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47화
모든 게 완벽! 하나만 빼고…….(02)
공사를 시작하는 첫날!
어제 밤 한국에서 들어온 자재들이 모두 지하 주차장에 적재되어 있었다.
각 로트별로 차곡차곡 정리되었고, 그 옆에는 간이 작업대를 설치되었다.
반드시 현장에서 해야 할 작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작업들은 이곳에서 진행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인부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워매! 나 어제 추워 디지는 줄 알았시야!”
“그러게. 더워서 잠 못 잔다고, 마누라가 모시 저고리 싸줬는데, 에어컨이 얼마나 빵빵한지, 이불 똘똘 말고 잤구만!”
“호텔이 이런 데란 걸 첨 알았어. 역시 돈은 있구 봐야 하는 거구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얼굴들이니, 서먹할 수도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친근한 모습들이었다.
인사부장의 치밀한 안배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손꼽아주는 시공 팀만 고른,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진행된 스카우트!
얼추 비슷한 수준의 실력이기에, 마주치는 현장 또한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으리라.
어제 비행기에서는 서먹했지만, 함께 자재를 받아 적재하면서, 그리고 같은 객실에 뒹굴면서 서로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뷔페에서 식사를 할 때 즈음에는 어느 누구보다 막역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 현장에 있으면, 오늘 아침 같은 그런 밥을 매일 먹는다는 말 아니여?”
“나는 여기 어디 함바가 있을 줄 알았는데, 호텔 뷔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일하고 그…… 식당 들어갈 때는 옷에 먼지 한 톨도 없이 털고 들어가라고. 그…… 높은 사람들 식사하러 오셨는데,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이여. 알아들었어? 크크크.”
“내 말이! 난 우리 마누라가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디, 고것이 아니더만. 하하하.”
현장 따라 각지를 떠도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뭐가 있으랴!
맛있는 음식 먹고, 따스하게 자는 것이지!
객실이 따스하지는 않지만, 음식에서는 만족스러웠으리라.
한 작업자가 말했다.
“이 현장은 단연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현장이여!”
“그라제! 돈도 따블로 주잖여! 이런 곳이 어디 있겄어!”
앞에서 줄을 맞추던 김 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저 인간들,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옆에 서 있던 최 반장이 물었다.
“왜 그래. 김 반장? 얼굴이 어둡네?”
그는 주변을 스윽 훑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아침에 밥 먹을 때, 태림 김 과장 봤어?”
“누구? 김 과장? 그 깐깐하기로 소문난 인간?”
“그래! 그 깐깐돌이 김 과장!”
혹여 누가 들을까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진짜로? 작년에 정가네 식구들, 그 인간한테 걸려서 짐 싸서 쫓겨났다면서?”
“소문 다 났나 보네. 내가 그때 그 현장에 있었잖아.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그럼?”
“태림 다른 현장에도 정가네 식구들 들어가 있었거든?”
“작년에 꽤 잘 나갔잖아. 그 친구, 전 현장에 쫙 깔았었지, 아마?”
“거기까지 몽땅 쳐냈잖아.”
최 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그 깐깐돌이가 본사에 품의서 올려 가지고, 아예 못 들어오게 막아버렸잖아.”
“그럼 앞으로도?”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림은 무조건 못 들어가.”
“쯧쯧. 나도 정가네 그놈들 좋게는 안 보지만, 그건 좀 심했네. 밥줄은 끊지 말아야지.”
“정가가 어리석은 짓을 했지.”
“뭔 짓을 했는데?”
손짓하며 최 반장을 불렀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돈도 먹는 놈한테 먹여야지.”
“김 과장한테 돈 먹였대?”
“응.”
“먹을 인간이 아닌데?”
“당연하지. 김 과장이 안 먹으니까, 소장한테 먹인 거 아니겠냐?”
“크크. 딴에는 머리 썼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딱 그 짝이었지.”
“왜? 소장한테 먹였다면서?”
김 반장이 좌우를 보며, 고개를 더 숙였다.
“그거 때문에 김 과장이 현장 소장이랑 한판 했잖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김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빡 돈 거지! 돈 먹인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현장에 하자가 그대로였거든.”
“그래서?”
누가 그랬던가?
제일 재밌는 게,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최 반장이 얼른 말하라며 재촉했다.
“그 성격에 가만히 있겠어? 김 과장이 본사에 꼰질러 가지고, 현장 발칵 뒤집혔지.”
“볼만했겠네.”
상황이 머리에 훤히 그려지는 모양인지, 최 반장의 입술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현장 소장으로 밀어준다고 소장이 푸시하고 있었거든.”
“그렇지. 일은 잘하잖아. 깐깐해서 그렇지.”
“그거 다 쫑났잖아. 자네 같으면 밀어주겠어?”
“미쳤어? 그걸 밀어주게? 에휴! 지 무덤, 지가 팠네. 팠어.”
