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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54화 (354/427)

건축의 신 354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 (09)

복도로 나갔던 곽 이사가 들어왔다.

그에게 물었다.

멋쩍게 웃는 표정으로 보아, 심 사장이 납작 엎드렸음이 분명하다.

“이사님. 뭐래요?”

곽 이사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제깟 놈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바로 공장 스톱시키고, 조색해서 온답니다.”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스톱은 무슨…….”

생산 라인을 건드리지 않고도 조색하는 방법은 수만 가지다.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는 거였다.

‘칫!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지.’

곽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성의가 가상하지 않습니까?”

그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거래처가 곤경에 처하는 건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일에 차질만 없다면, 뭐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착시간은요?”

“제가 내일 아침 8시까지 도착 못 하면 아작을 내놓겠다고 엄포를 놨으니, 무조건 도착할 겁니다.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한국으로 안 가도…….”

뭔 소리를 하고 있어?

여기서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이!

초롱초롱한 그의 눈빛으로 보아, 어떤 속셈인지는 분명했다.

‘알리와 국왕을 만나는데, 재미 들렸군.’

꼭 좀 만나고 싶다고 하도 부탁을 해서, 왕을 만날 때 몇 번 대동했었거든!

그의 웃음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자재부 정리합니다.”

“네? 그건…….”

“이번에 확실하게 군기 안 잡으면 앞으로도 힘들 거고, 아예 이참에 우리만 전담할 자재팀을 새로 구성하려고요.”

“아! 그러십니까?”

그를 비스듬히 보며 물었다.

“이사님께서 자재 쪽을 좀 아시는 것 같아서 맡기려고 했는데…….”

곽 이사가 얼른 뒤의 말을 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KT 팀 전담으로 확실하게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슬쩍 던진 기회를 잽싸게 잡는 곽 이사였다.

‘자신의 사람으로 구성하겠지.’

누가 되든 상관없지 않나?

확실히 통제만 된다면 된다.

‘이번에 혼쭐이 났으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겠지.’

입에 걸린 웃음을 참는 곽 이사에게 말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호언장담했다.

“염려 마십시오. 제가 최고의 인선으로 배치하겠습니다.”

“대신!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입술을 비틀며 각오를 다지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혼자 온답니까?”

신영 사장의 방문자 수를 묻는 말이었다.

“아닙니다. 직원 두 명을 대동하고 온답니다.”

피식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도장액 통을 들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곽 이사에게 물었다.

“세 통인가요?”

“아닙니다. 두 통이랍니다. 급한 대로 두 통이면 어느 정도 해결될 거고, 나머지는 이 차분 물량이 들어올 때 같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고귀하신 몸이라 페인트 통도 들지 않으시겠다.

‘전형적인 갑이시군.’

양복 쫙 빼입고 맨몸으로 와서는, 딸랑 고개 한 번 숙이고 다시 한국으로 가시겠다?

자기들 때문에 현장 작업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곱게 돌려보낼 거라 생각했다면, 나 김성훈을 완전히 잘못 본 거야!’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쩝! 눈치가 없으면 손발이 고생하는 거죠.”

“네?”

“아닙니다. 그 대단하신 이사님도 오신답니까?”

순간 곽 이사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주먹을 꽉 쥐며 짜증을 내뱉었다.

“아 참! 그걸 안 물어봤군요. 그 망할 자식을 물어봤어야 했는데.”

전화통으로 아무리 열불을 내봤자, 화는 풀리지 않는다.

말로는 죄송하다 하면서, 두 다리는 책상에 쫙 뻗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한 교수 같은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어?’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내가 그 상대편이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뒷골 잡는다고!

‘으으. 내가 그런 꼴은 또 못 보지.’

사고 친 놈도 와야, 그게 인과응보 아니야?

엉뚱한 놈 아무리 괴롭혀 봤자, 변하는 건 없다.

‘스스로 땀 흘려봐야 몸이 기억하지.’

곽 이사 또한 그에게 나만큼이나 감정이 많은 듯했다.

