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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44화 (344/427)

건축의 신 344화

네고(02)

회장이 물었다.

“봉준아. 성훈이 글마 어떻트노? 다루기 쉽지 않제?”

사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꿰뚫듯이 다 알고 있으리라.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유. 말도 마십시오. 진땀 뺐습니다.”

회장이 은근한 눈으로 물었다.

“니가 다루기 힘들믄, 내한테 넘기지 그라노?”

그의 의중을 사장이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께서 쓰시면, 더 다양한 방면으로 써먹으시려는 거겠지요? 하지만 쉽지 않으실 겁니다.’

자신이 아는 성훈은 건축이 아닌 다른 곳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는 놈이었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더 높은 직위를 준다고 해도 흔들릴 놈이 아니다.

그 대상이 설령 왕회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

‘아버지. 우리가 놈을 찍은 게 아니라, 놈이 우리를 찍은 거란 말입니다.’

엉뚱한 걸 시키면, 당장이라도 걷어차 버리고 다른 회사로 갈 놈이었다.

설령 왕회장에게 녀석을 회유할 다른 수법이 있다고 해도, 사장에게는 손해였다.

성훈이 회장에게 넘어가는 순간, 아직 레벨 확인도 못 한 히든카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사장이 느물거리며 대꾸했다.

“아버지. 아직 손에 익지 않았을 뿐입니다.”

회장이 콧방귀를 꼈다.

“흥. 빼앗기기는 싫어가지고! 쯧.”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내 첨부터 말 안하드나? 느그 형제들 하고는 태생부터 다르다꼬! 어물쩡하이 뎀빘다가는 본전은커녕, 느그 똥 묻은 빤스까지 탈탈 털릴끼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녀석만 특별 관리하는 중입니다.”

특별 관리라고 해 봐야, 일절 간섭하지 않고 건드리지 않는 거였지만!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기 차라리 낫다. 어설프게 건드리지 말고. 지멋대로 하는 거 가만히 지키 봐라. 쬐매만 실수해도 팔다리 날아가는 명검이라 카이!”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건설은 항상 지키 보는 거 알제?”

회장의 사업 전체를 통틀어, 주춧돌이 되었던 것이 바로 건설 사업이었다.

그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마, 그라믄 됐다.”

문이 열리고 왕비서가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회의시간 다 됐습니다.”

회장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언능 일어나자. 그 비싼 놈들, 탱자탱자 놀릴 수는 없제!”

***

왕회장의 등장으로 회의장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작은 체구에 낡은 양복의 회장이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이사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묵직했다.

부사장이 보고에 회장이 물었다.

“오호라. 그래서 올해 첫 일거리를 벌써 따왔다고?”

“네!”

“그거는 알고 있고. 느그는 한 기 뭐 있노?”

부사장이 고개를 모로 돌렸다.

회장이 올 때부터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않았던가?

“그게 아직은…….”

마뜩치 않는 표정으로 회장이 말했다.

“아직?”

회의장의 모든 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느그. 작년까지 놀았나?”

무슨 대꾸할 말이 있으랴!

“올해 일은 올해 땡 하믄, 시작하는 기가?”

회장의 훈계가 이어졌다.

“작년에 똑바로 안 했으이, 이따구 결과가 나오는 거 아이가? 신입 하나보다 못한 놈들한테, 내가 월급 주고 일 시키야 하는 기가? 으잉!”

물 한 잔을 들이킨 회장이 말을 이었다.

“성훈이 글마가 따온 일이 얼마짜라라꼬?”

“2억 1천 불입니다.”

“작년 해외 수주액은?”

“2조 1천억이니까, 달러로 14억 불이었습니다.”

“고 쥐방울만한 놈이 작년 해외 수주액의 칠분지 일을 넘게 따온 거, 맞제?”

“네. 맞습니다.”

쾅!

회의 탁자가 부르르 떨렸다.

“느그가 밥 처묵고 하는 일이 뭐꼬?”

“사장! 니 야들 월급 안 줐나?”

사장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줬습니다.”

“머 할라꼬 주노? 이런 도둑놈들한테!”

화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기 아이믄, 사장 니가 무능한 기네?”

고개를 푹 숙인 이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느그 사장이 무능해서 그런 기다. 그쟈?”

이사들의 얼굴이 벌게졌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겠건만!

“사장, 딴 놈으로 바까주까? 으잉! 그라믄 열심히 일 할꺼가?”

이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이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한바탕 호통으로 마음이 풀린 회장이 말했다.

“권 비서. 니 나가가 성훈이 좀 불러 온나. 일마들도 어떻게 일을 따왔는지, 좀 배아야 될 꺼 아이가? 으이그 문디손들! 내가 이런 것들을…….”

옆에 서 있던 권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익!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니까요!”

“지금 회의 중인데, 어딜 들어가?”

