”
“네. 전하.”
“알리는?”
“물 한 바가지 끼얹고 오겠답니다.”
왕이 혀를 찼다.
“녀석. 고작 이런 온기를 못 참아서….”
아크람이 문 쪽을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어떻게 온기입니까? 열기지요!’
눈을 감은 왕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게나. 어찌 그리 오늘은 멀리 앉는가?”
“신은….”
왕이 방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어허. 이리 오래도!”
엉덩이를 질질 끌며, 마지못해 왕에게 다가갔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왕에게 불경을 저질렀다.
“아크람? 오늘 어떻던가?”
아크람이 땀을 비오듯 흘리며 답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지요. 전하께서도 즐거우신 같아 좋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자네 느낌이 어떻더냐고 묻는 거 아닌가?”
“연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왕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커흠. 이제 알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
“궁을 녀석에게 맡겨도 되지 않겠냐는 말이지.”
마침 들어오던 알리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부왕. 소자는 아직….”
호들갑 떠는 알리에게 장작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나 넣어라.”
“부왕! 불길이 천장에 닿을 듯합니다.”
“넣으래도.”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를 흘리며, 알리가 울상을 지었다.
“어차피 알리, 네가 이어받을 궁이다. 나는 거처를 옮기련다.”
“하지만 왕궁에 부왕이 안 계시면….”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 궁에서만 보내기는 내 삶이 짧구나.”
“부왕.”
“누가 죽는다더냐?
“그럼 어디로….”
“성훈이 녀석이 마지막으로 소개한 그 객실이 나는 참 마음에 들더구나.”
“네? 그 바닥에 앉는 데 말씀이십니까?”
왕이 객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리고…. 이 불가마라는 것도 쓸 만하고 말이다.”
왕은 팔뚝의 땀을 죽죽 밀어 바닥에 뿌렸다.
“이거 보거라. 육수가 줄줄 흐르지 않느냐? 몸이 날아갈 듯 가볍구나.”
“성훈에게 궁에다가 이걸 하나 만들어 달라….”
왕이 손을 들어 알리의 말을 막았다.
“알리. 네 생각에는 성훈이 녀석에게 그 객실을 내 전용으로 내어달라고 줄 것 같으냐?”
알리가 입술을 내밀며, 대뜸 고개를 저었다.
“녀석이 제 손에 들어간 걸 내놓을 놈입니까?”
“네 생각에도 그렇지? 아크람 자네는?”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왕이 고심에 잠겼다.
“그렇다고 궁에다가 그걸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안 그런가?”
고민하는 왕에게 아크람이 말했다.
“전하. 곽 이사를 부르심이 어떠할는지요?”
“곽 이사?”
“네. 아무래도 우리 중에 성훈 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곽 이사가 아닐는지요.”
“옳은 말이로다. 부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