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356화 (356/427)

건축의 신 356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 (11)

“이사님께서 고기를 구우시니,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이 늙은 입에 딱 맞는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왕궁의 한편에서 숯불에 간장 양념을 한 한우를 굽고 있는 곽 이사에게 아크람이 말을 건넸다.

“꿀꺽! 맛있게 드셔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고기를 굽자기에, 기쁜 마음으로 따라왔었다.

‘보통은 같이 굽자는 건, 같이 먹자는 말이잖아.’

하지만 정말 고기만 굽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곽 이사였다.

성훈의 칭찬이 발단이었다.

“와! 전 아직도 울산에서 이사님 처음 뵈었을 때, 구워주신 그 한우 맛을 잊지 못한다니까요.”

곽 이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고기를 굽는데도 도가 있습니다. 얼마나 불과의 거리와 시간을 잘 조절하느냐? 그것이지요!”

“역시! 이사님.”

“아마 식도락으로는, 우리 현재 건설에서 저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성훈이 엄지를 척 세웠다.

“역시! 전 그럼 곽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칭찬에 들뜬 곽 이사가 말했다.

“걱정은 꽉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오늘 성훈 님께 최고의 한우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나를 잘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다 잘하는 건 아니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한두 번이나 뒤집었을까?

까맣게 태운 한우를 들어 보이며 성훈이 말했다.

“전 고기 굽는 데는 소질이 없나 봐요.”

곽 이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어찌 이리, 귀한 횡성 한우를…….”

성훈의 만행에 순간 집게로 따귀를 날리고 싶은 팔을 말리느라,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야만 했다.

“에이. 다시 해 봐야겠어요.”

“네. 아무리 성훈 님이라도, 어찌 처음부터 잘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두 번을 더 태우고는 곽 이사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만리타국에서 어떻게 공수해 온 한우인데. 이러다가 반도 못 먹겠네.’

결단을 내렸다.

“성훈 님. 제가 굽겠습니다. 제발 저리 가셔서…….”

“쩝! 곽 이사님 하시는 거 보니까 쉬워 보였는데. 거 참!”

성훈은 집게를 곽 이사에게 넘기고는 투덜거리며, 국왕에게 가버렸다.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한 종류뿐이었다.

“이사님! 진짜 맛있어요. 한 접시 더요.”

왕세자가 말을 보탰다.

“곽 집사! 내 정신 좀 봐라. 집사란다. 곽 이사! 접시가 비었어! 자넨 정말 굽기의 달인이군. 우리 궁에 들어올 생각 없나? 지금 연봉보다 두 배를 쳐주지!”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부왕! 이런 야들야들한 고기라면 매일 드셔도 질리지 않으실 겁니까?”

그에 답하듯, 근엄한 목소리도 들렸다.

“어허. 보기에는 튼실해 보이는데, 한국 고기는 어찌 이리 부실하누! 두어 번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는구만. 쩝!”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힘드세요? 제가 가서 도울까요?”

곽 이사가 욱한 심정을 참으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이고! 일없습니다. 금방 갑니다.”

국왕에게 바짝 태운 고기를 먹였다가는…….

성훈이야 양아들이니 별 탈 없겠지만, 자신은…….

꼭 말로 해야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던가?

한 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고기만 굽고 나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칭찬에 휩쓸려 고기를 굽겠다고 한 자신의 경박한 입을 때리고 싶은 곽 이사였다.

“에라이!”

‘니들만 입이냐?’

막 구워서 자르지도 않은 한우를 집게로 들어 바로 입으로 넣어버렸다.

국왕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크람. 맛있나?”

“이를 말씀이십니까? 근래에 먹은 것 중에 최고입니다.”

“많이 먹었지?”

그는 국왕의 말에 미간을 좁히며, 눈치를 살폈다.

바닥을 보여가는 접시를 달그락거리며 포크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았다.

“전하. 요즈음 신이 치아가 부실하여, 아직 많이 먹지는 못했나이다.”

