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48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03)
주차장에 간이로 만들어진 단상 앞으로 기사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죽 줄지어 섰다.
그리고 그 뒤에 들어온 성훈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
“잘들 주무셨습니까?”
내 물음에 주차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잘 쉬었습니다!”
“식사는 잘들 하셨습니까?”
하나같이 화창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답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장관급이나 와야, 겨우 묵을 수 있는 호텔이었다.
1박에 1,000달러가 넘는…….
잠자리가 불편하다면 거짓말이고, 먹거리가 입에 맞지 않는다면, 입이 너무 저급한 거다.
나는 이로써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
최고의 잠자리와 식단, 그리고 최고의 일터를 제공했다. 물론 최고의 인건비는 물론이고!
앞에서 500명의 얼굴을 직시했다.
‘내가 생각하는 본전을 뽑게 안 해주는 사람은 죽었다고 복창해라.’
내 돈 거저먹을 거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지금 내 앞에는 백 명의 현장과장들이 내게 등을 보인 채, 50명씩 2열로 도열해 있다.
그 뒤로 500명의 반장과 작업자들이 각을 맞춰 줄지어 서 있다.
‘이게 내 현장의 명령 체계지.’
처음으로 내 뜻대로 만든 나만의 사단이라고.
나는 사령관!
내게 등을 보인 건축 기사들은 장교!
작업자들의 맨 앞줄에 늘어선 반장들은 부사관! 나머지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전투 사병들!
이들이 내 손발이 되어, 공사라는 전투를 해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낙오자도 많이 생기겠지.’
그 걱정을 곽 이사도 했었다.
***
어젯밤 식사 후에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사람은 민수가 아니라, 곽 이사였다.
내게 신신당부했었지.
“성훈 님. 처음인데, 평소에 굴리는 것 반만 굴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저도 그럴 겁니다. 급하게 할 필요도 없고, 공기에 쫓기게 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곽 이사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
“그럼요?”
“공사 품질을 말씀드리는 거죠. 작업자들의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요구는…….”
그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부했었지!
“그건 불가합니다. 작업량이 많아서 돈을 더 달라면 줄 수 있지만, 품질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훈 님 기준대로 나가면, 작업자 중에 남아날 사람이…….”
그럴 건 이미 예상했다고!
내 뜻과 어긋나자, 나도 모르게 말이 퉁명스레 나왔다.
“이사님! 제가 호굽니까? 돈 다 주고, 불량품을 받게?”
곽 이사의 볼살이 씰룩거렸다.
‘생각해서 해 주시는 말씀인 건 압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제가 세상의 모든 건설사와 차별을 두려고 하는 건, 속도 따위가 아닙니다.”
“이 김성훈이 지휘하는 KT팀이라면 돈에 상관없이 품질은 무조건 믿을 수 있다는, 완벽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겁니다.”
“하하하. 그야 저도…….”
“집을 새로 지을 때, 집주인이 몇 번이나 현장을 와 보는지 압니까?”
“그야…….”
제집을 짓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하루에도 수백 번 관심이 가고, 결국은 현장을 방문하고야 만다.
어떤 사람에게는 투자일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아파트 분양을 받아도, 수십 번은 다녀가는 게 사람입니다.”
곽 이사에게 물었다.
“건축 기사들이 가장 정신없을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아마 공사 마감…….”
“물론 그 말씀도 맞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준공 후, 입주가 시작되기 한 달 전입니다.”
“아!”
“그때 한 번만 자기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없지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지요.”
물론 공사가 급히 진행된 탓에, 완벽한 마감이 덜 된 채로 준공을 따내는 건설회사의 탓도 있지만, 다른 원인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자가 집주인에게는 보이거든!’
완벽한 집을 인수 하고 싶으니까!
“저는 그 사람들에게 완벽한 집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덜된 집에 와서 실망하고, 기사들에게 짜증 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지난 삶에서 진절머리 나게 겪었고, 수없이 머리를 숙였다.
