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43화
네고(01)
보름이 지났다.
“어서 오세요. 이사님.”
“네. 헉헉. 방금 확인해 보고 오는 길입니다.”
‘지금쯤 견적 나올 때, 안 됐어요?’라는 말에, KT 팀으로 총알같이 달려온 곽 이사였다.
KT란, ‘Korea Tradition’의 줄임말이었다.
너무 단순하다고 민수는 투덜거렸지만, 뭐 하러 골치 아프게 프로젝트명을 고민하나?
얼마나 좋아?
한눈에 뭐하는 팀인지 알 수 있잖아!
단순 명료, 그리고 직관적이다.
하여간 나 같은 말단이 회사 대외비인 견적을 알려면 얼마나 많은 절차를 거처야 하던가?
곽 이사는 과정을 소거한 결과만 가지고 왔다.
‘이런 건 참 편하네.’
그에게 물잔을 권했다.
“그냥 전화로 말씀해 주시면 되는데…….”
“그럴 수야 있나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에게 눈치를 주며 물었다.
“그래서! 얼마 정도 나왔던가요?”
“대략 2억 4천 불 정도 나왔습니다.”
그는 <대외비>라고 찍힌 서류를 내밀었다.
쭈욱 훑어 보고는 그에게 내밀었다.
“네. 이 정도면 됐어요. 약간 초과하긴 했지만, 그런 걸로 뭐라 할 사람은 아니니까.”
곽 이사는 염려가 되는 듯 했다.
“저번에 집사님과 통화할 때, 이억 불 정도로 얘기했었는데, 20%나 초과했는데 괜찮을까요?”
“걱정 마세요. 집사 아저씨가 제 맘대로 하고 했다면서요?”
“그래도…….”
그의 걱정을 일축했다.
“신경 쓰지 마시래도 그러시네. 가서 일 보세요.”
곽 이사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어르신도 일 보십시오.”
곽 이사의 인사에 대목장이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곽 이사님도 수고하시오.”
“네. 그럼…….”
대목장이 물었다.
“성훈이, 너! 이사님같이 높은 분을 보고 오라 가라 해도 되는 거냐?
그는 내 행동이 탐탁지 않은 듯, 미간을 좁혔다.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에이. 제가 언제 오라고 했어요? 이사님이 잘 되어 가는지 확인하러 온 김에 이야기해 준 건데요.”
하지만 그는 혀를 찼다.
“쯧쯧. 그 회사의 녹을 먹으면 몸 바쳐 충성해야 하거늘, 어찌 상관을 수하 다루듯이 하느냐?”
“요즘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여기가 관아도 아니잖아요. 요즘은 그런 거 안 따집니다. 대통령도 국민한테 고개를 숙이는데.”
“쩝. 그런 거냐? 하여간 대기업이라서 그런지, 되게 한가한가 보다. 이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너 같은 말단한테 보고하러 올 시간도 있고.”
“할아버지!”
민수의 만류에 그가 투덜거렸다.
“누가 그렇다더냐?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지.”
‘어르신! 예리하십니다.’
하지만 그에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설마요? 아니에요.”
민수도 옆에서 피식 웃으며 거들었다.
“저 이사님은 성훈 형한테 더 잘해야 돼요. 할아버지. 이건 어떻게 할까요?”
지금 우리는 내가 디자인했던 것을 취합에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천 개 정도의 객실을 좀 더 다양한 콘셉트로 만들기 위해서였고, 최종적으로는 알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압둘의 호텔을 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될 걸!’
투덜대던 대목장의 관심은 어느새 모형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대한 다양하게 만들어야 해.’
새로움만으로 승부할 수는 없다.
다양하지 않으면 금방 질리게 된다.
계획이 하나씩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었다.
최상급 장인들의 손에서.
***
“참! 그리고 리야드 쪽에서 네고를 요구했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 거 참! 언제는 견적 내는 대로 다 해줄 것처럼 굴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네.”
“자기들은 이억 불대라는 말밖에는 들은 게 없답니다.”
“흠. 그래?”
“또 통화를 해 보시겠습니까?”
“됐어.”
사장이 손사래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어디야.”
사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억 대라……. 그럼 이억 천 불이 약간 안 되게 맞춰 봐! 될 거 같아?”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건은 맞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우리 순익이 얼마나 돼?
“대략 그래도 이천 백억 불은 확보됩니다. 성훈 군의 10%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네고를 하고도, 그만큼 남는다는 건가?”
“사실 그만큼 남기는 것도 대단한 거지요.”
