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7화
왕의 거처(01)
일주일 후 리야드 호텔 로비.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열리는 문틈으로 국왕과 알리 왕세자, 그리고 아크람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보였다.
성훈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의부.”
“성훈. 아직 공사 중이라 하지 않았더냐?”
“네. 아직 공사 중입니다.”
“흠. 공사 중인 현장이 이렇게 깨끗하다고?”
어이없는 눈으로 성훈을 보며, 주변을 훑었다.
막 준공청소를 끝낸 것마냥, 로비에는 먼지 한 톨이 보이지 않았다.
공사 중이면 어련히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어야 하며, 먼지로 자욱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 상황을 예상했던 듯, 왕의 손에는 주치의가 당부한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얼마나 신신당부했던가?
‘현장의 공기는 전하의 기관지에 좋지 않사옵니다. 신이 드린 이 손수건을 꼭 지참하시옵소서.’
주치의가 손수 특별 비법으로 소독 처리한 손수건이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그의 예측을 전혀 빗나가고 있었다.
‘이건 무슨…… 무균실 로비를 연상시키는군.’
먼지는커녕, 공기청정기를 틀어둔 것처럼 현장의 공기는 맑기 그지없었다.
‘허허. 이토록 생각이 깊다니…….’
자신의 몸 상태를 염려해, 이렇게 청소를 한 성훈의 배려가 몸으로 느껴졌다.
‘주치의, 자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어.’
손에 꼭 쥐고 있던 손수건을 은근슬쩍 주머니로 넣으며 왕이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는가? 성훈.”
로비로 첫발을 내딛기 전 왕이 한 말이었다.
성훈과 나란히 걸으며, 왕이 물었다.
“흠. 상당히 이국적이야. 이게 한국의 풍경인가?”
“네. 최대한 심플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쭈욱 뻗은 복도 양쪽으로 붉은 나무 기둥들이 간격을 맞춰 줄지어 서 있고, 열주 아래에는 둥근 화강석의 초석들이 놓여 있었다.
“오호라. 끝없이 이어지는 열주라! 아주 간결하지만, 그 인상은 강렬하군.”
왕의 감상처럼, 고급 벽지나 화려한 문양 없이 은은한 다홍빛 벽과 검붉은 나무 기둥만이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성훈이 설명했다.
“이 로비는 행각(行閣)을 모티브로 해서…….”
“행각? 행각이 뭔가?”
다른 문화권이니, 왕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성훈이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아! 한국의 궁궐이나 사찰의 복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왕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궁궐이면 왕궁을 말하는 거지?”
“네. 하지만 지금 이 분위기와는 좀 다릅니다.”
기둥들의 반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좌우 기둥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거닐며 왕이 물었다.
“어떻게 다른 거지?”
“나중에 사진으로 따로 설명해 드릴 테지만, 차이점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경복궁의 행각들은 한쪽이 트여서 개방되어 있죠.”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복도*를 말하는 거구만.”
“네. 여기보다 훨씬 개방적인 느낌이죠.”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호기심을 보이는 왕에게 설명을 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것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천정에는 대들보가 있고, 단청을 칠해서 훨씬 더 화려하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않고서?”
“그건 3차 공사에서 진행할 겁니다.”
“오호. 그래? 왜 그런가?”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문화이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죠. 이 층은 그 층을 이용하기 전,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일차 적응을 위한 장소라고 할까요?”
“흐음. 그런가? 쿠웨이트에서 반응이 좋았으니, 대번에 그렇게 할 줄 알았더니.”
왕의 은근한 물음에 성훈이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 모형의 반응이 좋다고 해서, 한방에 올인할 수는 없죠. 그게 실제 건축에서 성공을 장담하는 건 아니잖아요.”
왕이 성훈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급한 속단은 하지 않겠다? 신중하군. 성훈.”
“한국에는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 그게 옳지.”
고개를 끄덕이던 왕이 기둥을 쓰다듬었다.
“이건 나무에 무슨 처리를 한 건가? 거친 듯 부드러운 데다, 묘한 향이 나는군. 색깔도 좀 짙고 말이야.”
자신이 평생을 살았던 곳과 전혀 다른 문화에 왕은 강하게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리하십니다. 의부.”
성훈의 칭찬에 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성훈. 나를 너무 띄우는군.”
그는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막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이거든. 살짝 씁쓸하면서 톡 쏜다고 할까? 내 맘에 쏙 드는군.”
그의 순백의 토브와 검붉은 나무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런데 묘하게 잘 어울리네.’
“옻칠을 한 겁니다.”
“흠. 옻? 콜타르 비슷한 건가? 그럼 이런 느낌이 안 날 텐데?”
그의 손에 남는 느낌은 끈적함이 아니라,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 나무의 결이 느껴지는 부드러움이었다.
“옻나무의 진액을 가공해서 나무에 바르는 겁니다.”
“아! 그래서 나무 향 말고 다른 향이 나는 거로군.”
국왕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 향 때문에 바르는 건가?”
옻의 향은 그리 좋지 못하다. 오히려 강한 축에 속한다. 심하면 역하기도 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옅어지지만, 바로 쓰기 위해서는 그 강렬한 냄새를 지우는 다른 방법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하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인 기둥에서는 그런 강한 향은 나지 않았다.
“아뇨. 기둥의 수명 때문이죠. 잘 건조한 나무에 옻을 칠하면 습기와 벌레에 강해집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던 왕의 눈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건 벽지가 아니로군. 석고도 아닌 것 같은데?”
왕은 연붉은 벽의 부드러움을 손가락으로 즐기고 있었다.
“황토입니다.”
“황토? 누런 흙?”
