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49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04)
“뭐땀시 불렀다요? 정수 성님.”
“손 반장. 네가 꼴찌다. 얼른 들어와라.”
작은 키에 땅땅하게 생긴 손 반장이 들어오면서 고개를 부르르 흔들면서 투덜거렸다.
“언능 말씀하쇼. 나 어여 가야 된께.”
영문을 모르는 몇몇 반장이 불만을 토로했다.
“뭐요? 지금 작업자들, 지시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요. 할 얘기 있으면 얼른 합시다.”
하지만 최 반장을 비롯한 경력 오래된 자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심각한 분위기에, 손 반장이 슬쩍 고개를 낮추며 물었다.
“무신 큰 문제라도 있습니까? 최 반장 성님?”
반장들과 눈빛을 나누던 최 반장이 말했다.
“어제…… 내가 이 현장, 육 개월 본다고 했던 말 기억하나?”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좋은 근무환경이 어디 있냐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기분 좋게 건배까지 하지 않았던가?
손 반장이 의아하게 물었다.
“언능 끝내불고 다른 현장에도 데불고 가 주신다고 했잖아유!”
“계획이 바뀌었다.”
“어떻게유?”
“현장 분위기 보면서, 처음 한 달간은 최대한 천천히 진행한다. 살얼음판 걷듯이.”
“그게 무슨 말이유?”
“팍팍 치고 나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분간 자중하라는 말이다.”
최 반장이 경력이 많은 반장들을 모았다.
“좀 모여 보게. 잠깐 대책 논의 좀 하자고.”
그리고는 침착하게 생긴 서른 중반의 남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박 반장! 뭐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
박 반장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형님! 잠시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의 물음에 잠시 갸웃하더니, 최 반장이 말했다.
“뭔가?”
박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저 팀장이라는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있습니까?”
최 반장이 미간을 모았다.
“팀장? 그건 왜?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데?”
워낙 기사들의 기세에 눌렸기 때문인지,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던데.”
“네.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이거든요.”
“어디서?”
“그게 잘…….”
박 반장은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최 반장이 어깨를 도닥였다.
“우리가 현장을 한두 군데 다니나? 사장 아들이나 조카, 뭐 그런 거 아닌가 싶던데?”
“네?”
예상치 못했던지, 박 반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생각을 해 봐라. 그 나이에…… 어떻게 현장을 지휘하냐? 빨라도 마흔 중반이 넘어야 현장 소장 달잖냐?”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어디선가 봤는데…….”
하지만 최 반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잖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 아들은 아닌 것 같으니까, 뭐 조카 정도겠지만.”
“좀 자세히 말씀을 해 보시죠?”
“생각을 해 보라고. 조카가 현재 건설에 데뷔는 해야 하는데, 딱히 실적 쌓아둔 게 없어.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직원들에게 보여 줘야 할 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어차피 나중에는 경영이나 하겠지만.”
확신하는 최 반장에게 물었다.
“그럼 실적 쌓기라 그겁니까?”
“그래. 그것도 실패하면 안 되는 중요한 거지.”
“아! 그래서 그런 악바리들을 불러 모은 거군요.”
최 반장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그렇지. 여기 모인 작업자들하고, 그리고 저 기사들. 실패하기가 쉽겠어?”
박 반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그게 더 어렵죠. 완전 베테랑들만 모아놓은 건데. 그래서 인건비 단가를 그렇게 쳐준 거구나. 군말 없이 일하라고.”
“이제 이해가 된 모양이군.”
박 반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어차피 이 현장 끝나고 나면, 우리가 그 팀장 볼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야. 현장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그 말에 박 반장은 수긍이 되었다.
“그렇겠군요.”
“그런 거야. 지금 중요한 건 팀장이 아니라, 현장 기사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느냐? 이거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그동안 젊은 친구들한테 상황 설명하고, 잘 좀 다독거려 줘.”
“네. 알겠습니다.”
***
‘밸 꼴리믄 현장 한 번 뒤집으믄 되는 것이제. 뭐 이리 심각하다냐?’
눈을 두리번거리던 손 반장이 박 반장에게 물었다.
“정수 성님! 거시기 큰 성님이 야그하는 게 뭔 말이유?”
“자네 2군 업체에 있다가 이쪽으로 호출되어 왔다고 했지?”
그 말에 손 반장이 티껍다는 듯 대꾸했다.
“정수 성! 나가 2군에 있었다고 무시하는 거요?”
“무시는. 하하. 다 같이 노가다 밥 먹는 처지에.”
“그라믄 고것이 뭔 상관이다요?”