“그 녀석이 더 대단하지. 큭.”
“그렇죠. 그만큼 성훈 군이 가져가니까요.”
부사장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약속이니까, 누가 이런 일을 가지고 올 줄 알았나?”
처음에는 귀여운 조카 용돈 준다는 마음으로 했던 약속이었다.
단지 그 용돈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컸을 뿐.
배 아프기는 사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티를 내지 않을 뿐.
부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덩어리가 큽니다. 보통 인물은 아니죠.”
“인정이 빠르군. 자네는.”
“그게 제가 아직도 여기 있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사람 참!”
“애초에 우리 계획대로 일억 불에 했다면, 이만큼 남기기 어려웠을 겁니다. 단일 수주 건으로 이 정도면 열 손가락 안에 충분히 꼽을 만한 순익입니다.”
부사장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가져올지, 얼마나 클지 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괴물 같은 놈.”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장이 갑자기 떠오른 듯 말했다.
“참! 거기서 외주업체랑 장인들 인건비 건드리면 그놈 난리치는 거 알지?”
부사장 자신이 회의를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때의 상황은 다 전해 들었다.
“네. 그 부분은 일체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진행해. 다음 안건은?”
“회장님께서 내일 방문하실 예정이십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냥 쉬셔도 될 텐데.”
“그게 되시는 분입니까? 그렇게 현장을 돌아다니셨는데, 그분 성격에 이만큼만 하는 것도 많이 참으시는 거지요.”
매달 사장단들을 모아 회의를 하는 것도 모자라, 순서대로 계열사를 돌며, 이사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왕회장이 그룹을 운영하는 방식 중의 하나였다.
덕분에 자칫 나태해질 수도 있는 이사들의 움직임에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다.
“다행입니다.”
“뭐가?”
“보여드릴 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사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사람 민망하게시리.”
“해외 수주가 없는 게, 사장님의 무능은 아니잖습니까?”
말없이 쓴웃음을 짓는 그에게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국제 경기가 안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런 걸 인정하는 분이 아니시지.”
“어쩔 수 없지요. 그분께서 국내 수주로만 만족하셨다면, 아마 현재 건설은 이만큼 크지 못했을 겁니다.”
“벌써 망했겠지.”
“국내 수주의 한계를 진작 캐치하신 거죠. 전 그 부분은 굉장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본받을 건 본받아야지.”
“비록 연초이기는 하지만, 다른 계열사에 비해 확연한 약진입니다. 회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알았어. 내일 회의에 차질 없게끔, 잘 준비하고.”
“네. 사장님. 그럼.”
부사장이 일어섰다.
“아 참! 그리고 말이야…….”
나가려는 부사장을 불러 세웠다.
남은 말이 있는지, 부사장이 뒤돌아서며 고개를 숙였다.
“네. 사장님.”
“만약에 그 호텔 지배인이 그래도 뭐라고 하면, 나한테 오지 말고, 성훈이놈 불러 가지고 처리해.”
“네?”
“제 녀석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줬으니까. 우리는 할 일 다 했어? 알리 왕자랑 직접 통화를 하든지, 난리굿을 하든지, 직접 해결하게 하라는 말이야!”
진절머리를 치는 사장에게 부사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때 이사들이 다 깜짝 놀랐다지요?”
사장도 놀랐기는 마찬가지지만, 교묘하게 사장은 그러지 않은 것처럼 말하니, 이 어찌 노련하지 않은가?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그 집사랑 통화가 끝났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진짜로 알리 왕자하고 연결되었다고 해 봐!”
“곽 이사가 그 통화 끝나고, 우황청심환을 세 알이나 먹었다고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 곽 이사가 고생했지.”
잠시 망설이던 부사장이 말했다.
“사장님. 알래스카 소식 들으셨습니까?”
“아니. 왜?”
부사장이 진중한 그답지 않게, 입맛을 다셨다.
“쩝. 거기 전 직원들이 몽땅 사표 좀 수리해 달라고 청원을…….”
“정길이 그 녀석,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치고…….”
“다시 부를까요?”
그의 말에 사장이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와서 성훈이랑 또 한 판 하라고? 이번에는 그놈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걸?’
“됐어! 사람. 짓궂기는……. 어차피 와 봐야…….”
“그럼?”
“그냥 내버려 둬. 직원들은 정 힘들다면, 다른 직원으로 교체해. 거 있잖아. 농땡이 부리는 놈들로.”
부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제가 임의로 선정해도 되겠습니까?”