가구는 전체 공정의 마지막이었고, 나는 가구 공정의 총괄담당자였으니까!
“하하하!”
이미 전의를 상실한 듯한 웃음이었다.
그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저는 제 기사들이 그런 부끄러운 일로 고개를 숙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말은 그런 의미가…….”
당황해하는 그에게 단언하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기사들이 당당하게 ‘이게 내가 만든 당신 집입니다!’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게 하고 싶습니다.”
이사급이 현장에서 입주자를 만날 경우가 얼마나 있었을까?
“물론 이사님 세대는 그렇지 않았죠.”
“확실히 그건…….”
그가 현장에서 뛰어다닐 당시는, 건설회사가 갑이었다.
집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집주인들이 고마워하던 시절 말이다.
“지금은 다릅니다. 기사가 직접 고객을 만나죠.”
고객층도 바뀌고, 건설 서비스의 흐름도 바뀌었다.
“하지만 건설사의 ‘빨리빨리’ 행태는 여전하죠. 자재와 공법이 조금 바뀌었을 뿐, 현장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리고는 고생한 기사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우죠!”
이 말에 곽 이사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입주자를 안내하려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안방 이불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그 누군가의 냄새 나는 흔적을…….
‘고작 서른 명의 건축 기사로 어떻게 1,000세대 이상을 관리하냐고?’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는데, 잘도 품질관리를 하겠다.
그의 잘못도 아니겠지만, 곽 이사에게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왜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넘기면서, 고객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건축가가 고작 그런 존재입니까?”
그도 반평생을 건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얼굴을 붉힌 채 대답했다.
“아니지요. 당연히!”
“어차피 처음 한 달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해하는 그에게 말했다.
“공사 안 할 각오하고 있다고요.”
“공사를 안 한다고요?”
“네. 처음 한 달은 적응 기간입니다. 이 현장에, 그리고 저에 대한 적응 기간!”
“그 말씀은?”
“끊임없이 뜯어내고, 하자 요소들을 잡아낼 겁니다.”
각오하고 있다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고작 한 달로 성훈 님 성에 차겠습니까?”
“되게 만들어야죠. 모두다!”
걱정하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도 시험 기간입니다. 과연 이 팀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까? 하는 시험이요.”
“알리 왕자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알리가 왜요? 이미 내 건데!”
내 당당한 말에 곽 이사가 항복을 선언했다.
“하하하. 제가 그걸 잊었군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공사가 끝나갈 때쯤이면, 품질로는 우리 팀을 따라올 회사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럴 겁니다. 공사에는 도가 튼 사람들을 작업자들에게 개인 교사로 붙이셨으니까요.”
곽 이사에게 확신했다.
“기사들 또한,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눈썰미를 가지게 될 겁니다.”
***
작업자들을 보며 스스로 맹세했다.
‘공사가 끝날 때, 당신들 몸값은 지금보다 더 올라 있을 겁니다. 이 까탈스러운 기사들이 만족할 수준이 되어 있을 테니까!’
서슬 퍼런 기사들의 눈빛에 앞줄의 반장들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난 그들이 왜 저러는지 알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건설판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사람들이거든!
여기 이 기사 중에, 작업자들에게 멱살 몇 번 안 잡혀본 사람이 있을까?
현장 한번 안 뜯어 본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
뜯으라는 말!
그 말이 과연 기사들은 하기 쉬운 말일까?
일하면서 가장 하기 싫은 말이 그 말일 텐데?
‘뜯으세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얼마나 큰 손해가 발생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기사들이다.
전 공정에 공수를 계산하고, 투입물량을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있거든. 그리고 시간에 따라 로스 되는 비용도 말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적게는 수천만 원, 혹은 수십억이 왔다 갔다 한다.
어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나도 매일 후회했었다고!
‘하루만 일찍 발견할걸! 일주일만 빨리 발견할걸! 현장을 한 번만 더 돌아볼걸!’