“이제 승진은 영원히 안녕! 물 건너간 거지. 그러고도 김 과장, 그 또라이가 그걸로도 분이 안 풀렸던지, 본사에 불량업체 퇴출 품의를 올렸잖아. 그걸로 구매부 또 한 번 뒤집히고!”
어이없이 웃던 최 반장이 그 말에 배를 움켜쥐었다.
“하이고. 그 미친놈! 크크큭!”
“죽은 놈, 확인사살까지 한 거지.”
최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언제부터인가 정가네가 안 보인다 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구만?”
“독한 놈 잘못 건드렸다가, 작살난 거지 뭐.”
“정가는 지금 뭐 한 대? 소식 못 들었는데.”
“지금 지방에 작은 건설 업체들 일 하고 다닌다는 말은 들었는데, 예전 같겠어? 지금은 직원이 스무 명도 안 된다고 하더구만.”
“그럴 만도 하지. 태림이라는 그 대형 건설사를 놓쳤는데, 그때만 해도 직원 200명이라면서, 모가지 힘 딱 주고 다녔는데……. 쯧쯧.”
“하여간 그 김 과장이 여기 있다고!”
가끔가다 그런 정신병자가 있는 현장이 있다.
잘못 건드리면, 본전이 아니라 밑천까지 탈탈 털리는…….
긴장할 줄 알았던 최 반장이 작게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휴. 고작 그것 때문에 그러나?”
“고작이라니. 자네는 그 친구를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거야!”
최 반장이 피식 웃자, 김 반장이 한숨 쉬며 탄식했다.
“그래. 겪어봐라. 고작이라는 말이 쏙 들어갈 거다.”
“훗. 난 아침에 최 과장 봤다.”
“누구?”
“현재 건설 최 과장.”
의심스런 눈초리로 물었다.
“엉? 월성 현장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에이, 아냐!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고!”
농담하지 말라는 투의 그에게 최 반장이 정색하며 말했다.
“뭔 소리 하고 있어? 내기할까? 내가 아침에 밥 먹다가 눈 마주치는 바람에 기겁을 했구만!”
“진짜야?”
“어허이! 진짜라니까 그러네.”
긴장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 반장이 물었다.
“자네는 최 과장이라면 질색을 하대? 왜 그래?”
“재작년에 내가 태안 현장 들어간 거 알지?”
“그래. 고생 좀 했다면서?”
그는 그때 생각도 하기 싫은 듯, 머리를 털었다.
“고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자다가도 그 일만 생각하면 뒷골이 버쩍 선다.”
“왜?”
“내가 거기서 아파트 드레스룸 가벽 공사를 천 세대 맡았었거든.”
“그거 자네 전문이잖아.”
“근데 그 공사 들어간 업체가 실수한 건지, 단가 아낀다고 일부러 그랬던 건지, 쩝.”
“뭐가?”
“C-찬넬 두께가 다르더라고.”
“아!”
“우리야, 뭐 아나? 공사하라면 하는 거지! 나중에사 알게 됐지만 어쩌겠어? 반이나 끝난 공사 다시 해? 다음 공사도 밀려 있는데?”
“크. 고민 좀 했겠구만.”
“양심에 찔려도 어쩔 수 있나? 업체 사장한테 넌지시 말했더니, 그러더구만. 어차피 도배하면 티도 안 난다고.”
“쯧쯧. 단가 아끼려고 꼼수 썼구만.”
최 반장이 말없이 수긍했다.
“그렇지. 꼴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있나?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우리 철수하기 전날, 최 과장이 전출을 왔었지.”
“그런데? 문제 될 거 없잖아. 철수하면 끝난 건데?”
“그랬으면 좋게? 그게 전출 온 첫날, 공사장 한번 둘러보고 오더니, 뜬금없이 가벽 공사 한 걸 뜯어보라는 거야. 난리 났지. 소장하고 싸우고.”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김 반장이 실소를 터뜨렸다.
“허 참! 미친놈이네!”
“그래! 좀 하자가 있다고 쳐도, 다 끝난 공사를 엎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도배까지 끝났는데?”
“소장이 허락 안 했을 텐데.”
“당연하지! 소장이 방방 뛰었지. ‘네가 공기 늘어나면 책임질 거냐?’부터 해서 개새끼, 소새끼, 내가 평생 들을 욕을 거기서 다 들었다.”
“그런데도 했다고?”
“그게 참! 어이가 없었다고.”
“뭐가?”
“결국은 뜯었다는 거 아닌가?”
“허. 어떻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현장의 최고 책임자는 소장!
소장이 하지 말라면 못하는 거다.
군대보다 더 엄격한 군기가 건축 현장 군기가 아니던가?
“최 과장이 사람들 끌고 현장으로 가더라고.”
“그래서?”
“현장 드레스룸 3단 선반 앞에 서더니 묻더라고. ‘저 선반 하나에 30키로씩 버티는 건 맞지요?’ 그러고는 가타부타 답도 듣지 않고, 턱 하니 매달려 버리대.”