사장이 그의 얼굴을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부사장의 입가에 웃음이 살짝 걸렸다.
이제는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그의 의도를 짐작한 사장이 말했다.
“그래. 알아서 해. 최 이사도 이제 그 라인에서 벗어날 때가 됐는데…….”
부사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워낙 맹목적이잖습니까? 지금 당장은 있어 봐야, 성훈 군이랑 마찰밖에 안 생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말하기 전에 알아서 분위기 정리를 한다.
직원들에게는 독사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부사장이 있었기에 사장은 자신의 본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사들 조율하느라 자네도 고생이 많아.”
사장이 웃으며 손사래 쳤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
“형! 출근하자마자 어딜 그렇게 가시는 거예요?”
사무실을 나서는 성훈에게 민수가 묻는 말이었다.
“아. 인사과에 좀 다녀올게. 얼마 안 걸려.”
“거긴 왜요?”
“배관공 때문에.”
“쩝. 이거 디자인 끝내놔야 모형 만들 건데요?”
“금방 올 거야.”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전통건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오픈할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산다고 해도, 재래식 해우소를 사용하게 할 수는 없고, 아궁이에서 밥을 해먹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여줄 건 보여주고, 그 외에는 철저히 감춰야지.’
작심하고 찾으려 하면 못 찾을 리 없지만, 아름다움보다는 지저분한 부분이 먼저 눈에 띄는 법.
그것을 위해서는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더 중요했다.
만약 그런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전통 그대로를 느끼고 싶다면, 충분히 해줄 용의가 있다.
‘그럼 한국으로 놀러 오면 돼! 템플스테이며, 민박이며, 널리고 널렸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외화벌이도 되고 좋잖아.
내 손으로 체험관을 만들어도 좋지만, 그건 활용도도 수익성도 좋지 않았다.
널리고 널린 걸 해서 뭐하게!
인사부장은 차분한 인상에 사각 뿔테 안경을 낀 남자였다.
들어오는 성훈을 보고는 대뜸 물었다.
“배관공 때문에 온 건가?”
“네. 자재는 다 구해졌는데, 통 연락이 없어서요.”
성훈에게서 눈을 거두고, 안경 위로 전화번호를 손으로 짚어 내리며 물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하죠!”
“그럼 기다리게.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인원을 채워 놓지. 해외현장에 몽땅 전화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들어갈 때도 전화 중이었는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여전히 전화번호를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큰 건을 하나 했더군. 영업 전문도 아니면서 2억 천이라니.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루키가 말이야.”
깜짝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네? 2억 천이요? 2억 4천이 아니라요.”
자신이 잘못 기억한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다, 확신하는 말투로 말했다.
“응. 구매부 정 부장에게 그렇게 들었네만.”
‘어? 이거 내가 알던 거랑 다른데?’
견적이 줄어들면…… 수익이 줄어든다.
그 수익이 줄어든 만큼, 외주업체는 고통을 받는다.
그럼 당연히 제품에 불량률이 생긴다.
‘누가 또 장난친 거야!’
어느 기업이나 자체 ‘네고’가 있다.
총 견적의 얼마를 자체적으로 깎아주는 것이다.
갑이 보기에는 저렴한 금액이 적혀 있으니 좋고, 견적을 제출하는 쪽에서는 이만큼 신경 썼다고 말할 수 있으니, 면이 선다.
성훈이 벌떡 일어섰다.
“구매부로 가려고?”
“네! 가서 물어볼 게 있어요.”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될걸? 이미 결재 났다고 들었는데?”
“결재까지 났다고요?”
“그렇겠지. 오늘 회장님이 오신…….”
성훈이 다급하게 물었다.
“부장님. 이번 달 말까지 확실하죠?”
“그건 나만 믿어!”
“그럼 그때 뵐게요. 먼저 가겠습니다.”
성훈의 등장으로 인사과가 잠시 웅성거렸다.
들어오자마자, 제 소개를 하고는 부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저 친구가 그 친구야?”
“회사 최고 유명인이 오셨구만.”
“입사 첫날에 디자인 팀장이랑 곽 이사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이번에는 서 전무를 날렸다더군.”
“저번에 알래스카도 저 친구가 보냈다고 하던데요?”
“최 이사도 지금 짐 싸고 있답니다.”
“크크크. 이거 완전 사형집행인데요?”
부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성훈이 총알처럼 튀어나가고 있었다.
“저거 또 왜 저래?”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부장실에서 부장이 나오며 말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대화는 중단하고, 업무에 집중합시다.”