허나 그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어허! 내가 두 점씩 찍어가는 것을 봤는데, 치아는 무슨. 늙으면 식탐만 는다더니. 쯧쯧.”

왕을 앞에 두고, ‘당신은 네 점씩 찍어가시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크흠. 전하.”

크게 헛기침을 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빈 접시뿐이었다.

“제가 가져올게요.”

성훈이 일어섰지만, 아크람이 접시를 잡아채며 노구를 일으켰다.

“은인께 심부름을 시켜서야 되겠습니까? 노신이 가져 오겠습니다.”

마지못해 아크람이 접시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끄응.”

아크람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저는 요즘 곽 이사님을 뵈면서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곽 이사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부하직원은 놀고 있는데, 이리 직접 고기까지 구우시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든 왕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군요. 허허허.”

눈으로 보이는 사실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성훈에게 집게를 맡겼다가는, 숯덩이 한우를 보며 눈물을 삼킬 게 뻔한데.

“그야…….”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항상 겸손하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크람의 진지한 말에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존중이 아니라, 복종으로 보이지는 않더이까?’

하지만 그 말을 어떻게 내뱉으랴!

속없이 웃으며 말했다.

“워낙 성훈 군이 일을 워낙 잘하니…….”

아크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력이 훨씬 기시니, 부족한 부분이 어찌 보이지 않겠습니까? 허나 그것을 탓하지 아니하니, 그런 사람을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부른다지요.”

곽 이사가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하.”

‘부족한 부분이라 하셨습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집사님. 기계처럼 완벽합니다. 허허.’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의혹이 들었다.

‘왜 이리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가?’하는.

“혹시 집사님. 하실 말씀이라도…….”

곽 이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포크질이 바쁜 국왕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아크람이 입을 열었다.

“이사님.”

“네. 말씀하시지요.”

“오면서 봤습니다.”

뜨끔한 곽 이사가 반문했다.

“뭐, 뭘 말입니까?”

노회한 아크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허나 그게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일하는 소에게는 멍에를 씌우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던데.”

곽 이사가 피식 웃으며 집게를 들었다.

“어느 녀석으로 드리리까?”

“고, 아니, 고 옆에 세 번째 놈으로 주시면 고맙지요.”

고기를 뒤집으며 곽 이사가 말했다.

“좀 더 익어야 합니다. 기다리시지요.”

군침을 꿀꺽 삼킨 아크람이 말했다.

“좀 덜 익어도 괜찮습니다. 이 늙은 입이 근질거리는구려. 쩝!”

곽 이사가 큭큭 거리며, 한 번 더 뒤적인 고기를 접시에 올리는 척하며, 집게 채로 아크람에게 내밀었다.

“집사님! 아! 하시지요.”

육즙이 질질 흐르는 고기를 꿀꺽 삼키면서도, 아크람의 입에서는 곽 이사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 총 책임자이시면서도, 항상 성훈 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해 주는 것, 그게 말이 쉬운 일이지, 나이 든 자가 하기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곽 이사가 웃으며 고기를 가리켰다.

“다음엔 이게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엔 이게 제일…….”

“허허허. 저야 주면 주는 대로 먹는 처지이지, 어찌 좋고 나쁨을 따지겠습니까?”

고기를 뒤적이며, 곽 이사가 말을 이었다.

“저는 오히려 집사님이 부럽습니다. 집사님과 국왕 전하의 관계는 세계 모든 지도자가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아크람이 익살스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크흠.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우리 국왕께서 고집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허허허.”

그 말에 곽 이사는 울고 싶어졌다.

‘성훈 님께 비하면, 국왕은 천사이십니다.’

마음 같아서는 서로 상사를 바꾸자는 말을 하고 싶은 곽 이사였다.

허나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숨어서 고기를 나눠 먹으며 둘은 나이를 넘어선 우정을 다졌다.

“국왕께서 기대가 크십니다. 얼마나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지 말입니다.”