“그 인간도 반드시 같이 오라고 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또 있습니까?”

“그 이사가 포함되어 있으면, 한 명 더 데리고 4인 구성으로……. 아니, 제가 직접 통화하죠.”

이사라는 놈도 하는 짓으로 봐서는 페인트 통을 지고 올 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해야지. 별 수 있어?

“팀장님. 여기…….”

통화음을 확인한 곽 이사가 두 손으로 전화기를 내밀었다.

-곽 이사님. 지금 공장 라인 멈추고…….

오버하기는?

하지만 곽 이사 말대로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어딘가?

“김성훈 팀장입니다.”

-아! 팀장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생산 라인 오래 멈추시면 안 되니까, 용건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 네.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바로 제가…….

“이사님이라는 분도 같이 오세요.”

의아한 듯 되물었다.

-네? 심 이사를 말입니까?

“네!”

-우리 심 이사는 뭐 하시려고?

‘흠. 아직도 말에 토를 달 정신이 있군!’

사장이야 무슨 죄가 있겠어?

일부러 불량을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하지만 동생 교육을 잘못시킨 건, 죄가 크지.’

그리고 그 인간! 부를 때는 부르더라도, 멀쩡하게 오면 내가 약 오르지.

코웃음 치며 물었다.

“아차!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불량을 낸 저희가 죄송하지요.

‘그런 말이 아니거든요. 이 양반아!’

“제가 깜빡했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장님이 직접 가서 모셔오지 않으면 안 오실 분이신데 말이죠.”

사장을 언급하자 당황했던지, 심 사장의 음성이 심하게 떨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네 사장하고 계약했지, 너 같은 말단이랑 계약했냐? 어딜 오라 가라 하느냐! 라고 혼이 났었는데, 쯧, 제가 잠시 잊었습니다.”

-에엥? 그게 정말입니까? 자, 잠시만요. 팀장님.

다급히 수화기를 막은 듯,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야!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엉!

-형님. 그, 그게…….

잠깐의 설명이 이어지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당탕탕!

-이런 미친 자식!

-으악! 내 다리!

-할 줄 아는 게 술 처먹는 거밖에 없어서, 술 상무를 맡겼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똑바로 안 서?

짝! 짝!

-혀, 형님. 잘못…….

짝! 짝!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엉!

내 옆에서 곽 이사가 입을 막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최 과장 역시도 고개를 모로 돌렸지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쯧쯧. 그 사람, 내일부터 잡부로 뛰어야 하는데, 벌써 몸이 망가지면 안 되죠. 사장님!’

“사장님.”

-아! 헉헉.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숨 가다듬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몇 번의 심호흡 후에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은 듯, 말을 더듬고 있었다.

-티, 팀장님. 우, 우리 심 이사 말은 그게 아니라…….

‘아직도 변명하실 정신이 있어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인간이 우리 현장에 오는 건 변하지 않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말을 버벅거리는 그에게 말했다.

“어려우신가 봅니다.”

-그, 그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제가 사장님께 직접 전화 드리죠. 공장으로 가서 모셔오라고요.”

사장의 입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아! 아닙니다. 팀장님! 내일 아침에 반드시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따각따각따각.

‘전화기 흔들리는 소리인가?’

-티, 팀장님. 반드시 데려갑니다. 그럼 머, 먼저 끊어도 되겠습니까? 조,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분노를 참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이었다.

‘참으면 병 됩니다. 확실히 푸시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니, 천천히 확실하게 하십시오.”

-네. 아무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곽 이사에게 전했다.

그가 받아 폴더를 접으려는데, 수화기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나왔다.

-형님! 빠따는 제발……. 저 죽습니다.

-죽어도 싸지! 이 새끼야. 니가 사람 새끼냐?

-형님! 제발…….

-어허! 이 손 안 놔? 이것 봐라. 네가 죽으려고 애를 쓰는구나. 박 과장! 김 대리!

기다렸다는 듯이, 힘찬 대답이 들렸다.