호통 소리도 들려왔다.

회장이 말했다.

“권 비서. 와 이리 시끄럽노?”

문을 살짝 열어 확인한 왕비서가 말했다.

“성훈 군이 왔습니다. 회장님.”

“설레발이 치지 말고 들어오라 케라!”

문이 활짝 열렸다.

거기에는 회장의 수행원들을 쇠고랑처럼 질질 끌고 들어오는 성훈이 보였다.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쯧쯧. 힘 쪼매 쓴다캐가 붙이놨디만, 저 여리여리한 놈 하나를 몬이기가. 저기 뭐꼬! 쯧!”

회장이 손사래 쳤다.

“느그는 나가 있어라. 성훈이는 들어오고.”

세 명의 수행원이 얼굴을 붉혔지만, 이마의 땀을 닦으며 뒤로 물러났다.

저린 손목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말이다.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고, 회장이 물었다.

“안 그래도 니 불러가 뭐 쪼매 물어볼라 캤는데, 니는 뭐 그리 급해가 여까지 쳐들어 왔노?”

성훈이 회의장을 둘러보고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인사는 됐고, 용건이나 말해 보그라.”

“그냥 뭐 좀 여쭤보려고 왔는데요?”

“뭐? 물어보러? 내가 보기에는 한 판 뜰라고 온 것 같은데?”

“따지긴요. 그냥…… 물어보러 왔다니까요.”

속내가 너무 보인 것 같아, 이사들 쪽으로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늘 분위기 영 이상하네. 이 정도면 누가 호통을 쳐도, 쳐야 하는데?’

자신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웬만하면 이사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지금의 사안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흥! 네고 좋아하시네? 얼마나 하청업체들을 졸라 죽이려고!’

이미 한바탕 할 각오를 하고 왔다.

‘최 이사든, 나발이든 덤벼!’

그런 성훈의 각오가 눈으로 새어 나왔다.

‘어떤 놈이 맘대로 네고 했는지 보자. 작살을 내주지!’

하지만 이사들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눈을 피하기 바빴다.

‘이거 오늘 분위기 왜 이래? 맨날 이빨 들이대던 최 이사도 없고!’

회장에게 말했다.

“제가 들은 견적가랑 달라서, 어떻게 된 건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방금까지 주먹질도 마다치 않을 눈빛으로 덤비더니, 뻔뻔스럽게 여쭤 볼 게 있단다.

원래라면 소란을 일으켰으니 호통을 쳐야 마땅하건만, 이쁜 놈은 무슨 짓을 해도 이쁜 법이다.

웃음을 참느라, 회장이 눈주름이 꿈틀거렸다.

“그래!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따지러 온 거냐?”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요. 한 삼천만 정도…….”

“달러?”

“네.”

회장의 좁아진 눈매가 사장에게 향했다.

“삼천만 불이나 차이가 난다고?”

어제 급히 처리된 일이니, 벌써 보고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삼천만 불이 어디 갔냐고 묻는 것이리라.

사장이 말했다.

“리야드 측에서 네고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고를 해 줬다? 삼천만 불이나?”

회장의 매서운 눈초리가 ‘450억 원이나 네고를 하고 남는 게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사장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견적서를 넘겼다.

“순익 10%는 고수했습니다. 순익 2,137만 달러입니다.”

견적서에 순익의 금액을 보자, 회장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흐음. 이 정도면 괜찮네.”

회장이 웃으며 성훈에게 물었다.

“우리 성훈이. 큰일 했네. 그런데 문제가 뭐꼬?”

성훈이 물었다

“네고를 왜 한 겁니까?”

눈빛을 태우며 말을 이었다.

“혹시 자체 네고 한 겁니까?”

그렇다고 하기만 해 봐!

사장이 대답했다.

“리야드 측에서 네고 요청이 왔네.”

“그래요?”

섣부른 추측이었다는 생각이 얼굴이 붉어졌다.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자체 네고는 아니라는 거네요.”

사장이 피식 웃었다.

“우리라고 이익을 줄이고 싶겠어? 더 챙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 안 그래?”

자체 네고가 아닌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네고의 파장이 외주업체까지 미친다면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고!’

사장이 물었다.

“자네가 왜 이렇게 왔는지 맞춰볼까?”

대답 없이 듣고 있으니,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네고의 영향이 장인들과 외주업체에 미칠까 봐서 온 거지? 맞지?”

사장은 이런 일을 예상했었던 모양이다.

“크으! 봐! 내가 이럴 거라고 했지. 부사장!”

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번 네고를 하면서 외주업체에서 보내온 견적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네.”

성훈의 눈이 매서워졌다.

“진짭니까?”

곽 이사도 그의 말에 호응했다.

“진짜라네. 성훈 군. 전혀 외주업체나 장인들의 인건비에서는 건드리지 않았어.”