박 반장이 남은 반장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기 서 있던 과장들, 모르는 사람이 또 있나?”
몇몇 반장들이 손을 들었다.
손 반장을 비롯하여 모두 2군 업체에서만 일을 못 해본, 군소업체 반장들이었다.
박 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
기다렸다는 듯이, 불만들이 튀어나왔다.
“그럼! 어떻게 저 인간들을 어떻게 몰라! 난 저번에 투산에서 일할 때 정 과장 저 인간! 으으……. 패대기칠 뻔했다고. 하도 열 받아서.”
“난 삼송 박 과장! 어휴……. 내가 그 현장에서 아주 그냥……. 내가 저 인간 얼굴을 두 번 다시 안 보고 싶었는데?”
모두 1군 업체들과 일해 본 반장들이었다.
손 반장이 그들에게 호통쳤다.
“성님들! 대체 뭐땀시 그란다요? 뜯는다는 엄포 땜시 그러는 거유?”
그걸 겁내냐는 호기로운 말에 박 반장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엄포가 아니니까 문제지.’
손 반장이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 참! 이런 배포로 무슨 일을 한다고. 현장 진행된 걸 뜯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거참!”
박 반장이 그의 무모함에 혀를 찼다.
“쯧쯧. 손 반장.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것처럼 보이냐?”
하지만 아직도 그는 억울한 듯 했다.
“현장에서 기사들하고 싸우는 거시야. 맨날 있는 일인디. 뭐 그딴 걸 가지고…….”
박 반장이 피식 웃었다.
‘눈에서 피눈물 뚝뚝 흘리면서 제가 세운 거 뜯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2군 업체에서는 품질을 따질 겨를이 없다.
빨리빨리 지어서 빌라를 분양해야 하니까, 그리고 분양 대금을 회수해서 다른 곳에 땅을 사고, 또 건물을 지어올려야 한다.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인 것이다.
‘이렇게 꼼꼼하게 따지는 것도, 울산 현장 이후로 간만이네.’
그리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저 팀장이라는 사람, 어디서 분명히 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야!’
“정수 성님! 지가 먼저 현장 분위기 함 험악허게 맹글어 봐유?”
“됐네. 이 친구야! 아서라. 여기 형님들이 실력이 안 돼서 저 기사들한테 꼼짝 못 하시겠냐?”
그 말에 손 반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참말로 이해가 안 되는구마이! 거시기, 나는 기사들이랑 술 한 잔 딱! 허고, 존데 델꼬 가서 떡 한 번 딱 쳐 주믄, 기사들이 사근사근 하던디!”
손바닥으로 주먹을 탁탁 치며, 히죽거렸다.
다른 반장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 반장, 너 이 새끼! 절대 그러지 마라. 내 손에 진짜로 디진다!”
“왜유? 그넘들 거시기는 부처님 반토막 이래유?”
설명해 무엇하랴?
돈 밝히는 놈은 여자 밝히고, 안 그런 놈은…….
그런 접대 했다가는, 오히려 더 가혹하게 당한다.
‘자기를 그런 정도로밖에 안 봤다는 게, 불쾌하다는 거지. 어디 한두 번 당해 봐?’
하지만 손 반장은 저들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쫄지 맙시다! 뜯긴 뭘 뜯어유. 남이 개고생해서 맹글어 논 거를, 우덜헌티 그라믄 이 장도리로 대갈빡을 콱 쪼사놀랑게.”
자신만만한 그를 박 반장이 피식 웃었다.
“손 반장, 내가 힘이 없어서 뜯었을 것 같아?”
“성님도 뜯었다고라?”
손 반장이 눈을 번쩍 떴다.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고수들은 이미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전해진다.
여기 있던 사람 중 몇 명은 가히 전설처럼 들리는 무용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기사들이 꼼짝을 못하는 반장들 말이다.
그가 알기로는 박 반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눈을 홉뜨며 물었다.
“정말이오? 성님?”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빠꼼인데, 현장 기사들도 혀를 내두른다고!’
그런 그가 스스로 뜯었다고?
박 반장이 쓸쓸하게 웃었다.
“그래. 내 생전 처음으로 내가 작업한 거 뜯어봤다. 첫 번째 줄 왼쪽 세 번째…….”
“그넘이 누군디유?”
“세산 건설 박 과장!”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증언들이 튀어나왔다.
“나도 타일 붙여놓은 거 다 망치로 깨부셔 봤지! 삼송 박 대리 때문에. 씨팔! 대충 넘어간다고, 누가 제 놈을 잡아가냐고!”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타일 반장이 말을 이었다.
