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5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 (10)
곽 이사가 호텔 입구에서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우리 작업자에게 이걸 옮기라고 한 거야? 심 사장! 제정신이야? 자네 직원들이야? 엉?”
작업자들이 물건을 나르는 것을 보더니, 버럭 하며 역정을 내는 중이었다.
“아니. 곽 이사님 그게 아니라…….”
“안이고 밖이고. 당장 멈춰! 최 반장, 여기 구루마나 몇 개 갖다 주고 밥이나 먹으러 가!”
최 반장이 어깨를 움찔하며 말했다.
“예? 이사님. 그래도 우리 주려고 선물로 가져왔다는데…….”
“선물?”
심 사장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설명했다.
“네. 현장 인부들에게 먹일 고기입니다.”
“고기?”
곽 이사가 코웃음을 픽 쳤다.
‘일단 먹는 걸로 인부들을 달래시겠다?’
“누구한테 주는 선물인데?”
“그야 현장 인부들에게…….”
“자네는 선물 받을 사람더러 옮기라고 하나?”
“그게…….”
“그게 선물이야? 일이지.”
말문이 턱 막힌 심 사장이 눈만 굴리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두루뭉술 넘어가는 법이건만, 왜 이리 까칠하게 군다는 말인가?
곽 이사가 말을 이었다.
“먹을 때 먹고, 쉴 때 제대로 쉬어줘야, 정작 일을 할 때, 제대로 힘을 쓸 것 아닌가? 엉?”
말이야 바른 말이니,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최 반장! 자네 휘하 인부들은 우리 현재 건설 일만 하면 돼! 쓸데없이 힘쓰지 말라고! 그게 우리 현장 방침이야! 자네들이 이런 잡일을 왜 해?”
심 사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 사장. 선물은 말이야. 자기 손으로 들고 오는 거야! 그것도 몰라?”
선물을 가져오고도 욕을 먹으리라고는 생각도 했으니, 심 사장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팀장님이 다 반출시키라는 거. 내가 얼마나 빌었는지 알아?”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면서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는 곽 이사였다.
허나 진실을 모르는 심 사장이야, 연신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곽 이사님 덕에……. 헤헤.”
그리고 허리를 펴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신지.”
“자네 정도가 독대하는 것만도 영광인 줄 알아! 이 친구야. 그리고…….”
딱!
“으윽! 이사님.”
부지불식간에 심 이사의 정강이뼈를 걷어찬 곽 이사가 허리에 양손을 올렸다.
“너 이 새끼! 뭐가 어째? 사장님하고 계약을 했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잘하면 나 같은 말단은 치겠더라? 엉!”
“죄송합니다. 이사님. 앞으로는…….”
심 이사는 무릎을 꿇고 정강이를 만지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곽 이사의 훈계가 이어졌다.
“이 새끼야. 현장에서는 기사가 법이야! 뒤에서 후방지원도 못 할 거면, 알아서 빠져. 너희 말고도 업체는 널렸으니까. 이것들이 좀 안면 있다고 기어올라. 엉!”
“죄송합니다. 제가 단단히 교육시켰으니까, 다시는…….”
하지만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곽 이사가 고함쳤다.
“똑바로 안 서? 어디서 엄살이야!”
무릎을 꿇었던 심 이사가 힘겹게 바로 섰다.
“이게 오냐오냐…….”
다시 구두를 뒤로 빼던 곽 이사가 동작을 멈췄다.
시푸르둥둥한 심 이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얼굴에 분칠한다고 했지만, 터진 입술과 부어오른 눈두덩을 감출 수는 없었다.
심 사장이 애절한 눈으로 곽 이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단단히 주의를 줬습니다.”
아무리 독한 곽 이사라도 차마 다시 때리기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의 몰골이었다.
곽 이사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큼. 큼.”
하지만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앙칼진 눈으로 쏘아보았다.
“심 이사! 지켜본다. 한 번만 더 걸리면, 이 계통에서 네가 설 자리는 없을 거다.”
“네. 네. 이사님.”
곽 이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 반장. 뭐 구경났어? 가서 구루마 두 개 가져오고, 나머지 인부들은 얼른 가서 하던 식사나 마저 하라고!”
“아. 네! 이사님.”
최 반장을 비롯한 삼, 사십 명의 잡부들이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올렸다.
심 사장 뒤의 두 명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직원들이야?”
“네. 최 과장, 김 대리 인사…….”
“됐고! 시간 없으니까, 자네들은 이따가 최 반장이 구루마 가져오면, 알아서 정리하고!”
두 명의 직원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네! 이사님.”
