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0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05)
반장 하나가 놀리듯 물었다.
“손 반장, 계약금은 어떻게 할 거냐?”
“그거야 차차 갚아가믄 되는 것이고.”
“일수 찍냐? 차차 갚게?”
“다 써부렀는디, 어쩌요?”
“다 썼다고?”
“허면 그걸 여태 놔둘 여유가 있간디요? 밀린 임금들 다 주고, 돈 생긴 김에 장비 좀 바꾸고 그렁께 남는 것도 없더구만요”
반장들이 놀라서 물었다.
“이, 이억을? 그새?”
“뭘 그런 눈으로 보셔? 그 씨부랄 놈들, 2군밖에 안 되는 새끼들이 임금 체불하다가 망해 부리는 바람에. 맘 같아서는 장기라도 팔아서 주고 싶은디, 방법이 있소? 발만 동동 굴럿제.”
“때마침 현재에서 연락이 왔다? 그거지.”
“그라지요. 디지지는 말라는 건지, 1군 업체에서 콜이 오더만요.”
“그래서 계약서도 안 보고 도장을 찍었다.”
“보기사 봤지유.”
“보기는……. 쯧쯧.”
박 반장은 ‘액수만 봤구만!’라는 말을 목으로 삼켰다.
“그려도 현재 건설 정도 되믄 사기는 안 칠 거 아니오? 돈도 이리 두둑허게 주는디, 인건비 떼일 일도 없을 거고!”
그 말에 박 반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지. 일을 좀 독하게 시켜서 그렇지!’
훨씬 높은 품질을 요구한다.
“그래 좋은 회사 잘 왔다. 그리고 계약금 세 배 무를 자신 있으면 도망가라.”
손 반장이 다급하게 귓구멍을 후볐다.
그리고는 눈을 연신 껌뻑이며 귀를 들이밀었다.
“뭐라고 헌 겨? 지금? 세, 세 배?”
최 반장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믄, 육억인 겨?”
최 반장의 표정을 보며, 믿기지 않는 듯 투덜거렸다.
“씨부럴. 알고 보니 진짜 개 도둑놈들이구마이.”
단가를 두 배로 준 건 생각도 않는 손 반장이었다.
한국에 건설 공사하면서, 작업자에게 계약금을 이억이나 주는 회사는 또 어디 있던가?
“우짠지……. 계약금을 그렇게 턱턱 줄 때, 알아봤어야 허는 것인디, 큰 회사는 다 이렇게 주는 구나 했지요.”
그 상황이 눈에 보이듯, 훤했다.
자신 또한 첫 계약 때는 그렇게 성급하지 않았던가?
씁쓸하게 웃으며, 혀를 찼다.
“쯧쯧. 돈에 눈이 멀었던 거지. 어쩔 텐가?”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손 반장이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남은 건 몸뚱이밖에 없는데……. 몸으로 때워야지요. 어쩌긴 뭘 어째요?”
설령 그 돈이 있다고 한들, 그걸 물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자 우리는 꼼짝 못 하고 여그서 발이 묶였다는 거구마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으랴.
작은 방에 들어갔던 최 반장이 나왔다.
“자네들도 얘기 나눠 봐서 알겠지?”
반장들의 끄덕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현장은 다른 현장과 다르다. 하나만 있어도 현장 하나는 씹어먹을, 그런 현장 기사들이 100명이나 포진해 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반장들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도 현장에서 싸움은 해볼 만큼 해 봤다.”
손 반장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한바탕 벌려 봐유? 나가 총대 멜랑게!”
신입다운 패기가 아닐 수 없었다.
잔다르크라도 될 요량, 각오의 눈빛이었다.
최 반장이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잘 들어라. 중요한 거니까!”
“뜯으라면 뜯어라. 아무 대꾸하지 말고.”
“워떠케 그런대요? 말 안 되는 소리하믄, 콱!”
최 반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성질 급한 녀석. 저런 놈이 제일 먼저 사고 치지.’
몸싸움이야 누구에게 밀릴 것인가?
하지만 명분에서 밀리는 싸움은 패배를 자청하는 지름길이 아니던가?
잘못 덤비다가는 돈도 못 받고 쫓겨나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한숨만 나오는 최 반장이었다.
“으휴. 어쨌거나 내가 피하고 싶은 인물들을 모조리 모아놓았다.”
한숨 쉬는 반장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소장이 지랄해도 뜯는 것들이 그 독종들이야.”