“네. 마음에 드실 겁니다.”

“허나 저는 걱정이 되는군요. 도면을 보는 것과 실재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곽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어쩌면 이 현장은 도면으로 보시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크람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완벽하다는 말입니까? 완벽한 현장이 있을 수 있습니까?”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흠집도 잡아 족치는 성훈이었다.

그런 것을 완벽이라 말하지 않으면, 무엇을 완벽이라 칭한단 말인가?

허나 곽 이사의 관점에서 완벽이라 말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이건 현장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거라고! 선장이 너무 뛰어나서 문제가 되는 거지.’

노 젓는 사공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니, 그게 문제였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최고급 비데만을 사용하건만, 성훈만 지나가면 뒤통수 머리털이 번쩍 서니…….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완벽합니다. 하나만 빼고…….”

“하나만 빼고요? 그게 뭡니까?”

아크람은 궁금증에 귀를 기울였지만,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국왕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아크람.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어! 혹시 먼저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험!”

뜨끔 놀란 아크람이 얼른 고기를 삼키고, 냅킨으로 입술을 꼼꼼히 훔치며 곽 이사에게 물었다.

“꿀꺽! 티 안 납니까? 곽 이사님?”

곽 이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있다가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져 봅시다. 또 오리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아크람이 뒤돌아섰다.

뒷모습을 보며 곽 이사가 중얼거렸다.

“성훈 님만 안 계시면, 이보다 완벽하고 평화로운 현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

“역시 이건 한국식이 아니네요.”

성훈의 말에 알리가 물었다.

“그럼 한국식은 뭔데? 그러나?”

“다 같이 숯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구워 먹어야 제맛이죠.”

국왕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호라! 그게 한국의 고기 먹는 법도인가?”

“뭐 법도까지는 아니고요.”

성훈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접시 들고 오는 동안 다 식잖아요. 안 식으면 더 맛있다고요.”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그런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그는 실눈을 뜬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크람?”

“네. 전하.”

“성훈의 말이 참말인가?”

아크람이 시치미를 뚝 떼며 딴청을 피웠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신은 당최!”

“에이. 또 이런다. 일어서자.”

아크람이 국왕을 말렸다.

“전하! 직접 요리장으로 가시다니요. 국왕의 체통을…….”

“우리밖에 없는데, 무슨 체통은!”

왕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아. 거짓말을 하려면, 윗니에 끼인 그 덩어리나 빼고 하게나!”

알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항변했다.

“정말입니까? 아크람? 저기서 드시고 오신 거요? 뜨거운 게 더 맛있어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아크람이 혀로 이 사이에 낀 고기를 빼내며 말했다.

“심히 그러하더이다. 왕세자 전하.”

“아크람. 배신자! 당신만은 믿었건만!”

알리가 벌떡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성훈! 가세나!”

허나 그의 진격은 국왕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 뒤로 서거라. 알리. 왕가의 법도도 모르는 고얀 놈 같으니!”

곽 이사가 고기를 굽는 가운데,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훈!”

“네. 의부?”

“샘플이 거의 완성 되었다면서?”

“네. 일주일 정도면 될 겁니다.”

“내가 가서 봐도 되는 건가?”

“가능하세요.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꺼억! 맛있다고 자꾸 먹었더니……. 끙.”

토브 속으로 허리띠를 풀며, 왕이 말을 이었다.

“내 자꾸 궁금하여 한 번 가 봤으면 하니, 그리 알고 있게나.”

“네. 의부.”

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리!”

“네. 부왕!”

“오늘의 만찬은 곽 이사의 공이 크다. 입맛이 없어 힘들었건만, 오래간만에 허리를 끄를 정도로 먹었으니. 꺼억!”

알리가 국왕의 말을 이어받았다.

“곽 이사에게는 상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왕!”

“그래. 그래. 그럼 나는 먼저 일어나겠네. 열심히 굽게나. 곽 이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