“자네 둘은 나 따라와. 그리고 앞으로 한 번만 더 인부들 맘대로 부리면, 그때는 죽었다고 복창하는 게 좋을 거다.”
화가 나서 화풀이를 하기는 했지만, 영 어색했던지 곽 이사가 걸으며 말문을 열었다.
“나한테 걸린 게 다행인 줄 알아! 팀장님이 봤으면, 선물이고 뭐고 바로 빠꾸야! 알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네!”
“우리 팀장님 말에 토 달지 마라. 진짜로 죽는 수가 있다. 내 손에.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은 벌써 나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항상 제일 먼저 나오시는데.”
“얼굴 뵙고 갈 수 있을까요?”
곽 이사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걸렸다.
‘당연하지. 자네들을 얼마나 기다리셨는데. 쯧쯧. 양복 입은 꼬라지 하고는…….’
여기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온 게 분명했다.
‘여기서 개고생을 해 봐야 현장이 어떤지 알지.’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훈이 결재서류를 보고 있었다.
곽 이사가 둘을 소개했다.
“팀장님. 여기 신영 심 사장과 심 이사…….”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물었다.
“호텔 앞에 있던 물건들, 그분들이 가져오신 겁니까?”
“네. 고기랍니다.”
곽 이사를 힐끔 보며 물었다.
“우리 작업자들 식사하는데, 방해된 건 아니죠?”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됐구요. 무슨 고깁니까?”
심 사장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조아렸다.
“네. 돼지고깁니다. 먼지 마신 후에는 그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여기서는 팔지 않는다고 해서.”
“이슬람 국가에 돼지고기라…….”
성훈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한우라도 가져 왔으면 궁에 가져가서 의부한테 맛이나 보여주려고 했는데. 쩝!’
뜬금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돌았다.
그동안 정이 많이 쌓이긴 쌓인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아쉬운 걸 보니.
피식 웃자, 곽 이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여기 이슬람인 거 몰라? 돼지고기를 가져와? 정신이 있어? 도로 가져가.”
‘오버하시기는. 자기도 군침 꿀꺽 삼켜놓고는.’
동시에 작업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긴 작업자들이 무슨 죄가 있어? 지금쯤 침 흘리고 있을 텐데.’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교리 때문에 돼지를 안 먹는 거뿐이지, 신성하게 여기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편협한 사람들은 아니더라고요.”
곽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네. 의외로 너그럽지요.”
“식당 창고로 넣으라고 하셨죠?”
“네. 팀장님.”
“조리장에게 말해 둘 테니까, 오늘 저녁은 그걸로 하세요.”
“아! 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심 이사의 양손으로 향했다.
“그건 뭐요? 심 이사.”
긴장하고 있던 심 이사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아! 이건…….”
곽 이사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티, 팀장님. 드리려고 가져온 한우 등심입니다. 횡성에서 잡아서 바로 가져온…….”
‘이 정도면 알리한테 생색은 내겠네.’
책상 귀퉁이를 눈짓하며 말했다.
“이사님. 받아두세요. 가져온 성의가 있는데…….”
꿀꺽!
곽 이사의 울대가 꿈틀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냉큼 받아 책상 귀퉁이에 쌓았다.
“팀장님. 이번 일은 저희의 불찰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책임지고, 현장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신다고 믿겠습니다.”
심 사장이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들어왔는데, 이건 너무 쉽잖아?’
“그럼 용서를…….”
“그건 하는 거 봐서요.”
“아!”
심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선수는 선수구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양복의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책상에 올리며 성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팀장님. 이건…….”
“훗!”
성훈이 의자에 앉은 채로, 심 사장과 봉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곽 이사를 통해서 줄 걸 그랬나?’
긴장했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심사장이 말을 이었다.
“섭섭지 않도록 넉넉하게…….”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고기도 받는데, 돈을 거부할 리가 없잖아!’
성훈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사장님.”
“네! 팀장님.”
“뭐. 한 백억쯤 됩니까?”
금액에 놀라 숨을 너무 급히 들이쉰 듯, 심사장의 안면이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아, 아니…… 그…….”
같잖은 투로 성훈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긴장할 것도 안 되잖아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처지에 봉투가 뭡니까? 봉투가!”
곽 이사를 힐끗 바라보자, 그도 어이없는지, 실실 웃으며 책상 위 봉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심 사장. 봉투도 내밀 상대가 있고, 안 그런 상대가 있는 거야. 쯧쯧. 눈치가 없어.”
그리고는 심 사장의 상의 안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심사장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인지 확인하지도 않아? 백억? 이거 미친놈들이야?’
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곽 이사는 봉투가 든 가슴 부위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 금액만큼 직원들 상여금 주고…….”