“…….”
“그런데 이번에는 팀장이 직접 얘기했잖아! 바로 뜯는다고!”
전체를 아우르며 말을 이었다.
“이 말이 엄포로 들리냐?”
최 반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뜯으라고 했는데, 대충 땜빵하고 넘어갔다가 다음 공정까지 피해 주는 반장들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옆에 있던 김 반장이 으르렁거렸다.
“특히 너, 손 반장! 몰딩 공정 때문에 내 도배지 뜯는 상황이 생기면, 내 너부터 죽여버린다. 알아!”
둘의 말다툼을 보며 최 반장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 말해 뒀으면 피차 주의하겠지.’
박 반장을 보며 말했다.
“정수야. 손 반장, 저거 사고 치는 거 아닌지 잘 지켜봐라.”
“쩝. 객기 부리는 면도 있지만, 이왕 박살날 거라면, 초반에 깨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한 번 당하고 나면, 다음에는 엄두도 안 날 텐데.”
“흐흐. 자네 말도 맞아.”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손이 아주 꼼꼼합니다. 예전에 한 번 현장 한 거 봤는데, 생각보다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 생긴 거 하고 다르네.”
“네. 보면 놀라실 겁니다. 말만 거칠죠. 뭐.”
“하여간 가급적이면 사고 치지 말고 가자고, 우리는 기사들만 조심하면 되니까.”
박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산시키고, 난 팀장이 오라고 했으니까, 이따가 현장 둘러볼게.”
***
최 반장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애송이 팀장이 책상에 앉아 있고, 최 과장이 옆에서 업무 지시를 듣고 있었다.
‘최 과장이 지시를 받아? 내 예상이 정확하군.’
그가 아는 최 과장은 실력보다 저평가되고, 승진이 늦은 사람이었다.
소장이 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실력자!
그런 그가 지시를 받는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저 나이에는 안 되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면서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어쩌면 최 과장한테는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저 낙하산이랑 친해지면 승진에도 도움을 받을 거 아니야?’
최 반장에게 그는, 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두려운 사람임에는 분명했지만,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다.
잘 되자고 한 일이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질 않은가?
분명히 일의 원인은 그때의 인테리어 사장이 제공했고 말이다.
굳이 말하면, 애증과 존중의 관계랄까?
“최 과장님. 저 왔습니다.”
“오셨습니까? 반장님. 오랜만입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최 과장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로 반갑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때 고생 많으셨습니다. 반장님 안 계셨으면, 저도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
최 과장이 팀장에게 물었다.
“제가 말씀드릴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앞으로도 종종 하셔야 할 텐데요. 앞으로 자리 비울 일이 좀 있을 겁니다.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성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알리로부터 귀찮은 독촉을 받고 있었다.
‘왔으면 응! 부왕을 먼저 뵙고 인사를 드려야지! 아무리 일이라고 해도 말이야.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닐세! 내일 아침에는 꼭 입궁하도록 하게!’라고 최후통첩을 받은 것이 어젯밤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최 반장이 확신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아시겠죠. 반장님. 특히나 안전과 현장 정리정돈에 신경 써 주십시오. 앞으로도 함께 계속해서 현장을 진행하려면,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 반장이 웃으며 답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현장 끝날 때까지, 어떠한 사고가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실적을 쌓아야 할 현장에서 사고라도 나봐! 앞으로 현재 건설 일은 하지 말 각오를 해야 한다고.’
최 과장이 지시를 마치고, 옆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팀장님. 추가하실 지시사항이 있으십니까?”
“음…….”
잠시 생각하던 성훈이 입을 열었다.
“앗! 지나치고 갈 뻔했네요.”
성훈이 말을 이었다.
“반장님.”
“네. 팀장님.”
“작업자들 톱날이랑 핀 타카 공이 부분, 자주 손보십니까?”
“공이요?”
“네! 그 핀 타카 혓바닥 있지 않습니까?”
“아!”
성훈이 말없이 대답을 기다렸다.
뜻하지 않은 말에 최 반장이 머뭇거렸다.
‘그걸 누가 손 봐!’
가끔 핀 타카의 핀이 끼게 되면, 그제야 한 번씩 손보는 것이 아니던가?
“가끔 손보기는 합니다만…….”
“인테리어 교체라서, 재단과 부착이 주된 작업이 될 겁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거지?’
최 반장은 속으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수긍했다.