-네! 사장님!

-이 새끼, 떼!

-네! 사장님!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놔! 이 새끼들아!

그리고.

콰직!

-아이고! 나 죽네! 헉! 피! 형니……. 으헉!

쾅! 뿌직!

-허허허. 이게…. 지금 피해?

-혀, 형님.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 으악!

사장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잡고 있어라.

그가 크게 고함쳤다.

-김 양아! 오늘 가꾸목 입고 됐지?

-네. 아까…….

-하나만 빼 와라. 내 오늘 형제의 연을 끊는다!

-네!

후다닥!

-어머! 수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네?

아쉽다는 듯, 그제야 곽 이사는 수화기를 접었다.

“쩝! 심하게 싸우지는 않으셔야 할 텐데…….”

곽 이사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설마 친동생인데,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내일 일해야 하는데, 저래서 일할 수 있겠냐는 말이죠.’

대기하고 있던 최 과장에게 말했다.

“과장님!”

웃음을 참던 그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팀장님! 크흡.”

“이제 그만 웃으시고.”

“우흡! 네. 말씀하십시오.”

그는 입을 막으며,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말했다.

“몰딩은 내일 오전 작업할 것까지만 골라내라고 하세요.”

“네?”

하지만 그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최 과장은 작업자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곽 이사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팀장님!”

“네. 말씀하세요.”

“왜 갑자기 내일 아침 것까지만 지시를 하시는지요?”

갑작스러운 지시 변경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 그거요?”

몰딩을 골라내는 인부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 옆에는 아직도 분류되지 않은 몰딩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몰딩이 왜?”

“지금 지하창고에 저것보다 몇 십 배는 더 쌓여 있죠?”

곽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재들 내일도 우리 비싼 작업자들에게 분류시킬 겁니까?”

곽 이사가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쫙 쳤다.

“아하! 그럼…….”

“네. 공장에서 직접 골라내야죠.”

“아! 그럼 아까 네 명 말씀하신 게, 그런 의미였군요!”

그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며 말했다.

“어떤 일이든 2인 1조라야 작업능률이 높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곽 이사가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왜요?”

“내일 그놈들 작업하는 것만 보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

지시를 받아 내일 쓸 몰딩만 골라 어깨에 메고, 현장으로 이동하던 인부들이 수군거렸다.

“총괄 책임자는 곽 이사님 아니셨어?”

“그러게.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 게 아닌가 봐! 완전 팀장 꼬붕이던데?”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봤구만. 난 믿기지가 않아서 눈을 몇 번이나 비볐는지 몰라!”

인솔 중인 최 반장의 눈치를 힐끗 보고는 속삭였다.

“반장님. 곽 이사가 원래 저런 사람이었수?”

최 반장이 혀를 찼다.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몰딩이나 조심해서 옮기라고.”

그의 질문에는 다른 인부가 답했다.

“아니던데? 현장에 온 걸 한 번 봤는데, 현장 소장을 아주 쪼아 죽이던데?”

“그렇지? 나도 그렇게 들었거든. 그런데 저 팀장한테는 꼼짝을 못하네.”

한 인부가 슬쩍 결론을 내렸다.

“현재 그룹 핏줄이라는 게, 사실인게벼.”

최 반장이 속으로 코웃음을 픽 쳤다.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 현장관리학과라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베테랑이라고.

‘저 깐깐돌이, 최 과장이 주눅 들 정도로!’

엘리트?

하지만 스스로의 추측에 고개를 저었다.

엘리트는 응당 책상에서 일하지,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아무도 눈썰미와 현장을 지휘하는 실력은 팀장을 따르지 못한다는 걸.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갈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

저렇게 확실한 선장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잘하면 이 현장이 내 인생작이 될 수도 있겠구만! 허허!’

그는 웅성거리는 작업자들에게 일갈했다.

“거기 모서리에 부딪힌다고! 몰딩 고른다고 또 반나절 날릴 거야? 엉!”

최 반장이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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