“한 장 한 장 내 손으로 깨부수는데, 눈물이 나더라. 개 또라이 새끼! 그때는 망치로 패 죽이고 싶더만.”
손 과장이 제가 당한 듯, 방방 뛰었다.
“콱! 대굴빡을 쪼사 불지 그랬시유? 아니제. 그 비실이들, 한 주먹이믄…….”
박 반장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근거로?”
“근거는 무신…….”
“작업자가 실수한 건데! 무슨 근거로 따지냐고?”
“그려도 남이 고생해서 한 건디…….”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화살을 돌렸다.
“타일 성님은 왜 가만히 당하고 있었던 거유?”
타일 반장이 먼 산을 바라보며 답했다.
“나중에 보니까, 그치 말이 맞더라고. 쩝!”
반장 하나가 푸념했다.
“나 여기 온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한국이 그리워졌소! 젠장!”
결국, 손 반장도 짜증을 터뜨렸다.
하늘처럼 여기던 선배들이 이런 나약한 꿀을 보이니, 그도 억장이 무너졌던 모양이다.
“이려도 안 되불고, 저려도 안 되불믄, 걍 때려치고 나가믄 될 건 아녀?”
박 반장이 피식 웃었다.
“성님은 뭐시 그리 우습소?”
“자네. 해외로 공사 안 가봤지?”
“당연한 말을 왜 허요? 우덜같은 무지렁이가 꼬부랑 말을 어쩌케 한다고…….”
“여기까지 온 비행기 값이 얼만지 알아?”
“그걸 나가 워처게 아유? 기냥 태워주니께 타고 온 거제.
“쯧. 그냥 돈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해서 왔구만?”
“당연한 거 아니유.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나 보군?”
“나겉은 눔이 대 현재 건설허고 언제 연을 맺어 보겄소! 나헌티는 절체절명의 기회였으니께. 두말없이 잡은 거지라.”
“절호의 기회겠지.”
“어쨌거나! 나는 여그서 존재감을 어필허고, 현재 건설에 자를 딱 잡겄다! 허는 각오로 왔는디.”
그가 반장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이런 큰 회사에서 나헌티, 사기치지는 않을 거 아니유?”
그의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박 반장이 상황을 훤히 본 듯 물었다.
“계약서 제대로 안 봤겠네?”
“뭐. 현장에서 술 처묵고 사고 치지 마라. 그런 거지. 뭐 딴 거 있겠수?”
“쯧!”
“우덜같은 막장 인생이 뭐 있수. 일 잘허는디 건들지만 안으믄 별 일 없겄지만, 건들믄 콱! 망치로 쪼사불고, 징역 살믄 되는 것이제!”
손 반장에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이곳에 그의 엄포 정도에 겁먹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보다 현장 경험이 적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 반장이 피식 웃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투덜거릴 때가 말이야.’
손 반장 나름대로는 경력 있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지만, 그보다 베테랑들이 보기에는 그저 치기에 불과했으니.
박 반장이 흥분한 그를 달랬다.
“자네 팀 스무 명이지?”
“그런데요?”
뚱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 한국 돌아가려면, 최소 6,000만 원은 있어야 가능할 거야?”
손 반장이 펄쩍 뛰었다.
“나가 나 발로 가겄다는디, 거 무신 개소리다요?”
“쯧쯧. 제 돈으로 비행기 안 끊었다고, 얼만지도 안 봤구만.”
그가 답답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랑게 설명을 해 달랑께요!”
“비행기 값이 인당 150만 원이야. 편도로만.”
그럼 올 때 탄 비행기 값도 물어야 할 판이니, 박 반장의 계산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손 반장이 튀어나올 듯 커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믿을 수 있어?’라는 듯이.
“참말이여?”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이없는 웃음뿐이었다.
“그럼 거짓말이겠냐? 우리 올 때 피곤할까 봐서, 경유도 한 번만 하고 13시간 만에 왔잖아.”
“뭐땀시. 고로케 비싼 걸루다가?”
“조금 싸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30시간 넘게 걸린다고, 일부러 그걸로 한 거였어.”
“그라믄 싸게 하믄…….”
“그래도 140이야. 대신 하루는 완전히 공치지.”
“워매. 완전히 눈탱이 맞아부렀구만! 무신 뱅기 값이 글케 비싸다요?”
“이런데도 간다는 말이 나와?”
손 반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성님. 그라믄…….”
“뭐 또?”
“나가 소시적을 배를 탔구만이라.”
그의 말에 반장들,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와 그래 웃고 있다요?”
박 반장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하하. 구하기도 힘들겠지만, 최소 한 달은 넘게 걸릴 거야. 배가 매일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쯧쯧. 생각도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