“그렇겠지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몰딩 작업 끝났을 때 보면, 모서리 마감 부분에 깨진 게 많이 보이더라고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지요.”
어쩌라는 말인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톱날은 사흘 사용하고 나면, 새 톱날로 교체해 주세요. 무조건.”
“네? 그걸 사흘마다 바꾸라고요?”
“네. 그리고 톱날은 최상급으로 사용해 주세요.”
최 반장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돈이 얼마나 드는 일인데, 매번 교체하라는 말인가?
‘쯧쯧. 젊은 친구가 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속내를 숨기고, 거부를 표시했다.
“굳이 그런 것까지…….”
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애송이가 말했다.
“작업자들에게 1,000번 자를 때마다 한 번씩 교체하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대충 그 정도 자르면 나무가 튀더라고요.”
순간 최 반장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런 걸 어떻게 알지? 초짜가?’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분들한테 카운트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 바쁜데, 톱날 상태 보며, 살살 눌러가며 재단하진 않을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팀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작업자들은 그들만의 처한 처지가 있는 것이다.
“명심하세요.”
애송이가 최 반장의 눈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들어오는 몰딩, 비싼 겁니다.”
그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봤자 몰딩이 이, 삼만 원이지, 톱날 가격이 얼만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지금까지 했던 현장과는 다르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저 그런 몰딩처럼 다루지 말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어느 현장이나, 자신의 현장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애송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최 과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해를 잘 못 하신 것 같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최 과장이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정확히 지적해 주셔서…… 부끄럽습니다. 팀장님!”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최 반장님. 약간 과장하면, 몰딩 하나가 톱날 하나의 값과 비슷합니다.”
최 반장이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놀란 기색이 연연한 모습이었다.
“네, 네?”
“전동 톱날이 비싸면 15만 원 정도 하죠?”
“네. 그렇지요.”
“이번에 들어온 몰딩, 하나에 십만 원 정도 합니다.”
입이 벌어질 수밖에.
“대체 무슨 몰딩이기에…….”
최 과장이 말을 이었다.
“팀장님의 우려가 괜한 걱정은 아니죠?”
하나가 망가지면, 톱날 하나에 비할 정도의 손해가 아니질 않은가?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몰딩이 아니라, 숫제 금덩어리잖아!’
팀장이 말을 덧붙였다.
“그냥 금덩어리 하나 다룬다 생각하고 다뤄 달라는 말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애송이 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연장선이지만, 타카 혓바닥은 매일 한 번씩 점검하고, 뭉툭해져서 몰딩에 쓸데없는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이건 아주……. 몰딩에 흠집 가면 물리겠다는 경고……. 같잖아!’
이러니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허리를 곧추세운 차렷 자세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네!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어린 팀장이 말했다.
“일단은 생각나는 건 없네요. 최 과장님!”
“그럼 저도 나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네. 샘플 진행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전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 비울 테니, 무슨 일 생기면 전화 주세요.”
문을 닫고 나오며, 최 반장이 물었다.
“저 팀장, 뭐하던 사람이랍니까?”
최 과장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감추고 그럽니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최 과장이 말했다.
“반장님. 우리 팀장님 초짜라고 생각하셨죠?”
최 반장이 뜨끔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아까 뜨끔해 하시는 보니까 그러신 것 같던데요.”
“하하하.”
이리 정확하게 지적하는데, 영혼 없는 웃음만 흘릴 수밖에.
“그럴 만도 하죠. 나이가 어리시니까.”
진지한 목소리로 최 과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리다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코다치실 겁니다.”
“그러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 과장이 말을 이었다.
“아까 보셨지만, 우리는 생각도 안 하던 부분을 막 찍어냅니다.”
“하하하. 그렇더군요.”
최 반장 자신도 아까는 깜짝 놀라지 않았던가?
“특히나 현장 품질을 보는 눈은 저를 포함한 기사들보다 더 좋으실 겁니다.”
“에이. 설마요. 최 과장님보다…….”
최 과장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차, 참말로 하는 말인 거요?”
‘이런 베테랑이 진심으로 인정할 정도라고? 대체 정체가 뭐지? 외국에서 건축이라도 전공하고 온 건가? 그래도 너무 어리잖아!’
최 반장의 머리가 복잡했다.
“네. 팀장님은 지금 정말 자기 호텔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반장님도 그런 각오고 임해주십시오.”
최 반장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