뜨거운 모래만 가득한 사막의 나라에서 황토라니, 생소했던 모양이다.
“네.”
“인테리어에 흙을 쓴다고?”
“네. 옛날 한국에서는 집 짓는데 흙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호오. 그랬군. 그런데 그런 흙이 이 나라에 있던가?”
고개를 갸웃하는 왕에게 성훈이 말했다.
“아뇨. 한국에서 가져왔습니다.”
“엥. 굳이 시멘트도 있는데 왜?”
“콘크리트는 건조함의 상징이죠.”
왕이 동의하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은 쉬러 오는데, 몸도 편하게 쉬게 해야죠. 자연 친화적으로요.”
“자연 친화? 그런데 왜 황토인가?”
지금은 아니지만, 조만간 황토에 대한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황토에 열광하는 붐이 일어날 것이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통계나 숫자는 없지만, 황토로 병도 고치고 하거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국왕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헛! 이 흙으로 병을 고친다고?”
‘벌써 연구 결과가 나왔나? 아니던가?’
가물가물하는 기억을 떠올리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일단 습도 유지에 좋고, 항균 작용이 있는 데다, 인체의 독소를 없애주거든요.”
“그래?”
의외의 답변이라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성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왕과 왕자들을 위한 황토방이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찜질로 땀을 빼고 나면, 몸속의 노폐물도 함께 빠져나왔거든요.”
“오호라. 자네 나라 왕들이 그랬다고?”
“네. 아무래도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보니, 잔병치레가 많았겠지요.”
“그렇지. 왕이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지!”
왕은 격렬히 동의하며 성훈의 말을 기다렸다.
“당뇨에도 좋고, 항암 효과도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 당뇨에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수염을 쓰다듬는 왕에게 성훈이 말했다.
“네. 조선 시대 세종이라는 왕이 황토로 당뇨를 다스렸다고 들었습니다.”
“오호…….”
탄성을 지르는 왕을 보며 성훈이 눈을 굴렸다.
‘혹시 왕이 당뇨인가? 어쨌든 세종대왕이 황토방 썼다는 건 맞잖아.’
체질이 달라 안 통하는 건 몰라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의부! 그 눈빛은 뭐냐고요?’
의혹과 기대가 묘하게 뒤섞인 눈빛!
‘이거 이러다가 허풍쟁이가 되겠는걸!’
약을 파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왕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도든 모든 될 것 아닌가?
전문가가 아니면 어떤가?
성훈도 몸이 피곤해서 한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거기서 땀 한 번 쫙 빼면, 몸이 얼마나 개운해지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오죽하면 황토가 만병통치약이라 말하는 신봉자가 생겼겠는가?
‘에라이. 몰라!’
성훈은 끝까지 약을 팔기로 했다.
“이 황토에 열을 가하면 원적외선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사람 몸에 좋대요.”
눈을 왕방울처럼 크게 뜬 왕이 물었다.
“그 말이 참말인가?”
확신을 강요하는 왕이었지만 성훈은 슬쩍 발을 뺐다.
‘이건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체험이 중요하다고!’
직접 해보면, 알겠지!
왕에게 말했다.
“지하에 황토 찜질방 만들어 뒀거든요. 한 번 가셔서 체험해 보세요.”
“벌써 만들었다고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하지만 아직 영업은 안 해요.”
“왜?”
“장사하려고 만든 게 아니거든요.”
***
호텔 벽체용으로 쓰려고 황토를 들여왔더니, 작업자들이 몰려와 부탁한 적이 있었다.
‘팀장님! 추워 디지겄습니다.’
그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올 소리냐고?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일축하려 했지만, 오십 줄의 나이 지긋한 작업자의 말에는 차마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팀장님도 나이 먹어 보쇼! 에어컨 끈다고 선잠 잔다니께!’
내가 그 나이를 먹어 봤어야 알지?
‘어떻게 해드릴까요?’
‘황토방에서 땀 한 번 빼보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공간 있으면 만들라고 했지!
그 후 이 주 정도 지났더니, 수영장 탈의실을 개조한, 황토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
왕이 물었다.
“그런데도 쓸 수 있다고?”
“네. 쓸 만합니다.”
성훈도 사용해 봤었다.
‘급조한 것치고는, 의외로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고. 그걸 국왕이 사용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어차피 지금은 한국인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사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더운 중동에서 다시 땀 빼러 들어가라고 하면, 어느 미친 중동인이 그걸 하겠는가?
‘임시로 쓰고 없애려고 했었는데, 의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괜찮지.’
게다가 지금은 모두가 일하는 시간!
누가 있을 리가 없다.
“낮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맘대로 이용하셔도 됩니다.”
왕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왜앵!
전동 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객실에서 나왔다.
“작업 중이었던 게 맞기는 하구만. 허허.”
“네. 방음이 잘 되어서 문 닫고 안에서 작업하면, 작업하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최 과장이 한 무리의 작업자들을 인솔하다, 성훈의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긴장한 표정으로 한쪽으로 일렬로 걸어왔다.
성훈이 물었다.
“작업 끝나신 겁니까?”
최 과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이제 배관작업 끝내고, 아래층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내장작업은요?”
“재단하고 부착만 하면 됩니다.”
“네. 그럼 계속 부탁드립니다.”
최 과장이 고개를 재차 숙이고, 일행의 옆으로 소리 없이 지나갔다.
인부들도 긴장한 듯, 꾸벅거리며 옆을 지나갔다.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현장이니 작업화를 신었을 터!
‘딱히 걸음을 조심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를 않아? 이 인원이 지나가는데?’
왕은 귀를 의심했지만, 역시나 발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 편복도(便複道)식 : 한쪽에만 복도가 있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