낡아빠진 워커 굽으로 내 머리통을 찍어버리고 싶다고!
하지만.
그 부담에 자신을 굽히면, 불량품을 만들어낸다.
‘그들도 안다고! 사람들이 자기 욕한다는 걸!’
욕먹을 각오하고 내지르는 것이다.
그 욕설은 금액이 크면 클수록 더하며, 상관의 폭언 또한 이겨내야 한다.
아마 우리나라 현장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기사가 하는 갈등이고, 결국은 실행한다.
‘왜? 그렇지 않으면……. 공사가 실패하고, 고객에게 실패작을 넘겨야 하니까!’
고객에게 부끄러우니까!
“길게 말 안 하겠습니다.”
이 말로 운을 뗀 성훈이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 다들 베테랑이십니다. 그런 만큼 풀질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자가 생기면, 여기 있는 기사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수정하십시오.”
지금 내 앞에는 백 명의 현장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뭐 이리 많으냐고 생각하겠지.’
기껏해야 80층밖에 안 되는데, 기사가 100명이냐고!
실제 공사는 30층을 진행하고, 그게 끝나면 또 30층을 공사하게 되니, 한 층당 적어도 3명의 기사가 달라붙는 셈이지.
‘이런데도 땜빵할 배짱이 있으면 해 보라고!’
그들 중에서는 이미 기사들을 알고 있는 반장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눈을 피하며 몸서리치는 것이 보였다.
다들 자기 현장에서는 ‘매의 눈’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절대 하자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실수로 놓친 것이 있다고 해도, 내가 발견할 테니까!
‘하자의 천라지망이지!’
“하자가 발견되면 무조건 뜯을 겁니다.”
대놓고 뜯겠다고 하자, 현장이 술렁거렸다.
“초반에 잡지 못한 하자가 나중에 얼마나 큰 골칫덩이가 되는지 아실 겁니다.”
“그걸 현장에서는 A/S라고 하지만, 그게 무슨 애프터서비스입니까? 애초에 하자인걸!”
“처음 발견했을 때도 공정상의 이유로, 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감춰왔던걸, 공사가 완료된 뒤에 뜯는다고? 그런 개소리를 믿으세요?”
수긍은 하지만, 그만큼 작업자인 자신들이 고생할 것을 알기에, 묵묵부답 아무도 말이 없었다.
“공사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서 A/S랍시고 몇 년이고 남아 있고 싶습니까? 무급으로?”
싸늘한 정적이 주차장에 내려앉았다.
맨 앞줄의 반장이 손을 들었다.
“내장팀 최 반장입니다.”
그가 반장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보였다.
“말씀하세요.”
“재시공으로 인해 손해는 누가 보상합니까?”
“그게 지시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라면, 지금 인건비에 포함된 겁니다.”
“그런…….”
“기사들의 말에만 잘 따르면, 재시공할 일 없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두 베테랑들입니다. 최 반장님 못지않은…….”
“하지만…….”
최 반장에게 물었다.
“다른 현장에서 이렇게 인건비 책정한 거 보셨습니까?”
“…….”
“처음이시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이 현장의 인건비만 터무니없이 높은 건지, 또 왜 귀책사유에 따라 시공팀이 책임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재시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공정의 피해 또한 귀책사유에 따라 보상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물리라는데!
“재시공은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인건비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겁니다.”
엉뚱한 놈의 실수로, 다른 공정에 피해가 가는 불공정한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고!
“더 질문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며 외쳤다.
“이상. 해산!”
그리고 백 명의 기사들이 동시에 복명복창했다.
“이상! 해산!”
백 개의 날이 선 목소리가 지하주차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최 반장이 현장으로 향하며, 급히 모임을 소집했다.
“비상사태야! 반장들 모두 모이라고 해!”
김 반장이 그의 말을 바로 옆으로 전했다.
“초비상사태야. 최 반장 방으로 다 모이라고.”
반장들이 은밀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