“네? 네!”
심 사장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불량을 줄이라는 말이야. 우리 팀장님을 뭐로 보고……. 쯧쯧.”
성훈이 사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
“네! 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사님.”
“네.”
나가라는 말에 심 사장과 이사가 허리를 구십 도로 접었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그 말에 성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사님. 말씀 안 드리셨어요?”
“아! 네. 바로 인사드리러 오느라…….”
‘무슨 말’
서로 얼굴을 확인하는 심 씨 형제에게 곽 이사가 말했다.
“가긴 어딜가? 불량품들 다 골라내고 가야지.”
“아, 아니. 아까 선물들 다 받으시고, 용서…….”
성훈이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훗! 하는 거 봐서라고 했습니다만…….”
그들의 눈길이 책상 위 한우 상자로 향했다.
성훈이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쪼잔하게.”
그리고 여전히 손톱을 주시하며 말했다.
“곽 이사님! 현장에서 손해를 볼 만큼 봤는데, 저 몰딩들, 또 현장에서 정리해야 합니까? 네?”
“아닙니다.”
곽 이사에게 물었다.
“이사님께서 제 다리 분질러놓고, 미안하다 고개 숙이고, 선물 보따리 좀 하고, 돈 봉투 내밀면?”
곽 이사에게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사과 다 했으니까, 제가 용서할 거 같습니까?”
곽 이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팀장님. 저 아직 안 미쳤습니다.”
“그렇죠? 진짜 미안하고 그러면, 응! 그 사람이 정상적으로 일어서서…….”
책상을 탕 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사회활동을 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야!”
“그게 기본 아닙니까? 예!”
곽 이사가 맞장구쳤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걸 안 하면?”
“어떤 개자식이 그런 짓을 합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사지를 몽땅 아작을 내놓겠습니다.”
정말 흥분한 듯, 곽 이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전 아마도 앞으로 그 사람 얼굴만 봐도 짜증 날 것 같은데요. 맞은 데가 욱씬거려서. 앞으로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 이사님 같으면?”
곽 이사에게 눈짓하자, 그도 빙글거리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 하지요. 팀장님!”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심 사장의 허리가 점점 앞으로 숙어졌다.
“티, 팀장님. 저희가 그렇게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성훈이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저도 압니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죠.”
곽 이사를 타박하며 말을 이었다.
“왜 이런 말씀은 미리 전달 안 하셔서, 제가 오해하게 만드세요? 이사님은. 참!”
성훈이 책상을 가로질러 나오며 물었다.
“안 하실 생각이신가 봅니다. 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분류해야지요.”
“역시 도리를 아시는 분이시군요.”
심 사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저 아직 말 안 끝났는데요?”
“무슨 말씀을 더…….”
“하시는 김에 딜리버리까지 부탁드립니다.”
“네? 현장에 배달까지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어림도 없다는 표정의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작업자들한테 물어볼까요? 화가 풀렸는지 아닌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던가?
심 사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가 딜리버리까지 다 하겠습니다.”
성훈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곽 이사님. 들으셨죠?”
“암요. 제가 누차 말씀드렸잖습니까? 심 사장이 실수한 거지.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기사들 몇 명 대동해서 책임지고 분류 작업 감독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문밖을 나서기 전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흠집의 기준은 뭐라고요?”
곽 이사의 얼굴에 비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팀장님 기준은 언제나 일 미리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면 수고하십시오. 참! 저녁에 이사님은 저하고 궁에나 들어가실래요?”
곽 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이십니까?”
이제껏 바짓가랑이 붙들면서 따라간 적은 있어도, 성훈이 먼저 가자고 한 적은 없지 않던가?
성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곽 이사님도 여기 오신 지 오래되셨는데, 저랑 같이 한우나 구우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뭐 내키지 않으시면…….”
함박웃음을 띠며 말을 잘랐다.
“내킵니다. 그리고 제가 고기 굽는 데는 일가견 있는 건 아시잖습니까?”
문을 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저녁에 뵙죠?”
문을 닫기 전 성훈의 작은 투덜거림이 들렸다.
“오늘 작업은 정상적으로 되려나? 쩝! 어제처럼 자재 수급이 끊기면 안 되는데, 밤샘 작업이라도 시켜야 하나?”
성훈이 사라지자, 곽 이사의 눈이 심 사장 형제에게로 향했다.
살기 어린 눈빛에 심 사장의 등에 땀이 맺혔다.
“내가 오늘 만찬에 못 가기만 해 봐라!”
어금니를 갈며 말을 이었다.
“똑똑히 보여주지. 내가 누구부터 조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