“허! 그 덩치가? 90킬로 넘지 않나?”
“그때는 더 뚱뚱했어! 0.1톤이었지. 버티겠어?”
김 반장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버텼으면 자네가 이런 말 안 하겠지.”
“그래. 말 그대로 와장창 무너지더라고. 그렇게 벽이 통째로 뜯어지는 건, 내 살다 살다 처음 봤어.”
그때를 회상하듯, 어느새 최 반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뜯겨진 벽에서 C-찬넬을 뜯어오더니, 도면하고 비교해 보라고 하대.”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누가 무슨 말을 해? 다 꿀 먹은 벙어리였지. 3.2t로 들어가야 할 게 1.6t로 들어갔는데. 소장도 어안이 벙벙해가지고……. 크크. 그걸 봤어야 하는 건데.”
“허!”
탄성을 내지르는 것 밖에 김 반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으랴?
“바로 업체 사장을 호출하더라고.”
“음…….”
“사장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뭘 어떡해? 빌어야지.”
“그래. 잘못을 했으면 빌어야지.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무릎 꿇고 싹싹 빌더라.”
그 뒤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김 반장이 선수를 쳤다.
“통할 리가 있나? 그 철면피한테!”
당해 보면 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지.
무릎 꿇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최 반장이 말했다.
“얼마나 급했던지, 현장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봉투를 내밀더라. 나중에 알아보니, 이억 넣었었다고 하더군.”
“이, 이억? 와! 대단하네.”
말만 들어도, 김 반장의 마음이 흔들렸다.
“사장이 애걸복걸하더라고. ‘세상천지에, 그렇게 선반에 매달릴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런데 씨알이나 먹히냐? 그 인간, 봉투는 확인도 안 하고 쓱 되밀더니 한마디 하더라.”
“뭐라고?”
“사장님. 딴 거 안 바랍니다. 도면대로 해놓으소!”
“허어. 천 세대를?”
저도 모르게 김 반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장이 엉엉 울면서 빌더라고.”
이제껏 호응해온 김 반장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생각을 해 보라고, 천 세대야, 천 세대!’
자신이 그 사장의 상황이 된다고 생각하자, 등으로 소름이 쫙 끼쳤다.
저승사자가 따로 있을까?
‘그게 저승사자지.’
경악하는 그를 보며 최 반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하고 현장으로 나가더라.”
“뭐라고? 화라도 내던가?”
“차라리 그랬으면 인간처럼 보이지. ‘저 일 보러 나갑니다. 오늘부터 해체반 들이세요.’ 이 말.”
“크. 피도 눈물도 없구만.”
“원망해서 뭘 해? 처음부터 속이려고 했던 사장 잘못이지.”
긴 이야기의 끝에 긴장감이 풀린 김 반장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휴!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때가 기억나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괜한 트집 잡는 것도 아니고, 맞는 소리 하는데 어쩌겠어? 사정해도 안 되고, 돈도 안 통하는데.”
씁쓸하니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나 그거 뜯고 다시 한다고, 내 평생 처음으로 다음 현장 빵꾸냈잖아.”
“얼마나 걸렸길래?”
“그 현장, 석 달 후에 나왔다.”
“공수도 많이 들었겠네?”
걱정하는 김 반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체비, 자재비 빼고, 우리 공사만 1,000공수 더 들어갔다.”
“회사 망했겠네?”
최 반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랴?
동정할 것도 없다.
자신의 손으로 제 배를 찔렀는데!
하지만 궁금증은 남았다.
“햐!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대? 난 도저히 상상이 안 가네.”
그 말에 최 반장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나도 궁금해서 나중에 술 한잔 하면서 물어봤지. 그거 어떻게 알았냐고!”
최 반장의 입에 귀를 바짝 대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대?”
“현장도 둘러볼 겸 돌아다니는데, 현장 구석에 쪼매난 C-찬넬 쪼가리 하나가 굴러다니더란다.”
“그런데?”
“그거 쓸 곳이 가벽 공사밖에 없더라는 거지. 그런데 규격보다 얇았던 게 문제지.”
김 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그거 하나 때문에 가벽 전체를 뜯었다고!”
“그렇다니까. 오히려 ‘그게 아니면, 자기가 귀신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겠냐고?’ 반문하던데? 그 현장에 계속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처음 온 현장에서 바로 그날! 현장을 뜯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허허허. 참. 귀신이 따로 없네. 그래서 자네가 최 과장을…….”
최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꼼수 쓰는 놈 박살 내는 거 보니까, 통쾌하기는 하더라만, 자네 같으면 그런 사람하고 일하고 싶어?”
김 반장이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시, 싫어. 차라리 귀신하고 일을 하지. 그런…….”
현장 기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최 반장이 다급히 말했다.
“어이. 줄이나 마저 세우자고.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