성훈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말만 듣고 믿을까 보냐?’

돈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종이에 적힌 숫자로 말한다.

다급히 서류 더미를 뒤지던 곽 이사가 견적서를 내밀었다.

“성훈 군. 정말일세. 이것 봐.”

견적서를 받아 들고 죽 훑었다.

곽 이사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또르르 흘렀다.

잠시 후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럼 나머지 부담 분은 현재에서 지겠다는 말이네요.”

사장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그게 자네가 원하는 바였지!”

견적서를 흔들며 물었다.

“이거! 이대로 지킬 수 있는 겁니까?”

그만큼의 손해 감수와 더불어 외주업체에 대한 견적 보호도 지킬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나중에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외주업체에 네고를 강요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한두 번 당해 봤나!’

사장은 미소가 어린 채, 눈썹을 으쓱하며 말했다.

“뭐. 외주업체에서 몇 푼 뜯자고, 일을 날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 자네가 지금처럼 난리 칠 거 눈에 뻔히 보이고.”

민망했던지, 성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난리는요. 그냥 좀 궁금해서 온 건데요.”

“훗! 그래? 이제 됐나?”

“제가 성급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네고 요청은 리야드 측에서 온 게 확실한 거죠?”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확실하네. 그쪽 지배인이 자기는 이억 불대라는 말밖에 전달받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런 것치고는 에누리까지 확실히 챙기셨네요?”

견적서의 네고된 금액이 20,990만 달러였다.

부사장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이억 불대라는 건 확실하지. 더 줄일 이유도 없고. 덕분에 지배인도 별말 없이 오케이 하더군.”

“계약서는 이미 그쪽으로 넘어갔나요?”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에 보냈으니, 오늘쯤 알리 왕자의 결재가 떨어졌겠지. 사장님께서 자네 요구를 맞추시느라, 많은 걸 양보하셨다는 걸 기억하게.”

***

진짜로 사달을 낼 각오로 들어 왔었다.

자신들의 백 원을 위해, 백 명의 십 원을 탐내는 거머리라면, 같이 일해 봤자, 내 몸만 피곤하고, 건축가로서의 이름에 먹칠을 할 뿐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들은 그런 욕심이 없어 보였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이들은 내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주고 있다고!

‘아! 괜히 흥분은 해서. 이거 미안하잖아.’

그리고 신세를 지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마음의 빚은 져 봤자, 득 되는 게 없지!’

게다가 현재 건설 사장에게 신세 지는 거다.

‘나중에 거슬릴 거야. 바로 털어버리지 뭐!’

이 건으로 손해를 봤다면, 만회해주면 될 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게 가능했다.

부사장의 말에, 툭 던지듯 대꾸했다.

“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양보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감히 무례하게!’

부사장의 미간에도 주름이 생겼다.

호의를 호의로 받지 않는다 생각이 드니, 저런 거겠지.

“굳이 양보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되묻는 그에게서 사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 자리에서 이 계약 건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계약서는 넘겼는데, 무슨 말이야?”

“다 같이 고생하는데, 현재 건설만 손해 봐서 쓰겠어요?”

사장이 영문을 모르고 부사장과 눈을 맞췄지만, 그들이 무얼 예상할 수 있을까?

곽 이사 앞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이사님. 전화 한 통만 쓸게요.”

곽 이사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어디에 전화하려고 그러나?”

“네? 아! 알리하고 좀 통화하려고요.”

“아! 알리……. 엉? 알리 왕세자?”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네. 급하게 오느라, 휴대폰을 놓고 왔거든요.”

회장의 턱짓에 곽 이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 여기 앉아서 하게나.”

“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데요?”

“전화가 길어질 수도 있지 않나? 얼른 앉게.”

곽 이사가 나를 강제로 의자에 앉혔다.

***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전화 한 통 하는데 왜 이래?’

의아하게 회의장을 둘러보는데, 사장이 물었다.

“성훈 군. 알리 왕세자와 직통으로 통화할 정도로 친한 줄은 몰랐네.”

“뭐! 그냥…… 안부 물을 정도는 돼요.”

성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모두 2주 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그때도 집사가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그 전날 알리 왕자와 직접 통화했다고 말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하는 것인가?

사장이 힐끗 곽 이사에게 눈짓했다.

곽 이사가 작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성훈에게 말했다.

“혹시 우리도 들어도 되겠나?”

성훈이 곽 이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사님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분들도 아랍어 다 할 줄 아세요?”

“아차! 아니지. 저번에 견적 때문에 좀 골치 아픈 일들이 있어서 말이지.”

“그런 일이 있었어요?”

곽 이사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있었다네. 그러니…….”

“…….”

곽 이사가 애절한 눈으로 힘겹게 말을 맺었다.

“영어로 부탁하네.”

“그러죠. 뭐. 저도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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